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순회하는 척하는 무언가#1
* * *
케인의 처형 이후. 헬레나는 내게 몹시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바뀌었다 느껴질 만큼 적극적으로 들이댔고, 소변을 누러 가는 것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야외 훈련에서 홀로 화장실에 간다 했을 때의 표정 변화는 지금도 생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충격적이라서가 아니라 심심하면 마주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내가 알트람 저택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조차 막아버렸다.
알트람 측과 크라우저 공작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설득을 거쳐, 나를 크라우저 저택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손님방 중 하나는 완전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본래 같은 방에서 자려 하는 것을 주위에서 씹고 뜯고 말린 결과였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 헬레나가 열여덟 살이 되던 날,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소드 익스퍼트의 선을 넘어 대륙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마스터에 발을 들였다.
고금을 통틀어 어린 나이에,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 마스터에 오른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그로 인해 크라우저와 알트람은 무척 들떴으며, 며칠에 걸친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말 그대로 잔치 분위기였다. 국왕 또한 덕분에 콧대를 높게 세울 수 있었다며 헬레나를 크게 칭찬하려 했다.
그러나, 헬레나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국왕의 부탁이라는 무게와, 그 영광을 거들떠 볼 가치도 없다고 말했었다.
물론 면전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경지의 소화가 부족하니 좀 더 완숙해진 뒤에 찾아가겠다는 명분을 들고 정중하게 거절을 표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잠시 나와 떨어져야만 한다는 상황에 대한 아니꼬움 때문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일정은 내가 따라간다 한들 별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무튼, 헬레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소위 집착녀가 되었고, 내가 열다섯이 될 때 까지 그 집착의 불길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 집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 나도, 나도 같이 가! ”
헬레나가 스물 셋, 내가 열다섯이 되는 연의 초봄.
흔히 좀비벚꽃이 들려오는 계절이라 표현되는 날이 여김 없이 찾아왔지만,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그 꽂은 여기엔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이 아름다웠으나, 어딘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은 한가로이 태평한 감상문을 되뇔 때가 아니었다.
이 집착녀가 또 다시 떼를 쓰기 시작했기에.
“ 헬레나. 화장실은 혼자서 간다고 서로 합의한 지가 몇년이에요? 그 이후로 괜찮다 싶었는데 또 이러시면 안 돼요. ”
“ 그래도…! ”
헬레나의 방에서, 그 주인이 떼쓰는 것을 달래는 것이 내 업무 중 하나다.
늘씬한 키에 탄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몸. 어디 내놓아도 한 손에 꼽을 만큼 분위기 있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떼쓰는 것은 여전했다.
과거 서슬 퍼런 기색을 유감없이 내비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나, 사실 지금의 모습은 그 전 단계다.
제법 시간을 들여 어르고 달랜 덕에 집착의 단계가 두 개로 늘어난 것이지, 그것조차 없었다면 지금 당장에 눈빛을 띠었으리라.
무저갱을 떠올리게 하는 그 눈빛을.
“ 그럼 헬레나가 소변보는 모습을 제가 봐도 괜찮은 거에요? ”
“ …윽! ”
헬레나가 화장실에 가는 것,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본다.
나로서는 당연히 가능이라고 외칠만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주변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화장실에 갈 때는 내가 밖을 지키긴 했으나, 그것마저 이상하게 보는 눈길이 많았었다.
아니, 분명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내가 봐도 이상한데.
“ 그건… 부끄러워. ”
헐벗은 것과 다름없는 속옷 차림으로 내 앞에 서는 것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화장실에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헬레나의 뺨이 잘 익은 사과마냥 붉게 달아올랐다. 몸을 씻을 때 자리를 비워야 하는 문제도 이와 비슷했다.
“ 그래요. 저도 부끄러워요. 거기다 큰일을 보다 똥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걸 그대로 맡게 하실 거에요? ”
“ 그건 저, 절대 안 돼! ”
정신이 병든 집착녀가 되기는 했으나, 헬레나는 기본적으로 귀족이다.
