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응애부터 시종까지 #3
* * *
아니. 애기 손잡은 거 가지고 전기 맞은 누구마냥 부르르 떠는 것은 왜일까.
독심술이라도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그런 스킬은 없다.
이곳에 오며 얻은 스킬 중 하나를 독심술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는데, 그건 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에바다, 에바.
“ 아우. ”
헬레나 크라우저.
유리멘탈 주제에 행동에는 흔들림이 없어 겉으로는 잘 버티는 것처럼 보였으나, 검으로 마스터를 찍은 이후 그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여자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 와장창 무너졌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그녀는 책무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왕국이 힘을 필요로 했으니까.
그러니, 힘이 필요치 않은 상황을 만들면 된다.
즉, 대륙을 왕국의 발아래 무릎 꿇리면 자신은 자유다.
통일 대업을 세우고 나면 그 누구도 자신을 묶어 둘 수 없으리라.
산산조각이 난 헬레나의 멘탈은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오류투성이의 결론을 내렸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 대륙 전체를 거대한 화마에 휩싸이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계 규모의 핵전쟁에 의한 상호파괴와도 같이.
그렇기에 힙노스는 나를 헬레나와 접하기 쉬운 곳으로 보냈다,
설마하니 크라우저의 시종 가문에 몸 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러모로 접촉하기엔 참 편리한 신분이었다.
봐라. 본래라면 얼굴조차 마주하기 힘든 공작가의 인간이 스스로 굴러들어오지 않았는가.
“ 세상에…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
왜 몸을 부르르 떨면서까지 좋아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옵저빙의 관찰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어떤 여자가 어떤 이유로 세계를 박살내느냐 뿐인지라, 이런 사소한 정보는 직접 발로 뛰며 얻어내야 했다.
내 머리로 끝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은 해 두기로 했다. 헬레나는 부드러움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 아우. 아우우! ”
마음 같아서는 직접 말을 건네고 싶지만, 한 살배기 아기가 공용어를 나불거리면 큰 소란이 터진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아기의 옹알이만을 구사하며 온몸으로 의사를 전달하려 애썼다.
지금은 헬레나의 손가락을 잡았던 손을 떼고, 마치 안아달라는 듯 버둥거리며 두 팔을 벌렸다.
제대로 시선도 맞추고 있어 보통 사람의 지능만 있으면 내 뜻을 이해할 거라 기대했다.
“ 아… 혹시 안아달라는 걸까? ”
다행히 헬레나는 기대했던 대로 이 행동을 이해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잘 했다는 뜻으로 크게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말을 알아듣는 지능이 있다 간주할 것 같아 무서웠다.
멀쩡한 정신으로 보내는 응애 생활은 소중하니까 되도록 무난하게 보내고 싶었다. 응애는 내가 지켜야해.
아무튼, 헬레나는 자신을 보며 옹알이를 계속하는 나를 보며 몹시 당황해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오 분 정도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았으나, 결국 각오를 다진 듯 조심스레 내 몸을 안아들었다.
“ 와, 와아……. ”
안는 솜씨가 영락없는 초보자이긴 한데, 팔뚝에서 느껴지는 듬직함은 도저히 아이답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검술 훈련을 한다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그 영향이 분명했다.
아이 주제에 근력을 느끼게 하다니? 좀 칠 줄 아는 놈, 아니 년 이다.
“ 꺄우! ”
아무튼 내가 원하는 대로 안아주었으니 잘했다는 식으로 활짝 웃었다.
아기의 얼굴은 못생기고 잘생기고 할 것도 없으니, 최대한 뻔뻔하게 웃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에, 나를 처음 안아 나지막이 감탄을 흘리던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정도였으나 무척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래. 너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겠지. 유리멘탈인데 참 고생이 많구나.
나는 헬레나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환히 웃으며 뺨에 닿은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당장 손이 닿는 곳이 뺨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를 살살 쓸어주고 싶었으니까.
“ 설마… 나를 위로해 주는 거니? ”
겉으로는 완벽한 몸가짐과 표정 관리를 하는 소녀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떤지는 친부모조차 모를 정도였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답하려는 듯 최대한 크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
“ 꺄우우! ”
“ 아아…! 정말, 정말로 그런 거구나. 어떻게 말도 못하는 아이가……. ”
분명 겉으로 보기엔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리라.
아기의 목소리도 우연히 시기가 좋았을 뿐, 정말로 말을 이해하고 답한 것은 아니라고 비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헬레나는 내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겠지만, 그만큼 정신이 구석에 몰린 상태가 아닐까.
말 못 하는 아이를 향해 눈물을 보이며, 무심코 진심을 토해낼 만큼.
“ 나는 조용히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어. 하지만 공작이신 아버지를 시작으로 하는 여러 분들의 기대를 버릴 수도 없어서… 그렇게 억지로 버티고 있었는데, 너는 그런 나도 괜찮다고 해 주는 구나. ”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까지 줄줄 늘어놓는 걸 보니 상상력이 참 풍부한 듯싶었다.
아니면 정신이 병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 아우. 아우우. ”
상대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반은 간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헬레나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가끔 헬레나의 푸념에 맞장구나 쳐 주었다.
그 대부분이 아우, 우우와 같은 옹알이일 뿐이었지만 뭐 어떤가? 본인이 저렇게 좋아하면 그만인 것을.
