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마계 침공(3)
악령의 형체가 굳어지면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인 구루구스가 거친 포효를 내지르며 모습을 형성화했다.
마음같아서는 속박과 방어에 특화된 니겔룸으로 퀼른의 몸을 묶고 싶었지만 퀼른의 레벨이 백검보다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속박 계열의 스킬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속박의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차라리 유효타라도 먹일 수 있는 구루구스 쪽이 백검으로서는 더욱 효율적이다.
"공격을 퍼부어."
"쿠어어어어!"
백검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괴성을 내지르며 구루구스가 퀼른에게 내달렸고, 그 뒤를 이어서 백검의 검이 예리하게 번뜩이며 퀼른의 몸을 베어넘겼다.
뜻밖의 공격을 받은 퀼른이 손짓으로 백검을 잡으려고 했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몸을 내던지며 물흐르듯이 회피한 백검은 쉬지 않고 재차 퀼른의 몸을 깎아내려갔다.
"한낱 재료 주제에!"
분노를 토해내며 퀼른의 광역 스킬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당연하게도 백검은 가뿐하게 피해냈다.
허나 공격을 회피한다고해서 퀼른의 스킬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명중하지 못한 공격은 안개의 형상을 한 채로 사방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고, 언데드들을 상대하면서 기여도를 쌓고있던 취약한 유저들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커허어억!"
"새, 생명력이······."
옅어진 공격이라고는 해도 생명력이 원래부터 취약한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설사 살아남은 유저라 하더라도 독에 중독되어서 쩔쩔매다가 주변의 언데드에게 물려죽었다.
시체가 된 유저들은 주변에 감돌고 있는 퀼른의 마력으로 인해서 언데드로 변이되어서 공격성을 드러냈다.
"안개에서 벗어나고, 계급 낮은 길드원들은 언데드들을 상대하면서 기여도를 쌓도록 해!"
"그만 좀 뒈져라 새끼들아!"
"무리하지마세요!"
퀼른의 공격에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유저들의 분위기는 사실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퀼른의 신경은 백검과 구루구스가 끌어주고 있었고, 까다로운 개체였던 어보미네이션과 대부분의 언데드들의 시선을 북두칠성이 받아낸 덕분에 타 길드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우리도 간다!"
"더 원을 위하여어어!"
"인해전술이다! 동료를 밟고 나아가라!"
글로벌 세계의 끝판왕 답게 서양인들과 더불어서 일본과 중국인들이 득달같이 몰아쳤다.
"건방진 것. 너는 나중에 상대해주지."
그와 함께 백검과 전투를 벌이던 퀼른의 포효성과 손짓의 공격이 그들로 향했다.
미꾸라지마냥 빠져나가는 백검에게 힘을 쏟아부을 빠에야 오합지졸을 노려서 언데드 세력을 불리는 목적으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다.
꿍꿍이를 눈치챈 백검이 구루구스와 함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지만 방어막으로 튕겨내며 퀼른의 공격이 글로벌 길드들에게로 쏟아져내렸다.
"끄아아아악!"
꼬카인의 가호 덕분에 상당한 레벨이 다운 되었다고 하더라도 퀼른의 레벨은 무려 147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유저들보다도 높은 레벨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 스킬의 파괴력의 차이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가장 먼저 레벨이 낮거나 생명력이 형편없는 유저들부터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과정 속에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듯 길드의 몇몇 간부들이 몸을 날렸다.
"죽어!"
나름 상위권 레벨에 속하는 70레벨대의 유저들이었지만 퀼른에게 있어서는 상대로 치기도 미안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켁!"
퀼른의 손짓 한 번에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들던 유저는 순식간에 흐물거리는 독수로 화했고, 슬라임마냥 꾸물텅거리더니 흉측한 구울의 모습으로 형태를 갖추었다.
백검이 계속해서 저지하기 위해서 퀼른을 공격했지만 성능상 뛰어난 방어막으로 백검의 공격을 무시한 채 퀼른은 다른 유저들을 학살해나가기 시작했다.
죽고 언데드로 재탄생해서 유저들에게 달려드는 악순환의 반복.
