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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32화 (32/192)

〈 32화 〉 다크엘프 용병 레드후드 #2

* * *

“ 좋다. 내가 도울 것은 있느냐? ”

“ 우선 여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쟁상인으로 위장하고 싶습니다. ”

블루네일 왕국은 내전중이다.

1왕자와 3왕자가 합친 파벌, 2왕자의 파벌, 그리고 4왕자의 파벌이라는 3파전이다.

고로 각 진영에서는 수장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도 빈번하고, 크고 작은 전쟁 또한 잦다.

그렇게 전쟁이 잦은 상황에서는 여려 활동이 위축되는 것이 당연했다.

평소처럼 가게를 열고 닫을 수도, 마음 편히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본인이 가진 힘과 국력은 시시각각 소모되어가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놈이 있으면 이득을 보는 놈 또한 생겨나기 마련이고, 비교적 안전한 곳에선 불안하나마 경제 활동이 계속되는 곳도 있었다.

전쟁특수라는 흐름을 탄 인간들도 그러한 부류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전쟁특수를 누리기 위한 상인으로 위장하고자 했다.

전시 상황에서 평시와 같이 출입을 하려 들어갔다간 여러모로 의심의 눈초리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쟁특수의 은혜를 입고자 하는 상인은 명분도 좋고, 그로 인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전쟁상인이라… 나쁜 생각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우리 상회의 신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겠구나. ”

알트람 상회는 매우 오래 전, 크라우저 측에서 앞주머니 하나 없는 귀족이 어디 있느냐며 반쯤 압박으로 만든 상회였다.

그로 인해 알트람 자작가는 영토나 농노 등이 없음에도 그럭저럭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류상으로는 알트람의 머리이자 대대로 알트람 자작을 잇는 이가 주인이나, 사실상 그 아래의 부회장이 운영하는 체제였다.

체스는 전쟁상인이라는 말 하나만 듣고도 사람을 불러 여러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내가 예전부터 상회에 있었던 것 마냥 준비하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자리에 임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간단하게 팔 물자의 준비도 마치도록 했다.

더해, 체스는 가명까지 사용하도록 했다.

내 생각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헬레나의 난리로 인해 퍼진 소문을 염려한 결과였다.

“ 아마 내일이 되면 대략적인 준비가 다 끝날 듯싶구나.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준비가 되는 대로 곧장 출발하겠느냐? ”

“ 예. 그럴 생각입니다. ”

나는 체스의 물음에 단호하게 답했다.

다소 기간이 넉넉하다고는 하나 여유를 부릴 일도 아니었으며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을 따라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것은 미루면 미룰수록 귀찮아지는 법이니까.

◎◎◎

“ 블랙님, 이제 곧 국경을 넘습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나는 바로 옆자리에서 말을 모는 마부의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백의 영역을 지나, 마침내 블루네일 왕국의 초입이자 4왕자의 영역에 발을 들이려 하는 순간이었다.

마차의 행렬은 썩 긴 편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짧은 편도 아니었다.

최대한 온건하게 보이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상품, 군량미가 든 마차 무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상태였다.

더해 텐트 등의 야영용품이 든 마차도 있었다.

블랙이라는 것은 내 가명이다.

마침 머리 색깔이 검은 색에 가까운 남색이기도 해서 적당히 붙인 이름이었다.

괜히 가명 하나 짓는데 고심할 것 없다는 이유로 붙인 이름이었으나 제법 마음에 들었다.

“ 하아──. ”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숲과, 그럭저럭 잘 닦인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만끽했다.

바퀴 구르는 소리와 말발굽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내전지역이 아니라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해서 정말로 소풍을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장을 하도록 시켰다.

그들은 크라우저 공작, 헬레나에게 빌린 병사들이었다.

용병을 쓸 법도 했으나, 있는 병사를 활용해 배신의 가능성을 낮추려는 배려였다.

물론 용병 세계에서 신뢰를 저버리면 그만큼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지만,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현실이다.

또 최선을 다해 호위하려 했으나 의뢰인이 먼저 죽었다며 시치미를 떼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우에는 다소 무능하다는 꼬리표가 붙게 되지만, 신뢰도가 낮아지는 것 보다는 나은 듯싶었다.

그리하여, 그저 명분이자 위장으로 삼으려 했던 상행은 제법 그럴 듯한 꼴이 되어 있었다.

“ 어…? ”

그러던 중, 길 양옆으로 펼쳐진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깔린 나뭇잎이 무언가에 밟히거나, 또는 나뭇가지에 걸린 잎과 스치며 나는 소리였다.

혹시 모를 일이지.

나는 품에 감춰 두었던 새까만 더크 하나를 뽑아든 채 손을 높게 쳐들었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긴장이 역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달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무장을 하고 대기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들짐승일수도 있고, 그저 잠깐 숲에 들어갔다 온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곳은 내전지역의 초입이며, 그렇기에 여러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무장을 하고 대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 블랙 님, 뭔가 보이십니까? ”

마부는 병사들보다 몇 배로 긴장하며 물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발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검을 들고 대기하는 병사들과 다르게 그는 이 상행에서 얼마 없는 보통 사람이자, 진짜로 상회에 몸을 담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심코 내 본명을 부르지 않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다.

“ 네… 보이네요. ”

나는 마나로 시력을 강화하여 소리 나는 쪽을 꼼꼼히 살폈다.

시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천리안처럼 멀리 있는 것이나 먼지 한 톨마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평소보다 훨씬 잘 보인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렇기에 부스럭 소리를 내어 기척을 내었음에도 숨을 죽이며, 습격할 때를 기다리는 사내들의 형상을 볼 수 있었다.급박한 기색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이나 손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가벼운 가죽갑옷을 걸친 이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헬레나가 자주 걸치는 몬스터의 가죽으로 가공된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양호했다.

