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강화의 신화를 새로이 쓰다(1)
다이아몬드의 길드 마스터 빅텀은 주점에서 질 좋은 포도주를 목으로 삼키면서 진한 웃음을 머금었다.
현실의 값진 포도주와 비교해도 부족함 없이 깔끔한 데다가 소소한 경험치까지 부여해주는 포도주의 맛과 효능으로 인한 취기도 그렇지만 그보다도 현재 빅텀은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하나의 방송을 시청중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군."
빅텀.
현실에서 한국의 최고 부호중 하나로 손꼽히는 땅부자 노대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강점중 하나는 바로 사람을 보는 눈이다.
그가 아무리 갓물주로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워낙에 많은 숫자를 거느리고 있다보니 사람의 컨트롤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빅텀은 선택했다.
자신이 직접 보고 추려낸 재능 있는 이들.
개 중에는 인성이 글러먹은 것들도 몇몇 있기는 했지만 빅텀의 이름 앞에 성난 망아지들은 개목걸이를 착용한 순한 멍멍이가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오로지 '재능'만을 보는 빅텀이었기에 만약 크론이 재능이 없었더라면 티끌만큼의 도움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있는 놈이 더하다고, 그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지출은 끔찍이도 싫어하는 구두쇠중 하나였으니까.
"역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내야."
그렇지만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크론은 빅텀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손꼽을 만한 크론의 재능은 방송을 업으로 삼고있는 스트리머로서의 존재 유무였다.
솔찍한 말로 요즘 같이 개나 소나 스트리머를 하고있는 추세 덕분에 예전과는 다르게 1인 방송 미디어는 거의 레드 오션으로서 소수만이 호황기를 누리고, 그 외의 대부분은 꿈도 희망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특히나 '게임' 관련 스트리머로서 성공하려면 적어도 본인 만의 특징을 내세울 줄 알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크게 예의 틀을 잡아보자면 정말 미치도록 플레이가 깔끔하거나, 혹은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지지로도 못하거나.
물론 이 부분에는 스트리머만이 지니고 있는 개성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빅텀이 보기에 크론은 천부적으로 스트리머로서의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본래 빅텀은 더 리셋 월드의 방송에 상당한 관심을 이미 일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빅텀은 백검의 열혈 애청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 때 부터였지. 내 마음을 뒤흔든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
빅텀이 크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바로 백검과의 대결 덕분이었다.
깔끔한 영상 편집이 가미되어 있는 인기 급상승 영상 중 하나였던 100 : 1. 그리고 백검과의 전투.
해당 영상에서 크론은 유저들 중에서 1:1에서 만큼은 절대자로 군림하던 백검에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댓글로는 간간히 숫자의 폭력이다, 다구리는 치사하다 등등의 악플도 있었지만 그렇게 따지기에는 이미 앞서서 벌였던 100 : 1의 전투가 너무나도 독보적이었다.
크론의 강렬한 독불장군의 패기에 지려버린 빅텀은 크론의 방송에 참여하면서 늘 고민했다.
트위찍에 충전되어 있는 수 십, 수 백 억대의 금액.
마음같아서는 수 억 단위를 쏫아부어서 크론의 관심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향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돈으로 접근하고 길들여버린다면 흔히들 말하는 타락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실제로 옛날에 몇몇 스트리머는 의도치 않게 빅텀이 말아먹게 만든 적이 왕왕 있었다.
이미 선례를 겪은 만큼 빅텀은 조심스럽게 크론에게 접근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레난을 통해서 크론과의 인연을 맺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알게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 지를 말이다.
양파같은 매력을 지닌 크론.
주문 제작을 통해서 알아본 크론은 한계를 모르는 돈미새라는 것을 말이다.
"쯔쯧. 괜히 마음 고생만 해가지고 말이야."
빅텀이 혀를 차는 사이 크론은 땀을 뻘뻘 흘리는 집중도를 발휘하면서 무구 제작을 진행중이었다.
무구 제작 마스터.
재료가 무한히 공급되어도 숙련도 쌓기가 지옥같이 힘들다고 알려진 생활 스킬로서 분류되는 무구 제작을 벌써부터 마스터한 유저가 온 힘을 다해서 무구를 제작하는 중이다.
이미 유니크는 넘어서고 유니크+등급 이상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에 찬 댓글들이 우루루 줄을 이어가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제작을 끝마친 크론이 함박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우, 이거 레전드 등급으로 완성되었군요. 요청하신 우리의 회장님께서 이름을 정해주시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현재 완성된 저 레전드 등급의 무구는 바로 빅텀의 것이었다.
"흐흐흐, 내가 레전드 등급 무구의 주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노망이라도 난듯 실없는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지만 어쩌겠는가, 너무나도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흘러넘칠 정도로 많은 돈을 보유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돈의 값어치를 해 주는 상위의 등급을 자랑하는 아이템의 물량 자체가 없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점은 크론이 등장한 순간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남자는 지존이 최고지."
그야말로 쌍팔년도 때의 네임 센스.
사실 zI존 갑주가 아닌 것이 어디인가?
다른 유저들의 입장으로는 진귀한 레전드 등급의 무구에다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어차피 본인이 만족하면 그만인 것이 바로 게임이다.
"가볼까."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빅텀은 돈미새에게 큰 손의 위엄을 펼쳐보였다.
우리 손녀 쵝오 : 지존 갑주로 해주게나. 그리고 추가금은 수수료 걱정 없이 계좌로 송급해주도록 하겠네.
