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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79화 (79/192)

〈 79화 〉 모기 하나 없애자고... #4

* * *

마탑과 블루네일 왕국 사이의 어딘가.

막상 그 이야기만 들어보면 텅 빈 황야에 탑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오산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질 않았다.

“ 오……. ”

마을이 있고, 탑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아니 성은 여느 나라의 수도 이상으로 화려했다.

곳곳에 그들이 흩뿌린 아티팩트가 있었고, 마탑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제법 많았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물어보니거래 아닌 거래관계를 맺고 이곳에 머무르는 이들이라고 한다.

마탑 주위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농사를 짓거나 그 외의 식료품을 만들고, 때로는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한 주점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즉, 각자 머무르는 집을 제외하면 건물 하나하나가 필요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계획도시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무척 잘 어울리는 단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외부인을 위해 마련한 여관 몇 개도 계획적으로 세워진 건물 중 하나였다.

“ 마탑의 마법사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냥 찾아가서 연락하면 되는데요? ”

마탑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가 늦은 저녁 무렵이기에, 오늘 자리 잡은 여관 주인에게 마법사를 만날 방법을 물었다.

따로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왔기에 특별한 수단이 필요한가 싶어 저지른 행동이었다.

다만, 그 답이 워낙 맥 빠지고,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했던 답인지라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 정말 그게 전부입니까? ”

“ 예. 그… 귀족님 같은 분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는데, 다들 그런 식으로 연락을 취합니다. 마법사님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잘 나오시고요. ”

“ 제가 아는 마법사들은 탑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고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군요. ”

“ 에이, 그분들도 사람인데 계속 틀어박혀 살 수는 없질 않습니까. ”

나도 너스레를 떠는 여관 주인의 반응이 그럴듯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마탑의 마법사라면 똥오줌을 가리는 시간조차 아까운 별종 중의 별종이라고만 알았으나,보통 사람 같은 면모가 제법 많다고 느꼈다.

물론 그 또한 남의 입으로 들은 것이기에 완전히 그렇다 보기에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마탑 주위에서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의 증언이니만큼 정확도가 높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되었던 가장 중요한 마법사와 만날 방법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려준 대가로 은화 몇 장을 주인에게 건넨 뒤 곧장 위층에 마련한 방으로 돌아갔다.

함박웃음을 짓는 주인을 보니, 팁이 참 좋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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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가까이서 보니까 참 높기도 하다.

나는 어지간한 고층빌딩만큼 높은 마탑을 올려다보며 넋을 놓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위용도 그러하며, 그 주위에서 올록볼록 솟아오르는 불규칙한 마나의 파동도 참 놀라웠다.

만약 마탑이 감각이라는 것이 있다면 피부 곳곳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에 고통을 호소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 세상에, 자동문이라니. ”

대귀족의 저택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나무로 짠 문은 둘째 치더라도,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모습을 접하자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그 덕에 하지 않아도 할 말을 내뱉어 잠시 당황했으나,

“ 자동문…? 아. 문이 알아서 열리니까 자동문이라는 거구나. 지온은 센스도 좋네. ”

“ 역시 대공님이세요. 전부터 여러모로 독특하셨으니, 이런 사소한 것에도 기지가 번뜩이시는 거겠죠? ”

정말로 별 것 아닌 일로 나를 칭찬하기 바쁜 두 여자의 다툼 덕에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었다.

“ 어서 오세요. 마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졸부처럼 두 여자를 사이에 끼고 카운터로 향하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고개 숙여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제법 중세와는 거리가 먼 건물의 형태나 색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몹시 현대적이기에 이질적이었다.

“ 네, 반갑습니다. ”

“ 몸짓이나 깨끗한 복식을 보니 귀족이신 것 같네요. 이 마탑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분들은 많고도 많으니, 사전에 약속을 잡고 오신 것이 아니라면……. ”

남자는 너무 익숙하고 매끄러운 몸짓으로카운터 아래에 손을 넣더니 앨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말없이 권하는 것을 보니 원하는 정보가 있을 것 같았다.

사전 약속 없이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더니 정말이었다.

왜냐하면, 앨범을 펼치는 순간 드러나는 수많은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 여기에 적힌 이름이 전부 마탑의 마법사들인가요? ”

“ 네. 마탑주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를 연구 중이신 마법사 분들의 이름과 연구 분야, 나이나 성별 등을 간단히 기재했습니다. 이렇게 리스트로 만들면 일일이 설명할 시간도 덜고 좋더군요. ”

내 물음에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답을 술술 쏟아냈다.

내 옆에 붙은 다크엘프를 보고도 거리끼는 기색 하나 없는 것을 보니어느 서비스업에 나서도 일을 잘 할 것만 같았다.

“ 하아──. 지온이 늙은이에게 관심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

“ 아직 모르니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발 나이가 있는 인간이기를 바래요. 만약 젊은 여자라면… 후우. ”

내가 앨범을 뒤지며 이브의 이름을 찾는 와중, 두 여자의 한숨 섞인 푸념이 귀를 아프게 했다.

마치 내가 젊은 여자와 연관되면 꼭 골치 아픈 일이 터질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이렇다 할 반론을 던질 수도 없는 것이 내 상황이었다.

실제로 연을 맺고 나서 내 첩까지 된 엘렌이라는 사례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이브와 만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모르는 척 이브의 이름을 막 찾은 듯한 기색을 보이며, 남자가 볼 수있도록 앨범을 뒤집어 내밀었다.

