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지하 도시(7)
"그, 그만. 그 정도는 충분히 알아들었어."
코카트리스는 결코 약한 몬스터가 아니다.
110레벨 전후로 분포되어 있는 녀석들은 육체적으로나 석화나 맹독등의 툭성으로나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으니까.
크론이야 20강의 무기와 몬스터 패밀리들의 합세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지만 90레벨 정도의 수준인 지저인들 입장으로서는 아무리 지저트론이 있다고 한들 코카트리스를 상대할 때 적지 않은 희생이 동반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포카로의 입장은 불가능 하다. 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는 없는 법이니 이 부분은 양해 해주었으면 좋겠군."
"아포카에 입장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겁니까?"
참 징하게도 폐쇄적이다.
그렇지만 크론은 여전히 미소를 입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아예 적대하기로 마음 먹은 녀석들도 아니고 어느정도 친분을 쌓을 가능성이 있는 NPC들과 사이가 틀어져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으니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다만 지상에서 인격체가 찾아오는 경우는 처음있는 일이다보니 1성호이신 지저왕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가능할 테지. 다만 그 분을 만나려면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명분이 필요하거든."
"명분?"
"응. 어찌보자면 잘 된 일이야. 자네같이 실력있는 존재의 합류라면 지저왕님께서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테지. 그러니 자네가 활약할 명분을 내가 제공하도록 할께. 그러니······."
"일을 해결해 달라는 거로군."
"빠삭하게 잘 알고있군."
행동없는 보상은 없는 법이다.
크론으로는 지저트론 때문에라도 반드시 아포카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경비병의 제안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실 퀘스트는 크론으로서도 바라는 바이기도 했고.
"최근 들어서 우리들의 비크 광산에서 지저인들의 실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어서 말이야. 테트의 소행으로 보고 병력도 충원하고 있지만 도저히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어서 말이야. 만약 이 일을 처리해준다면 나도 상부에 보고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지. 섭섭하지 않은 보상도 약속해줄 터이니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 메던의 도움 요청을 받으셨습니다. 지저인들은 은혜와 원수를 잊지 않는 종족입니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당신의 발언권이 높아질 것이며, 지저인들과의 신뢰 관계를 구축함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
- 승낙시 퀘스트 '비크 광산의 골칫거리'를 받습니다. -
- 승낙시 미스터리 몬스터 '메두사 테트'가 당신을 주시하게 됩니다. -
설마 이런식으로 첫 번째 퀘스트를 수용하게 될 줄이야.
역시 신 문명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쉽게 볼 수 없다는 말인가.
'테트 녀석은 예상대로 미스터리 몬스터로군.'
메두사라는 이명을 지닌 녀석에게 찍히는 것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좋은 방향은 아니지만 크론으로서는 환영이다.
가뜩이나 만나기 힘든 미스터리 몬스터들을 길들이는 것이 크론으로서는 무조건 이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테트같이 처음부터 강력한 녀석은 길들였을 때 얻어지는 것도 클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문명이라 볼 수 있는 도시 하나와 적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맡겨주시죠."
-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
- 메두사 테트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
[비크 광산의 골칫거리(단일 퀘스트)]
- 비크 광산은 지저인들에게 중요한 자원적 요지입니다. 최근들어 비크 광산에서 늘어나고 있는 실종자들에 관해 조사하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십시오. 성공적으로 클리어할 시 지저인들과의 관계가 대폭 개선됩니다. -
난이도 : B
보상 : 종족 '지저인'과의 관계 개선, 아포카로의 입장, 골드, 경험치
실패시 : 종족 '지저인'과의 관계 하락, 테트의 주시 해제
@ @ @
지란은 여느 때와 같이 비크 광산에서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두더지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듯이 지저인들의 육체는 채광에 있어서는 굳이 곡괭이와 같은 도구가 필요없을 정도로 땅을 파는 것에는 능숙했고, 광부로서 성장의 길을 잡은 지저인 같은 경우에는 광물을모으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2주일 전부터 비크 광산에서는 수 많은 지저인들이 실종되는 사례가 발생해서 흉흉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태까지 실종된 지저인들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으니 사실상 생사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지란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이 채광에 온 신경을 쏟을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포카에서는 이번의 사태를 그냥 넘어가지않고 과하게 느껴지는 6성호의 지저인 한 명과 7성호의 지저인 10명을 파견해주었기 때문이다.
7성호 10명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아포카의 고위격이 아니면 쉽게 만나보기가 힘든 6성호의 지저인, 드랑이 탑승한 지저트론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번들번들한 광채를 뽐내는 고급형 지저트론.
근접과 원거리 둘 다 밸런스있게 갖춰진 튜닝 형태였으며, 짐승의 형태로 변환까지 가능한 트랜스 기체다.
지저인들의 재앙이라고 불리우는 코카트리스가 다수 침범해온들 충분히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이 버텨주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나도 빨리 신분을 상승시키고 싶다."
지저인들에게 있어서 성호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지하 도시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는 당연히 권력에 따른 신분이 생겨나기 마련이였고 그것이 바로 지저인들에게 주어지는 성호였다.
보통의 지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9성호를 받게되고 그 이후 부터는 실적을 쌓아서 아포카에 공헌을 하거나 레벨업을 통해서 전투력을 올리면 그에 따라서 성호를 승격시켜준다.
7성호 부터는 보급형이 아니라 직접 엔지니어에게 자신만의 기체를 주문 제작할 수도 있게되는 권한이 주어지기에 지란은 어떻게든 7성호에 다다르고 싶었다.
지저인들에게 지저트론은 또 하나의 육체이자 지저 세계의 문명을 최대한으로 압축시킨 문명의 이기였으니까.
"어라?"
