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이래서 집착한다 #5
* * *
“ 커헉?! ”
목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굴렀다.
옷이 흙바닥에 쓸려 더러워졌고, 전신을 쑤시는 고통은 시시각각 커져만 갈 뿐이었다.자연적으로 놔두어선 절대 치료되지 않을 치명상이다.
나는 시뻘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바닥을 기면서도, 억지로 팔을 뻗어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최대한 강하게 후려쳤다.
힘을 이기지 못한 프라이팬은 자연스럽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고, 팬에 담겨 있던 쿠키도 덩달아 흙바닥에 쏟아졌다.
혹여나 헬레나가 쿠키를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끄, 끄으으…! ”
말로만 듣던 중독증세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충성심의 발로나 기지가 아니라, 힙노스에게 부탁해 받은 강철멘탈의 효력이었다.
개입자는 신들이 그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특전 몇 개를 요청해 받아낼 수 있었다.
강철멘탈이 바로 그 중 하나였으며, 효과 정도로 보면 지극히 소소했던지라 별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해서 죽지 않을 만큼 질긴 몸을 부탁했다. 그것이 좀비의 육체였다.
어떤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과 육체.
병든 여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 바로 이 둘이었지만, 지금 그 축복으로 인한 덕을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얻고 있었다.
이 정도의 효력이라면 처치가 조금만 늦어도 죽는다. 하지만 독살로 인해 죽지 않을 육체이기에 죽음과 비례하는 고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죽지 않는다 하여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같은 경우는 죽지 못하는 것이 감점 요소가 되었다.
차라리 숨통이 끊어졌다면 편했겠지만 죽지 않은 탓에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
내장이 무너지고 회복되는 것이 생생히 느껴져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 으, 으으…! ”
인간은 한계 이상의 고통을 받으면 기절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피로 물든 붉은 거품이 목구멍을 비집고 오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고통이 너무 지나쳤던 탓이다.
◎◎◎
“ 후우──. ”
지친다.
헬레나는 육체가 아닌 정신의 피로가 극에 달한 것을 느끼며, 식사가 든 트레이를 손에 든 채 텐트로 걸음을 옮겼다.
지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아이에게 응석을 부려 피로를 덜어낼 생각이었다. 두 사람 몫의 식사를 들고 온 것도 그 일환이었다.
가족조차 의지하지 못했던 헬레나에게 있어 지온은 정신적인 부모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고,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숨을 돌릴 만한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 지온~. 저 돌아왔어요. 점심시간인데 지온도 같이 식사를……. ”
그러나.
가벼운 투정과 함께 텐트에 발을 들이는 순간, 헬레나는 팔을 축 늘어뜨렸다.
그 탓에 손에 들고 있던 트레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스튜가 담긴 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 지, 지……. ”
쏟아진 내용물은 바지를 비롯한 신발 곳곳에 튀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헬레나는 손을 덜덜 떨며 쓰러진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인의 복장을 입고 쓰러진 작은 남자아이가 쓰러져 있다.
그 입에 피로 된 거품이 일었고, 지금도 죽어가는 물고기마냥 움찔거리고 있었다. 쓰러진 아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지온 알트람이었다.
“ 지온!! ”
단순히 피로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척 보아도 안다.
그렇기에 헬레나는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고, 그녀의 몸뚱이 안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폭주하여 텐트 전체를 휩쓸었다.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 뭐, 뭐야?! ”
커다란 비명이 훈련장 전체에 울리는 것도 모자라 마나가 폭주한 상황이다.
당연히 잡일을 돕는 일반 병들은 물론,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마저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하며 각자의 검을 들었다.
“ 나머지는 대기하고 있어! 나와 조원들만 따라오도록! ”
이번에 파견된 기사단의 대표이자 부단장을 역임하는 남자, 랜들은 땀에 젖은 금발을 휘날리며 폭풍의 눈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다섯의 남자가 쫓았다.
“ 아, 아아아…! ”
폭풍의 눈은 헬레나의 텐트였다. 기사단의 인원이라면 누구나 동경하고 존경하기도 하는 여자의 침실이기도 한 곳이다.
크라우저 저택에서 오고간다 해도 불만이 없을 상황이었음에도, 굳이 그들과 함께 숙식을 함께 하는 상냥한 마음씨의 상징이기도 했다.
허나, 그 텐트는 지금 걸레짝이 되어 숲 곳곳에 흩어져버렸다. 잡다한 아이템이나 야전침대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상의 가운데에 한 아이를 끌어안고 벌벌 떨고 있는 헬레나가 있었다.
“ 헬레나 님?! 무슨 일입니까! ”
랜들이 일행을 대표하여 다가갔음에도 돌아보는 기색조차 없다.
마치 사람을 무시하는 것만 같은 태도처럼 보였으나, 랜들은 헬레나가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상황 파악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
“ 이건…! ”
그리하여 볼 수 있었다. 헬레나의 품에 안긴 채 피거품을 물며 쓰러진 작은 아이, 지온을.
“ 너희 둘은 크라우저와 알트람의 본가에 전령으로 출발하고, 나머지는 공작령을 뒤져 치료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나 약사를 수소문해서 공작가로 데려와! 지금도 생사가 위험한 상황이다! 손이 비는 놈은 마차를 준비해서 기사단 막사 앞에 세워 놓도록! 얼른! ”
“ 아, 예엣! ”
랜들은 신속하게 부하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흩어지도록 했다.