이브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 찾았습니다. 이 분과 만나볼 수 있을까요? ”

“ 어디… 이브 그린우드 님을? 정말이십니까? ”

이브 그린우드. 18세. 연구 분야는 미세 원소.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원자나 분자 같은 개념이 없는 세계라 그런지 작은 입자를 미세 원소로 표시한 듯 했다.

이브는 그런 부류를 응용한 마법을 응용하려는 이였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보기에도 워낙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아 이단아나 찬밥 신세일 뿐이지.

“ 네. 제가 생각하던 일에 어울리는 분 같아서요.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

지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앨범만을 보고 마법사만을 모른 상황이다.

이브에 관한 자세한 특징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제가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 것 또한 당연했다.

“ 아……. 그것이, 사실 이브 님이 유난히 독특한 분야를 연구 중이기는 하십니다만, 성과도 없고…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것에 매달리시느라 불만이 생기실 수도 있습니다. ”

나는 의외라고 할 만한 답이 돌아오자 더욱 미심쩍은 듯한 눈빛을 일부러 꾸몄다.

굳이 같은 마탑 소속의 마법사를 깎아내리려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 어째서요? 아니, 그보다 이곳 마법사의 치부를 이렇게 쉽게 드러내도 괜찮습니까? ”

“ 치부랄 것도 없지요. 여러 마법사들이 모여 마법을 연구하는 마탑이라고는 하나, 마탑이라는 소속감은 옅습니다. 그러니 마탑 소속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도 않지요. 마법사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연구의 성과와, 그를 계속하기 위한 환경의 유지뿐입니다. 즉, 마탑이 지켜야 할 가치에 개개인의 평판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요. ”

물론, 그 개인이 마탑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면 예외겠지만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마탑 소속의 인간이 좋지 않은 말을 한 만큼 고민하는 기색을 보일 생각이었다.

그녀의 잠재력을 알지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의심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투로 답했다.

“ 불러 주십시오. 그나마 제 구상에 맞는 마법사가 이분이라, 일단 이야기라도 나누어보고 싶군요. ”

“ 알겠습니다. 곧 연락을 넣어 일정을 확인하죠. 정말 급한 순간이 아니라면 이곳으로 오실 겁니다. ”

그는 곧장 등을 돌려 어딘가로 향하더니,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서랍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투명한 유리로 만든 듯한 수정구 하나가 있었다.

아마도 직접 소식을 전하러 갈 시간과 수고를 아끼기 위해 만든 연락 도구임에 분명했다.

현대로 예를 들면 호텔의 내선 전화 같은 것이겠지.

수정구는 남자가 손을 대기 무섭게 반짝였고, 남자의 목소리에 따라 연락할 대상을 특정했다.

구태여 자세히 듣지는 않았으나, 드문드문 들려오는 목소리를 보니 이야기가 잘 진행되는 기색이었다.

─예, 그렇게 돼서 잠시 내려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연락을 다 마친 듯 빛이 사라진 수정구를 다시 서랍에 집어넣고, 다시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 만나실 수 있다고 하시는군요. 이브 그린우드 님이 계시는 곳으로 직접 안내해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 네. 가겠습니다. 부탁드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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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처음 뵙겠습니다. 이브 그린우드… 라고 합니다. ”

잘 먹고 잘 자는 편이 아닌 마법사라 그런지 어딘가 빈약해 보이는 인상이다.

나는 전체적으로 가녀린 소녀, 이브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방바닥에 어지러이 흘러넘치는 수식으로 빼곡한 종이나 마법진의 도형,

책상에 놓인 형형색색의 플라스크보다 더욱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 반갑습니다. 지온 크라우저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인 헬레나와, 호위 엘렌입니다. ”

본래 셋 중 가장 신분이 높은 헬레나가 주가 되어 소개를 할 법도 했으나, 평소에도 주도권을 내게 넘기는 편이었기에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

다행히 두 여자는 로비에서 보이던 경계를 거두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만나는 병약한 인상의 소녀에게 심하게 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아, 네에. 반갑습니다. 귀족 분들이 저를 만나고자 왔다고 들었는데, 모두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

그녀는 우리를 귀족으로 알 뿐, 정확히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그 반응이 무례하기보다는 신선했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연구에만 매진하느라 세상 소식과 담을 쌓은 것 같았기에 신기했고, 모름으로써 필요 이상의 무게를 잡지 않기에 편안했다.

아마 크라우저 공작령에 이르면 사라질지 모르는 모습이겠지만…….

아무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내가 아름답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엘렌을 보고도 썩 놀라시지는 않는군요? ”

“ 그런… 가요? 아마도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이 조금 괴팍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

병약한 소녀가 스스로를 괴팍하다 칭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지만, 엘렌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설령 마법에 도움이 되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다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 아무튼,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죄송해요. 제가 그런 종류의 대접에는 영 눈이 어두워서요.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연구 도중에 얻은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파맛이 나는 마나 드링크인데, 적당히 배도 차고 좋아요. ”

가녀린 손으로 녹색 액체로 찬 플라스크를 집은 이브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인공적인 파맛이 나는 먹을거리는 호기심에 씹어 먹었던 잭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요리에 파를 썰어 넣거나 파기름은 좋아하지만, 저것과 같은 맛은 영 입에 맞지 않았다.

“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

“ 아, 네에……. ”

이브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녹색 플라스크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참. 가장 중요한 내용을 깜빡 했네요. 어떤 이유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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