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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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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 지온, 지온……. ”
뜬금없지만, 나는 쓰다듬을 받고 있다.
쓰다듬을 하는 주역은 길고 검은 머리칼에 금안이라는 특징을 가진 여자다.
내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는 허벅지는 부드러우면서 탄력이 넘치고, 배게 대신으로 사용하는 가슴 또한 푹신하다. 에어백으로 써도 될 정도다.
여자의 이름은 헬레나. 헬레나 크라우저. 최우선 공략대상이자 왕국의 군단장이다.
“ 헬레나. 저 화장실 좀 가면 안 될까요? ”
“ …뭐? ”
순간, 막사 안의 공기가 영하로 내려간 것 같은 한기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실제로 온도가 급격히 내려간 것은 아니었으나, 서릿발 같은 헬레나의 한 마디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흐트러짐 하나 없는 얼굴로 고개를 슥 들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예상대로 죽은 눈을 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사람 하나 죽여 버릴 정도로 거친 살기를 내뿜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렇게 말하고 어디로 가 버리려는 거지? 나만 두고 도망치려는 거지? 안 돼. 안 돼. 안 돼. ”
그녀의 정신은 몹시 불안정하다. 현재 시종을 맡고 있는 내가 곁에 있으면 늠름하고 호쾌한 여걸이지만, 이렇게 조금만 떨어지려고 해도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내게 상해를 입힌 적은 없다는 것일까.
아무튼, 그녀는 심각할 정도의 집착과 의존증세를 보이는 여자다. 병으로 따지면 말기쯤 되지 않을까 싶다.
“ 그럼 쉬야하는 데 같이 가 줄래요? 제대로 쉬야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겠어요? ”
“ …어, 어어? ”
우욱 씹!
나는 어린아이라는 외견에 맞게 최대한 아이 같은 단어를 쓰며 구역질을 견뎌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지대했기에, 얼음장 같던 헬레나의 얼굴이 한껏 뺨을 붉힌 채 녹아내렸다.
“ 그. 그럴까…? 지온은 아직 어린애니까 내가 잘 지켜봐야겠지. 응. 그래야지. ”
헬레나는 봄날에 흐드러진 꽃밭보다 더욱 화사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어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럼 같이 가요. 네? ”
“ 응…! ”
나는 엄마가 아이 손을 끌고 거리를 걷듯, 헬레나의 손을 잡고 막사를 나섰다.
이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지온. 본명은 정우.
세계 붕괴의 초점이 되는 병든 여자들을 막으라고 높으신 분이 던져버린 고기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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