오랜 교육을 거쳐 본능적으로 몸에 배인 교양을 품에 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똥이라는 저렴한 말에도 제법 격하게 반응했고, 그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에는 더욱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긴, 어지간히 그쪽 취향이 아닌 이상 그런 냄새를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게 사람 마음이니까.
“ 아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다녀올게요. ”
“ 응. 빨리 와야 해. 알았지? ”
“ 예. 걱정 마세요. ”
나는 엄마와 떨어져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 같은 여자를 방에 두고, 곧장 일층 복도 끝자락에 있을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둘만 있을 때에는 헬레나에게 님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은 지도 몇 년이 되었고, 그 덕에 한층 더 친밀감이 오른 것 같았다.
집착녀와 친밀하게 지내려 하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일 법도 했지만, 나는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세계 붕괴로 향하는 나비효과의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컸다.
헬레나만 잘 막아도 반은 먹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 아, 지온 님. 안녕하세요. ”
“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별 일은 없지요? ”
“ 물론이지요. 아주 평화 그 자체입니다. ”
나는 화장실로 가던 중 마주친 바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 사이 그는 이곳 크라우저 공작가의 주방을 책임지는 남자가 되어 있었고, 과거의 연을 지금까지 이어오며 제법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 끈을 이어주는 것은 신분도 뭣도 아닌, 요리였다.
헬레나의 식사는 늘 내가 따로 마련하는 덕에 필연적으로 주방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친목을 쌓아왔다.
그 탓에 헬레나가 주방에 매일같이 드나든다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주방 식구 모두가 적응을 끝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지고 만 것이다.
“ 다행이네요. 그러면, 조금 있다가 주방에서 뵙겠습니다. ”
“ 예, 알겠습니다. ”
바트와 헤어진 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한 용변을 마쳤다.
마법으로 인해 어느 정도 생활 기술이 발달한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귀족 집이라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쾌적했다.
변기도 흔히 말하는 양변기고.
“ 하아──. ”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귀족의 집착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겁에 질려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될 가능성도 높았다.
상대는 강하고, 급이 높아도 너무 높은 공작의 자손이니까.
하지만 나는 겁을 먹지도 않았고, 기본적으로 궁지에 몰릴 만한 상황에서도 헬레나를 어르고 달래 왔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스스로 납득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모두가 강철멘탈과 좀비의 육체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태평하게 소변을 해결한 뒤, 내 일터이자 몸만 큰 아이가 기다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 지온! 어서 와! ”
“ 네. 다녀왔어요. 아 참. 오늘 점심은 뭐 먹을래요? ”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 지 물었다.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 재회한 연인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는 헬레나는 둘째 치더라도, 식사는 그럴 수 없으니까.
“ 어… 뭐가 좋을까? 지온이 만드는 건 다 맛있는데. ”
헬레나는 격렬한 환대에 대충 반응하는 내가 못마땅한 듯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다가도, 점심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대충 한 끼 때우고 치우자는 사람도 많고, 나도 그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을 하게 되었다.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동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 입을 열었다.
“ 봄이니까 뭔가 산뜻한 것을 먹고 싶은데, 괜찮은 게 있을까? ”
다소, 아니 많이 애매모호한 주문이다. 막상 산뜻한 음식이라 해도 종류가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무언가를 골라 만든다 한들 상대가 좋아할지 아닐지 모르는 것도 문제였다.
단, 내 경우에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헬레나는 내가 만들어 준 것이라면 뭐든 잘 먹었기 때문이다.
“ 괜찮은 거라… 샐러드 파스타 어떠세요? ”
그래서 적당히 무난하고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결정했다.
식자재도 확인하지 않고 정하는 것이 다소 성급하다 싶겠지만, 공작가의 식재료 상황은 무척 양호했으므로 곤란할 일은 없었다.