“ 신기하네. 너는 아기인데도… 정말로 내 말을 전부 이해하는 것 같아. ”
그렇게 정신 치료가 제법 진전되자, 헬레나는 지극히 당연한 의구심을 입에 담으며 웃었다.
상식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보니 많이 안정된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지금도 나를 심리상담사 취급하고 있었겠지.
“ 네가 나중에 크면 어떻게 될까? 알트람의 사람들은 모두 충성심이 넘치는 분들이었으니까, 너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아니면 내 동생처럼 성품이 날카로운 아이가 될 지도 모르겠네. ”
헬레나는 자기 혼자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우울한 기색이 엿보이게 웃었다.
나는 아기를 상대로 너무 무거운 주제를 입에 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영혼은 어른이니 충분히 이해는 한다만…….
가만.
그러고 보니 헬레나에게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애초에 부모님들도 크라우저 공작이나 헬레나에 관한 이야기만 가끔 했을 뿐, 동생이 있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사적 공간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동생. 그리고 헬레나의 독백.
이상의 두 이야기를 통해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 결과, 헬레나의 동생은 개차반임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 헬레나가 동생을 두고 성품이 날카롭다는 말을 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개차반이라면 뭔가 일을 저지를 것이 분명할 테니, 지금부터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듯 보였다.
◎◎◎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독백으로 지새울 무렵, 지온 엘트람은 헬레나의 품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정신적 피로를 쌓은 탓이었다.
다소 성장한 몸이라면 이 정도로 졸아버릴 리는 없을 테지만, 지금의 지온은 아기. 정신적 피로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헬레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온을 침대에 눕히려다, 무언가에 홀린 듯 평원마냥 아기의 널찍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어머! 내가 무슨……. ”
아기에 대한 애정 표현이라 생각하면 별 이상할 것도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헬레나는 새빨갛게 뺨을 붉힌 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 지온을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곤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 아가씨, 지온은 잘 보셨습니까? ”
헬레나는 복도를 거니는 짧은 순간에 자신을 가다듬었고, 그 결과 체스가 기다리는 응접실의 문을 두드렸을 무렵엔 본래의 침착함을 되찾은 뒤였다.
그래서인지 체스 또한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조금 전 까지 헬레나가 당황해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기색이었다.
“ 네. 아주 귀여운 아기였어요. 체스 님의 아드님답게 서로 닮은 부분을 볼 수도 있었고요. ”
“ 하하. 그렇습니까? 제 아들을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영광이 아닐 수 없군요. ”
“ 너무 요란한 감상이세요. ”
소녀는 체스가 권하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체스가 직접 의자를 끌어다주며 권한 자리에 앉는 것은 크라우저의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위였다.
다소 건방져 보일수도 있으나, 오히려 지금 겸양을 떤다면 더 시끄러워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해하는 헬레나이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알트람의 충심은 속이 깊으니까.
“ 저… 체스 님. ”
헬레나는 체스가 직접 우려낸 차를 한 모금 입에 댄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온도나 향이 소녀의 취향에 꼭 맞는, 실로 섬세함이 넘쳐 흐르는 한 잔이었다.
“ 네. 말씀하시죠. ”
“ 침실에 있던 아이… 지온이라고 하던가요? 그 아이도 장래에 저희 크라우저 공작가에서 일하게 되나요? ”
“ 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예정입니다. ”
크라우저 공작가를 모시는 기쁨,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의 아들이 확고히 자신만의 길을 정한다면, 체스는 그 길을 기꺼이 응원할 생각이었다.
대를 이어 크라우저 공작가를 모시는 그의 자부심과 의지는 금강석와 같았으나, 아이에게 그 길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크라우저 쪽에서 그 아이를 강력히 원한다면… 체스도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 혹시, 지온이 마음에 드시는 겁니까? ”
그래서 저도 모르게 떠보는 듯한 질문을 던졌으나, 헬레나는 몹시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체스의 물음에 답했다.
“ 아, 그게…! 물… 론 그 아이는 마음에 들었지만, 강제로 저를 따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식의 억지 충성이 얼마나 얄팍한지는 체스 님도 잘 아시잖아요? ”
“ 그야, 그렇습니다만……. ”
일단 강제로 데려갈 생각은 없어 보이니 안심이다.
체스는 헬레나의 배려심이 여전한 것을 알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곧 얼굴을 붉힌 채 그 나이대의 평범한 아이처럼 이야기하는 소녀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만 그 아이가 스스로 잘 생각한 후에저와 함께 해 주기를 바라요. 다른 길을 가겠다면 기꺼이 존중해 주고 싶고요. ”
이건 못 참지!
체스는 아들의 의지를 존중할 생각은 여전했지만, 최대한 헬레나의 훌륭함을 피력하며 반쯤 세뇌작업에 들어갈 결심을 굳혔다.
미래의 인재는 미래의 공작을 모셔야 하는 법이라 생각했기에.
“ 그러시다면… 제가 최대한 헬레나 님의 훌륭함을 피력해 보겠습니다. 지온이 스스로 헬레나 님을 따르고 싶도록. ”
“ 네…? 저기, 그건 세뇌가 아닐지……. ”
“ 세뇌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헬레나 님의, 그리고 크라우저 공작가의 위대함을 가르친다면 지온 또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품을 것이 분명합니다!제가, 그리고 과거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좋지만, 뭔가 이글거리는 것이 너무 과하다.
헬레나는 내심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일단 부드럽게 웃으며 얼버무리기로 마음먹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