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이래서 집착한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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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 정보는 기밀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목을 따 버리면 어떻게 될까? ”
나무로 만든 카운터와 몇 개의 테이블, 의자. 주점과 비슷했던 어새신 길드의 지부는 망가져 버렸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마냥 의자는 널브러지고, 테이블과 카운터는 박살이 났으며, 그곳을 지키던 수십의 사내들 또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죽지 않은 채 모두 숨이 붙어 있었다. 몸 어딘가에 베인 자국이 남긴 했으나 지혈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즉, 죽지 않도록 적당히 손속을 봐준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결과물이었다.
그 참상을 만들어 낸 장본인, 헬레나는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앉아 태연자약하게 질문을 던졌다.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한껏 경멸하는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바닥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 대상은 그녀의 발치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이곳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 그건…! ”
“ 물론 그렇게 되면 말을 못 하니 정보를 캐낼 수는 없겠지. 그리고 너희 길드에서 복수를 한답시고 내 쪽에 덤빌 수도 있어. 하지만 어새신 길드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지부장은 비꼬는 듯한 물음에 아무런 답도 꺼내지 못했다.
어새신은 암살을 통해 공포를 사는 것이지, 이렇게 대놓고 전면전을 치르는 족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본신의 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암살을 해내기 위한 최소 조건이 육체와 기술의 단련이었으므로 전투에 소양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헬레나와 같은 괴물을 선두로 하는 진짜 군대와 붙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스로 죽으러 가는 꼴밖에 되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일이었다. 지부 하나를 잘라내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사람의 생사를 이득으로 따지는 것도 꺼림칙하기는 하나, 애초에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이들이 바로 어새신이니까.
“ 못… 하겠지요. ”
지부장은 그 생리를 잘 알았기에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자기 목숨이 아까운 것이 사람이었기에 부디 살아서 나가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답을 내려주듯 헬레나의 목소리가 지부장의 귀에 들려왔다.
“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면 목숨은 살려 줄 거야. 하지만 크라우저 영지 내에서 지부를 빼. 가능하겠어? ”
“ 가…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게 하겠습니다! ”
평생 검을 단련한 기사라 해도 쉬이 넘볼 수 없는 것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다.
그리고 헬레나는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몸으로 그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천재이자, 공작의 후계자라는 신분까지 갖춘 철옹성이다. 어새신 길드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부류였다.
허나, 그 철옹성이 스스로 살 길을 열어주었기에 망설일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불가능해도 해내야했다.
헬레나는 그 각오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여전히 서릿발 같은 목소리를 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 좋아. 그러면 첫 번째 질문. 최근 일주일 안에 암살의뢰를 받은 적이 있어, 없어? ”
“ 이… 있습니다! 세 건 입니다! ”
“ 전부 말해. ”
지부장은 자신이 모시는 상관을 대하듯 더없이 정중하게 답했다.
비록 자신의 상관은 아니었으나, 목숨줄이 넘어가 버린 이상 길드의 마스터보다 더욱 우선해야 할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부장이 말하는 암살 안건은 전부 완료로 끝났다.
가정폭력을 이유로 암살을 의뢰받은 건이 하나, 상업상의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요청받은 것이 하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사단의 야영지에 잠입해 평범한 남자 하나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비록 기사단이 득실대는 소굴이기는 하나, 그들에게 손대는 것이 아니었기에 받아들였던 기억이 또렷했다.
“ 그 야영지에 있던 남자를 죽이라고 의뢰한 사람은? ”
“ 그건… 본 적 없는 남자였습니다. 자기도 명령을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즉 헬레나가 의심하는 인간이 직접 왔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긴, 그 오만한 아이가 직접 찾아올 만큼 절실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지.
헬레나는 다소 실망하기는 했으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혹여나 싶은 마음에 그 이름을 물었다.
“ 그래서, 그 남자의 이름은 뭔데? ”
암살 의뢰는 직접 거래를 통해 성사된다.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길드의 방침과 신분을 최대한 노출하기 싫은 손님과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의뢰가 성공하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므로 어새신 길드를 향해 발길을 향할 필요가 없어 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새신 길드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의뢰인에게 몰래 미행을 붙여 정체를 캐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보통은 사용할 일 없는 정보이나, 만약 의뢰인 중 누군가가 길드를 압박할 때를 대비한 보험이었다.
