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무한 타임 리프(1)
부자, 재벌, 금수저와 같은 수식어.
현대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그들은 말그대로 상류층에 해당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비교해도 최강자의 자리는 따로 존재했다.
갓물주.
드넓은 굴지의 땅들을 예전부터 소유하고 있었던 노대혁은 한국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명실공히 재벌 갑부중 한 명이었다.
권력을 갖춘 돈을 가지고 있는 인물에게는 당연하게도 인맥도 빵빵할 수 밖에 없었다.
모 기업의 회장부터 시작해서 건물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노대혁을 멘토로서 섬기고 싶어하며 스스로 선을 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도 흘러넘쳤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즐겨야겠어."
건물주가 괜히 갓물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돈 덕분에 노대혁은 늘 부족함이 없었고, 불혹의 나이에 굳이 나설 필요 없이 들어오는 돈으로 여가 생활을 즐겼다.
"질리는 군."
하지만 나이가 나이다보니 노대혁이 즐길만한 유흥거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지던 찰나.
노대혁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가상현실게임이었다.
"호오······."
더 리셋 월드.
말 그대로 또 다른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네임.
돈과 권력.
그것을 통해서 모든 것을 거머쥐고 있는 노대혁에게 유일하게 부족했던 것이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젊음이었다.
"이건 심심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
비록 꾸며진 가상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젊을을 얻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 노대혁은 흥미를 가졌다.
굳이 힘들게 노력해서 성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노력은 예전부터 해왔기에 노대혁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활용해서 현질했다.
강력한 무구들을 갖춰 입었고 효율이 전혀 나오지 않는 도핑 음식과 비약들을 물마시듯이 드링킹하며 꾸준히 레벨업을 시작했다.
천하의 노대혁이 게임을 시작했다는 말에 다른 재벌들도 호기심의 해소 및 관계의 선을 닿기 위해서 더 리셋 월드를 시작했고, 그 결과 노대혁을 주축으로 한 재벌 길드 다이아몬드가 탄생했다.
"정신이 나가도 보통 나간 게 아닌 것들이로군."
노대혁의 캐릭터, 빅텀은 형식에게서 전해받은 소식을 듣고는 기가막힌다는듯 끌끌 혀를 찼다.
본국의 사람도 아니고 타국의 사람이 크론을 건드렸다.
재벌들에게 있어서 실력있는 대장장이.
즉, 무구의 공급처라고 할 수 있는 크론의 존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거기다가 크론은 무려 노대혁과 관계의 끈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
자신의 것을 공격받은 재벌들이 가만히 웃으면서 넘어갈 턱이 있겠는가?
"우리들의 대장장이를 공격해?"
이건 사정을 떠나서 빅텀의 길드 다이아몬드를 무시하는 처사나 마찬가지다.
"맞대응 해주는 것이 응당 도리에 맞겠지."
이제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숱한 경험을 수 없이 겪어온 노대혁이다.
한 대를 얻어맞으면 수 십대로 되값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인 법.
조용한 분노를 토해내며 빅텀은 다이아몬드 길드에 전체 공지를 띄웠다.
『크론이 습격 당했다. 지금부터 다이아몬드는 잠시 게임을 멈추고 복수에 전념하도록 하겠다. 이의 있는 자는 길드를 탈퇴해도 좋다.』
간결했지만 담겨져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론을 공격한 자들을 찾아서 복수하려 하지 않는 자는 재벌 길드에서 나가야만 한다.
자존심이 드센 재벌들이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급수'가 나눠지는 법이다.
노대혁을 비롯한 다이아몬드의 간부들도 크론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딱히 노대혁의 말에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무구 제작 요청하려고 재료를 모으고 있었는데!"
"대체 어떤 멍청이가 일을 친거야!"
하나같이 크론 메이커.
그 중에서도 상등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니크 무구를 지니고 있는 재벌들은 크론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와중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주제를 모르고 날 뛴 자식의 아가리를 찢어버려라.』
재벌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한국의 재벌들이 모여있는 길드, 다이아몬드.
그들은 더 리셋 월드 이전에 대한민국의 실세들이였으며,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포식자들이었다.
@ @ @
종수가 제화를 만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장소는 뜻밖에도 제화의 집이었다.
제화는 습격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집은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지만 종수는 오히려 걱정말라는듯 여유 만만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종수가 여유가 넘쳤던 것에 관련해서는 만남을 가지게 된 날 알게되었다.
과연 금수저랄까?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기에 종수는 결코 혼자 오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경호 업체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경호원들과 함께 중년인 한 명을 대동해왔기 때문이다.
"고맙기는 한데 이렇게 막 돈써도 되는거야?"
"짜식. 우리가 하루 이틀 친구냐. 돈 한 푼 아끼려다가 목숨 날아가는 수가 있어. 그리고 말했잖냐. 너를 노린 녀석들을 박살내겠다고."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이는 종수의 모습에 제화가 너털웃음을 짓는 사이 경호원들 사이에 있던 중년인이 제화에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지만 종수의 모습과 상당히 닮은 모습으로 보아 그 정체에 대해서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하하, 별 거 아니니까 걱정말아라. 아들 녀석 친구가 위험하다는데 어른이 가만히 있어서 쓰겠니?"