꾸준히 복용하여 서서히 그 효과가 오르도록 하는 지효성이 아닌, 당장 결판을 낼 수 있을 직효성의 독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야외 훈련 중에 이런 독을 삼키다니.
“ 헬레나 님! 우선 진정하십시오. 그 아이를 한 시라도 빨리 크라우저 본가로 데려가야 합니다. ”
그는 알트람 보다는 크라우저의 저택으로 향할 것을 강권하며, 여전히 벌벌 떨기만 하는 헬레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알트람보다는 여러 가지가 풍부한 공작가로 데려가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더해, 쓰러진 아이가 알트람의 인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 귀족이기에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가는 아이를 어떻게든 구해 보려는 순수한 발버둥이었다. 당장 랜들 본인이 백작의 아들이기에 자작을 추켜세울 필요가 없었다.
“ 지, 지온……. ”
헬레나도 그 진심을 알았는지 순순히 랜들의 부축을 받아 걸음을 옮겼다.
흐릿하게나마 돌아온 이성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다시 무너지면 지온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괜찮을 겁니다.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알트람의 자제이니만큼 마나를 다루고 몸을 단련했을 터. 그 저항력이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높을 테니까요. ”
“ 네, 네에……. ”
랜들이 애써 위로를 건네도 헬레나의 마음에는 닿지 못한다.
지금 그녀의 시야와 머릿속에는 온통 지온 알트람밖에 없어, 다른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 올 미세한 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헬레나의 이성을 되찾는 방법은 오로지 지온 알트람을 치료하는 길 뿐이었다.
◎◎◎
“ 허어, 세상에…! ”
늦은 밤.
침대 위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초로의 노인은 감탄의 한숨을 터뜨렸다.
귀족 아이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필요한 도구를 챙겨 온 것이 조금 전이었는데,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안정된 호흡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노인장, 어떻습니까?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흔들리는 촛불에 비치는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 이거… 정말 대단합니다. 공작가에서 긴급하게 조치해둔 덕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의 생명력이 몹시 강해요. 지금까지 숨을 부여잡고 버틴 것만 보아도 아주 용합니다, 용해. ”
“ 그럼 지온은 무사하다는 겁니까? ”
“ 예. 독으로 인해 쇠약해지긴 것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요양을 하면 회복 될 겁니다. 독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복잡하지 않았던 것이 또 다행이군요. ”
체스는 노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할 수 있었다.
마법 수준은 동네 마법사 정도이나, 공작으로부터 약학에 관한 빼어난 지식을 부여받아 영지의 치료사로 이름 높은 노인이다.
그런 노인이 안전을 보증했으니, 표정을 무너뜨리며 크게 안도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허허. 체스 알트람 같은 분께서 이렇게 소탈하게 행동하시다니 참 놀랍습니다. 역시 자식 걱정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
노인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손을 꼭 잡는 남자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귀족답지 않게 소탈한 면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 헛! 이런 실례를……. ”
체스는 노인에게서 급히 떨어지며 무안한 듯 헛기침을 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 허허. 뭘, 그럴 수도 있지요. 아무튼 며칠 지나면 깨어날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쉬시지요. 가장이 굳건하게 버티셔야 또 다른 병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
“ 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그럼, 저도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요. 내일 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
노인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하자, 체스는 자연스럽게 그를 부축하며 저택 밖으로 나섰다.
약학 지식으로 인해 크라우저 공작에게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니만큼, 그 부하인 체스도 노인을 소홀히 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고.
“ 후우. ”
노인을 마차에 태워 보낸 뒤, 체스는 곧장 헬레나의 방에 들러 기쁜 소식을 이야기했다.
맥없이 침대 모퉁이에 늘어진 여성의 모습을 보니 체스 본인의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으나, 곧 기운을 차리고 걷는 모습을 보며 감격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 정말 괜찮은 건가요?! ”
“ 예. 지금은 자고 있지만, 며칠이 지나면 깨어날 거라고 했습니다. 독도 중화했고요. ”
“ 아…! ”
마음 같아서는 그도 함께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결국 헬레나 혼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홀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판단한 결과였다.
“ 지온……. ”
헬레나는 지온이 잠든 방에 홀로 발을 들이며, 침대에 누워 잠든 아이의 이름을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고통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호흡도 고르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가 낮에 보았던 상태와는 확연히 달랐다.
“ 정말, 정말 다행이야. ”
그녀는 지온의 작은 손을 꼭 쥐며 연신 고개 숙여 기도했다. 이 작은 아이를 살리느라 애쓴 이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기도였다.
지금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아이를 떠올리면 그녀 자신의 손발이 다 떨릴 정도이니 오죽 했겠는가.
허나, 지금은 그런 고비를 전부 넘긴 상황이다.
덕분에 헬레나는 이 다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다만, 여유 뿐만은 아니었다.
분노. 태어나서 처음오르 느끼는 강렬한 분노가 헬레나의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 용서… 못해. ”
여유를 갖게 되었기에, 헬레나는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무저갱을 담아낸 듯 깊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보였다. 자신을 노려서가 아니라, 지온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에 대한 살의가 끝없이 샘솟고 있었다.
밤의 어둠과 조화롭게 섞이는 살기는 가히 예술적일 정도였다.
사정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헛바람을 삼키다 숨이 막힐 수도 있었다. 지온은 깊이 잠들어 있기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나, 만약 그가 중독을 갓 벗어난 상태가 아니었다면 진작 알아차렸으리라.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아니, 용서 안해.
헬레나는 원흉을 스스로 벌하리라 다짐하며, 스산한 눈빛을 띤 채 잠든 소년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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