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모기 하나 없애자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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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러우면서도 따끔하고, 맞은 부위의 살이 동그랗게 부어오르게 만드는 놈.
더운 여름밤 잠에 들려 자리에 누우면 앵앵 소리를 내며 신경 거슬리게 하는 주범이자, 가히 악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놈.
나는 그 빌어먹을 모기에 뒷목이 물려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보통 사람보다 감이 민감하니 가려움은 더했고,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열은 더욱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 대공님? 왜 그러세요? ”
엘렌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다.
내가 인상을 쓴 채 무심코 소리를 냈으니 유혹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 모기에 물려서 그래. 숲모기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발 한 번 더럽게 세네. ”
보통 도시에 돌아다니는 모기보다 풀숲에서 머무르는 놈들이 더욱 독하다.
내게 제대로 된 근거는 없지만, 그런 경향이 있음을 몸으로 깨달았었다.
그리고 이곳의 모기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네…? 모기가… 대공님의 피를 빨아먹었다 그건가요? ”
“ 어? 그렇지. 그래서 미칠 듯이 가려운데……. ”
나는 엘렌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차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말을 더듬었다.
요부같은 모습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 급격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아닐까 싶을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을 떠올렸다.
그 무엇으로도 고치기 힘든 집착이라는 깊고 무거운 병을 앓고 있음을.
“ 대공의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 대 귀한 피를 빨아댔다는 거네요. 빌어먹을 벌레가 감히 저조차 허락받지 못한 행위를……. ”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주위의 대기마저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노한 엘렌이 무심결에 방출하기 시작한 마나 탓에 자연이 떨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었기에, 공기를 포함한 자연 또한 그 분노에 호응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에 난처함을 느끼며 엘렌의 어깨를 잡았다.
“ 엘렌? 모기 한 마리에 너무 지나치게 화내고 있잖아. 물론 나도 열이 받기는 하지만, 조금 진정해. ”
“ …네. 죄송해요. ”
다행히 사람 목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돌아버리지는 않았는지 떨떠름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키지 않은 기색이 엘렌의 표정에 머무르고 있음은 여전했지만, 마나로 인한 떨림은 가라앉은 상태였다.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로 달려오던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내 말도 듣지 않고 곁에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내가 말하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내 목숨과 기분이 그들의 명줄보다 무겁고, 그들의 안위를 좌우하는 셈이었기에.
“ 설마 모기에게 질투 할 줄이야. 생각도 못 했어. ”
엘렌은 그제야 스스로가 품은 감정이 얼마나 어이없음을 알고 얼굴을 붉히는 듯 보였지만, 곧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는 모양새였다.
“ 하지만… 공작님이 게셨어도 같은 모습을 보이셨을 거에요. 제가 그러했듯, 감히 대공님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는 이유로. ”
“ 어……. ”
너무도 정곡을 찌르는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헬레나와 둘이서 살았을 시절을 엿보기라도 한 것 만 같아 소름이 돋기도 했다.
헬레나가 엘렌의 말 대로 행동했을 때가 정말로 있었기 때문이다.
“ 혹시 기억을 엿보거나 그런 건 아니지? ”
“ 제게 그런 재주는 없어요. 마탑의 마법사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제가 사용하는 건 정령마법이니까요. 그저 공작님이나 저나 대공님에 관해선 뜻이 잘 맞으니까……. ”
“ 서로 비슷한 성향끼리 통하는 게 있다는 뜻이구나. 잘 알았어. ”
헬레나나 엘렌이나 무엇에 크게 집착하는 경향이 짙은 여자다.
헬레나의 경우엔 과도한 기대에서 벗어날 자유, 엘렌은 그 몸부림에 휘말린 당사자로서 복수에 집착해야 했다.
지금은 그 대상이 나로 바뀌었지만… 성향이 비슷하니 사고방식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성격도, 배경도 다르지만 이런 점에서 마음이 통한다.
