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모기 하나 없애자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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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가 거슬려? 그럼 영지민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죽일게. ”
나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헬레나에게 고충을 털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예상보다 더한 대답이 돌아온 나머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모기 하나 잡자고 영지의 힘을 쥐어짜낸다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마 웃음거리가 되고도 남겠지.
“ 아니, 제발 그러지 마. ”
“ 응, 알았어. ”
헬레나가 알겠다는 듯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어치구니 없는 일인지 잘 알거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보니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불만을 드러내면 극단적으로 튀는 경우가 제법 많았으니까.
─허허. 저기 산 때문에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구먼. 참 불편하겠어.
나는 과거 사단장이 가볍게 한 마디 하고 돌아갔더니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산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워낙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군대였다.
더해, 군대 이야기는 허풍스럽게 보일수록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탓에, 내게 주어진 무게가 여전히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의 내 처지가 그 이야기 속의 사단장과도 비슷했고, 헬레나는 내 말 한마디에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내 곁을 지키는 엘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륙을 말아먹는 삼대 거두 중 둘이 내 여자를 자처하며, 이 나이에 왕국 내에서도 제법 큰 권력자가 나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생각하기에도 재수가 없다 못해 역겨울 지경이었다.
즉, 내가 탐욕을 부리기 시작하면 대륙 전체의 판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상황만 보면 힙노스가 나를 보내려 결심한 것이 오답일수도 있었다.
멸망은 않을지언정 암울한 흐름을 주도할 수도 있었기에.
먼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평화롭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 평화를 깨는 놈을 죽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 모기 새끼를 죽이는 일이다.
그런데, 왜 모기를 죽이는 이야기를 하던 중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 음……. ”
나는 침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졌다.
이곳 대륙에서 모기를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은 없었다.
공격마법을 쓰는 것은 너무 요란하며, 특히 실내에서는 속 시끄러운 일이 터질 수도 있었다.
이럴 때 에스킬라나 모기차라도 돌아다녔다면 조금 나았을 지도 모르지만…….
“ 어? ”
문득, 뇌리에 시퍼런 번갯불이 튀었다.
모기차와 에스킬라.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모기를 죽이는 데 특화된 성분을 섞은 기체를 흩뿌리는 고마운 존재였다.
최근 들어서는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내성이 생겨 별 효과는 없어 보였었는데, 이 세계라면 다르다.
하물며, 화학물질이 아닌 마법을 사용한다면 내성이 생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마법에 시달리던 모기가 그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륙이 큰 혼란에 휩싸이겠지.
“ 왜?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헬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마 내 안색을 읽고 생각이 끝났음을 알아낸 듯 했다.
“ 났지. 모기를 없앨 방법이 생각났어. ”
“ 어떻게? ”
“ 마탑에서 마법사 하나를 초청해서 진을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
모기 하나 잡자고 마탑 소속의 마법사를 부른다.
실로 미쳐버린 생각이지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권력이다.
하물며 나는 대공이니, 해충을 없애 생활을 쾌적하게 한다는 명분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응? 마법사라. 그건 또 생각 못했네. 아무튼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이런 종류의 일은 구석에 틀어박힌 놈들이 잘 하는 일이니까 성과도 기대할 만 하고. ”
“ 훌륭하신 생각이세요. ”
두 여자는 나를 사이에 둔 채 눈빛을 주고받았다.
부드럽고 정이 가득한 눈이 아니라서로를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누가 더 아첨을 잘 해 내 호감을 사느냐로 은연중에 겨루는 것만 같았다.
다툼 아닌 다툼은 그 후에도 십 분 가량 이어지다 결국 할 말이 없어졌는지, 두 여자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말로 은근슬쩍 말로 공격하는 모습이 참 귀여워보였다.
“ 생각난 김에 내일이라도 당장 마탑으로 가려 하는데… 괜찮을까? ”
“ 그야 당연히 괜찮지. 당장 아버지께 말씀드려 준비를 마쳐야겠어. ”
헬레나가 기꺼워하며 아이처럼 들뜬 기색을 보였다.
말을 들어보니 그녀도 따라갈 생각이 가득한 듯 했다.
요전 사냥에 홀로 나섰던 때와 다르게, 영지에서 떨어져 제법 먼 길을 가는 상황이었다.
헬레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우리라.
또, 내 입장에서도 헬레나와 떨어지는 것이 좋을 수가 없었다.
사냥의 여파로 인해 이틀 밤낮을 달래주어야 했던 것은 물론, 아직 부인과 떨어져 기뻐할 만한 단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때가 언제 오리라고는 알 수 없고, 아마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 이스 님… 장인어른께 또 신세 지게 생겼네. ”
분명 공작에서 은퇴한 것은 맞는데, 사실상 작위를 물려주기 전과 크게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나 안타까운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니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선물이라도 사 가야 할 것 같았다.
◎◎◎
“ 공작님께서는 참 정력적이시군요. 아직 젊어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가장 높이 떠오른 해가 서서히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할 오후.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이 기세 좋은 내리쬐는 시각에, 체스가 먼저 운을 띄우며 차 한 잔을 이스의 앞에 슥 내밀었다.
조금 전 들뜬 표정을 보이며 들렀던 헬레나가 그 주제였다.
“ 스물넷이면 아직 힘이 넘칠 시기지. 더구나 헬레나는 소드마스터니까, 남보다 기운이 더 넘치는 것도 당연해. ”
이스는 탁자에 놓인 차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더운 여름에 더운 차를 마시는 것이 더욱 더워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미 수없이 겪어온 상식적인 일이었기에.
