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결투 #8
* * *
우두둑, 하고 근육과 뼈 꺾이는 소리가 아주 찰지게 느껴졌다.
무심코 긴장의 끈을 놓을 만큼 흐뭇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물론흐뭇하다고 해서 내가 새디스트 성향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끝이 가까워졌기에 느끼는 안도감 때문이다.
아무튼, 몸 전체를 이용해 있는 힘껏 뒤튼 덕에 기사의 팔이 완전한 걸레짝이 되었다.
적어도 이번 대결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말은 즉, 검을 쥘 힘조차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네, 네놈이 감히…! ”
기사는 어느 새 멀찍이 떨어진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검을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으니, 기사로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내가 기사였어도 화가 났으리라.
“ 가엽고 딱한 자로다. ”
나는 보란 듯이 검을 흔들며 짐짓 근엄한 척 연기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귀족다운 오만함도 묻어나오는, 실로 도발에 적절하기 짝이 없는 말과 표정이었다고 생각했다.
“ 이… 이 찢어 발겨도 시원찮을 놈이!! ”
그에 한껏 열이 받은 기사가 한 팔을 덜렁거리며 돌진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통과 분노가 섞인 얼굴은 필사적이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저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는 생각한다.
또 한참 얕보고 있던 어린놈에게 빈틈을 찔려 검을 쥐는 팔이 걸레짝이 되고 말았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오히려 화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어쨌든 도발 직후, 나는 손에 쥔 검을 향해 주먹을 몇 번 휘둘러 날을 철저히 박살냈다.
그로 인해 칼날 파편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곧고 깨끗한 날을 가지고 있던 검은 초라하게 손잡이만을 남겨 두고 말았다.
만에 하나 검이 빼앗길 것을 대비해 아예 쓰지 못하도록 손을 쓴 셈이다.
“ 쯧. ”
돌진하는 기사의 흉흉함은 여전했으나 어딘가 맥 빠지는 구석이 있었다.
기사가 검도 없이 팔을 덜렁거리며 다가오는 꼴이나를 잡아달라고 온몸으로 울부짖는 것처럼 보인 탓이다.
나는 혀를 차며 허리를 낮게 숙인 뒤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흔히 레슬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태클을 걸기 위해서였다.
“ 크흡?! ”
마치 제법 속도를 내던 차 두 대가 충돌하는 것 같은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
견딜 만 했기에 망정이지, 몸을 살짝 옆으로 틀지 않았다면 머리가 박살났을 지도 모를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는 것이 당연할 충격이었으니, 그 상대 또한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더구나 팔이 뒤틀린 상태에서 들이받았으니 그 아픔은 내가 느끼는 충격의 배 이상임이 분명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
기사는 시정잡배같은 욕설을 늘어놓으며 멀쩡한 팔을 높게 쳐들었다.
훤히 드러난 등짝에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러 등을 치고, 가능하다면 척추마저 박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기사는 의도했던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자세를 낮춘 뒤, 남자의 허벅지를 감싸 있는 힘껏 들어 올렸으니까.
“ 어, 어어…?! ”
내가 허리를 세우니 기사의 상체가 바닥을 향했다.
기사의 체구와 갑옷의 무게가 합쳐진 탓에 들어올리기가 제법 버거웠다.
아마 몸을 마나로 강화할 수 없었다면 들어 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리라.
“ 후우웁! ”
나는 있는 힘껏 다리를 뒤집었고, 기사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그 흐름에 휩쓸렸다.
그 결과 성대하게 자빠지듯 허공을 날다, 연무장 바닥에 등부터 처박히는 꼴이 되었다.
마치 밥상을 뒤집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커헉! ”
기사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갑옷을 입은 채 등을 처박혔으니 충격이 클 만도 했다.
갑옷이 피해를 줄여주기는 하지만 에어백처럼 충격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사의 한쪽 다리를 끌어안듯 들어올려, 팔을 꺾을 때처럼 있는 힘껏 돌렸다.
부위가 커서 그런지, 힘을 더 세게 주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팔을 꺾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섬뜩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끄, 끄으으으!! ”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제대로 신음조차 내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연무장 멀리 퍼져나갈 만큼 커다랬다.
목소리도 그렇고, 고통에 한껏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니 무심코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머지 다리마저 있는 힘껏 뒤틀었다.
그로 인해 또 다시 고통스러운 신음이 기사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박살낼 작정으로 꺾어버렸으니 지금 당장 걸을 수는 없을 터였다.
“ 후우……. ”
이 기사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다리도 망가진 데다 검도 없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고작 팔 한 짝 뿐이다.
방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몹시 유리해졌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 아! 지온…! ”
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헬레나가 내지르는 탄성이 들려왔다.
기쁨보다는 내가 다치지 않아 안도하는 기색이 짙은 목소리였다.
얼굴을 볼 수 없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표정 또한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아직 결투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헬레나 쪽으로 돌아보려는 고개를 잡아두며 멀쩡한 기사의 팔로 시선을 옮겼다.
갑옷을 입지 않았다면 타격기를 통해 작은 부위만 박살냈을 테지만,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관절기를 써야만 했다.
하다못해 경장 정도였어도 이 꼴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참 아쉬울 따름이다.
“ 어떻게 하실래요? 항복하시겠습니까? ”
이미 죽는 것 이상으로 치욕을 겪은 기사에게, 나는 목숨을 살 기회를 주었다.
애초에 죽이고 싶어서 죽인 적도 없었으나 필요해서 죽이는 상황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 비, 빌어먹을 놈…! 차라리… 죽여라! ”
기사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한껏 인상을 쓴 채 죽여줄 것을 요구했다.