보통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기뻐할 만 했으나, 당사자중 한 사람으로서 참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 아무튼, 감히 대공님의 귀하신 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잡아야겠어요. ”
엘렌은 내 품에서 떨어져 몸을 일으키더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귀를 쫑긋거리는 것으로 보아 주위에 흐르는 소리와 마나의 흐름을 잡아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나도 몸에 품은 마나를 사용해 신경을 집중하면 사람 특유의 감각이 좀 더 강화되는 느낌을 받지만, 엘렌의 것은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고 넓을 것이 분명했다.
사용 가능한 마나나 그로 인한 결과를 드러내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가 났으니까.
애애앵~.
빌어먹을 모기는 한 마리가 아니라는 듯듣기 싫은 날갯짓 소리를 내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엘렌은 엘렌대로 내 피를 빨아먹은 놈을 잡으려 애쓰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나는 나대로 피를 빨아먹으려는 새 모기를 손으로 잡아 짓이겨 죽여 버리리라 정했다.
킬리네어 공작가의 아그네스가 뺨을 때릴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모기라는 놈은 내게 있어 분노의 대상이었다.
시발새끼. 나는 속으로 욕을 되뇌며 모기가 날아오는 곳으로 양 손을 뻗었다.
여태껏 살아오며 갈고 닦아 온 신체능력과 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단 일격에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 잡았다. ”
짝! 손뼉을 치듯 악의 근원지를 후려쳤다.
손뼉이 부딪힘으로 인해 손바닥이 약간 얼얼했지만 무척 강한 뿌듯함이 마음을 채웠다.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모기가 잡혔음을 감각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를 증명하듯, 모닥불에 손바닥을 비추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철저하게 뭉개진 더러운 모기가 비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다.
날개도, 몸도 손바닥의 압력에 이리저리 찢겨버렸다.
덩치가 큰 것을 보니역시 숲모기는 숲모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으. ”
손으로 모기를 잡으면 휴지로 닦은 뒤 물로 씻어내야 했다.
모기를 잡은 것이 뿌듯하기는 하나 그대로 놔두기엔 더럽혀진 손이 너무 찝찝하기 때문이다.
내가 병사들 쪽으로 다가가 물을 잠시 빌릴까 망설이기를 잠시.
눈앞으로 서늘하면서도 날카롭기 그지없는 바람 한 줄기가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걸음조차 우뚝 멈춰 섰고, 순간적이나마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 확실히 찢어버렸어요. ”
그 바람을 일으킨 주범, 엘렌은 눈을 뜬 채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왔다.
마치 잘 했다고 칭찬을 조르는 강아지처럼 어딘가 포상을 바라는 기색이었다.
“ 그걸 알아? ”
“ 네. 대공님의 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을 잡아내느라 애썼어요. 더구나 피를 빨아먹은 모기는 자연스레 움직임이 둔해지니까, 범위를 좁히기도 쉬웠고요. ”
오싹하기는 하지만 대단하기는 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옆에 앉는 엘렌에게 시선을 두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모기를 잡았으니 충분한 공을 세운 셈이었다.
“ 참. 잠시 물마법을 좀 사용해 줄 수 있을까? 모기를 잡느라 손이 더러워져서……. ”
“ 아, 죄송합니다! 얼른 조치할게요. ”
“ 그렇게 죄송할 건 아닌데……. ”
나는 엘렌이 허겁지겁 준비한 투명한 구슬에 손을 담그며 떨떠름하게 웃었다.
너무 죄송하다는 듯 고개 숙이는 모습이 몹시 무겁게 다가왔으나, 고마운 마음은 그것과 별개였다.
어쨌든, 손을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
사냥은 쉬웠다.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해체하고, 상하기 쉬운 내장을 따로 분류하는 일도 힘들지 않았다.
멧돼지의 성난 돌진을 슬그머니 피해 안면에 주먹을 때려 넣을 때도 힘들지 않았다.
정작 가장 힘들었던 것은 틈이 날 때 마다 덤벼드는 모기 새끼들이었다.
