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이래서 집착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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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이 치료를 받은 다음 날 아침.
헬레나는 밤이 새도록 단잠에 빠진 지온의 곁을 지키다, 해가 뜨기 무섭게 기사단이 머무르는 야영지로 향했다. 본디 온화했던 낯빛은 온데간데없이 어둡고 습한 눈동자만을 한 채로.
“ 전부 나와. ”
그녀는 야영지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모든 인원을 빠짐없이 소집했다.
여유와 배려가 엿보였던 인격자는 완전히 죽어버렸다는 반증이었으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두려웠다.
지금의 헬레나에게 사소한 반론이라도 내는 순간 목이 떨어질 것 같았기에, 이곳에 모인 인간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입을 꾹 다물었다.
“ 어제 지온에게 독을 먹인 놈이 누군지는 몰라. 그러니 거동수상자를 본 사람이 있으면 당장 보고해. ”
기사단이 훈련하는 야영지에 잠입하는 간 큰놈이 있을 지는 의문이나, 의심할 필요는 있었다.
지온이 독을 먹은 이상 그것을 반죽에 넣은 인물이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바깥의 인간일 수도, 또는 어제 야영지 내에 있었던 인간들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헬레나는 모든 인원을 소집하여 조금이나마 단서를 잡아내려 했다.
“ 헬레나 님. 경황이 없어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오늘 새벽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습니다. ”
“ …시체? ”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기사단의 부단장 랜들의 증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헬레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열을 이루어 모인 인간들을 전부 해산시키고, 랜들만을 대동하여 시체가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난방을 틀 만큼 쌀쌀한 날씨였기에 구린내가 없는 시체였다.
그러나, 지금의 헬레나는 설령 시체에서 구더기가 끓는다 한들 거리낌 없이 손을 댔으리라.
지온을 죽이려 했던, 정확히는 헬레나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인간의 흔적을 잡아내기 위해서.
“ 새벽녘이지만 급히 사람을 불러 보존처리를 하고, 장의사를 불러 시체를 정돈했습니다. ”
혹여나 시체가 썩지 않도록 서클 계위가 낮은 마법사를 불러 보존을 하고, 전문 장의사를 불러 시체를 닦게 했다.
굳이 장의사를 부른 것은 시체를 말끔히 정돈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 수고했어. 고생이 많았겠네. ”
그녀는 랜들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은 채 싸늘하게 대꾸했다.
시선을 비롯한 온 신경이 시체에만 쏠려 있어 다소 무례한 태도였으나, 랜들은 그럴 수 있다며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보여준 헬레나의 태도가 너무 겸손하기 짝이 없었던 탓이다.
공작가의 딸이자 마스터의 경지를 엿보는 검사이기에 오만이 용서되는 입장이었음에도 그랬다.
즉, 지금의 태도가 그녀의 신분과 실력이라는 이미지에 잘 들어맞는다고 랜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 풋. ”
어디에서 볼 법한 평범한 성인 남자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해당한 것을 보면 그에게 사주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 분명했으며, 다급히 입을 막아야 할 정도로 제법 지체 있는 신분이 그 범인일지도 모른다.
배에 드러난 상흔을 보니 단도로 찔린 것이 분명하다.
긴 검을 사용했다면 등 쪽에도 같은 크기의 상처가 남아 있으리라.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날의 길이가 짧거나, 혹은 칼을 중간까지 찌르고 뺐기에 생긴 결과겠지.
다만 후자의 가설은 사실 세우는 의미가 없었다.
기사단이 득실득실한 이 야영지에서 암살을 하는 와중 긴 검으로 찔끔 살을 밀어 넣었다 뺀다는 것도 그렇고, 일반적인 길이의 검만 들고 다녀도 충분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상흔의 두께가 보통 단도로 찌른 것과 꼭 들어맞는다.
더해 암살이라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품에 감출 수 있는 단도를 쓰는 것이 현명하리라.
그러나, 헬레나가 단도에 의한 상처를 보며 웃은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뒤를 사주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렇게 대놓고 알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 인간은 이 남자를 쓰고 버리는 식으로 사용하려 했겠지만, 그 때문에 덜미를 잡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고맙다. 무능한 새끼야.
“ 랜들. 미안하지만 훈련은 중지해야겠어. 여기 머물러준 기사단에겐 미안하지만 돌아가. ”
“ 예, 알겠습니다. ”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랜들은 별 말없이 경례를 올린 뒤 텅 빈 텐트를 나섰다.
철거작업은 크라우저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그는 기사단을 데리고 당장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 후우──. ”
홀로 남은 헬레나는 숨을 고르며 남자의 배에 난 상처를 매만졌다.
머리에 지나치게 열이 올라 흥분하는 사태를 막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 암살, 암살이라……. ”
곳곳에 숨어 있다는 어새신 길드의 지부가 저지른 일일 수도 있으며, 지체 높은 ‘범인’ 의 사병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
헬레나는 그것을 알기에 어느 쪽부터 쑤셔야 할지, 또 어떻게 쑤셔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상흔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흉기는 단도이며, 상처가 깔끔하다. 일반인이 일반인을 죽였다면 이런 깔끔한 상처를 낼 수는 없었다.
손이 떨리기 때문에 상흔을 잇는 선이 스크래치가 난 것 마냥 삐죽삐죽한 형태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이 상흔을 남긴 자는 일반인이 아닌 전문적인 암살자다.
검을 휘두르며 여러 상흔을 보았기에, 그리고 검에 축복받은 헬레나였기에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차이였다.