조잡하기 그지없는 타 길드의 욕심만 가득 담긴 합류는 오히려 퀼른의 주변에 상위 언데드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약한 유저들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레벨을 갖춘 유저들은 상위종 구울이나 중, 대형급의 좀비로 변화되었다.
대량의 유저들의 시체가 합쳐진 어보미네이션보다는 취약하다지만 각자 특성이 도드라지는 언데드 개체로 인해서 백검으로서는 오히려 퀼른보다도 까다로울 지경이 되었다.
"하아, 답답해 뒈지겠네."
실력이 없으면 주제라도 알아야되는데 그것조차도 안되는 유저들의 행동에 백검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차라리 혼자 싸웠더라면 시간이 오래걸릴 지라도 퀼른을 무리없이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허나 퀼른의 주변으로 상위종의 언데드들이 생성된 이상 이제 1:1전투로는 녀석을 쓰러트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개같은······!"
더군다나 퀼른의 본질의 종족은 마족이다.
판타지에서 교활한 성격을 지닌 마족답게 퀼른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백검을 상대로 무리한 전투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마력 덕분에 언제든지 되살릴 수 있는 상위종 언데드들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멀리서 스킬을 통한 요격 방식으로 백검을 괴롭혀나아갔다.
탁월한 게임 센스와 감각적인 본능으로 회피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 이대로 지구전을 펼치다가는 제 풀에 지쳐서 떨어져나가는 것은 백검이다.
'쓸만한 녀석만 있었어도······.'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백검이 돌파구로서 가장 효율이 좋다고 판단을 내리는 인물은 다름아닌 '크론'이었다.
유일하게 1:1의 대결 구도로 자신을 이긴 존재.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다구리로 승리한 셈이기는 했지만 그 부분은 크론의 능력이었으니 백검으로서도 태클을 걸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 때에는 백검 역시도 리빙 소드에 담겨진 스킬로 니겔룸을 불러서 전투를 치뤘으니까.
전투에 있어서는 유저 개인이 지닌 능력도 곧 소유로 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였으니까.
"후우, 나도 성질 참 많이 죽었군."
옛날같았으면 상상도 못해 볼 일이다.
예전의 백검은 그저 몬스터에게 도전하고, 승리했다.
재수가 없어서 죽는 날도 있었지만 두 번 이상 실패한 전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의 전투를 통해서 몬스터에 대한 패턴을 모조리 외우고 파훼법을 찾아내서 레벨의 차이가 크더라도 결국에는 승리로 이끌어 내던 것이 다름아닌 백검이었다.
"내가 믿는 것은 없다."
오직 자신의 실력만을 믿을 뿐.
검을 움켜잡은 백검의 눈이 번뜩였다.
@ @ @
본래 크론은 퀼른에 관해서는 거의 신경조차 쓰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이 일을 벌인 일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업데이트라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적용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크론의 트롤링 덕분에 그 시기가 상당히 땡겨진 부분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러한 점은 주문 제작을 통해서 어느정도 만회를 한 상황이었다.
순수하게 유저들이 강해져서 방어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목적(돈을 벌기위해서였지만)을 품은 상태로 유저들에게 질 좋고 가성비 뛰어난 무구를 제공해주지 않았던가?
또한 게돈 마을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재 크론의 위치는 사막 지대. 그것도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지저인들의 도시 아포카의 잔재 속에 있다.
더군다나 현재의 크론은 자그마치 40시간의 시간 동안 주문 제작에 힘을 쓰고 있었던 상태이다.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피로감이 몸을 무겁게 찍어누르고 있는 상황인데 남 신경 쓸 상황이겠는가?
확실히 마족을 길들일 수 있다면 몬스터 패밀리는 한층 더 강해질 수 있겠지만 귀찮음까지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서 퀼른을 무시하려던 크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판단인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퀼른이 강림하면서 행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리며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이 완화되어가는듯 고루 숨을 내쉬고 있는 행콕의 모습을 보면서 크론은 이를 빠드득 갈아붙였다.
- 진혈의 뱀. 태초의 뱀과 연관되어 있는 퀼른은 일시적으로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뱀'종족에 관련해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 주의! 퀼른의 종족 지배는 길들인 몬스터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빼앗을 수 있습니다. 퀼른과 마주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런 빌어먹을 뱀 새끼가 쳐돌았나."
