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이래서 집착한다 #2
* * *
헬레나는 경장을 입는다. 드레스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스 크라우저의 뒤를 이어 군단장이 될 사람이자, 지금 현재에도 왕국 내에서 최고봉에 선 기사였기 때문이다.
즉, 매일같이 훈련하기에 드레스보다는 경장이다.
그녀는 아홉 살 때 검의 재능을 드러내 천재라 불렸으며, 열넷에 검으로 대성을 팔자라는 소문난 맛집이 되었다.
그 상승세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천재가 지금 내 앞에서 수줍은 소녀마냥 몸을 배배꼬고 있었다.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 자,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옷을……. ”
“ 아, 아니! 저, 그게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스스로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
헬레나는 옷장으로 향하는 나를 가로막으며 빽 소리쳤다.
검을 다룸에 있어서도 정숙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늘 침착한 소녀였으나, 그런 평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 다졌던 각오는 온데간데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둘만 있을 때면 편하게 말을 놓게 된것도 그런 변화 중 하나였다.
아무튼, 혹여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나를 남자로 보고 있어 그런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어지간한 이상성욕이 아닐 수 없었다.
뭐, 그래도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살았던 현대에서는 이미 숨통이 끊겨 뼛가루가 된 지 오래인데다, 사랑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65세와 25세가 결혼하는 거나, 35세가 16세가 교제하는 거나 나이 차이는 별로 없지 않은가.
전자의 경우는 둘 다 성인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따지고 들 법 했지만, 이곳은 다른 법칙과 윤리가 적용되는 세계다.
진부하기는 하나 로마에 따르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고, 미친놈 사이에 정상인이 끼면 정상인이 미친놈이 된다는 말도 있다.
윤리도 결국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누군가는 이해하고 넘어 갈 수 있는 문제를 두고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아, 그럴 수도 있지.
“ 그럼 옷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괜찮을까요? ”
“ 지온이… 내 옷을? ”
“ 네. 헬레나 님께 전부 맡겨버리는 것은 시종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혹시 그것마저 곤란하신 겁니까? ”
나는 말을 더듬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곤란하다는 듯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마치 꼬리 내린 개처럼 축 처진 얼굴을 했다.
그러자, 이 성숙하면서도 미성숙한 주인께서는 큰 결심을 굳힌 듯 결연한 눈빛을 띄며 말했다. 각오가 되살아난 듯 보였다.
“ 아니. 곤란하지 않아. 부탁할게. ”
“ 네. 알겠습니다. ”
지온이 내가 입을 옷을 골라준다…!
나는 헬레나가 잔뜩 흥분하여 중얼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등을 돌린 채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고급 목재로 만들어져 마법적 가공까지 거친 가구는 역사가 느껴졌음에도 굳건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다 무늬 디자인도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알트람에도 역사의 때가 묻어나오는 가구가 몇몇 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 여기 있습니다. ”
이동형 옷걸이마냥 옷가지를 팔에 걸쳐 되돌아오자, 헬레나는 떨리는 기색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옷가지 하나 집는 것뿐인데 너무 과하게 긴장하는 듯 했다.
“ 응. 고마워. ”
“ 불편하시다면 눈을 감고 있을까요? ”
단순한 하인의 눈이라면 의식하지 않고 넘어갔으리라.
내가 알트람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헬레나의 입장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정말 단순히 생각해 보면 귀족 말단인 자작과 최고봉인 공작은 큰 차이가 나니까.
다만, 헬레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내 제안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 아, 그래. 부탁할게. ”
부탁이라고 했으니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옷이 살갗을 스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고, 팔에 걸린 옷가지가 하나 둘 씩 사라져가는 것에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무게가 가벼워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 …다 됐어. 눈 떠도 돼. ”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난 것일까. 헬레나는 의외로 혼자 갈아입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았다.
가끔 귀족 중에는 자기 혼자 옷도 못 입는 인간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눈을 떠 보니 경장 차림의 헬레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리에 딱 붙어 선을 강조하는 검정 가죽바지에 부츠. 어딘가 터질 듯한 셔츠에 재킷까지, 완벽한 차림이었다. 드레스보다는 확연히 움직이기 쉬워 보였다.
“ 혼자서도 잘 입으시는군요. 하지만……. ”
묘하게 비뚤어진 부분이 몇몇 보였기에 직접 손을 대서 교정을 했다.
말려 올라간 소매나 재킷의 각도 등을 손보았으나, 가장 중요한 목깃 부분에 손이 닿지 않았다. 키가 작은 게 원인이다.
하는 수 없지. 다소 무례하기는 하나 헬레나에게 부탁을 하는 수밖에.
“ 헬레나 님. 죄송하지만 잠시 허리를 숙여 주시겠습니까? ”
“ 어…? 응. ”
그녀는 갑작스러운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따라주었다.
덕분에 목의 깃에 손에 닿았으나, 헬레나의 커다란 융기를 마주한 탓에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요 몇 년간 친분을 쌓으며 그럭저럭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나, 선을 넘을 만큼 친하다 물으면 답하기 곤란했다.
그렇기에 자칫 저 가슴에 실수로라도 손을 대는 순간 사형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의외로 변덕스러운 법이었으니까.