도적으로 보이는 사내들은 길을 두고 패를 나누어 양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며 사방을 살폈기에 알아낼 수 있었다.

“ 쯧. ”

나라가 혼란할수록 살림은 궁핍해지고, 그럴수록 도적 등이 끓어오를 확률이 높다.

역사를 잘 아는 편이 아닌 나라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 어디서 도적을 만나도 신기하지는 않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국경을 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만난 도적떼가 신기하기 짝이 없었기에.

아무튼,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것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품에서 더크 하나를 더 꺼내 한 손에 겹쳐 쥐고, 그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얼핏 보면 투척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2인 1조를 이루라는 수신호였다.

그에 병사들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곁에 있던 다른 병사들과 꼭 붙어 섰다.

마치 무서워서 꼭 붙어 있으려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 세상에. ”

나는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나무 위에서 화살이 걸린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설마 활까지 준비하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일까.

나는 저 화살부터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손에 쥔 더크 두 자루를 강하게 내던졌다.

바닥에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 앉은 도적의 머리와 화살촉을 겨눈 투척이었다.

저 작은 촉의 끝과 온전히 맞대지 못하더라도 그 목을 자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촉에 비해 몇 배 이상으로 큰 머리통을 꿰뚫는 것은 당연했다.

“ 커헉?! ”

나무에 앉아 있던 남자가 신음을 토해내며 픽 쓰러졌다.

죽어가는 남자의 손이 시위를 놓은 탓에 화살이 쏘아지기는 했으나, 다행히 촉이 잘린 상태여서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실제로 한 병사가 팔뚝에 화살을 맞았음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것에서 그쳤다.

“ 전원, 기습에 대비하세요! ”

동료가 죽었으니 그들도 거친 행동을 보일 터. 그에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있을 필요가 없다 판단하여 크게 소리쳤다.

남자를 죽인 이상 그 나머지 또한 알아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었으니까.

“ 시발! 덮쳐! 덮치라고!! ”

예상대로, 도적들은 한 발 늦게 소리를 지르며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수는 약 서른 정도 되어 보였고, 제법 약탈이나 살인을 한 것인지 검을 휘두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칼끝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다만, 그것과 검을 다루는 기술은 별개였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 자체가 몹시 조잡해, 누가 보아도 일반인이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병사들도 그것을 아는지 제법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나는 마부를 지켜야 할지 적극적으로 나서야할지 잠깐 고민하다직접 나서기로 결론을 내렸다.

시간을 끌수록 사람들이 다칠 확률이 늘어나니, 최대한 그 확률을 줄여보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 당신은 마차 아래에 숨어 계세요. 지금 상황에서 가만히 숨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

“ 예, 예에…! ”

마부는 내 지시를 듣자마자 마부석에서 헐레벌떡 뛰어내려 짐칸 아래로 숨어들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숨은 사람부터 공격하느라 틈을 보이진 않을 테니, 아마 싸움이 끝날 때 까지는 안전할 것 같았다.

물론 저놈들이 마부를 질질 끌고 나와 인질로 삼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자기만 죽는 꼴이 될 터였다.

마부를 끌어내느라 틈을 드러내면 당장 나를 죽여 달라고 하는 꼴밖에 안 되겠지.

그저, 그렇지 않다 해도 도적떼를 전부 죽이는 것은 당연했다.

내 손으로 묻어버린 해적들처럼 그 뿌리를 뽑을 것도 아니었으니까.

“ 넌 뭐… 끄으윽?! ”

이것으로 실전은 두 번째이지만, 예상 이상으로 덤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오싹할 지경이다.

마음가짐만 보면 살인에 닳고 닳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 탓이다.

나는 이전처럼 목젖을 뜯어 절명시킨 도적을 내려다보다 그 손에 쥔 무기를 빼앗아 들었다.

검술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맨손 격투를 주로 익혀왔으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 우선 꼭 쥐고 있으세요. ”

그러니, 나는 그 무기를 쥐고 급히 마차로 달려가 짐칸 아래에 숨어 있던 마부에게 건넸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만족스럽게 휘두르긴 힘들겠지만, 부족하나마 방어를 하라는 뜻이었다.

“ 너 이 새끼!! ”

내가 마부에게 무기를 넘기는 틈을 타, 다른 도적이 지척까지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검이 반쯤 휘둘러져 있어 그야말로 위기라고 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 거 위험하게……. ”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칼을 쥔 도적의 손목을 낚아채는 것뿐이었다.

그 결과, 다행히도 칼에 베이는 꼴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도적의 손목을 무사히 낚아챈 것이다.

아마도 내 쪽이 근력과 민첩성이 더 높았기에 나온 결과였으리라.

“ 놔! 이거 놓으라고! ”

“ 놓으라고? 그럼 놔 줘야지. ”

나는 당혹감에 질려 떠는 도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쥔 손에 있는 대로 힘을 주었다.

더해, 마나까지 사용해 그 힘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 아, 아아악!! ”

그렇기에, 칼을 쥔 도적의 손목이 걸레마냥 뜯겨 바닥을 구르는 것은 당연했다.

산채로 뼈가 끊어지고 살이 뜯겼으니 게거품을 물 정도로 엄청난 고통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단면에서 치솟는 피를 보면 과다출혈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이대로 두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다죽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더 이상 손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나는 사람의 고통을 보며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드득!

사내의 목을 힘주어 졸라, 목뼈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숨통을 끊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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