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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13화 (13/192)

〈 13화 〉 이래서 집착한다 #8

* * *

“ 헬레나… 진심이냐? ”

졸린 눈을 비비고 막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이스는 눈을 부릅뜨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이른 시각부터 찾아온 헬레나의 선언을 듣고, 그는 놀라 자빠질 것 같았던 나머지 잠기운이 싹 달아나버린 상태였다.

“ 네, 아버지. 증거, 증언 전부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케인은 처형할 거에요. ”

깊게 가라앉은 눈빛, 일말의 온정조차 느낄 수 없는 잔혹함.

이스는 정녕 눈앞의 소녀가 자신이 알던 딸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케인이 일방적으로 적의를 드러냄에도 관용으로 받아들이려던 아이가, 일말의 주저 없이 그 목을 날려버리겠다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헬레나 자신의 손으로.

“ 즉결처형이라……. ”

케인은 네 동생이다, 라는 말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미간을 구겼다.

먼저 독을 가지고 암살 시도를 한 것은 다름아닌 케인이며, 그 행동으로 인해 선을 넘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헬레나라면 수도원으로 추방하여 여생을 살게 하는 정도의 자비는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스가 아는 헬레나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헬레나는 그렇지 못했다.

마치 철혈의 군주를 보는 듯 단호하면서도 잔혹한, 그야말로 위에 서는 이로서 가져야 할 자질을 아낌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 케인는 공작가의 장녀이자 전력이기도 한 저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 해도 봐 줄 수는 없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

목숨을 노렸으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헬레나는 단호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이스를 뒤흔들었다.

정을 배제한 지극히 옳은 판단이었기에 뭐라 반론할 여지조차 없었다.

“ 그렇기는 하다. 케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냈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 하겠지. 그러나……. ”

단지 그 이유만으로 헬레나가 저토록 단호하게 나올 리는 없다.

이스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헬레나는 자신의 친딸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는 내심 짐작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확실히 하기 위해 물음을 던졌다.

“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니지 않느냐. 혹여 네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알트람의 자식이 독을 먹었기 때문이냐? ”

알트람의 아이, 지온 알트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헬레나의 눈매가 칼날처럼 예리해졌다.

깊게 가라앉았던 눈빛은 분노로 인해 생기가 넘치고 있으며,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은 눈에 보일 만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얼굴 표정이 더욱 괴기스럽고, 두렵기 짝이 없었다.

“ 그러면 안 되나요? ”

“ 헬레나……. ”

“ 제가 독을 먹은 것이 아닐지언정, 저를 독살하려 했던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결국 명분은 제게 있고, 저는 그에 따라 처벌을 할 뿐입니다. 틀렸나요? ”

질문에 순순히 답하며 명분을 꺼내드는 헬레나의 앞에, 이스는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침묵하고 말았다.

지온 알트람에 대한 헬레나의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은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딱히 반대를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이스는 두려웠다.

헬레나에게 있어 지온의 존재가 상상 이상으로 커져버린 것과, 그 존재가 더욱 깊어질 경우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미 예전에 자신을 뛰어넘어, 지금도 강해지고 있는 아이가 폭주한다면 어떤 일이 터질 것인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 …아니. 틀리지 않았다. 이 일은 네 손으로 처리 하거라. ”

케인이나 헬레나나 그의 소중한 자식이다.

하지만 자식이 자식을 죽이기 위해 칼을 빼 든 이상, 그 자식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그저, 이스는 이번 일로 한 가지 확신하게 되었다.

지온 알트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헬레나의 옆에 붙여 놓아야 한다는 것을.

◎◎◎

“ 으윽…! ”

시발. 대체 며칠이나 자고 있었던 거지.

나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싸매며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병원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세계에서 이 정도로 오래 잠들면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할 것 같은데, 의외로 몸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잠들어 있는 동안 물을 먹이거나, 아이템을 통해 활력을 유지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몸 상태를 유지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며칠 이상 굶은 인간이 단순히 배고픔을 느끼는 정도에서 끝날 리가 없을 테니까.

“ 다행히… 다리도 움직이네. ”

시험 삼아 조심스레 땅에 발을 딛고 서 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안정감이 발바닥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니 지금 당장 활동해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지만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몸 상태를 확인했으니 다음은 이곳이 어딘가를 파악해야 했으나, 의외로 싱겁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방의 상태나 가구 등이 무척이나 눈에 익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본의 아니게 크라우저 저택의 한 방을 차지하고 누워 신세를 지게 된 것이 분명했다.

시종 주제에 참 호사스럽기 짝이 없는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 후우. ”

아니, 독살당할 뻔한 영애를 살렸으니 이렇게 돌봐주는 것도 당연한가?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내가 귀족이 아니었거나, 혹은 헬레나와 다소 친분을 쌓지 않았다면 이런 대우는 못 받았으리라는 생각을 굳혔다.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독을 먹은 이후부터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어쨌든, 독으로 고통 받던 시간이 지났기에 무척 기뻤다.

내장이 뒤틀리고 살이 녹는다는 감각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

해가 떠오른 아침 무렵인데도, 저택이 너무 조용하다.

본래 각자의 일을 하느라 분주한 하인들의 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망망대해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 사태가 보통 일이 아니라 느꼈기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복도나 아래층 로비에도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령저택에 발을 들인 것만 같았다.

덕분에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으나, 그 와중 창문 밖으로 엿볼 수 있는 현관 앞에 사람들이 모인 것을 확인했다.