한형식.
종수의 아버지로서 제화에게 재벌과의 끈을 연결시켜주었던 형식은 질질끄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습격한 녀석들이 중국인이라고 했었지?"
"예."
"위험했을텐데 용케 빠져나왔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타임 리프의 능력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보니 이런식으로 얼버무리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이라니, 정신 병원가기 딱 좋은 능력이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형식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 관한 주소도 알아차린 녀석들이니 아마 어딘가에 줄을 대고 있을 녀석들일 확률이 높아. 경우에 따라서는 아마 제화 너의 가족사에 관해서도 조사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겠지."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부탁드리고 싶었던 게······."
그렇잖아도 가족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제화다.
염치불구하고 부모님에 대한 보호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형식은 걱정말라는듯 손사래를 쳐보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제화를 만나러 오는 길에 미리 인력을 준비해두었으니까. 가족에 대한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준다면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내려주도록 함세."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발빠른 형식의 대처 능력.
제화가 고마움을 표하자 형식은 걱정말라는듯 든든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너의 무구를 좋게보는 녀석들도 많고. 내가 대혁 아재한테 네가 습격받은 사실과 내용을 전부 전했거든. 아마 나보다도 빠르게 대처를 시작할테고, 우리들이 나선 이상 적어도 한국 내에서 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야."
형식의 말에 제화는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감정도 고개를 들었다.
인신 매매를 거리낌없이 행하는 중국인들이라면 상당히 위험한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도 꺼리는 그들을 처리하는데 발벗고 나서주고 있는 실정인데 제화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미안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감정이 얼굴에 묻어난 것인지 형식은 헛기침을 해보였다.
"정 고마우면 나중에 쓸만한 무구 좀 만들어 주면 되니까 너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아들 녀석의 친구가 위험에 처했다고 하니 아비의 입장으로서 도와주려는 것 뿐이니까."
"재료만 충분히 준비해주신다면 얼마든지 풀 강화해서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말라고.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걸?"
아이템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제화로서도 환영이다.
무구 제작을 마스터한 제화의 능력과 좋은 질을 자랑하는 재료들이 받춰진다면 유니크 등급의 무구는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었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는가?"
"무엇이든 물어봐주시죠."
"요즘 뜨고 있는 크론의 던전 말인데. 혹시 자네와 연관성이 없나 해서 말일세. 비밀로 할 터이니 나한테만 귓띔해줄 수 없을까?"
습격으로 인해서 긴장하고 있는 제화의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궁금증을 풀기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형식은 게임 얘기를 하면서 크론과 시간을 보냈다.
멀뚱히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종수도 게임 얘기가 나오자 참여의 뜻을 밝혔다.
남자끼리 모이면 하게되는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별 것 없다.
군대, 여자, 게임.
나이를 불문하고 누가 중증 게임 폐인들 아니랄까봐, 줄줄이 더 리셋 월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형식의 스마트폰이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의 장이 뚝 하고 끊겼다.
"온 것 같군."
게임 얘기를 할 때의 가벼워보였던 이미지를 지우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메세지를 읽으며 형식은 즉각 답변을 발송시켰다.
『일을 벌이기까지 대기하되, 문을 부수려고하면 즉각 저지해라. 영상 촬영하는 것도 잊지말고.』
다짜고짜 잡으면 배째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다분했다.
빼도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의 습득.
예를 들자면 명백한 침입을 목적으로 둔 중국인들의 자취방을 습격하는 모습을 영상 및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콰당탕탕!
바깥에서 투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걸한 고함 소리가 울려퍼졌다.
충분한 영상감을 확보한 경호원들의 공격.
괜히 그 쪽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듯 연장과 흉기를 지니고 있는 중국인들을 간단하게 제압시킨 후 족쇄를 이용해서 사지를 결박시켰다.
나중에 인권 문제로 시끄럽게 떠들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단어다.
남을 해치려던 이에게 인권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먼저 흉기를 들이댄 대상에게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대우로 보답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이 끝날 때까지 이 쪽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포획한 중국인들을 형식이 데려가자 남는 것은 경호원들과 종수 뿐이었다.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이 좋은 것인지 종수는 진지했던 분위기를 풀고 예의 꼰대끼를 발산시켰다.
"야, 길드원들 던전 공략도 끊고 왔는데 나한테도 뭐 해줄 거지? 그치?"
"······."
찡긋거리는 윙크와 함께 요구사항을 말하는 종수.
제화는 그저 말없이 피식 웃어보였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 @ @
"우리는 죄가 없다. 본국으로 보내주기를 원한다!"
하나의 생명을 자신들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5인의 중국인들은 실로 뻔뻔스러운 요청을 잘도 지껄여댔다.
어눌한 한국어와 불공평한 일을 당한듯 억울한 표정.
제 3의 인물이 봤다면 중국인을 억압하는 한국인으로 보일 수도 있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모두는 기가 찼다.
"본국으로 가고 싶어? 내가 그렇게 해 줄 것 같냐?"
혈압이 치솟아올랐는지 형식의 위협적으로 중국인들을 노려보았다.
형식의 분노는 단순히 더 리셋 월드를 통한 제화와의 비즈니스 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몇 없는 아들의 절친을 건드렸다는 부분에서 형식은 화가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