모든 유저가 그러하듯, 자신의 소유로 인정된 존재를 빼앗기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크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행콕을 길들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퍼부었었던가?
······사실 떠올려보자면 행운의 집행으로 찍어눌렀기는 했지만 어쨌든 힘들게 소유하게된 자신의 훌륭한 부하였다.
특히나 수 많은 몬스터 패밀리들 중에서도 행콕은 가장 레벨이 높은 개체였으며, 착용하고 있는 무구들도 크론이 온 신경을 다해서 최상의 재료들을 활용해서 만들어낸 제작품들 뿐이었다.
또한 크론TV에 있어서 행콕의 존재감은 이제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문 제작 당시에 보여주었던 행콕의 화려한 뱀 댄스 덕분에 행콕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행콕을 보기 위해서 방송을 찾아오거나 후원하는 시청자도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강화 방송의 마스코트인 쵸우지 센세에게 비빌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마케팅 전략성을 놓칠리가 없는 크론이다.
"외모는 돈이 된다."
그 누가 뭐라하더라도 요즘 사회에는 자본주의의 뒤를 이어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사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쁜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듯이, 행콕의 외모는 하체가 뱀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웬만한 여성 스트리머 방송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아, 졸려 뒈지겠는데······."
크론은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유저들이 퀼른을 저지해준다면 굳이 고민 할 필요도 없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겠지만 만약의 경우라도 퀼른이 유저들을 전부 박살내고 생존해버린다면 여간 껄끄러운 상황이 연출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론은 자신을 제외한 유저들의 실력은 믿지 않았으니까.
222레벨의 몬스터는 결단코 약하지 않다.
그것은 먼저 앞서서 180레벨의 테트를 상대했었던 크론이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최대한 빠르게 가는 편이 아무래도 좋겠지."
이곳에서 게돈 마을까지는 몬스터들을 무시하면서 전력 질주로 달려간다고 가정했을 때 40분 정도면 얼추 가능하기는 했다.
크론에게는 빠른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쇼닉과 안락한 탑승감을 자랑하는 장고라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전부 장고의 몸으로 들어가도록 해. 내가 위치를 지정해 줄 테니까 쇼닉은 그곳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가도록 하고."
"컹컹!"
[쇼닉이 자신만만하게 으쓱합니다]
쇼닉의 활기찬 대답을 들으면서 크론은 몬스터 패밀리들을 전부 장고에게 집어넣고는 눈을 반짝였다.
"주시자의 눈 - 시야 공유. 대상, 데오르."
- 유저 데오르를 주시합니다. -
마치 또 다른 방송 케이블을 틀어놓은 것처럼 새로운 시야가 펼쳐지면서 데오르의 현 위치가 공개되었다.
쿠구구구궁-
콰과광!
마치 영화라도 찍을 기세로 넘쳐 흐르는 언데드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현재 지역은 당연하게도 게돈 마을이다.
수 많은 유저들이 개미떼처럼 싸우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보면서 데오르는 추종자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 내가 아는 너라면 그럴 것 같았어."
데오르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언제나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는 법이다.
위험할 때는 나서지 않고 기회를 포착한다면 달려든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면서 크론은 장고의 몸으로 들어가서 기분좋게 드러누웠다.
"출발!"
쇼닉이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는 감각을 느끼면서 크론은 마치 TV를 시청하는 느낌으로 데오르의 시야를 통해 현재 퀼른의 위치를 체크해나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유저들을 찍어누르고 있는 퀼른의 기세를 보면서 크론은 짧게 혀를 차보였다.
자신이 판매해준 뛰어난 무구를 손에 쥐고도 고작 저 정도 밖에 못하다니, 실망스럽다 못해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도 있네."
퀼른을 저지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유저들의 틈새 사이로 보여오는 백검의 북두칠성과 소렌의 베히모스를 보면서 크론은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백검과 소렌 정도의 실력과 무기라면 꽤나 믿음직스러운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아암······졸려 뒈지겠다."
뜻하지 않은 전투의 참가를 앞두고 크론은 한 쪽 눈으로는 데오르의 시야를 체크하고, 한 쪽 눈은 감은 상태로 조금이나마 쪽잠을 청했다.
"컹컹컹!"
"큐르르르르-"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장고 택시와 택시기사 쇼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