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마계 침공(1)
게돈 마을.
수많은 마을들 중에서도 속칭 초보 마을, 혹은 태초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유저들의 첫 스타트 지점중 한 곳이었다.
본래 평상시에는 초보자들이 토끼나 고블린들을 잡고 있어야 정상적인 이 곳에는 현재 수 많은 파벌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지극히도 간단했다.
『퀼른 등장까지 남은 시간 - 0 : 49 : 32, 31, 30······..』
마계 침공 업데이트의 대표적인 주범이자 반드시 상대해야만 하는 대형급 몬스터인 퀼른.
222라는 콩의 냄새가 짙게 풍겨오는 레벨을 갖춘 퀼른은 솔직히 현 시점에서의 유저들 수준으로는 녀석을 잡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존재였다.
허나 힘든 만큼 얻어지는 과실 또한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
억지로라도 퀼른의 사냥에 성공한다면 상당한 가치를 지닌 전리품의 획득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SSS급의 퀘스트에 대한 보상도 엄청날 것이다.
그야말로 일확천금!
크론의 방송을 보았던 유저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크론이 소유하고 있었던 레전드+등급의 아이템 자빅스!
아이언맨 슈트처럼 생긴 그 휘황찬란한 무구의 능력치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퀼른을 죽이면 레전드+등급의 나올 수도 있다.』
은연중에 돌고 있는 소문으로 인해서 모든 유저들은 '혹시나?'싶은 마음에 몰려들었다.
"레전드 아이템!"
현재 공개된 시점에서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는 유저는 오직 크론 뿐이었다.
각 길드들의 간부나 길드 마스터는 아이템만 먹는다면 상당한 보상을 약속하며 길드원들을 끌어냈고, 그 외에 개인으로서 참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대부분이 보상이었다.
공개되었던 레전드+등급의 옵션을 떠올리면서 수 많은 이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물론 그러한 탐욕만에 이끌리는 이들 외에도 퀼른을 저지하기 위해서 모여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
222레벨의 자유롭게 마을을 습격할 수 있는 몬스터의 등장은 수 많은 NPC들을 죽여나갈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자칫 게임이 망할 수도 있다.
더 리셋 월드를 즐기는 유저들로서는 그러한 꼴을 볼 수가 없었다.
"하여간에 크론 이 자식은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건가."
소렌은 제대로 사고를 친 친구 녀석의 행위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형님의 친구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느낌상 100레벨은 가뿐하게 돌파하신 것 같던데. 저희는 언제 따라갑니까?"
"그래도 나름 소수 정예인데······."
소렌의 길드 베히모스는 30명으로 짜여진 정예중의 정예들 뿐이었다.
그들 모두가 유니크 무구를 하나 이상은 갖추고 있었으며, 레벨 역시 60~70까지 이루어져 있었기에 나름 자부심도 있었지만 크론의 행동으로 인해서 자존심이 옅어진 것이다.
그들의 반응에 소렌은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이 규격외인 거지. 너무 기죽지 마라. 원래 세상사라는게 이런 거 아니겠냐? 뛰는 놈 위에 괜히 나는 놈이 있겠어?"
등을 두들기며 소렌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빨리 이런 무기 얻어야지?"
자랑스럽게 +12 안개의 식인꽃을 꺼내보이며 흔들어재끼는 소렌의 모습에 베히모스의 길드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발.'
'꼰대 진짜 싫다.'
'하아 대장 저 부분만 고치면 참 좋은데······.'
허나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그들의 겉모습은 순식간에 일그러짐을 지워보이고 활짝 만개꽃을 피웠다.
어찌되었든 금수저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소렌이 지니고 있는 인맥은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사실 그들이 유니크 무구를 얻는 것과 빠르게 레벨업을 한 것도 소렌의 도움이 컸었으니까.
재력과 인맥은 곧 힘이다.
소렌은 그것을 활용한 자신의 꼰대력을 바탕으로 길드원들을 통솔했으며, 길드원들도 소렌을 따르면 딱히 손해를 볼 일이 없었기에 대체적으로 잘 따르는 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사람이 된 이상 끝까지 책임지고 챙겨주는 것이 소렌의 기본 모토였으니까.
"그런데 라우는 왜 저러는거야?"
소렌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쿨라우를 보고는 의아하다는 의미로 묻자 옆에 있던 길드원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소렌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쟤 지금 영상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듣기로는 40시간 짜리 영상을 편집한 뒤로 저 지경입니다."
"아······."
40시간의 영상 편집.
그 내용 하나만으로도 소렌은 의미를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적당히만 놀자. 레벨이 높은 녀석이니까 깊숙히 들어가지말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하자고."
"말 안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222레벨의 몬스터.
사냥해서 전리품을 얻는 것도 좋지만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도전해야 할 정도로 무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소렌에게는 전리품보다도 길드원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으니까.
"어라?"
의기투합을 하고 있던 도중 소렌은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아버지?"
"녀석아. 게임 내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지말고 레난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몇 번을 말해야 되겠냐?"
"아니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그럼 나도 종수라고 불러줄까? 아들 녀석아?"
"험험, 근데 아버지는 여기 무슨 일로 오신겁니까?"
예리한 반격에 소렌은 헛기침으로 화제를 돌렸다.
능글맞은 소렌의 모습에 짧게 혀를 차보이는 레난이었지만 딱히 따지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왜기는, 대어를 낚으러 왔을 뿐이다."
"헤에?"
소렌은 척봐도 신기하다는 눈길로 레난을 바라보았다.