“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마탑에 들러 마법사를 불러오겠다는 말씀은 정말 놀랍더군요. ”
“ 음. 나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던지라 제법 당황했네. ”
마탑까지의 거리는 둘째 치더라도, 모기를 잡자고 마법사를 데려오겠다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히 기재임이 따로 없다고, 이스는 내심 흐뭇해했다.
돈에 쫓길 만큼 지갑이 허전한 크라우저 공작가도 아니었으니, 그 돈이 많이 들더라도 아무렇지 않았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것도 아니었고.
“ 낭비라……. 그러고 보니, 사위는 여전히 자기 물건 하나 사는 기색이 없던가? ”
이스는 별 생각 없이 뇌리를 스친 의문을 입에 담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할 상대가 아니었기에 마음 또한 편했다.
“ 예. 분에 넘치는 행운을 얻어 마음이 들뜨는 것도 당연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기묘할 정도로 전과 똑같이 생활하더군요. 대공이 제 아들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
“ 음… 대견스럽다고 할지, 아니면 씀씀이가 너무 인색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사위가 한 번도 돈을 크게 쓰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지를 풍족하게 하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고……. ”
용병을 고용하거나, 포도밭을 만들거나… 영지민을 위한 기반시설의 수리나 보급품의 정비 등. 헬레나가 영지를 위해 주도한 정책에도 지온의 입김이 제법 들어갔음을 이스는 알았다.
알아서 더욱 대견했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대공이 되었음에도 크라우저 가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헬레나의 시종으로 지내던 전과 같이.
“ 혹시, 우리 크라우저를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지……. ”
“ 대공이요? 전혀 아닙니다. ”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숨 쉬며 중얼거렸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던 체스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에 이스가 눈을 크게 뜨며 체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 전혀 아니라고?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
“ …크흠! ”
조금 민망한 일이기는 하나, 필요한 일이다.
또한 크라우저 공작가의 맥을 보존한다는 면으로 보아도 정당한 일이기는 하다.
체스는 그리 자신을 세뇌하며, 목청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 외람되오나, 공작님의 방에서 늘 교성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는 하인들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민망한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공작가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
“ …그랬었나? ”
헬레나와 지온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았다.
정확히는 헬레나가 정을 구걸하는 관계이기는 해도, 겉으로는 썩 좋아보였다.
그래서 제법 동등한 위치에 선 지금 내심 감추고 있을지 모를 불만이 겉으로 나오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하지만 그저 크라우저의 인간이라는 이유로, 또 공작이라는 이유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천박한 소문이 나지도 않았겠지.
이스는 그 점에 감사함을 느꼈다. 정으로 이어진 진심 어린 관계인 것 같아 안심하기도 했다.
부디, 지금처럼 그 고삐만 잘 잡아 준다면… 크라우저는 앞으로도 무탈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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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은 제국과 블루네일 왕국의 경계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이름대로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의 본거지다.
마법사라 하여 꼭 마탑에 몸을 담그거나 마탑 안에서만 생활하리라는 법은 없으나, 대부분 탐구에 열을 올리는 연구자이자 별종들은 대부분 그곳에 머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곳 대륙의 마법사들 또한 마나를 응용하여 커다란 파괴력을 발휘하거나 여러 편리한 기능을 맨손으로 해낼 수 있었다.
그저 그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속하지 못하기에 반드시 보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또한, 마법사들 스스로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짙었다.
당장 그들이 가장 해명하고 싶어 하는 마나의 심연이나 진리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바빠 죽겠는데, 전쟁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덕분에 이 대륙의 전쟁은 마법사를 이용한 대규모 화력전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긴 했다.
다만전체적인 경향이 그럴 뿐,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개중에는 위력이 약하고 범위가 좁을지언정 신속함을 살린, 공격에 특화된 마법사들도 종종 있었다.
넓게 보면 엘프족들의 정령마법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 그런데… 마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뭔가 딱 정해놓은 사람이 있는 눈치던데. ”
격전 지역이나 보급로를 피해 멀리 돌아서 가는 중, 헬레나가 물었다.
나를 중심에 두고 그녀가 왼쪽, 엘렌이 오른쪽에 위치해 있어 묘하게 끼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좌석이 제법 넉넉했음에도 내게 꼭 붙어 있는 탓이었다.
그래도 부드러운 몸이 이불처럼 몸을 싸고 있으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
나는 헬레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애초에 모기차가 흩뿌리는 뿌연 안개에서 떠오른 인물은 한 사람 뿐이었다.
“ 이브 그린우드라고, 괴상한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가 있나 봐. 마침 내가 생각한 일에 딱 맞는 것 같아서 찾아가 보려고. ”
“ 이름만 들어보면 여자 같은데…? ”
헬레나의 눈빛이 샐쭉해졌다. 엘렌도 마찬가지였고, 거기에 더해 내 팔을 안은 힘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분명 긴장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팔에 달라붙는 감촉이 참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 응. 그렇다고 하더라. 본 적은 없지만. ”
“ …흐음, 그렇구나. 여자, 여자라……. 몇 살이야? ”
“ 글쎄.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여자 마법사라는 것 말고는 몰라. ”
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입에 담으며 태연하게 앞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내가 여자를 맞이하러 가는 것이 영 걱정되는 기색이었다.
본의 아니게 나를 엘렌과 공유하게 된 헬레나로서는 내키지 않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러니, 그저 걱정말라는 듯 한 손으로 헬레나의 허벅지를 쓸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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