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마왕 크론(1)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업로드가 잠잠했던 크론TV의 영상이 올라왔다.
크론 메이커의 창조자인 대장장이이자 MAX에 이르른 무구 제작의 실력자에 걸맞게 업로드된 영상의 첫 내용은 무구 제작이었다.
"하, 크론 이 녀석 또 돈독이 제대로 올랐네. 한 두 번 자낳괴에 빠져들더니 아주 그냥 무구 제작이 일상이지, 일상이야."
물론 그렇게 까내리는 이들 중 대부분은 시간대가 맞지 않았거나 알림 설정을 하지 못해서 크론 메이커를 얻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들과 그저 크론이 버는 돈이 부러워서 배앓이 뒤틀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좋게 봐주기 보다는 부러워 하는 것이 아무래도 사람의 심리였으니까.
"와아······."
그리고 본디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보는 시점은 대부분이 소위 노가다를 하는 직업. 혹은 땀흘리는 냄새나고 질척거리는 직업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대장장이 일을 진행하다보면 고온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으니 땀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자연적 현상이다.
허나 크론의 무구 제작 과정은 그런 것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땀방울 하나 하나에 크론의 고집과 끈기가 담겨져 있었으며, 망치를 두들길 때마다 울리는 청명한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내지를 정도의 감미로운 소리를 전달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예술 그 자체라고 해야할까?
MAX단계에 도달한 무구 제작으로 인해서 크론이 다루지 못하는 재료가 없었으며, 재료에 담긴 힘을 한계까지 이끌어서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그 덕분인지 보통의 대장장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고생해야하는 풀무질이나 재료 손질도 발빠르게 마칠 수 있었고, 그 가치도 가히 최상급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와 함께 방송으로서는 최초로 '레전드'등급의 무구가 제작되는 광경을 영상을 보는 모두가 목도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적절한 영상 편집과 브금이 더해지자 한 층 더 고급스러움이 더해졌고, 한 켠으로는 '구독, 좋아요!'까지 집어넣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시청하는 이로 하여금 구독을 누를 수 밖에 없는 환경까지 조성해주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는 쿨라우의 센스.
크론이 보았다면 절로 엄지척이 나왔을 법한 광경이었다.
이어서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들의 옵션이 공개되었다.
과연 크론 메이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동레벨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레전드 등급의 능력치.
그로 인해서 영상의 싫어요 갯수가 점차 늘어가기 시작할 때 쯤.
크론은 실패할 때까지 지르겠다는 대리 강화를 선포했다.
"대리 강화가 뭐 대수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컨텐츠 잖아?"
방송을 시청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론의 영상에 질타를 보내왔지만 대리 강화는 확실히 자극적이기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은 탁월한 컨텐츠였지만 아무래도 진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제 아무리 크론의 생방송이 2만 명이 시청했다고는 하지만 전세계의 인류는 수 십 억이다.
업로드된 영상을 시청하는 이들은 20강까지 달린다는 크론의 단언에 비웃음을 흘렸고, 동시에 무구의 주인에게 동정과 축하의 감정을 품었다.
엄청난 행운이 뒷받침 되어주고 수 많은 사전 작업을 통해서 마련해둔 제물을 전부 퍼붓더라도 15강은 커녕 13강을 넘기는 것도 힘든 것이 현 시점의 더 리셋 월드의 강화 성공 확률이다.
"터쳐라! 텨쳐라! 폭죽놀이 가즈아!"
곧 있을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영상에 집중하던 이들은 어째서 크론이 '강화의 신'으로 군림하는 지 알게되었다.
신나는 브금과 함께 이어지는 크론의 강화 행렬은 경쾌하게 이어져나갔고, 엄청난 난이도를 우습게 씹어버리듯, 말같지도 않은 20강을 다이렉트로 달성시켜버린 것이다.
"미친······."
영상을 즐기던 사람들중 20강이 뜨기를 바라던 이들은 거의 극소수다.
본래 대리 강화를 보러오는 이들의 대부분은 '꺼-억'과 '폭죽놀이'를 보기 위해서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인지 이 말같지도 않은 상황에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본 사람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어?"
허나 문제는 그것이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나는 비트를 자랑하는 쾌걸 끈육맨의 '질풍 토드'의 브금과 함께 크론의 무구 제작과 대리 강화를 하는 장면이 다시금 반복되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던 이들은 '암'에 걸렸다.
"이건 사기다! 극악무도한 버그를 이용한 게 분명해!"
한 번의 기적이라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겠지만 두 번의 연속된 기적은 사람들의 심술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발악하듯이 악을 써대면서 운영자에게 항의 글이 쏟아져내렸지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생방송 때 크론의 행태를 보고 (주)유그드라실에 접수된 수 많은 항의글들의 답변은 버그의 사용이 일체 없었다는 내용 뿐이었다.
"와, 진짜 개쩐다······저거 끼면 대형 길드의 간부로 들어가는 건 문제도 아닐텐데."
공개된 20강의 지존 갑주와 게이볼그의 창의 옵션이 공개되면서 영상을 보는 수 많은 유저들은 부러움에 침을 질질 흘렸다.
그렇게 영상이 까맣게 암전이 되면서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웅장한 브금과 함께 반짝거리는 유치한 특수 효과가 남발된다.
그와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크론의 무구들.
하나 하나가 20강을 자랑하는 수 많은 무구들의 향연과 함께 살짝 등장한 크론이 손을 까닥거리는 것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
도발은 성공적인 영향을 끼쳤다.
업로드 되었던 크론의 영상은 순식간에 옥튜브에서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를 기록했으며, 그 영향으로 인해서 조회수는 쉴새없이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20강의 무구를 드랍시키는 마왕, 크론.