덕분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꿈을 꾸거나 이상한 세계에 홀로 던져진 것은 아니라 확신한 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저곳에 끼어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각으로 인해 이미 수업이 시작된 교실에 발을 들이는 것 같은 찝찝함이 심장을 옥죄었다.

저곳에 발을 들임으로써 생길 시선의 쏠림은 거북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창문을 연 채 몸을 숙이고, 창문 옆 벽에 몸을 숨긴 채 귀를 활짝 열었다.

마나를 다루어 청력을 강화시켰기에 대충 어떤 대화가 이어지는지 들을 수는 있었다.

높이로 인한 거리는 있으나 직선상의 거리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 케인. 더 할 말은 없겠지? ”

“ 빌어먹을! 빌어먹을!! ”

계단에 무릎을 꿇은 채 땅을 치는 케인 크라우저와, 그를 내려다보며 검을 손에 쥔 헬레나.

그 곁을 지키는 수많은 하인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삭막한 분위기와 긴장감까지.

어지간히 큰 일이 터졌음이 분명했다.

“ 뭐? 빌어먹을…? ”

케인이 땅을 치며 소리치는 순간, 헬레나 주위의 공기가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소 떨어져 있음에도 서늘한 한기가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질 만큼 차가웠다.

아니, 내가 적극적으로 멘탈 케어를 얼마나 해댔는데 저런 공기를 내뿜어?

나는 등골을 찌르르 울리는 오싹함마저 잊은 채 황당해했다.

나를 엄마 대신으로 느끼는 건 좀 깬다 싶지만 충분히 귀엽게 넘어갈 만한 범주였다.

날이 갈수록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 보였기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헬레나의 분위기가 저렇게까지 바뀌었다니!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 네가 나를 독살하려 한 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어. 내가 독을 먹고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면 너를 수도원에 보내는 선에서 끝냈을 텐데……. ”

그러나. 진정한 충격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독을 탄 원흉이 바로 저 멍청한 남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보았던 작당모의가 독을 타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설마 친누나를 독으로 죽일 만큼 미친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할 만도 했다.

문제는 저 순한 헬레나가 동생의 허벅지를 일말의 주저도 없이 검으로 쑤셔 박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면서까지!

“ 아아악!! ”

그녀는 허벅지를 쑤신 것으로 모자라 아주 세심하게 한 바퀴 돌려주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피와 살을 갈아버리는 것이었으므로 케인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것도 당연했다.

푸욱, 하고 살에서 칼을 뽑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오싹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칼날에 흐르는 피도, 허벅지에 뚫린 구멍을 타고 배어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는 것도.

“ 지온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주제에, 뭐? 빌어먹을? ”

헬레나는 내 이름을 언급하며 케인의 다른 허벅지를 칼로 쑤셨다.

그와 동시에 한 남자의 절규가 바람을 타고 저택 부지 전체로 울려 퍼졌다. 그 정도로 크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리라.

다만, 설마하니 헬레나가 저렇게 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가히 놀랍기 짝이 없는 이유였다.

그녀에게 있어 내 존재가 상상 이상으로 커져버렸다는 뜻이니까.

“ 으, 으으으……. ”

케인은 꿇어앉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해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허벅지에 칼날구멍이 났으니 죽는 것도 시간문제이나, 그 전에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몸이 된 것이 분명했다.

오러 블레이드로 허벅지 내부를, 그것도 중심부를 철저히 헤집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 케인. 너는 공작가의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그러니 죽을 때에는 크라우저의 이름을 박탈하고, 네가 하찮게 여기는 보통 평민이 될 거다. ”

“ 뭐, 뭐어어!! ”

케인은 크라우저의 이름을 박탈하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핏발 선 눈으로 헬레나를 노려보았다.

최대한 목을 짜내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크라우저 공작의 피를 잇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 그였으니, 저런 조치를 듣고 화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 당연하기는 했으나, 그 당연함이 헬레나의 불편한 심기를 더욱 자극한 것 같았다.

“ 꺼, 꺼어어…! ”

미간을 찌푸린 헬레나가 네 번의 찌르기를 내질렀다.

그로 인해 바닥을 기는 케인의 양 어깨와 팔에 깔끔하기 짝이 없는 상처가 새로이 생겨났다.

그러자, 저 남자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꺽꺽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마 너무도 격한 고통이 목구멍마저 틀어막은 것이리라.

“ 지온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이제 됐어. 그냥 벌레처럼 죽어. ”

헬레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순간, 은빛의 선이 반짝이며 케인의 목을 훑었다.

얼핏 보면 잠깐 바람처럼 스쳐간 듯싶었고, 워낙 순간적이었기에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선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선에 스친 케인의 목덜미부터 붉은 선이 피어오르더니, 이윽고 그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기 때문이다.

“ 히, 히이익?! ”

곁을 지키고 있던 하인 하나가 무심코 헛바람을 삼켰다.공포로 인한 두려움에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린 목의 단면으로부터 피가 기세 좋게 뿜어져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구나 겁에 질린 것은 그 하인뿐만이 아니었다. 저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다 해서, 그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서는 안 되었다.

피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인데다, 잔인하게 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헬레나도 그것을 알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나, 장의사를 불러 시체 처리를 하라는 명령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내렸다.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무미건조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름 끼치기보다는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다소 잔인하기는 했으나 나도 독으로 고생했고, 본래 그 독이 헬레나를 향했을 것을 생각하면 죽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좀비의 육체가 없었다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안타깝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간단했다.

“ 병들었네. ”

내 기척을 눈치 챈 듯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며, 보란 듯이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는 헬레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심연을 녹여낸 듯한 눈동자를 한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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