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화 실패를 리셋한다-77화 (77/122)

# 77화.

지하 도시(4)

@ @ @

블랙 리스트.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기도 하며 게임 상에서는 운영진들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문제아'에 해당하는 요주의 인물들을 지정해두는 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게임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속화를 시키는 이 문제아들같은 경우에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통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유그드라실의 블랙 리스트는 148명으로서 운영자들의 탈모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범인들이자, 더 리셋 월드의 흥행을 이끄는 선봉장 같은 존재다.

속된 말로 병주고 약주고를 제대로 실천하는 녀석들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하, 이게 말이 되냐고······."

그 많은 문제아들의 대부분의 리스트는 동양계에 해당하는 유저들이다.

특히 한국인이 유독 많았는데 누가 게임 강국 아니랄까봐, 148명의 블랙 리스트 중에서도 60%가 넘는 81명이 한국의 국적을 지니고 있었다.

"Oh My God!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유그드라실의 운영자중 한 명인 찰스 마틴은 출력되고 있는 수 많은 모니터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영상을 확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크론.

공식 커뮤니티 사이트인 리셋 이루벤에서도 시끌벅적하게 거론되고 있는 이 유저가 벌인 일들은 운영자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터무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픈한 지 얼마 안되서 초보자용 검을 20강에 띄우는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직접 제작한 시초의 망치라는 유니크 무기를 강화해서 20강을 띄워버리기까지 했다.

그 말같지도 않은 능력치를 자랑하는 아이템으로 100레벨 대의 몬스터들을 때려죽이는 모습을 볼 때면 놀라워서 턱이 빠질 지경이다.

거기다가 크론의 요행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크론이 가장 요주의 인물로 손꼽히는 것에는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무패의 강화'를 빼고 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강화를 성공시키는 녀석의 행태에 마틴은 물론이고 같은 운영자인 정우또한 함께 유실에게 질문을 독촉했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늘 '이상이 없다'라는 것 뿐이었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강화해서 직접 자신의 아이템을 강화하는 부분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유저라면 당연한 욕구였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벌이고 있는 크론의 행동은 운영자로서는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제발! 지금 지하 도시를 개방하면 안된다고!"

지하 도시 아포카.

지저인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종족이 살아가는 터전으로서 운영자들의 예상으로는 8개월을 예상하고 있었던 컨텐츠다.

아무리 빠르게 하더라도 반 년은 지나야만 해결할 수 있을 껀덕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을 1달하고도 조금 지난 지금 시점에 풀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 자명했다.

그도 그럴것이 아포카에서 부여되는 영웅 퀘스트는 시나리오 3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1이 보조 직업과 종족 생성등과 같이 컨텐츠의 추가적인 업데이트인 반면 시나리오 3는 일종의 이벤트성 업데이트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서 거론할 수 있는 것이 본래 이 시나리오의 대상은 반 년의 성장을 거치게 된 100레벨 대에 해당하는 유저들이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 50레벨도 겨우 넘기고 있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솔직히 시나리오 2같은 경우에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시나리오 1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2의 명칭 '성장의 길'은 그 이름답게 유저들의 성장과 아이템의 상향을 위해서 다수의 던전이 추가되고 네임드 몬스터들과 미스터리 몬스터들의 등장 빈도가 가속화 되는 것이 주요 업데이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2에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달인 '포워르 아 문'이 탄생하면서 오로지 낮만 유지되던 더 리셋 월드에 밤이 생겨나게 된다는 부분이다.

밤이 생겨나게되면 더 리셋 월드에는 많은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밤에는 몬스터들의 성격이 난폭해지는 대신에 사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치와 전리품등의 보상이 상향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시나리오 2의 업데이트 역시 3개월을 예상한 것 치고는 상당히 빠르게 발동하는 것이지만 크게 문젯거리로 삼을 정도는 아니였으니까.

실상 문제되는 것은 시나리오 3이다.

앞서 말했듯이 시나리오 3는 이벤트성 업데이트로 그 명칭은 '마계 침공'이다.

살벌한 이름만봐도 알 수 있듯이 시나리오 3가 개방되면 더 리셋 월드의 전역에 마족들이 등장하게 되며 동시에 언데드들이 창궐하게 된다.

대다수의 언데드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상대하기 쉬운 좀비나 스켈레톤등이 있지만 간혹 스펙터나 구울같이 변종들은 유저들을 까다롭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근접전의 최강인 데스 나이트와 종주라고 볼 수 있는 리치등과 같은 녀석들의 공격은 일개 유저들이 상대할 수가 없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소환되는 언데드 때문에 일종의 레이드를 통해서 다수의 힘으로 제압을 해야만 간신히 사냥할 수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앓아야되는 상황에 마틴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끄으으으! 내가 이래서 진즉에 시나리오는 우리들의 권한으로서 업데이트를 해야한다고 누누히 말하지 않았나!"

투덜거리는 마틴의 모습에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한정우는 피식 웃어보였다.

"그게 가능했으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을 수도 없지. 우린 어디까지나 보조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자고 마틴."

"너는 참······지금 꼴이 이런데도 속도 편하군."

"뭐, 너무 많이 겪다보니 말이야."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정우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정우의 입장에서는 블랙 리스트 하나하나가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배척할 생각은 없다.