게다가 공개된 크론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명백한 카오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죽이기에만 성공한다면 좋은 전리품을 드랍될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벤트다! 죽여버려!"
운영자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일개 개인의 유저가 자신을 미끼로 내세움으로서 진행되는 희대의 이벤트.
【쟁취하라, 그곳에 크론의 무구가 있으니.】
무구를 탐하는 고레벨의 랭커들부터 시작해서 혹시라도 껀덕지라도 주워먹을 생각으로 붙는 어중간한 이들도 단체로 나섰고, 기사거리라도 얻어보기 위해서 나서는 게임 전문 기자들까지 크론의 던전으로 발 길을 돌렸다.
@ @ @
<사신의 낫님께서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사신의 낫님의 후원 영상이 실행됩니다>
후원과 함께 딸려오는 클립 영상.
본래대로라면 사냥에 방해된다거나 시간 낭비라는 이유로 스킵해버리는 백검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스킵하지 않았다.
"크론······."
자신에게서 유일하게 1:1로 승리를 거머쥔 유저.
그와 동시에 백검의 애검이었던 '신체 분쇄자'를 앗아간 녀석이자 새롭게 사용하는 무기인 '+10 백의 분쇄자'를 제작해 준 모순적인 녀석이다.
"괴물같은 놈."
백검은 여간해서는 실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러한 백검이 '괴물'이라고 칭하는 만큼 크론이 지닌 무력은 정말이지 놀라울 지경이다.
얼마 전 수 많은 유저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선사했던 희대의 몬스터 퀼른.
비록 약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2페이즈로 넘어간 퀼른을 크론은 단 일격으로 빈사 상태에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아직은 크론과 맞붙는다면 백이면 백.
전부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허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값는 것이 백검의 지론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힘을 길러서 크론을 죽이려고 하던 차였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을 터트릴 줄이야.
"하, 어쩐지 더럽게 튼튼하더니. 이유가 있었군."
백검은 과거를 회상해보았다.
한 때 랭킹 1위를 단단히 거머쥐고 있었던 자신의 피지컬과 우월한 스텟과 유일 스킬로도 쉽사리 뚫리지 않았던 크론의 방어 능력.
그것이 늘 의아 했었는데 20강의 방어구들을 착용하고 있었더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만한 결과였다.
그리고 현재.
크론의 클립 영상에서 녀석은 자신의 20강 무구를 미끼로 수 많은 유저들을 낚기위해서 난리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웃기는 새끼."
짧게 읇조리며 백검은 길드 마스터의 권한을 사용했다.
『백검 : 크론의 던전으로 가지말아라. 정 가고 싶으면 길드 탈퇴하고 가도록.』
꿍꿍이가 없는 한 이런 짓을 아무런 생각없이 저지를 정도로 크론은 멍청하지 않다.
그로 인해 백검이 내린 판단은 굳이 지금 딸려가서 싸우러 갈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속일 거면 닉네임이라도 제대로 설정하던가."
'사신의 낫'이라니.
어느정도 거래로 안면이 튼 만큼 저 녀석이 '사신 데오르'라는 것 쯤은 충분히 유추해낼 수가 있었다.
백검도 단순한 싸움꾼은 아니다.
독불장군으로서 활동하는 만큼 정보 수집은 당연히 하고 있었고, 크론의 던전을 홍보하고 있는 상황을 토대로 데오르가 크론에게 붙었다는 것 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부디 목 잘 씻고 있으라. 곧 네가 원하는 호갱이 찾아가줄테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중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백검과 예하의 북두칠성은 성장의 길을 선택했다.
@ @ @
영 반응없는 백검의 모습에 데오르는 아쉬움에 눈쌀을 찌푸렸다.
"역시 백검은 힘드려나."
자신 만큼이나 크론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 부분을 자극해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꽝이었다.
"어차피 별로 상관없지. 먹잇감은 잔뜩 널려있으니까."
트위찍의 스트리머들에게도 백검과 마찬가지로 클립 영상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데오르가 이죽거렸다.
확실히 백검을 제외하고서라도 트위찍에는 '나 잡아주쇼'하는 물고기들이 널려있는 상황이었다.
"버그쟁이 족치러 갑니다."
"건방진 노란 원숭이!"
"나도 20강 풀 무구로 셋팅 들어가보실까."
데오르가 뿌리는 클립 영상 마다 굴비 덩어리마냥 줄줄이 낚여오는 스트리머들의 모습.
상당한 세력들까지 달라붙는 모습에 데오르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머금어졌다.
"어차피 한계를 잡아두라는 지시는 없었으니까."
너무나도 많은 인원이 오는 부분이 조금 문제이기는 했다.
단순하게 1명의 스트리머라고 해서 일개 개인으로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
그 스트리머 산하. 혹은 상위의 길드들이 통째로 달려드는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크론은 과연 그 많은 이들을 상대로 승리 할 수 있을까?
1 : 100이지만 그 상대가 오합지졸이라면 능히 템빨과 테이밍 몬스터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그 숫자가 천 명을 넘어서고 나름 실력있는 이가 상대라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 많은 전투 속에서도 크론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까?
사실 크론과는 중요한 거래 관계를 구축한 만큼 어느정도 크론의 걱정도 해봄직 했지만 데오르는 그저 웃어보였다.
"내 알빠 아니잖아?"
결과가 어떻든 간에 결국에 정보상인 그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어차피 크론과의 관계는 신뢰보다는 비즈니스적으로 더욱 진하게 맺어진 것이 현재의 입장이었으니 데오르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