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사냥 #7
* * *
처음, 용병들은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커다란 불신에 싸여 있었다.
이곳 변경백령을 포함해 몬스터와 국경선을 마주하는 곳에 굳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 몬스터를 죽이고 그것을 노획하여 돈을 벌기 위함이다.
잘 무두질된 몬스터의 가죽은 여느 플레이트 메일 못지 않은 힘을 자랑했고, 그렇기에 그 주인에게 어느 정도의 재력을 요구하게 된다.
재력이라고 해서 거대한 상단을 이끌거나 특히 부유한 귀족 정도의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나, 최소한 길바닥에 나도는 어중이떠중이 정도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 사냥에 도전하는 용병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 정말… 이걸 그냥 준다고?"
그렇기에, 지금 그들에게 건네는 말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대뜸 오크의 사체를 건네주겠다며 말을 건 것도 의심스러운데, 하물며 말을 꺼내는 대상이 그 레드후드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 그래. 우리는 필요가 없으니까. "
" 미친! 몬스터 사냥을 하러 와놓고 전리품을 버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믿어! "
버럭 소리를 내는 용병의 의심은 지당했다.
남이 사냥한 것을 주워 먹느냐는 자존심 때문이 아니며, 그저 사체를 넘겨주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성립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용병들이기에 품는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엘렌은 그런 이들의 반응에도 화내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이 대륙에서 가장 용병 일을 오래 하며 사는 이었으니, 그 생리에 훤한 것도 당연했다.
" 우리 일행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이미 오고가는 필수 여비는 벌써 벌어 둔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사체를 옮겨 팔 필요가 없지. "
"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 네가 이해하지 못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인가? 멍청한 놈 같으니. "
엘렌은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으며 용병을 도발했다. 그에 시비를 걸던 용병의 이마에 실핏줄이 솟고, 그 낯이 용광로마냥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도발과 싸움은 그들의 생활에 필수요소라 할 정도로 빈번하게 벌어졌으나, 이번에는 주먹으로 되돌려 줄 수도 없을 노릇이다.
다크엘프의 혐오감과는 반대로, 반세기 넘게 용병질을 하고 있는 전설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 이런 빌어먹을…!"
" 그래. 이해는 못해도 대충 말귀는 알아먹은 모양이군. 그래서, 어찌 할 건가? 싫으면 다른 용병단을 찾거나, 이곳 변경백령의 도움을 받는 수도 있다. 내가 용병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나도 용병이라는 나름대로의 동질감 때문이야. "
" …쯧! "
용병은 혀를 차며 분을 삭혔다.
말을 받아치려 해도 안 되고, 무력을 사용하면 무조건 자신이 지게 된다.
더구나 이런 숲속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거름이 될 수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혈기에 못 이겨 덤벼들 만도 했지만, 이 남자도 나름대로 닳고 구른 용병 중 한 사람이다. 그러니 분을 삭히고 물러날 줄도 알았다.
엘렌은 그런 용병을 보며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 입꼬리를 슬며시 들어올리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
◎◎◎
나는 숲을 제 집 앞마당마냥 종횡무진 누비는 이들을 보며 숨을 죽였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야, 얼른잡아서 가지고 가! 서둘러!"
몬스터들이 득실댄다는 숲은 마치 귀족의 사냥터마냥 그 격이 깎일 대로 깎여버렸으며, 그 사이를 용병들이 쏘다니며 몬스터의 사체를 줍느라 열을 올렸다.
엘렌을 포함한 무리가 사냥하고, 수작질을 통해 끌어들인 수많은 용병단이 자기 몫의 사체를 주워 운반하는 지금.
나 또한 그 최전선에서 서서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하고는 있었으나, 사실상 다크엘프 용병단이 단독으로 벌이는 쇼에 가까웠다.
" 어억?! "
" 바보같은 놈. 조심해라.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돈보다는 중하다는 용병계의 격언을 잊은건가? "
그들은 사냥을 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덤벼드는 다이아 울프를 죽이고, 그 송곳니에 물릴 뻔한 용병들을 지켜주기도 했다. 사냥과 보호를 동시에 병행하는 셈이었다.
어찌 보면 난전과도 같은 상황이었으나, 우리가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시체 줍기에 혈안이 된 용병들도 자기 몸 하나 건수할 실력은 있었다.