“ 알렌입니다. 바로 당신과 같은 크라우저 저택에 머무르는 남자입니다. 오래 관찰해서 알아낸 것이니 틀림없습니다. ”
알렌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적어도 크라우저의 저택에 그런 이름을 가진 남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레나가 지금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이상, 일은 더욱 손쉽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 생김새는? 기억하고 있어? ”
“ 예. 키는 저쪽, 카운터 구석에 쓰러진 저 놈보다 조금 작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갈색 머리칼을 가졌습니다. 덩치는… 제법 잘 먹고 있어서 그런지 나쁘지는 않더군요. ”
헬레나는 지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남자를 유심히 살피며 귀담아 두었던 정보와 합치기 시작했다.
저만한 키에 적당히 건장한 체구, 그리고 갈색 머리칼의 남자라는 외형은 흔한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크라우저 저택의 인간이라면 그 범위가 지극히 좁아진다. 단 한 명으로 압축할 수 있을 만큼.
“ 풋! 찰스, 찰스구나……. ”
찰스. 헬레나는 그 이름을 되뇌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기쁘기에 흘러나오는 웃음이었으나 일말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을 대면 손가락이 얼 것 같이 차가운 모습이었다.
“ 자, 마지막 질문이야. 지온 알트람을 중독시킨 독이 어디서 났는지 말해. 알고 있지?그것만 말하면 약속대로 목숨은 보존해 줄게.”
“ 알고 있습니다! 말하겠습니다…! ”
“ 아. 그리고 다시 말하는 거지만, 너네 지부는 반드시 철수시켜. 만약 오늘 이후 어새신 길드가 크라우저 영지 내에서 또 발각되었다간… 알겠지? ”
지부장은 정보를 들은 뒤 등을 돌리는 헬레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만신창이이기는 하나 며칠 요양을 하면 움직일 수준은 되었고, 지부를 철수하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괴물을 상대로 사지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가히 위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지부장의 머릿속은 생존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소한 생각마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
“ 헤, 헬레나 님…! ”
숨이 막힐 듯 고요하고, 어둠이 더욱 두드러지는 시간.
갈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 찰스는 아닌 밤중에 헬레나의 방에서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하인들의 숙사에서 단잠에 빠진 것이 조금 전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꼴이 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찰스를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끌고 온 범인, 헬레나는 그의 목젖에 칼끝을 들이댄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시끄러워. 닥쳐. 한 번 더 소리 높이면… 네 목젖을 칼로 꽂아 그대로 철판에 구워 꼬치구이로 만들 거야. 알아들었으면 소리 죽여. ”
“ 예, 예에…! ”
상냥하기 그지없던 헬레나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만큼의 폭언과 살기가 찰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럼에도 몸은 살아남고 싶다는 본능에 따라, 칼날과도 같이 예리한 그녀의 명령을 아주 잘 따르고 있었다.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 네가 어새신 길드에 사람을 죽이라고 의뢰했지? 참고로 말 돌릴 생각은 접어. 전부 알아보고 왔으니까. ”
역시…!
찰스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으며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칼끝이 목젖에 닿아 있었기에 격렬하게 흔들었다 목구멍에 구멍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헤, 헬레나 님. 저는 그게……. ”
“ 쓸데없는 군소리도 집어 치워. 내가 원하는 건 단답이야.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뺀, 핵심 정보만 담긴 답이라고. ”
헬레나는 변명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칼끝으로 찰스의 목젖을 눌렀다.
목젖이 꿰뚫리지 않을 만큼, 겉의 거죽만 살짝 찔러 약간의 피가 배어나올 정도였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칼끝에서 느껴지는 따끔함과 뜨뜻미지근한 피가 배어나오는 감촉은 찰스의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그녀가 원하는 답만을 주어 살아남겠다는 본능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를 협박했던 인간이 누구이던, 어떤 말을 했던,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 무엇보다 원초적인 폭력이자 알기 쉬운 살기가 바로 코앞에 있었으니까.
