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단 한 방!(1)
"어우, 쓰발! 징글징글한 것들아 좀 꺼져! 폭렬전신爆裂全身!"
화르르르륵!
온 몸에 화염을 둘러서 인간 화염구가 된 제로는 사방팔방을 누비면서 좀비들을 학살해나가고 있었다.
언데드들의 경우에는 쓰러트려봤자 그렇게 큰 기여도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대량으로 쉴 새 없이 죽여나가다보니 쌓여가는 기여도는 그래도 나름 쏠쏠했다.
퀼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에는 비할 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 활약하는 정도라면 못해도 어보미네이션을 맡은 역귀 만큼은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저희도 가도록 합시다."
상황을 지켜보던 소렌은 길드원들과 함께 언데드를 베어나가면서 상황을 살폈고, 또한 기회를 엿보았다.
"잘 됐네. 이것들 너무 시시해서 재미도 없었는데 말이야."
빅텀은 구울의 상위종 언데드의 머리통을 가뿐하게 박살내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소, 중형 길드라고 볼 수 있는 베히모스와 다이아몬드.
두 길드의 공통점은 우선 레벨이 높은 편에 속했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가 우월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부분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베히모스의 길드원들은 소렌을 포함해서 대체적으로 체력이 튼실한 20대 중후반 대에 해당하다보니 다크 게이머가 상당히 많이 포진되어 있었고, 다이아몬드 길드원들의 경우에는 거의 대다수가 건물주거나 사업을 성공한 케이스여서 딱히 일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재벌들이다.
당연히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의 차이가 라이트 유저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은 지극히도 간단한 추론이다.
다만 차이점으로는 다이아몬드 길드원들의 장비가 좀 더 반들반들 하다는 것이었고, 그 대신에 베히모스는 실력이 더욱 뛰어났다.
이런 두 연합이 퀼른으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하자 언데드들은 순식간에 쓸려나갔고, 동시에 그 장면을 고깝게 보는 제로가 존재했다.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언데드들은 자신이 계속 쓸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길을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가려고 하니 좋은 마음을 가질 턱이 없었다.
"찬 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했는데, 기껏 밥상 차려놓고 있으니까 오는 건 뭐냐?"
"인생은 원래 눈치껏 사는건데? 대머리야?"
"뭐 이 새꺄?"
맨들맨들한 머리 거울을 빛내며 제로가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렸지만 소렌은 그저 귀를 후빌 뿐이다.
어차피 언데드들과의 전투만으로도 체력 소비가 상당한 이 상황에 아무런 이득이 없는 유저들간의 마찰은 빚어지지 않는다.
뭐, 사실 마찰이 생겨도 딱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제로는 혼자였고, 소렌측은 길드 연합인 덕분에 소형 길드임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빵빵한 상태였으니까.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폭렬심법爆裂心法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던 제로였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제로의 이성을 붙잡았다.
"오오, 제로 총각.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되니 나름 색다르긴 하군."
"넌 또 뭔데 나데세요 예?"
"흠, 몰라보는게 당연하려나. 날세, 팥믈리에."
"똥믈리에고 팥믈리에고 내가 알빠······어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던 제로의 눈이 일순간 흔들렸다.
팥믈리에라는 이름은 가볍게 느껴질만한 채팅 네임이었지만 적어도 트위찍 내에서는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유명 스트리머들의 열혈 회원으로서 거금을 뿌리는 네임드로서 당연스럽게도 제로에게도 팥믈리에의 존재감은 열혈 회원에 해당했다.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열혈 회원이란 돈을 퍼다주는 보배와도 같은 존재나 다름이 없다.
꿀꺽-
물론 사칭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착용하고 있는 무구만 스캔해 보더라도 굳이 저 정도의 무구를 갖추고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젠장.'
열혈 회원과 척을 지었다가는 당장에 수입이 줄어든다.
수 천 명의 시청자와 맞먹는 밥줄이었기에 제로는 가식이 풀풀 넘치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이렇게 뵙게되어서 반갑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나서 식사도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나도 반가워. 그런데 지금은 밥보다는 길 좀 뚫어줘, 제로 총각. 나중에 후원 넉넉하게 쏴줄테니까."
"맡겨만 주시죠. 한 방에 뚫어드리겠습니다."