긴장의 끈을 너무 느슨하게만 놓지 않는다면 몬스터의 기습을 대비하고, 반격을 할 있을 역량이 되는 사람들이었다.그렇기에 이 변경백령에 머무르며 사냥에 열을 올릴 수 있었다.
그래도, 땡 잡은 것 같겠지.
오크, 다이아 울프, 매드 래빗 등등… 온갖 사체가 즐비하는 이곳은 가히 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황금의 비가 벼락처럼 쏟아진 것 마냥 젖과 꿀이 넘치는 땅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이 용병들에게는 그랬다.
" 제길! 고맙다! "
" 풋. 그래. 고마우면 얼른 정비한 뒤에 이 자리를 떠. 죽기 싫잖아? "
" 아잇 시팔! "
거친 인상의 용병 하나가 사나운 욕설을 쏟아낸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욕심에 눈이 벌개 죽을 뻔 했으니 제법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탓이리라.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는 걸 보면 인성이 아예 글러먹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며칠에 걸쳐 용병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 주었으니, 다음에는 변경백령의 주머니를 챙겨 줄 차례였다.
용병들의 입소문을 타고 엘렌의 평판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는 것이 헬레나와 내 생각이었지만, 그들과 같은 영지민들에게 호의를 사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용병들과 다르게 수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이점을 가지나, 하나하나의 무력은 낮다. 그러니 더욱 집단전을 갈고닦을 수밖에 없었으나, 위기에 취약하다는 약점 또한 안고 있었다. 일대 일로 대치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십중 팔구는 죽어나가기 마련이다.
물론 이 변경백령의 군사들은 잘 훈련되어 있어 그런 일이 많지는 않으나, 없다고 할 정도로 드물지도 않았다. 죽지는 않더라도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안 다쳤으면 당장 진에 섞여 진을 가다듬어! "
" 예, 예엣…!"
마치 공성추를 성문에 때려넣듯, 엘렌을 중심으로 한 용병단이 가장 선두에 서서 몬스터들을 휩쓴다.
그러면 병사들이 신속하게 사체를 옮기고, 사체를 옮긴 뒤에는 다시 대열에 합류하여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마치 공장이 떠오르는 듯한 분업 구조였다.
그 과정에서 기습을 받아 위험에 처한 병사가 생기면 귀신같이 구해내기도 했으며, 열을 가다듬도록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엘렌은 용병들에게 같은 용병으로서의 정이 있다고 말했었다. 분명 그렇게 말했으나, 막상 그 태도를 보면 이곳 변경백령의 병사들을 더 아끼는 기색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닳고 닳은 용병단보다 개인전 기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병사가 아닌 그들이 단순한 영지민이라는 것을 알고 최대한 보호하려 하는 기색이었다.
─우어어!!
" 다들 조심해! 트롤이다! 오늘은 제법 깊이 들어왔군! "
유난히 땅이 울리는 고함소리인가 싶었더니, 그 범인이 트롤일 줄이야.
나는 저 멀리서 포효하는 거대한 잿빛 거인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오크보다 두 배는 크고 위압감 또한 남달라 고급으로 취급되는 몬스터다운 위용이 느껴졌다.
" 분명 트롤은 숲의 중반부터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나요?! "
" 그렇소. 하지만 뒤를 받쳐주는 병사들이 워낙 신속해서 그런지 진군 속도가 예상 이상으로 빨랐던 모양이오. 이런 기세라면 숲을 횡단하여……. "
숲의 횡단. 엘렌은 거기에서 말을 끊은 뒤, 잠시 우울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몬스터를 앞에 두고도 한가로이 풀 죽은 얼굴이 왜 그런가 생각하다, 숲을 횡단한 끝에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를 깨달았다. 바로 그녀가 쫓겨난 엘프의 숲이 그곳에 있었다.
흔히들 아인종이라 부르는 이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문명사회.
또 인간들의 세상과 교류는 작으나, 간혹 그들의 물품이 흘러 들어와 제법 비싼 값을 받는다 하는 미지의 땅이었다.
" 엘렌! 생각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지금은 트롤부터! "
" …아!실례가 많았소!"
엘렌은 나의 외침에 고민을 털고 일어나, 곧장 활에 시위를 매겼다.
그녀를 지키듯 둘러싼 다크엘프 무리가 있어 위험하지는 않더라도, 계속 멍한 상태로 두는 것은 위험했다. 그러니 다소 무례하더라도 채찍질을 통해 깨우는 수밖에.
" 후우…!"