그렇게 든든한 마음과 포부를 가진 채로 작업에 열중하던 지란은 문뜩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혹시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6성호와 7성호의 지저트론들은 텅텅 비어있었고, 함께 작업에 열중하던 동료 광부들의 흔적도 온데 간데 없다.
기이한 상황에 당황함을 금치못한 지란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투두둑-
이어서 떨어져내리는 붉은 핏자국.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지란이 시선을 위로 올려보았고, 참상을 보게되었다.
코카트리스조차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110레벨을 자랑하는 6성호의 지저인이라지만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는 갈색 사막 뱀들의 기습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심지어 개 중에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도 존재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대처를 하고 있다고 한들 기체의 틈새로 들어와서 독이라도 주입되는 순간 끝이었다.
[베누스 Lv.124(네임드 몬스터)]
"으, 으아아아!"
자신은 결코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의 정보를 읽게된 지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크 광산의 출구를 향해 달렸다.
동료들이 먹히고 있는 동안의 시간이라도 활용해서 도망칠 요량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사방으로 감싸듯이 등장하는 50여 마리의 갈색 사막 뱀들에게 둘러싸인 지란은 독으로 인해서 굳어진 몸으로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면서 겁에 질렸다.
"기시시시-"
공포어린 먹잇감을 산채로 잡아먹는 것을 즐기는 베누스는 부하들이 준비해놓은 지란을 입에 넣고 소환 기관으로 꾹꾹 눌러 삼켜버렸다.
풍족한 식사를 끝마친 베누스는 부하들을 시켜서 지저트론의 기체를 부수고 남아있는 지저인들의 시체들을 전부 처리했다.
"기이이이."
자신들의 존재가 남을 수 있는 흔적을 전부 지운 베누스는 부하들과 함께 비크 광산의 틈새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려했다.
허나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베누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분명히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빨간 빛깔을 자랑하는 알약이 어느샌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베누스는 웬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 알약에 이끌렸다.
본능에 이끌린 것은 다른 갈색 사막 뱀들도 마찬가지 였는지 다가왔지만 베누스가 성을 내자 쫄아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약육강식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있는 몬스터 세계에서는 힘이 곧 권력이였기 때문이다.
"키시시시시시-!"
[운영자의 선물 - 빨간 알약(?)]
- 운영자가 설치한 임의적인 장치입니다. 섭취시 상당한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으며 종족의 변이 및 진화를 강제적으로 발생시킵니다.
* ???
* ???
* ???
- AI유그드라실이 버그를 발견했습니다. 조속히 버그를 해결합니다. 10, 9, 7, 3······. -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한 베누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확실하게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물건이 갑자기 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점차 흐려지는 모습을 보아 시간이 다 되어버리면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굳이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던 베누스는 주저없이 빨간 알약을 탐스럽게 취했다.
- 버그가 일시적으로 소멸했습니다. AI유그드라실이 버그의 잔재를 확인합니다. 버그의 발생을 일으킨 운영자 NO.2 한정우에게 경고 합니다.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로 인해 30일 간 한정우가 가지고 있는 운영자로서의 권한을 박탈합니다. 추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할 시 AI유그드라실은 영구적으로 해당 운영자 권한을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
뜻을 모르는 알림음이 연신 울렸지만 베누스에게는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키, 키아아아아앗!"
충혈된 두 눈을 번뜩이며 비명성을 토하자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베누스의 부하들이 무언가에 홀린듯 흐려진 눈으로 베누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콰득! 콰드드득! 꿀꺽- 꿀꺽-
베누스는 다가오는 부하들을 잡아먹었다.
부하들을 잡아먹음으로서 경험치도 쌓고 영양분을 얻은 베누스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 차례에 이르는 허물을 벗어던지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베누스의 육체가 폭발하듯이 용솟음쳤다.
본래의 종족인 '뱀'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운영자가 경고를 각오하면서 남긴 권한은 그 만큼 값질 수 밖에 없다.
그 어떠한 몬스터의 돌연변이 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강력한 힘을 부여해지는 효력 덕분인지 조금 커다랬었던 뱀에 불과했던 베누스의 육체는 마치 코브라처럼 상반신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드득!
마치 거인의 힘이라도 얻은듯 베누스의 하반신이 부풀어오르는 상반신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점차 커져가며 올곧게 땅을 지지했고, 이어서 상반신의 형태가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뱀의 비늘만을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나신이 봉긋한 가슴과 함께 그대로 드러냈고, 베누스의 얼굴의 형상은 연예인의 데이터를 참고해서 상당한 미녀의 형상을 본떴다.
운영자가 건낸 빨간 알약의 힘으로 '뱀'이라는 종족의 상위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나가'로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나가라고 볼 수 없다.
나가들 중에서도 파충류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고고하면서도 지고한 존재, 나가 여왕.
수 많은 뱀들 중에서도 수 많은 시련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지위를 베누스는 빨간 알약이라는 힘을 바탕으로서 그 경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하으으읏-"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취한 베누스가 쾌락의 신음을 내뱉었다.
이제까지 갈색 사막 뱀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힘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다.
갑작스럽게 강해진 폭주의 여파로 아직 힘을 제대로 조절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활용만 한다면 자신이 따르던 메두사 테트조차도 이길 것만 같았다.
[뱀의 여제 베누스 Lv.140(미스터리 몬스터)]
"후우우, 정녕 이것이 나란 말인가?"
성대가 생기면서 언어적 대화도 가능해졌으며, 각성과 진화를 동시에 이룩하면서 얻은 지적 능력또한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다.
일개 파충류에 불과했던 뱀일 때와는 다르게 다양하게 각성된 나가 여왕으로서의 힘과 권능에 눈을 뜬 베누스의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가 머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