"끌끌. 역시 화통해서 좋아. 내가 그래서 제로 총각을 좋아한다니까?"
생계형 스트리머답게 자본주의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태도를 보이면서 제로는 곧장 언데드들의 벽을 향해 폭렬권을 난사했다.
화속성을 가득 품은 일격 덕분에 시체들은 그을음과 함께 타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퀼른이 존재하는 한 마력으로 인해서 언데드들은 죽더라도 다시금 부활한다.
"서둘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제로에 맞춰서 길드 연합은 하이패스로 인해서 직통으로 나아갔다.
"우후! 나의 애검을 사용하는 데에 알맞는 녀석이야!"
눈 앞에서 유저들과 전투를 치르는 퀼른의 모습에 연합, 그 중에서도 특히나 다이아몬드에서는 들 뜬 기색을 선보였다.
당장이라도 퀼른에게 달려드려고 자세를 잡는 빅텀과 레난의 태도에 소렌과 만덕이가 기겁을 하며 말렸다.
"아이구, 계획도 없이 달려들면 안된다고 누누히 말했잖습니까!"
"신종 자살 법입니까? 다짜고짜 달려들면 무구가 좋든 안좋든 간에 개죽음이라고요!"
"흠? 아무리 이래뵈도 우리들 꽤나 쌔. 저기 백검 형씨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잖아? 우리도 템은 밀리지 않을거 같은데?"
"그건 백검이니까 그렇잖아요······."
만덕이 썩은 미소로 화답했다.
어딜 감히 백검이랑 비빌 생각을 한단 말인가?
백검의 천부적인 게임 센스와 재능은 모든 유저들을 통틀어서 독보적으로 높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다름아닌 백검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랭킹 2위로 밀렸다는 것이 정설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1:1로 백검에게 승리를 거머쥘 자신이 있는 유저는 크론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이리라.
"일단은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정석대로 갑시다."
가장 고리타분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러했기에 현 시점에서 가장 어울리면서도 능률적이다.
든든한 맷집의 역할이 가능한 전위가 탱커로서의 역할해서 상위종 언데드들을 상대하며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저들은 최대한 전위를 엄호하고 견제의 역할을 부여했다.
단, 여기서 하나 중요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퀼른에게 절대로 먼저 달려들지 말고 회피하면서 퀼른의 주변에 붙어있는 상위종 언데드들을 맡는 것이 연합의 계획이었다.
"쯧. 재미없게."
빅텀이 어린아이마냥 칭얼 댔지만 그도 어느정도 수긍은 하고 있었기에 추가적인 불만은 내세우지 않았다.
"됐고, 도핑이나 하자."
"그러도록 하죠."
괜히 금수저가 아닌듯 돈지랄의 끝판왕이라고 불리우는 모듬 음식과 비약을 섭취하자 몸에 성능이 순식간에 불어올랐다.
"이제 가도 상관없는 거지?"
"네. 대신 주의 부탁드린 것은 꼭 지켜주세요. 저희가 죽으면 빼박 상위종 언데드로 놀려지니까요."
다시금 주의를 되새기며 소렌도 베히모스의 길드원들을 이끌었다.
"최대한 목숨을 부지하는 방향으로 전투를 치르도록."
짧은 명령을 끝으로 두 연합은 서로 갈라져서 퀼른의 상위종 언데드의 목을 노려서 역소환 시켜버리기 시작했다.
나름 한가락 하는 재벌들의 합류로 퀼른의 전세는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약한 좀비나 스켈레톤같은 경우에는 적은 마력으로도 되살리기 쉬웠지만 상위종 언데드들은 다르다.
소형 어보미네이션부터 시작해서 듀라한과 같은 언데드는 한 번 시체가 파손되면 다시 되살아나는 데에 상당량의 마력을 요구했고, 부활하는 속도도 터무니 없이 느려터졌다.
"건방진 것들!!!"
퀼른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스킬을 마구잡이로 퍼부었다.
"이, 이런 미친······."
압도적인 공격력에 굳건하게 버티던 전위의 방패가 무너져내렸다.
베히모스와 다이아몬드에서도 부상을 당한 이들과 사망자들이 속출했지만 다행히 미리 주의를 준 탓에 타 길드들에 비하면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전무한 상태였다.