“ 응. 괜찮은 것 같아. ”
“ 그러면 주방으로 내려갈까요? 만들고 나면 딱 점심시간 일 것 같으니까. ”
헬레나는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갔다 올게요가 아닌 내려가자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앞서 말했듯 나와 떨어지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엄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아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 아, 헬레나 님. 어서 오십시오. ”
“ 네, 바트 씨. 그리고 여러분도 다들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시고요? ”
주방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바트를 비롯한 요리사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에 헬레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더해 안부를 묻는 모습까지 완벽했다.
그야말로 올바른 귀족 영애의 표본이다.
“ 하하.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집착녀가 되며 여러모로 뒤틀리기는 했으나, 안정을 찾은 헬레나는 여느 때와 같이 배려 있는 여자다.
그래서인지 주방의 사람들도 헬레나를 다소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다.
“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
나는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 헬레나를 뒤로 하고, 연미복의 재킷을 벗어 주방 구석에 곱게 두었다.
재킷을 입은 채 요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더해, 셔츠의 소매를 걷어 팔꿈치까지 올려 두기도 했다. 이것 또한 편안함을 위해서다.
키가 크고 난 이후 하인 복장을 벗고 연미복을 입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헬레나의 부탁 아닌 부탁과, 제법 많이 자랐으니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체스의 권유로 인한 결과였다.
그나마 제법 잘 어울리기는 했으니 크게 불만은 없으나, 역시 헐렁헐렁한 하인 복장이 편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잡생각을 비우고 요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밀가루 반죽은 요리사들이 미리 만들어 둔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조금 나눠받았고, 그것으로 면을 뽑았다.
덕분에 가장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단축할 수 있었다.
마늘과 버섯을 볶고, 소스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말끔하게 씻은 야채를 면 위에 모두 얹으면 끝난다.
그러나 막상 끝내고 보니 고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급한 대로 돼지고기를 팬에 구운 뒤, 얇게 썰어 별도로 마련한 접시에 얹어 내었다. 파스타가 간이 되어 있었으니 함께 먹을 고기의 소금간은 적당히 했다.
그 이후에는 은제 트레이에 음식을 담고 방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일이 있어 아침을 제외한 식사는 각자 따로 처리하는 것이 크라우저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일이 바빠 아침마저 함께 하지 못할 경우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기사단의 훈련으로 인해 야영 일정이 잡힌다거나.
“ 응. 맛있었어. ”
식사를 마친 뒤, 헬레나는 다소 무미건조한 평을 입에 담았다.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익숙해진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헬레나의 입가에 걸린 호선이 그 증거였다.
◎◎◎
“ 바르칸 백작의 영지에 좀 다녀올 수 있겠느냐. ”
접시를 주방에 반납한 직후. 나와 헬레나는 크라우저 공작의 부름을 받고 그의 응접실을 찾았으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르칸 백작의 영지를 둘러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베르스 바르칸 백작.
크라우저 공작의 아래에 존재하는 부하 귀족 중 한 명이자, 공작과 함께 소위 충신 라인을 타는 파벌 중 하나였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파벌을 만드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크라우저 공작가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 바르칸 백작님의 영지요? 그곳은 왜…? ”
“ 너도 슬슬 세상 구경을 할 나이가 되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
세상 구경이라.
크라우저의 인간은 대대로 왕국 내의 영지를 돌며 그 제반 사항을 눈으로 겪도록 한다던데, 그것을 헬레나에게 시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 그런가요. 즉, 그 말씀은……. ”
“ 그래. 돌아오면 정식으로 발표를 하마. 물론 바르칸 백작의 영지 외에도 돌아야 할 곳이 몇 곳 더 있을 게다. ”
“ …알겠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발하도록 하죠. ”
헬레나는 당연하다는 듯 이스의 명령을 받아들였으나 어딘가 정보가 잘린 듯한 대화였다.
그래서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나는 어쩐지 이 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르칸 백작을 시작으로 하는 크라우저 공작파에 속한 이들의 영지 순회의 끝에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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