저택에도 모기가 없지는 않지만, 앞서 말했듯 숲에 존재하는 모기와는 밀도에서부터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 그러고 보니 엘프는 모기에 물리지 않아? ”
“ 네. 아마 엘프가 자연에 가까운 종족이라 그런지, 벌레들도 피를 가진 고기가 아니라 나무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에요. 여러 곳을 다녔지만 모기에게 물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마법으로 조종하는 것은 예외지만……. ”
나는 이주에 걸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럽기 짝이 없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짐마차에 나란히 앉은 엘렌이 모기에 한 번도 물려본 적 없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랬다.
모기가 마늘 등을 자주 먹는 사람의 피를 물지 않는다.
혹은 피가 독한 사람의 것을 알아보고 빨지도 않는다.
나는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이야기가 현실로 드러난 것만 같은 느낌에 반쯤 넋을 놓았다.
지금도 옷 아래에 가려져 있을 뿐 울긋불긋 솟은 흔적 때문에 괴로운데, 옆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여자는 멀쩡하다.
그 괴리 때문에 순간적으로 질투가 솟음을 느꼈으나, 곧 이 여자가 얌전하게 있음에 감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모기에 물린 것 보다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며, 아예 인근 숲을 전부 쓸어버릴 듯한 재해를 일으키려 했으니.
─불편하신가요…? 그럼 모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태풍으로 벽을 쳐 둘까요?
물보다는 거친 바람이 더욱 효과적이고 다루기 쉽다며, 엘렌이 물었었다.
확실히 거친 바람이 불면 모기로서는 저항도 못하고 쓸려갈 뿐이었으니 일리는 있었다.
그로 인해 주위가 초토화되는 것이 문제였지.
결국, 엘렌의 효과적이면서도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제안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모기 때문에 태풍의 벽을 만들었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정신병자 취급 받을 지도 모를 일이었고.
“ 하아──. 뭔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해. ”
“ 근본적인 해결요…? 그렇다면 해일과 태풍을 함께 일으켜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게……. ”
“ 그만. 그랬다간 영지가 쑥대밭이 될 거야.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 ”
고작 모기 하나 잡자고 해일과 태풍을 일으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빈 손으로 엘렌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마음은 감사하다만 제발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 …네. 하지만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
“ 고마워. ”
나는 주위를 가볍게 훑어 우리를 향하는 시선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엘렌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에 엘렌은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벼운 교성을 흘렸다.
“ 아앙?! 대공니임……. ”
마치 술집 작부를 안고 뒹구는 졸부처럼, 엘렌은 그 작부처럼 콧소리를 내며 눈을 흘겼다.
주위에서 쏟아질 시선을 신경 쓰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짙은 페팅을 할 수는 없었다.
저지른 놈이 할 말은 아니겠지만 저택에 돌아가서 할 일이었다. 늘 그렇듯 셋이 모일 때에.
“ 미안. 무심코 건드리기는 했는데, 이 다음은 저택에 돌아가서 하자. ”
“ 너무하세요…! 저를 이렇게 달아오르게 하시곤 참으시라니……. ”
“ 대신 헬레나보다 먼저 안아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
“ 정말이신가요?! 그 말씀,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
그래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뛸 듯이 기뻐하는 엘렌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머리칼을 쓰다듬거나 뺨을 쓸어주는 행위는 애정을 드러내기 좋았기에 자주 해 주는 편이었다.
그리고, 받는 입장에서도 내 손길을 무척이나 즐기는 듯 했기에 손을 뻗는 보람이 있었다.
“ 하지만, 공작님도 많이 기다리실 텐데… 정말 괜찮으세요? ”
“ 아마도. ”
기쁨도 잠시. 엘렌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몸이 달아오른 것은 저택에서 기다릴 헬레나 또한 마찬가지임을 잘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나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만큼 더 심한 갈증에 목이 마를 수도 있으리라.
다만, 눈앞에서 먹힐 듯 말 듯 아른거리는 고기를 구경만 해야 하는 입장도 썩 편하지만은 않겠지.
오히려 그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다.
줬다 빼앗은 것과 비슷한 행위는 가히 고문이었으니까.
어쨌든, 가자마자 서로가 마를 때가 없을 거라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 말은 즉, 모기에 관한 일도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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