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목숨의 위협(3)
"안녕? 이 개같은 새끼야?"
대장격으로 보이는 중국인이 제화에게 연장을 들이대며 어눌한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 상황에서 제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공포가 제화를 잠식해 들어간다.
이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반응이다.
보통의 남자.
아니, 사람이라면 흉기가 들이밀어진 상황에서 호기롭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다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중국인들만 하더라도 5명이다.
다들 연장으로 무장한 상태였으며, 그에 비해 제화는 그저 런닝 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군대를 제대한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아?
그 따위 것이 무슨 상관인가.
연장으로 머리를 후두려 맞으면 뚝배기가 날아가는 것은 매한가지인 데 말이다.
이곳은 '현실'이다.
제화가 아무리 게임 속에서 1위를 찍고 마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크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김제화'는 그저 군대를 무사히 전역한 대한민국의 남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단 수면제 좀 맞고 푹 자라."
"······씨발."
자신을 향해서 빠르게 내려쳐지는 연장의 모습.
궤도로 봐서는 머리와 같은 급소를 노리는 공격은 아니다.
허나 팔에 맞는다면 팔 병신이 될 것이고, 다리에 맞으면 다리 병신이 된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제화가 가지고 있는 게임 캐릭터 크론이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플레이가 가능한 더 리셋 월드였기에 그들로서는 제화가 오히려 몸을 못쓰는 상태가 되는 것이 좋을 터.
그렇지만 중국 녀석들이 하나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존재했다.
아니, 애초에 생각조차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
현실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이 기이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 제화가 처음일 테니까.
그리고 시간을 되돌린다는 말은 즉, 녀석과 제화와의 만남 자체가 없었던 일로 되돌아감을 뜻했다.
'타임 리프X2!'
제약이 없는 2연속의 타임 리프.
16초 이전으로 되돌아가면서 휘둘러지는 연장과 담배 연기가 되감기 버튼을 누른듯 역행한다.
'젠장.'
하지만 단 2번 만의 타임 리프로는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수 없다.
최소 10분.
아니, 중국인들이 언제 도처에 깔릴 지 모른 상황이라는 부분을 짐작하자면 그 이상의 시간을 타임 리프로 되감아야만 한다.
그러나 알고 있듯이 한계를 넘어선 타임 리프의 남용은 극심한 패널티를 부여시킨다.
단순한 빈혈의 문제가 아니다.
그 느낌이 빈혈과 비슷하다는 것이지 실상 충격은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정도의 충격이다.
'죽는 것 보다야 낫겠지.'
허나 지금은 찬 밥 더운 밥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진짜로 죽거나 최소 불구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
게다가 인신 매매를 당하면 사실상 인생으로서는 종지부를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실종된 이들 중 되돌아온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며, 중국의 인신 매매로 살아돌아온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타임 리프, 타임 리프, 타임 리프······!'
우우우우웅-!
타임 리프의 제한력을 완전히 무시한 상황에서의 어거지 발동.
그로 인한 패널티로 구역질이 가장 먼저 치솟아올랐지만 제화는 이를 앙다문채 타임 리프를 반복했다.
깨졌던 캡슐이 수복되고, 현실의 제화는 다시금 게임 캐릭터 크론으로 시야가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중국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더! 조금만 더!'
얼마정도의 시간을 되돌린 것일까?
숙취는 우습게 느껴질 만한 어지럼증이 후폭풍으로 몰려왔으며 크론은 당장에라도 기절해서 쓰러질 것만 같은 토악질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헉, 허억!"
몇 번을 연속해서 타임 리프를 사용한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초능력을 각성한 이래로 지금보다도 많은 횟수의 타임 리프를 사용한 경우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해진 한계.
리미트를 해제한 현 상황에서 크론은 왜인지 모를 상쾌함이 함께 머리속에서 폭죽 터지듯 반응했지만 극심한 패널티로 인한 고통 탓에 이러한 변화는 눈치채지 못했다.
"끄으으으으······."
너무나도 괴로운 고통에 크론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뭉쳐서 한 번에 몰려오는 패널티의 잔재.
뇌와 심장을 찢어발기고 모든 혈관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극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크론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금방이라도 몸에 준 힘을 풀어버리면 기절할 것이리라.
'버틴다. 무조건, 버텨야돼!'
기절했다가는 기껏 패널티를 각오한 타임 리프를 사용한 이유가 없어져버린다.
물론 붙잡힌 이후에 다시 정신을 차린다면 타임 리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만 적어도 그 때는 지금의 이 때보다도 많은 타임 리프를 사용해야만 벗어날 수 있게 될 터.
결국 지금 이 시점에서 중국인들과의 접점을 털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빠득- 빠드드득-!
절로 이가 갈리는 고통.
사실 크론도 타임 리프의 제한력을 1, 2번 정도 쯤은 초과 시켜서 사용해 본 경험은 있었다.
그 때에는 단순히 빈혈 정도의 패널티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수 백번을 넘는 타임 리프의 제한력을 넘어섰다.
게다가 단순히 횟수를 떠나서 2번의 연속 사용의 한계를 넘어서서 짐작도 되지 않는 시간을 되감은 상황.
