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단 한 방!(2)
제로가 몸을 불태우면서 유저들의 접근을 차단하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욕심에 눈이 먼 유저 만큼 짜증나는 부류는 흘러넘치다 못해 봇물이 터질 정도로 많았으니까.
"됐고, 불만 표출할 시간에 너희도 어서 퀼른 때려라. 때리는 것만으로도 기여도는 쌓이니까."
"으으으, 방해만 되는 새끼들이 주제를 모르니까 너무 빡치지 않습니까. 전부 죽여버리고 싶게."
역귀의 말에 제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언데드 하나 제대로 상대하지 못해서 물러나는 꼴을 몇 번이고 봤었는데 유리해지니까 얼굴에 철판을 깐 모습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잠깐."
그렇게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하던 도중 백검은 무언가 상당한 기시감을 느꼈다.
보통 빈사 상태라고 하면 생명력이 5%이하로 떨어져서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게되는 상태를 뜻하기 마련이다.
생명력의 5%.
지금 모여든 유저들과 자신들이 가한 일격들을 단순 계산으로 체크해보더라도 이미 5%의 데미지는 초과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물러서!"
육감으로 불길함을 눈치챈 백검이 크게 소리치자 몇몇 유저들은 당황스러움을 표하면서 물러섰지만 중국인 유저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퀼른을 두들기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기여도에 눈이 멀대로 먼 이들에게 경고 따위는 먹힐리가 없다.
"으하하하!"
떨어질 보상과 전리품을 생각하면서 광소를 터트리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흔들리는 강진과 함께 빈사 상태로 인해서 회색 빛깔로 물들어있던 퀼른이 거센 태동과 함께 몸을 일으켰디.
크아아아아아!!!
거친 포효를 내지르자 그 충격파로 인해서 가까이 근접해 있던 유저들은 머리가 터져나가며 죽어나갔고, 그나마 운 좋은 유저들은 바깥으로 튕겨나는 행운을 맞이했다.
"공격해라!"
백검이 명령에 이대로 두었다가는 안되리라는 판단이 선 유저들이 회색빛깔의 퀼른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어느새 생겨난 방어막으로 인해서 흠집조차 입히지 못하고 튕겨나가기 바빴다.
"모여라."
유저들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퀼른이 손을 휘저었다.
마을에 널부러져있던 언데드들과 유저들의 시체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처음부터 제 몸이었던양 퀼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한 구도 아니고 자그마치 수 만 개체의 언데드들의 시체를 빨아들이는 모습은 유저들로 하여금 절로 허탈한 감정을 깃들게 만들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끔찍한 상황에 유저들의 얼굴에 질린 감정이 실렸다.
"퉷. 듣보잡 새끼들. 후려칠 때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그 부분은 동감하지만 지금은 녀석부터 신경써야돼."
빈사 상태의 퀼른은 겁도 없이 기여도를 쌓기 위해서 후들겨패던 중국인 유저들의 행태에 제로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불만을 표했지만 역귀가 말리며 변화하는 퀼른을 가르켰다.
뿌득- 뿌드드득-!
언데드들을 먹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거의 몸 전체로 흡수하듯이 포식하고 있는 퀼른의 몸은 빠른 속도로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보미네이션까지 몸으로 받아들인 퀼른의 몸의 변화는 끝이났다.
본신의 육체.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육체를 재구성한 퀼른의 쫙 찢어진 두 눈이 유저들을 향해 활짝 치켜떠졌다.
- 상급 마족 퀼른이 본신의 힘을 끌어냅니다. 잃었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
- 상급 마족 퀼른의 모든 스텟이 100만큼 증가합니다. -
- 꼬카인의 가호가 옅어집니다. 퀼른의 레벨이 182(-40)까지 증가합니다. -
"씨, 씨발······."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냐!"
누군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불만을 표출했다.
확실히 화가 날 만도 했다.
기껏 빈사 상태까지 만들어서 전부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금 재시작이라니?
그것도 오히려 초기보다도 강해진 상태라는 것은 추가적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의 안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긴, 조금만 머리를 써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경우였다.
보통의 보스 몬스터들만 하더라도 2페이즈 같은 패턴이 존재했는데, 퀼른 같은 경우에는 초기부터 빈사 상태에 이를 때까지 똑같은 패턴으로 행동하지 않았던가?
샤아아아아-!!!
흉측한 뱀의 몰골을 뽐내며 퀼른의 피어로 인해 상당수의 유저들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저런 미친 새끼······."
"그, 그래도 언데드들이 없어졌으니까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위에 있는 거 아니야?"
"이 참에 다구리로 끝장을 내버리자고!"
같잖은 희망을 가지며 유저들의 기세가 다시금 부풀어 올랐지만 백검의 얼굴에는 전혀 희망이 새겨지지 않았다.
'이길 수 없다.'
수 많은 강적들을 상대해왔던 백검이기에 수준의 차이를 아는 능력만큼은 가히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백검이 제 아무리 뛰어난 전투 센스와 임기응변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상대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빠른 판단을 통한 시간의 단축은 곧 생존으로 이어진다.
백검은 고민없이 검을 갈무리해서 검집에 꽂아넣었다.
지금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시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 사냥으로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더욱 가능성이 높다.
'공략 방법은 정해져있다는 건가.'
퀼른은 유저들만의 힘으로는 이길 수 있는 종류의 몬스터가 아니다.
업데이트의 메인 몬스터로 등장하는 녀석인 만큼 NPC들과의 협동으로만 제지할 수 있는 종류라는 것이다.
인간 형태일 때라면 모를까, 본신으로 변화한 퀼른은 유저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후퇴한다."
"에에엑? 갑자기 무슨 후퇴냐?"