“ 아, 알겠습니다. ”
찰스가 그 의지를 담아 겨우 한 마디 쥐어 짜내자, 헬레나는 더 미룰 것도 없다는 듯 날 선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 좋아. 그럼 묻겠는데, 너에게 야영지에 있던 남자를 죽이라 말한 건 케인이지? ”
“ 마, 맞습니다. 케인 님이 사주하셨습니다. ”
이것으로 자신은 케인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하지 않으면 저 헬레나의 칼날에 죽어버릴 테니,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정답이리라.
찰스는 자신이 모자란 머리를 쥐어짜내 얻은 답을 들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줏대가 없니, 남자답지 못하느니 하는 사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비천한 몸으로 제 목숨 하나 건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까마득한 절벽과 절벽 사이를 외줄타기로 건너는 듯한 아슬아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빨리 떨쳐내고 싶었다.
“ 그래. 그러면 지온이 먹은 독에 대해서 아는 건 없어? 정황상 네가 암살을 사주한 남자가 지온에게 독을 먹인 게 확실하거든. ”
“ 그, 그것도 케인 님이 사주하신 겁니다. 임시로 파견된 로스에게 시켜, 헬레나 님께 독을 먹였으니 그 뒤처리를 하라고……. ”
로스라. 헬레나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름을 알게 되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암살당한 남자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상관없었고, 그저 그 연줄만 알아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 케인의 성격이라면 전후사정을 입에 담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만 해도 되었을 터.
굳이 찰스에게 이유를 들먹이며 납득시킬 위인이 아니었다.
“ 케인의 성격이라면 그냥 죽이라고만 했을 텐데, 어떻게 알아낸 거야? ”
“ 호, 호기심에 로스와 나누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며칠 임시로 일한 일꾼을 구하시기에 그를 소개했었는데, 설마 그렇게……. ”
혹여나 싶어 물어보니,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헬레나가 아주 흐뭇해질 답이 돌아왔다.
굳이 크라우저의 인간에게 독을 타도록 시키지 않은 이유는 상상하기 쉬웠다.
본래 연이 없는 인간을 사용함으로써 꼬리를 좀 더 쉽게 자르기 위함이었으리라. 실제로 새벽녘에 남자가 살해당하기 전, 그 이후에도 저택은 조용했다.
더해, 덜미가 잡힐 여지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 아하하! ”
실소가 헬레나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꼬리 한 놈을 잡으니 그에 이어진 이들이 아주 시원하게 끌려나왔다.
그러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헬레나는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 좋아. 하지만 증거가 필요한데? ”
“ 도, 독의 입수경로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로스에게 들어서……. ”
독을 타라는 명령을 받고 겁에 질린 로스였으나, 가족이 인질로 잡혔기에 어쩔 수 없이 헬레나를 죽이려 독을 탔다.
그리고 찰스는 로스와 어울리며, 그가 야영지로 떠나기 직전까지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독의 입수경로도 그 중 하나였다.
다만, 독에 관해서는 헬레나가 증거를 잡아 두었기에 찰스를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검증 차원에서 물었을 뿐이었다.
“ 됐어. 사실 독에 관한 정보는 나도 알아. 어쨌든 이걸로 증언, 증거를 전부 확보했으니… 내일 아침에 일을 끝내겠어. 그러니 너는 오늘 여기서 자. 만에 하나 다급해진 케인이 네 입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 ”
헬레나는 볼 일이 다 끝났다는 듯, 창문과 방문에서 떨어진 중간 지점의 구석을 가리켰다.
만에 하나 어새신이 침투하면 그녀 자신이 움직여 명줄을 끊을 생각이었다.
“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
“ 살려야지. 네가 증언을 해 줘야 일이 더 쉽게 풀릴 테니까. 하지만 일이 끝나면 너는 공작령에서 추방이야. 그렇게 알아 둬. ”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찰스는 낮은 목소리로 포효하며 땅에 머리를 박았다.
공작령에서 추방되는 것은 뼈아픈 일이나, 목숨을 건사할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내일, 내일이 바로……. ”
무저갱을 엿보는 듯한 소름끼치는 눈동자에, 일자로 굳게 다물어진 입술.
헬레나는 인형과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장 난 축음기마냥 내일이라는 말을 속으로 연신 되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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