트롤은 오크와 다르게 무리를 짓기보단 홀로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덩치가 큰 탓인지, 아니면 오크보다 월등히 강한 탓인지는 모르나… 그런 성질이 있었다.
당장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꼴만 보아도 알 수 있을 지식이었다.
" 쏴… 허업?! 중지!"
바람을 머금은 화살을 쏘기 전, 엘렌은 급히 헛바람을 삼키며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그에 다른 다크엘프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엘렌은 말없이 트롤의 머리 위를 응시할 뿐이었다.
" 눈치 빠르시네요? "
콰득!
몬스터가 사방에 즐비한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가 넓게 울렸다. 동시에 살과 뼈를 가르는 섬뜩한 파육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나지막하지만 선명하기 짝이 없어, 바로 코앞에서 듣는 것 마냥 생생함이 넘치는 소리였다.
" 으음……. "
목소리의 주인, 헬레나는 트롤의 어깨를 밟고 서서 정수리에 박아 넣은 칼을 잡은 채 한숨을 토해냈다.
제아무리 오크의 질기고 단단한 몸을 가진 트롤이라 할 지라도 머리통이 꿰뚫린 이상 즉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더구나 그 골통을 오러 블레이드로 꿰뚫었으니 숨이 끊어지지 않고 배길 수가 없을 노릇이었다. 만약 멀쩡히 살아 움직인다면 트롤이 아니라 언데드겠지.
" 후우. "
헬레나는 허리가 꺾여 쓰러지는 고목같은 트롤의 몸을 밟고 낮게 도약하여 내 앞에 섰다.
그 놀라운 광경에 병사들 또한 숨을 죽였고, 화살에 바람을 먹이던 다크엘프들 또한 힘을 거둔 채 헬레나를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트롤의 어깨를 밟고 선 그 민첩함이 놀라웠다.
" 어때요? 이 정도면 깔끔하죠? "
" 아… 그러네요. 머리통만 꿰뚫었고, 가죽에는 이상 없고, 피가 솟긴 하지만 출혈 부위가 적으니 알뜰하게 쓸 수 있겠네요. "
나는 헬레나의 아이 같은 질문에 답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트롤의 정수리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솟아났으나, 핏줄기에 힘이 없었다.아마 압력을 타고 쏟아지던 피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 싶었다.
" 저게 크라우저 공작님…….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마스터에 이른 천재인가. 소름 끼치네. "
" 트롤을 저런 식으로 빠르고 쉽게 잡는 건 난생 처음 보네. "
" 다크엘프 용병도 그렇고, 평생 가도 잊지 못할 신기하긴 해. "
병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수군거리면서도 트롤의 사체를 급히 회수했다.
무척 깔끔하게 죽은 트롤은 그렇잖아도 비싸던 몸이었으나, 더 비싸질 것이 분명했다.
같은 가죽이라도 손상도에 따라 값이 오르고 내릴 때가 많으니, 트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듯 싶었다.
" 벌써 오후네요? 아침부터 달려서 여기까지 오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
헬레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상쾌하기 짝이 없는 호선을 그렸다. 아무리 운동능력이 뛰어난 그녀라도 거의 반나절을 뛰어다녔으니, 이처럼 땀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기사가 땀을 훔치는 광경이라.
나는 새삼 헬레나의 풍요로움을 깨달으며 내심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내가 할 일을 기억 저편에 미뤄두지는 않았으나, 기쁘다는 감정이 솟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가 내 것이라는, 다소 값싸지만 확실히 콧대를 세워주는 우월감도 느꼈다.
" 네. 병사들이 워낙 잘 따라줘서 속도가 무척 빨랐습니다. "
" 맞아요. 역시 리슬링 변경백령에서 살아가는 병사들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네요. 제 영지의 병사들보다도 뛰어난 것 같아요. "
우리는 잠시 진열을 정비하는 동안 변경백령의 병사들을 띄워주는 잡담을 나눴다. 조금이나마 병사들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한 얄팍한 술책이었다.
덕분에 병사들이 감격한 눈으로 우리와 다크엘프 무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엘렌의 용병단도 중간부터 우리 의도를 읽고 대화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 자, 그러면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갈까요? 야영 장비도 챙겨오지 않은데다, 노숙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곳이니까요. "
약간의 시간을 들여 주위 정리를 끝내니, 헬레나가 손뼉을 치며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그녀의 말 대로 이 이상 진군하는 것은 몹시 위험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