방심 한 번에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가게 놔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고, 살아남는다 한들 예전 같은 대접을 받기에도 글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킬리네어 공작의 경멸 어린 시선에서 그 답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 …알겠습니다. ”
나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허울 좋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단지 기사의 멀쩡한 팔의 상박을 밟아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한 뒤, 재킷 안쪽에서 뽑은 더크로 목을 찔러 숨을 끊기 위해 몸을 숙였다.
“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
“ 자, 잠깐…! ”
내가 쪼그려 앉은 채 더크를 꽂으려는 순간 기사가 다급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막상 명줄이 끊어질 때가 되자 생각이 바뀐 듯싶었지만, 결과는 유감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크의 끝이 목젖에 닿기 직전에 그랬으니, 늦어도 너무 늦은 외침이었던 탓이다.
“ 끄, 끄르르……. ”
기사의 입에서는 피거품이 들끓었고, 있는 힘껏 부릅뜬 눈은 힘을 잃은 채 흰자만을 남기고 말았다.
코 밑에 손을 대보니 숨을 쉬는 기색도 없어 완전히 절명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나는 더크의 날을 목 안에서 한 바퀴 돌리고 나서야 뽑아냈다.
다소 잔혹할 지도 모르나 상대가 기사이니만큼 확인 사살을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 죽었습니다. ”
“ …음. 그렇군. 이번 대결은 지온 알트람의 승리다. ”
내가 침울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자, 국왕 또한 낮은 목소리로 내 승리를 선언했다.
그의 편이라 할 수 있을 공작측이 이겼으니 기분은 좋겠지만, 그 과정이 껄끄러웠으니 순순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도, 내가 승리했다는 것에 변함은 없었다.
“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야…! ”
헬레나는 내가 연무장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두 손을 꽉 잡으며 웃었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기색들이었다.
노예로 팔려가기 직전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 난 셈이니까.
“ 저야말로 이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다 헬레나 님의 교육 덕분입니다. ”
“ 정말… 정말 다행이야……. ”
나는 연신 다행이라 중얼거리는 헬레나를 달래며, 그녀의 등 뒤로 연무장을 오르는 엘렌에게 가벼운 눈짓을 보냈다.
말을 걸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이런 식으로 응원하려는 셈이었다.
다행히, 엘렌도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레드후드……. ”
“ 아무리 승리가 급하다고 해도, 저런 오물까지 끌어들이다니……. ”
헬레나와 나의 결투로 인해 잠시 식었던 혐오가 고개를 들었다. 엘렌을 향한 경멸의 시선과 목소리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다소 풀이 죽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장본인은 자신이 말했던 대로 더없이 편안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칫……. ”
엘렌과 마주하는 기사는 혀를 차면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다크엘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엘렌의 악명과 실력은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났기 때문이겠지.
한 쪽은 엄살을 부린 것 치고는 무척 여유가 있고, 한쪽은 긴장하는 상황이라.
“ 그럼, 시작하시오. ”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이것이 마지막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알리는 국왕의 개시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한 여자와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이럴 수가……. ”
결투가 시작된 지 불과 30초.킬리네어 공작은 앞으로 벌어질 참상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손을 포함한 전신이 덜덜 떨렸으며, 머리는 백지마냥 새하얗게 물들었다.
차라리 패색이 짙은 정도였다면, 다소 불리하게 흘러가는 정도였다면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
부족하나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탓에 그의 정신은 백지가 된 상태였다.
“ 후우……. ”
엘렌은 본의 아니게 알버스 킬리네어의 정신을 무너뜨렸으나,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쉴 뿐이었다.
정령마법으로 만든 커다란 물방울을 쏘아내며 시야를 가리고, 그 틈을 타 쏜 화살로 팔과 다리의 연결부를 정확히 꿰뚫었음에도 그랬다.
얼핏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은 모두 계산이었다.
지온은 엘렌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정령과 정령을 불러내는 그 사이의 틈이 무척이나 짧다는 것에 있었다.
미리 탄을 장전하고 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빨랐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한 번에 두 가지 정령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만, 지온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헬레나 측이 연속으로 승리를 거둠으로서 결투가 끝을 맺었다는 점이다.
“ 승자는… 엘렌 레드후드요. 이로서 총 세 번의 결투 중 두 번을 크라우저 공작 측이 이겼으니, 킬리네어 공작은 조건을 이행하시길 바라는 바요. ”
국왕은 윈드 커터에 잘려 바닥을 구르는 기사의 목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크라우저 공작 측의 승리는 그로서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으나, 그 결과가 너무 참혹했던 탓이다.
목을 찌른데 이어, 이번에는 아예 목을 잘라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구나, 목에서 치솟는 피분수와 깔끔한 선을 그리는 단면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 허, 허허허……. ”
그것은 킬리네어 공작도 마찬가지였으나, 기사가 남긴 피분수는 그에게 있어 썩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 기사가 피분수를 내며 죽었기에 공작이 패배했고, 그 대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답답하고 무겁기 짝이 없는 현실이 문제였을 뿐이다.
답답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와중에도 심장이 욱신거렸고, 가슴은 무거운 돌이라도 올린 듯 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며, 이 상황이 악몽이라면 제발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분명 자신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으며, 헬레나가 실수를 할 때 까지만 해도 일이 반쯤 해결되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 공작… 아니, 전 공작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지요. ”
어찌하여, 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크라우저 공작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인가.
“ 혼란스러운 와중 죄송합니다만, 지금 당장 조건을 이행하겠습니다. 알버스 킬리네어는 이 순간부터 공작이 아니며, 앞으로 눈을 감을 때 까지 변경백의 영지 근방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겨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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