"형님 갑자기 왜그래요?"
"잘하면 이길 수도 있다고요!"
백검의 결정에 북두칠성은 의아함을 표출했다.
기껏 몰아쳐서 이겨나갈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후퇴를 결정한단 말인가?
"저걸 보고 따져라. 나는 빨리 죽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불만을 표출하던 북두칠성은 백검의 손가락을 보고는 기겁했다.
퀼른의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녹빛의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른 독구름은 마치 해일처럼 유저들을 향해서 거세게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을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서 저곳에 집어삼켜지면 결코 좋은 꼴은 못본다.
표현하자면 자연 재해에 가까운 범위 스킬의 향연에 백검이 해 줄 말은 한마디 뿐이다.
"도망쳐."
쿠와아아악!
가장 퀼른과 근접해 있던 유저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독구름에 집어삼켜지면서 녹아내려가며 순식간에 언데드로 변화되었다.
"으, 으아아아!"
"살려줘어억!"
유저들이 비명을 토해내듯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넘어지거나 뒤쳐진 유저들을 도와줬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죽는 상황인데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 퀼른이 영양분의 섭취로 인하여 꼬카인의 가호가 옅어집니다. 레벨이 1증가합니다. -
- 퀼른이 영양분의 섭취로 인하여 꼬카인의 가호가 옅어집니다. 레벨이 1증가합니다. -
- 퀼른이 영양분의 섭취로 인하여 꼬카인의 가호가 옅어집니다. 레벨이 1증가합니······. -
유저들이 수 천 단위로 집어삼켜지자 퀼른의 억압되어 있던 힘도 점차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악화되어가고 있는 치명적인 상황.
"헉, 허어억!"
모든 유저들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고 있었다.
마법사여서 상대적으로 체력과 민첩이 떨어지던 이온과 메린은 이미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운좋게 살아남은 유저들은 아까 퀼른을 두들길 때의 ⅛도 남지 않아있는 상황이다.
"이런 젠장!"
진득한 독구름의 범위에 벗어나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유저들은 저 괴물같은 퀼른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몰랐다.
게돈 마을의 자경 단원과 NPC들을 가볍게 찢어발기던 퀼른은 계속해서 언데드들과 함께 진군했고, 이제부터는 지쳐있는 유저들과 NPC의 대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씨발! 왜 로그아웃이 안되는건데!"
"멍청하기는. 아직 전투중으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잖아. 대가리가 안돌아가냐?"
퀼른의 시선은 여전히 유저들에게로 향해져있다.
비록 휴머노이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두들겨패던 유저들의 모습을 깊게 각인하듯이 쫙 찢어진 두 눈으로 유저들을 향해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거라!"
- 마력의 벽이 둘러쳐집니다. 퀼른의 마력 공급이 끊어지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
'퉁-'하는 느낌과 함께 가장 멀리 도망치고 있었던 백검의 앞을 마력의 벽이 가로막아버렸다.
안내음 설명으로만 봐도 도주는 불가능하다.
"도망치는 건 무리인 것 같군."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항전은 해보죠 형님."
결국 이곳에서 죽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퀼른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고 죽음을 맞이하려고 각오를 다잡던 순간이었다.
쿠우우웅-!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기세 등등하게 살기를 뿜어내던 퀼른의 몸이 회색빛깔로 물들면서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
그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유저들은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수 천 명이 대들어도 이길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던 퀼른이 단 한 방의 일격으로 빈사 상태까지 떨어지다니?
"저, 저기 유저가······."
궁수 특성으로 시야가 넓은 아리안느가 가르키는 손가락에는 퀼른을 가볍게 처리한 유저, 크론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유저들을 흘겨보았다.
"난 여자도 때리니까 뒈지기 싫으면 삿대질 치워라."
"······."
아리안느의 손가락이 쭈구리가 되어서 내려간다.
"이제부터 이 녀석은 내꺼니까 불만 있는 새끼는 나와라."
@ @ @
퀼른이 있는 곳까지 당도한 크론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우선 자신의 열혈팬을 만나는 것이었다.
짠돌이인 크론이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게 만든 훌륭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그녀.
크론의 1호팬이라고 칭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리셋 이루벤에서 크론을 알리는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신 데오르에게 죽빵은 사줘야할 것 아니겠는가?
"끄아아아악!"
퀼른의 동태를 살피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데오르와 추종자 일행들은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잇는 크론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전멸당했다.
혹시나해서 도주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몬스터 패밀리들에게 잡혀서 무참하게 꿈틀이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꿈틀이형에 처했다.
"이, 이 자식아!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건데!"
"아니, 나는 나를 위해서 열심히 홍보해주는 우리 홍보 팀장에게 너무 고마워서 밥 한끼 사주려고 그러지. 혹시 죽빵이라고 좋아해?"
감자 모양으로 주먹을 그러쥐는 크론의 모습에 데오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너도 알잖아? 나 덕분에 인기 많이 오른거?"
"응, 그럼 알고 말고. 노이즈 마케팅을 제대로 논의 없이 마구잡이로 퍼트렸었잖아?"
씨익 웃으면서 크론의 주먹이 그대로 데오르의 면상에 꽂아넣었다.
"컥, 커헉!"
"그리고 다음부터는 쓸만한 칭호좀 구해둬라. 하나 빼고는 죄다 쓰레기네. 이건 고맙게 쓸게?"
"아, 안돼에에엑!"
모든 스텟을 10증가시켜주는 '꿈을 이루는 자'를 포식하며 크론은 일체의 고민없이 그대로 데오르의 몸을 꿈틀이에게 던져줬다.
"끼에에에엑!"
[오래간만의 포만감에 꿈틀이가 만족감을 표현합니다.]
"네가 좋다면 나도 좋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