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응애부터 시종까지 #1
* * *
커버보기
“ 정우야. ”
“ 네? ”
“ 넣을게. ”
바닥 청소를 하던 중 정말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 대체 꿀벌은 어디서 주워들은 거지?
“ 넣긴 뭘 넣어요. 아무튼 청소해야 하니까 다른 방으로 가세요. ”
나는 흔들의자에 기대 앉아있던 소년에게 툭 쏘아붙이듯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무례였으나, 게으르면서도 자비로운 저 신의 성격을 알기에 이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힙노스. 솜누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잠의 신으로, 이 신계에서도 방관자로 유명한 신이었다.
“ 아니. 진짜 넣을 거라니까. ”
힙노스는 자기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한 나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평소 흐리멍덩한 눈빛이 디폴트값인 신인데, 저러는 걸 보니 확실히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심지어 목소리도 약간 높아져있다.
그래서, 나는 빗자루 질을 멈추고 물었다.
“ 넣긴 뭘 넣어요? 설마 그런 취향이세요? ”
“ 뭐? 나는 자는 게 좋아서 반쯤 고자가 된 남자다. 잊지 마라. ”
“ 아, 예에……. ”
저렇게 당당하게 고자선언을 하는 것이 어이없긴 하다.
그래도 민폐도 끼치지 않고 자기 영지에서 조용히 햇빛만 보고 사는 것이 낙인 양반이니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을 20시간은 잠만 자는 신이기도 하고.
“ 아무튼, 너는 들어가야만 해. ”
“ 그러니까 쑤셔 넣는다는 개소리는… 예? 들어간다고요? ”
“ 그래. 옵저빙에 관해선 너도 알지? 네가 거기 당첨됐다. ”
옵저빙. 신들이 조를 이루어 한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내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인간들을 가만히 관찰하며 즐기는 신들 고유의 유희 중 하나였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즐겁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완전히 방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때에 따라 그곳의 인간들에게 축복을 내리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간섭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간섭에도 엄연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1. 각 신마다 축복을 내릴 수 있는 수를 한정한다.
2. 각 신은 정해진 이상으로 관찰 세계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바로 이 두 개가 옵저빙의 기본 골자를 이루는 규칙이며, 이것을 어기면 게임에서 배제되며 집단 린치를 당하게 된다.
세계가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개입하면, 종국에는 세계가 붕괴되어 걸레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린치를 당해본 신은 더럽게 아프다는 후기를 남겼다.
나는 그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어서만 알고 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기에, 신들은 선을 지키며 옵저빙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 그런데, 그 옵저빙하는 세계에 제가 들어가라고요? ”
“ 그래. 심심해서 파견자를 정하는 주사위 판에 참가했는데, 내가 딱 걸려버렸지 뭐냐. ”
파견자.
그것은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규칙의 예외조항과 같은 것으로, 한 세계를 주시하는 그룹의 신들끼리 주사위를 굴려 당첨된 신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보낼 수 있는 특권이다.
혼란을 원하는 신은 최대한 세계를 어지럽게 하도록 명령하고, 평화를 원하는 신은 평화를 유지하도록 명령한다.
그야말로 신들의 성향에 따라 세계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다.
그저, 명령을 받고 파견된다 한들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기량에 달려 있었다.
혼란을 일으킨답시고 도둑질만 하다 잡혀가는 경우도 있었고, 평화를 만든답시고 성직자가 되어 봉사만 하다 끝나는 수수한 삶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옵저빙에 잠만 자는 이 신이 참여했다는 게 참 의외지만… 나쁜 뜻은 없겠지.
“ 나 참. 잠만 자시는 분이 갑자기 웬 옵저빙이에요? ”
“ 아니. 산책하다 우연히 한 세계를 봤는데, 거긴 가만히 놔둬도 멸망할 팔자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놔두기도 찝찝해서 주사위 굴리기에 끼였지. ”
“ 그러다 딱 당첨되신 거고요? ”
“ 그렇지. 아다리가 딱 맞았지. ”
거 이래저래 참 저렴한 언어 구사력이다. 덕분에 황당함이 배로 늘었다.
“ 아무튼, 그래서 내 수족인 너를 보내려고 딱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이야. ”
“ 거절해도 되죠? ”
“ 어…? 그야… 거절해도 되지. 강제는 아니니까. ”
아무리 신이 당첨됐다 한들, 그 수족에게도 거부권을 행사 할 권리가 있다. 그것 또한 엄연한 규칙이다.
그래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했는데… 안쓰러운 듯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 마음이 꺾이고 말았다.
파견자 역할을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따라오는 존재 승화엔 관심 없지만, 이 신은 순전히 선의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선의에는 조금 약한 편이었다. 더해, 이 신에게 신세진 것도 많았다.
“ 에이…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
“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럼 얼른 박으러 가자~. ”
박긴 개뿔.
아무튼, 나는 이런 경위를 거쳐 힙노스가 옵저빙하는 제 24세계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
응애. 나 애기 지온. 맘마 줘.
“ 그래그래. 우리 지온, 맘마 먹자꾸나. ”
현재 내 나이는 한 살이고, 이 세계에서 태어난 곳은 알트람 일가다.
일가라고 해서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창한 신분은 아니지만, 이 24세계에 존재하는 어느 왕국의 유서 깊은 명문 귀족 크라우저 일가를 대대로 섬기는 집안이다.
나는 그곳의 안주인, 리나 알트람의 부드러우면서도 큰 젖을 입에 문 채 영양분을 마음껏 빨아마셨다. 아직 아기니까 젖을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나저나, 말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았는데 젖을 물려주는 걸 보면 상당히 눈치가 빠른 사람인 것 같다.