사실 크론은 모르겠지만 현 상황은 행운의 여신이 자신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지금 이 고통이 현실의 '김제화'에게 닥쳤더라면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것을 떠나서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경우였다.
그나마 높은 스텟을 자랑하고 있는 마왕의 육체.
게임 속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가상현실이다.
어느정도는 약화된 패널티를 캐릭터 크론이 함께 나눠받음으로서 크론은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후욱, 후우욱······."
겨우 고통의 파도에서 몸을 건진 크론은 패널티가 가져다 주는 경고를 몸소 체험하며 몸을 떨었다.
정말이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이 기분.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되새김질하며 한 껏 몸을 떤 크론은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두 번 다시 할 짓 거리는 아니야."
그 말 대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음을 깨우치며 크론은 곧장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8시 13분이라."
크론은 본래 늘 시간을 기억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습격받으면서 울려퍼졌던 게임 속에서의 경고음 덕분에 그 때 당시의 시간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보통 로그아웃이 될 때 더 리셋 월드는 마지막으로 접속한 시간을 기록해주기 때문이다.
"대략 1시간인건가?"
한 번 시전당 8초를 되감는 것을 샘각하면 적어도 450번이 넘는 타임 리프를 사용한 셈이다.
하루에 정해진 제한력이 30회라는 점과 연속 사용이 2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패널티를 감수한 셈이다.
타임 리프의 후유증이 가져온 고통에 한 번 몸을 떨어보인 크론은 눈쌀을 찌푸렸다.
어찌되었든간에 이 일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아닌 처음보는 인물들인 중국인들 때문이다.
'납치 당하는 것을 직접 겪게 될 줄이야······.'
막장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인신 매매를 당할 뻔 했던 크론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중국인의 면상을 떠올리면서 분노로 이를 갈아붙였다.
'분명히 나를 알고 접근한 녀석들이야.'
보통의 인신 매매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 일을 벌인 중국인들은 크론의 자취방을 대놓고 쳐들어왔다.
굳이 힘들게 자취방의 문과 초합금 플라스틱 재질의 캡슐을 때려부수는 수고를 감수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점은 자신을 보면서 '개같은 새끼'라고 지껄였던 중국인의 행동이다.
누가보더라도 더 리셋 월드의 크론에 관련되어서 계획을 가지고 납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괜히 헬조선이 아니라는 건가."
단순하게 크론이라는 게임 캐릭터만으로 사용자인 '김제화'의 주소등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그 말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문제로군."
앞으로 1시간 뒤면 중국인들이 자취방으로 들이닥치는 것은 이미 정해져있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크론에게 주어진 첫 번째로 주어진 중요한 문제는 당연하게도 안전이다.
가장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도주지로는 고향에 있는 집이다.
허나 이미 크론에 대한 개인 정보가 유출된 상태다.
집이라고 해서 안전하다고만 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크론이 집으로 향함으로서 오히려 가족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패스였고, 결국 두 번째로 남는 대피처는 경찰서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경찰서에만 박혀서 숨어 있을 수도 없다.
수중에 있는 돈이 적은 편이 아니기는 했지만 크론도 결국에는 먹고 살아야하는 인간이다.
거기다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일을 경찰서에 가져다 들이밀면서 항변해봤자 오히려 업무 방해죄로 잡혀들어가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첫 째도, 둘 째도 불가능한 이상 가장 현실적으로 남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다.
잘 사귄 금수저 하나, 열 친구 부럽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크론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2세 금수저인 소렌이 있었고, 소렌의 아버지인 형식을 통해서 많은 재벌들의 무구를 제작해 줌으로서 얻은 인맥적 권력도 상당했다.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헬조선에서 인맥은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였다.
『소렌 : ······그거 확실한 거냐?』
크론이 겪은 일을 귓속말을 통해서 전해들은 소렌은 진지하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평소에는 꼰대끼가 다분하고 장난끼 가득한 녀석이지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장난을 칠 정도로 모지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소렌.
현실의 종수는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이들에게 행해지는 간섭을 그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크론의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소렌은 크게 분노했다.
『소렌 : 잠시만 기다려라. 레이드 대기중이어서 부대장한테 권한 위임좀 할게.』
『크론 : 알겠어.』
베히모스 길드원들과 제법 준비를 한 공략에 나섰던 것이었지만 부대장에게 통보하듯이 권한 위임을 끝마친 소렌은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자마자 답변을 보내왔다.
『소렌 : 일단은 만나자. 몸은 아직 안다친거지?』
『크론 : 응. 다행히 눈치껏 몸을 뺄 수 있었어. 그나저나 어쩌려고?』
걱정 섞인 크론의 말에 소렌은 뭘 묻느냐는듯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소렌 : 어쩌기는. 그 짱깨 새끼들은 물론이고, 뒷조사 들어가서 네 개인 정보 유출한 녀석들까지 전부 싸그리 쳐 낼거다.』
친구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소렌의 진지한 분노.
스산한 감정이 목소리에 짙게 묻어나오며 짓씹듯이 화가 담긴 단어를 내뱉었다.
『소렌 : 돈지랄에는 그보다 더 한 돈지랄로 맞 대응 해줘야지. 쫄리는 쪽이 뒤지는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