나는 졸지에 위기탈출을 하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헬레나의 목깃을 건드렸다.
“ 흐읏! ”
목깃을 바로잡다 희고 가는 목덜미에 손가락이 닿았다. 덕분에 헬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오감이 발달한 기사이기에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민감하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이다.
“ 고생하셨습니다. 깃이 비뚤어져 있기에 조정을 하려 했으나, 손이 닿질 않아서 그만……. ”
나는 무례함을 사죄하기 위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헬레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명령을 내린 것과 진배없었기에, 이렇게나마 면죄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헬레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내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 괜찮아? 전부 나를 위해서잖아. 오히려 내가 고마워하고 싶으니, 얼른 일어나. ”
“ 예.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
“ 아이 참. 실례가 아니라니까. 지온은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딱딱한 걸까? 그것도 여덟 살 아이면서. ”
헬레나는 내가 허리를 펴기 무섭게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아 불만스럽다는 사치스러운 고민이었다.
말썽쟁이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의젓해지기를 반기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 제가 그렇게 딱딱했나요? ”
“ 그래. 앤디보다 더 딱딱해. 예전처럼 더 아이답게 행동하는 게 훨씬 귀여웠는데. ”
그녀는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안타깝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체스의 교육을 받기 전에는 나름대로 아이답게 굴며 응석을 부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행동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었다.
유리멘탈주제에 응석을 받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면, 헬레나에게 있어 응석과 기대는 다른 것일까.
“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러고 싶기는 하지만, 헬레나 님의 시종이 된 이상 그럴 수도 없잖아요. 알트람 저택에서라면 모를까, 이곳에서 너무 기어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분들이 좋게 보지 않을 거에요. ”
“ 하아──. 다른 분들이라. ”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정하지는 않았으나, 헬레나는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듯 내 말에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 그러네. 지온이 말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예전부터 똑똑한 아이였으니까. ”
“ 헬레나 님. 예전부터 말씀드리는 거지만, 똑똑한 것과 조숙한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똑똑한 것은 헬레나 님 같은 분을 말씀하시는 거고, 저는 굳이 말하자면 조숙한 쪽이겠죠. ”
“ 정말, 애늙은이가 따로 없다니까. 그리고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은걸. ”
헬레나는 나의 반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이마를 쿡 찔렀다.
미약하나마 불만스러운 기색이 표정에 배어 있는 것으로 보아 딱딱한 것이 정말 싫었나보다.
하긴, 딱딱하기 그지없는 주위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리라. 하지만 그녀가 똑똑하지 않다는 말은 완벽한 기만이다.
“ 그럼 헬레나 님이 제게 응석부리실래요? ”
그래서 그 반대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얼굴을 붉힌 채 토끼마냥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응석 부린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 격렬한 반응이었다.
◎◎◎
“ 제길. ”
공작가의 장남이자 헬레나의 동생, 케인 크라우저는 인기척이 드문 구석에서 혀를 차며 넓은 공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병사와 기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훈련하는 모습이었다.
크라우저 공작령에는 영지를 지키는 병사들, 그리고 왕궁을 지키는 중앙기사단이 조를 나누어 파견된다.
개인 영지를 가진 귀족의 특성상 늘 중앙에 있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기사단을 보내 훈련을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실제로 효과도 좋았다.
“ 자! 횡베기 100번 더! ”
그 중심에는 그의 누이이자 가증스러운 여자, 헬레나 크라우저가 있었다.
쓸데없이 재능을 타고나 왕을 수호하는 중앙기사단의 단장마저 꺾어버린 여자였다.
케인 또한 크라우저의 인간답게 검과 전투 기술에 조예가 있었으나, 늘 헬레나에게 뒤쳐졌다.
재능은 더 큰 재능에 비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케인은 오만했다.
오만했기에 헬레나가 그저 운이 좋을 뿐인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 가치를 깎아내렸다.
실제로 재능만 없었다면 남자인 자신이 차기 공작으로 점 찍혔을 것이 분명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빌어먹을가증스러운 년.
남자를 쉬이 유혹할 수 있을 탕녀 주제에 재능만으로 먹고 사는 년.
그것이 헬레나에 대한 케인의 평가였으며, 그 증오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 또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헬레나보다 성과를 내는 것이 무척 늦된 탓이기도 했다.
더해, 알트람의 인간이 헬레나에게 붙었다는 것이 그 증오를 더욱 부채질했다.
알트람은 공작의 작위를 이어받은 인간이나 그 차기 후보를 섬기는, 일종의 보증수표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즉, 헬레나가 공작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쯤 되면 거의 확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 정략결혼의 도구로나 쓸 법한 년이…! ”
케인은 나지막이 속삭이며,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세게 갈았다. 그에게 있어 헬레나는 거슬리는 존재였을 뿐, 도저히 가족이라 여길 수 없는 존재였다.
거기다, 작위에 대한 욕심이 많은 케인은 지금도 공작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화가 날 수밖에.
“ 더 이상은 못 참겠군. ”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헬레나가 공작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손을 쓰기 더욱 어려워지고, 설령 손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비교조차 불가능할 만큼 커다란 혼란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전에 싹을 잘라버리겠다고 케인은 결심했다.
증오와 질투에 범벅이 된 음습하기 짝이 없는 눈을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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