“ 쭙, 쭙. ”
“ 그래. 우리 지온. 잘 먹는구나. 무럭무럭 잘 크겠네? 후후후. ”
나는 묘하게 단맛이 나는 젖을 먹으며 현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간섭 유형은 빙의나 환생 중 환생이다. 아기부터 시작하는 걸 보면 그 점은 명백하다. 물론 아기에 빙의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역시 환생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
세계 구성은… 마법과 이종족이 존재하는 흔한 판타지 월드다. 옵저빙으로 관찰하는 세계 중 흔한 유형이다.
목표는 힙노스 님의 의향에 따라 급격한 붕괴를 막는 것이다.그를 위해 그 원인으로 손꼽히는 인물과 접촉해야 한다.
간혹 거대한 변곡점이 발생할 경우, 신들은 게임판 위에 떠오르는 경고문을 통해 그를 알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다.
지나친 간섭을 할 수 없다고 한들, 가만히 손 놓고 있다 판이 부서지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인물이 어떤 경위로 세계를 조져버리게 되는지 나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최우선 공략대상이자, 훗날 크라우저 일가의 당주가 되는 헬레나 크라우저가 접촉하기 쉬운 신분으로 환생했다.
요컨데 헬레나 크라우저부터 어떻게 하라는 말이겠지.
“ 푸흐! ”
“ 어머나? 우리 지온은 트림도 너무 귀엽게 하네? 정말, 누굴 닮아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건지……. ”
젖을 다 먹은 뒤 가볍게 트림을 하자, 리나는 내 뺨에 얼굴을 부비며 활짝 웃었다. 이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듯 밝은 미소였다.
“ 정말, 부인은 못 말리겠구려. ”
“ 어머, 여보. ”
어느 새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보였다. 호리호리하면서도 건장함을 느끼게 하는 몸을 가진 남자이자 알트람 자작가의 주인, 체스 알트람이었다.
“ 그치만 우리 지온이 너무 귀여운 걸 어떻게 해요? 여기, 이 눈매나 색도 당신을 꼭 닮았잖아요. ”
리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며 귀엽게 투정을 부렸다. 그 와중에도 얼굴에 부비는 뺨을 뗄 생각이 없는 걸 보니, 아이 사랑이 지극한 여성임이 분명해 보였다.
“ 후후. 그 이야기도 몇 번이나 듣지 않았소? 하지만 몇 번 들어도 듣기가 좋구려. ”
“ 그렇죠? 당신과 내가 소중히 기른 아이답죠? ”
“ 음. 그렇지, 그렇고말고. 여기 이 입술은 당신을 닮은 게 아주……. ”
그러나, 얼핏 엄숙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헤벌쭉하는 모습은 참 의외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 참. 그러고 보니 헬레나 님의 탄생일이 가깝다면서요?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
“ 물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소. 걱정 마시오. ”
체스 알트람은 엄숙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를 이어 크라우저 일가를 모셔온 인간의 자부심일까, 아니면 본인의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쁜 일은 없어보였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 그러면 다행이지만……. ”
리나는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듯 그늘 진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올해로 아홉 살이 되는 헬레나는 여자의 몸임에도 무재의 편린을 보이며, 차기 당주가 될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이의 생일 축하 준비이니,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 흐음. 우리 부인께서 이렇게 그늘 진 표정을 하니… 어쩔 수 없군. 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올 테니, 너무 걱정 마시오. ”
“ 미안해요. 괜히 떠미는 것 같아서……. ”
“ 음. 미안할 필요 없소이다. 뭐, 정 미안하다고 느끼시거든……. ”
체스는 잠시 말을 끊고 급히 주변을 살피더니, 은근슬쩍 리나의 귓가에 입술을 대며 작게 속삭였다.
“ 오늘 밤에 준비를 좀 해 주시오. ”
“ 어머나…! ”
밤의 준비. 그 노골적이다시피 한 말에, 리나는 뺨을 붉힌 채 한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더해, 휘둥그레 뜬 채 눈동자를 보면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멋모르는 아기라고는 하지만, 대낮부터 이런 어필을 하다니…!
정말 바람직한 가족이 아닐 수 없었다. 모유 맛이 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게야.
“ 전에 사 둔 것을 입고… 기다릴게요. ”
“ …크, 크흠! 그것 참 좋구려. ”
그래. 너 참 좋겠다.
나는 한껏 염장을 지르며 떠나가는 남자의 등을 눈으로 쫓다 눈을 감았다. 맘마도 먹었으니 슬슬 낮잠이나 자야겠다는 표시였다.
“ 어머… 우리 지온, 졸린 모양이구나? 그럼 코 하고 낮잠 잘까? ”
리나는 표정 변화를 통해 그 의도를 알았는지,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 아기용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푹신한 쿠션과 청결한 이불의 감촉을 보니 제법 고급품인 듯 했다.
“ 아, 우우……. ”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에,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이 잠을 부추긴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면 한가로이 잠을 잘 수도 없을지 모르나, 지금의 나는 아기다.
파견자는 일정 선에서 신으로부터 특전을 받아 환생하게 되지만, 이 상태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을 자랑하는 강철멘탈에 벽에 똥칠할 때 까지 사는 좀비의 육체라한들, 아기 상태론 쓸 곳도 없겠지.
단순히 눈만 감고 있었던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의식에 편안히 몸을 맡기며, 이윽고 완전한 잠에 빠져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