"크으으으······."
게다가 고마력 계열의 스킬을 사용한 덕분에 일부 언데드들이 무너져내렸으며, 동시에 틈을 발견한 백검은 주저없이 퀼른에게 유효타를 꽂아넣었다.
우월한 생명력을 자랑한 탓에 큰 데미지는 아니었으나 백검은 노련하게 데미지를 누적해나아갔다.
빠른 속도로 생명력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퀼른도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는지 온 신경을 백검에게로 집중시켰다.
"약아빠진 새끼."
몰아치는 공격 속에서 방어와 회피만을 시도하고 있는 빈틈을 비집고 퀼른의 주변으로 뿌연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투명 망토를 들추듯 은신을 풀어해친 소렌의 치명적인 암습이 퀼른의 목덜미를 가차없이 찔러넣었다.
푸우욱!
"크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면서 퀼른이 소렌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소렌은 특유의 민첩성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서 다시금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호오."
그 광경에 백검은 나지막이 탄성을 내질렀다.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춘 유저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에 백검은 기분좋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시선을 끌테니, 방금처럼 암습해줘."
배터지게 먹다가 배가 터져서 뒈지는 것보다는 괜찮은 실력을 갖춘 유저와 나눠먹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백검의 말 뜻을 알아들은 소렌은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위해서 쥐고 있는 안개의 식인꽃으로 손가락을 그었다.
'식혈X10.'
- 1,000의 생명력을 제물로 바칩니다. -
- 전투 종료 후 1분이 지나기 전까지 민첩 스텟이 110증가합니다. -
- 안개의 식인꽃의 공격력이 300수치 만큼 증가합니다. -
울컥 울컥하고 새어나오는 피는 마치 원래 제 몸이었다는 양 안개의 식인꽃으로 스며들었고, 순식간에 서슬퍼런 예기를 머금게 되었다.
물론 소렌의 직업인 도적 특성상 데미지를 증폭 시키는 스킬은 상당히 무궁무진했기에 아직 끝이난 것이 아니다.
'맹독 바르기. 은밀한 발걸음. 서약의 맹세.'
소렌의 무기는 점차 예리하게 날카로워졌고, 독을 머금으서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구루구스!"
쿵쿵쿵쿵-!
이미 소렌의 꿍꿍이를 공유한 이상 백검도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편이 좋다.
거친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몸을 내 던진 구루구스는 곧바로 퀼른의 손아귀에 잡혔다.
츠츠츠츠-!
역한 향취와 함께 퀼른의 손이 녹빛으로 번뜩이며 구루구스의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0으로 떨어지면서 역소환 되어버린 구루구스였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백검의 목적은 '시선 끌기'였으니까.
"치명적인 암습!"
푸우우욱---!
소렌의 검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처음에 찍었던 퀼른의 뒷목을 찍었다.
식혈로 인해서 크게 증가된 힘과 더불어서 꼬카인의 가호와 지속된 전투의 소비로 지쳐있던 퀼른의 육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면서 사방으로 마력을 가득 담은 스킬을 난사하는 퀼른이었지만 감이 좋은 백검과 속도하면 지지 않는 소렌에게 있어서는 회피에만 전념한다면 크게 무리 없이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스걱- 푸우욱-!
백검과 소렌.
둘은 마치 개미처럼 퀼른의 생명력을 빠른 속도로 갉아먹어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덕분에 퀼른의 마력은 빠른 속도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퀼른의 마력으로 활동을 하던 언데드들은 차례대로 바스라지며 사라져갔고, 그 덕분에 여유가 생긴 유저들이 퀼른을 향해 무차별적인 요격을 시작했다.
50%, 40%, 20%······.
빠른 속도로 생명력이 떨어져내려간 퀼른은 금새 빈사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에 따라서 살아남은 유저들의 미소가 잉크처럼 퍼져나갔다.
조금만 더 공격을 가한다면 이 지긋지긋 했던 퀼른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SSS등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할 생각에 유저들은 빈사 상태에 접어들어서 회색빛깔로 물든 퀼른의 육체를 마구잡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야, 새끼들아! 이 녀석은 우리가 조졌다고! 꺼져 이 짱깨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