“ 도움이 됐네. ”
자신을 죽이고 싶은 동기를 가진 인간은 많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헬레나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쥘 뿐 그를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확실하게 증거를 찾아 퇴로를 막고, 더없이 잔혹하게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조용히 행동해야 할 때였다.
“ 우선 돌아가자. ”
헬레나에게 있어 최우선 용의자는 그녀의 동생 케인 크라우저다.
그 외에도 몇 명 정도가 떠오르지만, 가장 강력한 동기를 가진 인물을 손꼽으라면 단연 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헬레나를 아니꼽게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헬레나는 크라우저 저택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 마냥 탄식했다.
범인이 어디 있는지 헤집고 다니는 자신에 대한 경계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자, 그리고 뒷조사를 하는 기색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겉으로는 범인이 죽었으니 이 사건을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는 식으로 말을 꺼내며, 속으로는 조용히 정보를 모아 행동에 나설 준비를 했다.
최우선 수색 대상으로 지정한 어새신 길드의 위치가 바로 그 정보였다.
“ 지온… 또 올게. ”
헬레나는 찝찝하나마 사건이 마무리 되었으니, 지온의 곁을 돌보는 일만 남았다는 것 마냥 그의 곁을 지켰다.
지온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제법 극진하게 병간호를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 시장 골목 바로 뒤라 그거지…? 고생했어. 물러가 봐. ”
“ 네. 실례했습니다. ”
모두가 잠들 법한 늦은 밤. 공작원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은 순간, 복수를 꾸미는 여자의 눈빛이 흉흉하게 번들거렸다.
눈매마저 날카롭기 그지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사단을 날 기세였다.
아니, 실제로 사단을 내기 위해 검을 쥐고 남몰래 공작 저택을 빠져나왔다.
방에서 얌전히 잠들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복도를 거치지 않고, 굳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기행까지 저질렀다.
허나 쿵, 하고 요란한 소리는 없었다.
바닥에 내려앉는 깃털마냥 사뿐하고, 미약하게 바닥 긁는 소리가 퍼졌을 뿐이었다.
낙하 직전 벽을 밟고 가볍게 공중을 돌아 낙하속도를 완전히 죽여 버린 결과였다.
그야말로 힘의 분산과 움직임이 절묘하게 결합된 기예였으나, 헬레나는 뿌듯할 겨를도 없이 공작가의 담을 넘어 목표 지점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가히 들짐승과 비견될 만한 속도였다.
여기구나.
헬레나는 적막만이 감도는 시장 골목에 도착하기 무섭게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어느 한 건물의 문을 살폈다.
마치 네모난 탑과 같은 크기의 건물은 평소에도 영지 안으로 자주 들이는 과일들의 창고라 알려진 것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문은 말할 것도 없이 잠겨 있었다.
어새신 길드의 구성원은 각자 이 창고를 열기 위한 열쇠를 들고 다닌다 했으니, 평소에 닫아두는 것이 당연했다.
창고의 보안을 지킨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분도 있었고.
그러나, 그 지극히 당연한 명분에 가려진 것이 헬레나가 찾는 길드의 본거지다.
“ 쯧. ”
헬레나는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기 무섭게 마나를 불어 넣었다.
소드 익스퍼트 쯤 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오러 블레이드였으나, 헬레나의 그것은 그 형태가 다소 달랐다.
보통의 오러 블레이드는 날의 겉을 감싸듯 드러나기 마련이나, 헬레나의 것은 칼등 중앙에 푸른 선을 그려 넣은 것 같은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오러로 이루어진 심지와도 같았다.
겉보기엔 검의 중앙을 가로지는 오러의 선이기에 날을 감싸지도 않고, 그 굵기도 얇아 지극히 약해 보인다.
그러나 헬레나의 오러 블레이드를 직접 겪어 본 자들은 모두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오러 블레이드는 약한 것이 아니라, 오러가 그 무엇보다 더욱 강하게 압축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 후! ”
순간적인 호흡을 통해 힘을 모아 검을 내질렀다.
공기를 베는 소리조차 없을 만큼, 그리고 크고 튼튼한 나무문이 깔끔하게 토막이 날 만큼 예리하기 짝이 없는 일격이었다.
헬레나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쓰러지는 나무문을 몸으로 받아, 아주 조심스럽게 벽면에 세웠다.
문이 바닥에 부딪혀 쓰러지도록 내버려 둔다면 모처럼 소리를 죽이느라 애 쓴 보람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과일의 냄새다.
그녀는 창고 안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과일 향을 잠시 음미하다,
오른쪽 구석자리에 쌓인 상자들을 조심스레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잡이가 달린 문 하나가 헬레나의 눈에 들어왔다. 바닥을 덮고 있는 나무문이었다.
다행히 이 문은 잠겨있지 않았으며, 덕분에 칼을 휘두를 수고를 덜었다.
헬레나는 바닥의 문고리를 잡아 활짝 열어젖힌 뒤, 문 뒤에 감춰져 있던 돌계단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검의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쥐는 탓에 피가 뚝뚝 흘러 내렸으나, 싸늘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한기는 식지 않았다.
“ 기다려라. ”
헬레나는 거칠게 날뛰는 심장을 그대로 내버려두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통로였으나 전신의 기감을 끌어올린 덕에 대낮처럼 잘 보였다.
계단은 은근히 길었으나 그 끝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는 문이 그 증거였다.
그녀는 문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혹여나 계단을 굴러 떨어질 일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여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간단했다.
이 계단의 끝에, 그녀가 고대하던 소식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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