소렌이 기억하기로 자신의 아버지는 이런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저 재미난 방송을 즐겨보거나 좋은 무구를 수집하는 맛으로 살아가는 수집가인 아버지는 캐릭터가 죽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야, 낮은 확률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수집품이 드랍되는 것을 원치 않는 스타일이셨으니까.
그런 아버지가 퀼른을 상대하러 왔다는게 소렌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진짜 크론이 대단하긴 하구나."
소렌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이제서야 시야가 좀 넓어지니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인 레난이 소속되어 있는 길드 '다이아몬드'는 레난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수집광들이 모여있는 이른바 재벌들의 길드다.
당연스럽게도 다이아몬드의 주 인사들의 장비는 하나같이 풀 무장이라고 봐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번뜩였으며, 상당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들이 당당하게 이곳으로 모인 주체에 크론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굳이 오래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니크 등급의 무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있는 대장장이는 몇 없었으며, 소렌도 크론이 방송을 통해서 제작 판매를 했던 것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니까.
'무구의 힘을 실험하는데에는 퀼른만한 녀석이 없겠지.'
설사 죽더라도 힘을 실험했으니 만족했고, 전리품을 드랍하더라도 재력만 받쳐주면 언제든지 무구를 만들어 줄 크론이 존재했다.
수집광들에게 돈이라는 총알은 언제든지 준비되어있었으니까.
쓸만한 아이템들의 공급처가 유지되는 이상 더 이상 드랍할 문제점이 해소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도 나중에 쓸만한 걸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어."
소렌은 피식 웃으며 손에 쥐여진 12강의 안개의 식인꽃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도 강력한 무기이기는 했지만 71레벨로 성장한 소렌은 슬슬 무기를 교체해야 될 시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후, 그래도 이번 전투는 지원군이 든든하니 이길 수도 있겠는데요?"
소렌의 말 대로 현재 퀼른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 모여든 유저들의 질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비록 옛 말이기는 했지만 이전에 랭킹 1위를 견고히 다지고 있었던 일성 백검을 주축으로한 스트리머 길드인 북두칠성을 비롯해서 수 많은 중형과 대형 길드들이 각자 떨어져서 눈치를 보고 있었고, 개 중에는 외국의 대형 길드들도 있었다.
소렌도 정보를 통해서 알고있는 타운 길드는 유럽의 THE ONE이 이끌고 있었고, 백서일기 길드는 일본의 유명 유저인 유스케의 길드였다.
"우리가 괜히 왔겠냐?"
"크하하! 다이아몬드는 지는 싸움은 참여 하지 않는다고!"
레난이 웃으며 말하자 다이아몬드의 길드 마스터인 빅텀이 맞장구를 치며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곰 만한 덩치를 자랑하는 죠지였지만 소렌은 잘 알고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재벌들을 이끄는 수장인 빅텀은 상당한 두뇌파이자 박쥐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다는 것을.
하긴, 괜히 빅텀의 별명이 곰의 거죽을 쓴 여우겠는가?
"끌끌끌, 레난의 아들 녀석이라고 했던가? 이번 싸움에서는 최대한 협조해서 전투에 임하도록 하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렌은 손을 내미는 빅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소렌의 베히모스와 빅텀의 다이아몬드.
이번 싸움 동안 두 길드는 함께 한다.
힘겨운 전투 속에서 연합을 갖추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니까.
'피바람이 불겠지.'
실력자가 많다고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퀼른같은 푸짐한 먹잇감을 나눠먹어야하는 입장이다보니 유저들간의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만 봐도 알 수 있다.
괜히 PK유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유저를 죽이는 녀석들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도 있지만, 나눠먹는 것을 극히도 싫어하는 종류가 더욱 더 많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시적인 연합은 힘이된다.
다이아몬드 길드는 대체적으로 전투 센스들이 부족한 이들이 많았지만 강력한 무구들을 중점으로 한 템빨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들 준비하자고."
『퀼른 등장까지 남은 시간 - 0 : 0 : 10, 9, 8······..』
뚜둑하고 몸을 푸는 사이 순식간에 시간이 다가왔다.
우우우우우웅!
하늘에 바늘이라도 쑤셔박은 듯 커다란 차원의 구멍이 뚫렸고 그곳에서 털이 숭숭 자란 거대한 팔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팔이 튀어나오며 열린 구멍이 작다는듯 불만감을 토해내면서 차원을 찢어발긴 퀼른이 그 흉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피, 피해!"
공중에서 빠르게 낙하하는 퀼른의 모습에 비명을 내질렀지만 떨어지는 속도는 이미 중력의 법칙을 무시했다.
쿠우우우웅!
콰직- 콰지직!
떨어지는 퀼른의 발밑에 있던 재수 없는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기다린 시간 치고는 너무나도 불쌍한 최후였지만 그들을 일일이 신경 써 줄 정도로 모든 유저들은 여유롭지 못했다.
"노예가 되어라!"
콰득- 콰드득!
방금 죽은 유저들이 좀비와 구울로서 언데드화 되어서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유저들에게 알림음과 더불어서 홀로그램창이 띄워졌다.
- 상급 마족 퀼른이 게돈 마을에 출현합니다. 서둘러서 녀석을 저지하십시오! -
- 꼬카인의 가호······가 아니라 이른 시기의 강림으로 인해서 퀼른의 능력치가 하향 조정됩니다. -
- 퀼른을 중점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는 사망하더라도 1시간 접속 패널티 외에는 패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
[상급 마족 퀼른 Lv.147(-75)(미스터리 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