<우리 손녀 쵝오님이 100,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블랙 말랑카우 : 헐······흑우 센빠이!
민머리수르 : 억소리 난드아앙!
키리키리 : 근데 레전드 등급 거래는 최초아님? 킁킁, 근데 지존 갑주라니······어디선가 아재 냄새가 가득 풍겨져온다.
카레장인 탈런 : 아재를 넘어선 머머리급 아재 냄새 아님요?
포치 : 레전드 등급이면 이해가 되지. 오히려 1억이 너무 적어.
멍충이들 : 그러니까 계좌로 나머지 송금해준다잖아 멍청이들아.
10억을 받았습니다 : 계좌 존엄 ㄷㄷ해
사나없이 사나마나 : 역사적 순간이다. 클립 따놔야지.
최초의 레전드 등급 거래.
공식 거래 사이트인 리셋 매니아나 비공식 사이트의 1:1 거래도 아니고 대놓고 모든 유저들이 보고 있는 방송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광경에 모두가 놀라움을 토로했다.
PK유저들이 목격했다간 착용자는 언제 어디서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레전드 등급의 무구가 드랍되는 순간 배때지에 기름칠을 지겹게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다이아몬드 길드의 마스터 '빅텀'이라는 이름을 듣게된 순간 알 것이다.
재벌.
수틀리면 현피도 불사하는 그들은 PK유저들에게 있어서 기피 대상중 하나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재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무구를 앗아간 유저가 신상 털리는 건 순식간이다.
엿같아도 어쩌겠는가.
본래 돈 없으면 서러운 것을.
요괴MOMO말고 트둥이MOMO : 옵션 공개 좀 부탁드려욧.
코파이네 : 공개 가즈아ㅏㅏㅏ!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레전드 등급 아이템의 옵션이었다.
시청자 대부분이 더 리셋 월드의 유저인 이상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리 만족.
옵션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만족감에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무슨 선택을 할테지?"
빅텀의 입가가 치솟아 올라갔다.
아이템의 주인인 자신과 시청자들의 유입.
그 선택의 기로는 어디까지나 방송의 주체인 크론이다.
방송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아이템의 옵션을 공개해서 광고 효과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방송인 이전에 현재 '지존 갑주'의 소유주는 빅텀이었다.
방송인으로서 개인의 마음대로 공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빅텀의 실망을 크게 사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되었든간에 아이템의 옵션이 공개된다는 것은 거기에 담겨져있는 스킬등의 정보를 전부 유출시키는 셈이었으니까.
『그것은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한 제게 권한이 없습니다.』
크론의 선택은 거래자와의 신뢰를 위한 보안 유지였다.
시청자의 유입과 관계도 중요한 요인이자 스트리머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크론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주는 시청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본은 되어있군 그래."
은근히 선택에 기대를 품고 있었던 빅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홀로그램 타자기를 두들겼다.
우리 손녀 쵝오 : 괜찮으니 지존 갑주의 옵션 좀 공개해주게나. 나도 궁금해 미치겠군.
『말씀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빅텀이 허락을 뜻을 비추었지만 크론은 곧바로 옵션을 공개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
시청자들의 채팅으로 불만이 폭발하듯이 솓구쳤지만 크론은 약올리는 듯한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크론 메이커의 제작자인 크론이 직접 제작한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할 만한 물건인데 쩐도 받지 않고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컄퉷 : 더러운 새끼. 내가 나가고 만다.
회 한 접시 : 하······.
덕분에 성질 급한 유저들이 나가기는 했지만 어차피 큰 타격은 아니다.
보통 이렇게 성질내고 나가는 부류의 시청자들은 후원 한 번 안하는 종류가 대부분이고,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구독 및 팔로우 또한 누르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시간은 크론의 편일 수 밖에 없었다.
블랙 말랑카우 : 간 그만 보고 보여주세요!
<블랙 말랑카우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야이언스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카르티안님께서 1개월 구독을 하셨습니다.>
계속 뜸을 들이는 크론으로 인해서 결국 안달이 난 시청자들이 후원과 구독 세례를 퍼부었다.
크게 1억을 후원해주었던 빅텀에 비할 바가 안되는 자잘한 금액이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이러한 금액도 쌓이고 쌓이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 번 시도하기가 어려울 뿐.
후원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한 번 하기에는 돈아까워서 보통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스트리머의 호응과 반응을 만들게 하는 맛이 있기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맹랑한 맛이 있군. 그래, 이래야 참 스트리머지."
그렇지만 질질 끄는 것도 지속되다보면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무슨 일을 하든 중간만 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행동은 유도리 있게 적당히 끊어 칠 줄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크론은 기가막혔다.
빅텀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겠지만 크론은 자유롭게 타임 리프를 통해서 좋지 않은 여론이 나올 때 쯤에는 시간을 돌려서 적절한 끊어치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뭐, 그 부분 마저도 빅텀의 눈에는 크론이 끔찍이도 탐스럽게 보이는 효과를 발휘해줄 테지만 말이다.
『이번에 제가 제작하게된 지존 갑주는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저인들의 정수를 녹여서 제작한 전신 갑옷 형태의 지저트론입니다. 마법 계통에 해당하신 빅텀님의 직업에 맞춰서 지능과 마력쪽으로 최대한 신경을 썼습니다. 아마 시중에 돌아다니는 것 중에서 이것보다 뛰어난 것은 없을 거라고 저 크론이 자부하겠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곁들인 크론은 마침내 시청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지존 갑주의 옵션을 공유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