크론. 백검. 유스케. The One등.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그야말로 돋보이는 플레이를 해주는 유저들 덕분에 더 리셋 월드는 한층 더 재미있고 예측이 불가능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그들이 '운영자'라는 자리에 있다고는 할 지라도 실질적으로 가상현실게임을 유지시키고 질서를 확립시키고 있는 것은 AI유실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AI유실을 탄생시킨 것은 자신과 마틴을 포함한 4명이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보조로서 도움을 주었을 뿐이지, 실상 유실을 안정화 시키고 탄생시키는 역할은 운영진 중에서도 김철수가 거의 이루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굳이 퍼센트로 따지자면 자신과 마틴. 그리고 중국에서 고생중인 위계흠을 포함할 지라도 10%도 안되는 낮은 수치였으며, 나머지 90%는 전부 김철수의 역할이었으니 말 그대로 홀로 하드캐리를 한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멋대로 유실에 개입하려고 했다가는 모가지가 날아갈 거다."

그 말대로 운영자는 시스템에 간섭할 수 없다.

억지로라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렇게 되었다가는 유실의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것이 자명했다.

동시에 그런 일을 터트렸다가는 김철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주)유그드라실의 실질적인 사장이자 대주주의 자리는 김철수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해서 딱히 불만은 없다.

정우는 자신의 주제를 알고있기에 지식적으로 우월한 김철수에게 대들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그 빌어먹을 녀석. 그 노란 원숭이 새끼가 처음부터 유실의 설정을 우리들에게 맞춰줬으면 이런 고생하지 않아도 되잖아!"

"글쎄. 과연 우리의 손에 놓여진 유실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가상현실게임을 만들 수 있었을까?"

"뭐야 지금 같은 노란 원숭이라고 감싸고 도는거야?"

"입 조심 좀 하지그래?"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으며 조롱하는 마틴의 모습에 정우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확실히 자신 역시 철수가 설정해놓은 운영자의 권한 탓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철야도 간혹 겪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정우는 철수의 지식과 재능을 질투하는 동시에 존중하고 배움의 미덕으로 삼고 있었으니까.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름 존중하고 있는 철수를 욕하고, 황인을 차별하는 듯한 마틴의 언행에는 정우도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봐 마틴. 한국에는 말이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어. 요약하자면 좋게 말하면 좋은 말을 듣는거고 나쁘게 말하면 나쁜 말을 듣는다는 거지."

"그게 어쨌다는건데?"

"자네의 실력은 충분히 존중하고있어. 뛰어난 판단력과 일처리 능력은 그야말로 발군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의 성격까지는 존중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뇌 근육 고릴라야."

"뭐?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건가 미스터 한?"

연구원치고 우람한 덩치를 들이대는 마틴의 모습에 정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번만 말할테니까 귓구멍 씻고 잘 들어. 고릴라 새끼야. 솔직히 네가 뛰어난 연구원이고 우수한 인재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어. 헌데 그렇다고해서 남들을 무시할 권한은 없어, 이 빌어쳐먹을 고릴라야. 여기에는 너보다 똑똑한 사람 많이있고 지위도 높은 사람이 잔뜩있지. 그리고 나도 한국인이라고? 같은 민족을 편들고 자시고 간에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

"이, 이 새끼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김철수의 말이 싫으면 네가 나가. 야근할 필요없이 평생 쉬게해줄테니까."

강경하게 나오는 정우의 모습에 마틴은 속으로 당황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 자신이였기에 저자세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다니······.

이렇게 되면 마틴도 한 걸음 물러서야만 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김철수가 개발한 VR시스템의 결정체인 AI유실을 빼낸 이후 군사적인 도구로써 사용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만약 자신이 쫒겨난다면 미국 군사에서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험험. 미스터 한. 조크였다고, 조크. 자자, 화 풀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시비걸 때는 언제고 헤실거리는 마틴의 모습에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지금 치고박고 싸울 생각은 없다.

"후우, 알았으니까 당장 철야 준비나 하자고. 여기서 기운 빼고 있을 힘이 어디있나."

"······."

다시금 똥씹은 표정이 되어버린 마틴의 모습에 정우도 똑같이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벌써 며칠째 회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른 직원들을 대폭으로 고용하기에는 AI유실의 도난이 걱정되었으니까.

'괜히 인원수를 늘릴 필요성은 없지.'

정우도 자신들의 기술을 타국에서 얼마나 탐을 내는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유그드라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보이지 않고, 기자들의 인터뷰도 거절의 뜻을 내비추지 않았던가.

사실 마틴과 중국의 실력자인 위계흠도 믿음직스럽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나마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해 온 사이였기에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후우, 아까 차라리 맞았다면 일이 시원스럽게 풀렸을 텐데.'

내심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방도 이쪽 계에서는 나름 프로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서는 녀석이었다면 애초에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의 자본적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 리셋 월드가 탄생하려면 족히 수 십 년은 훗날의 일이 되었을테니까.

애써서 불만 가득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정우는 마음을 다독였다.

지금은 그런 것을 고민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반 년은 잡고 있었던 시나리오 3의 발동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만 한다.

크론.

그 문제아라면 분명히 지하 도시 아포카를 발견할 것이고, 시나리오 3로 이어지는 영웅 퀘스트를 클리어할 테니까.

"좋게 생각하자고, 마틴. 시나리오 3의 개방은 어디까지나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니까."

이미 진행되어있는 틀은 바꿀 수 없다.

AI유실은 직접적인 간섭에는 김철수가 직접 나서지 않는한 완전히 면역되어 있으니까.

그렇지만 시간 벌이를 위한 장치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간섭이 가능할 수는 있다.

물론 그것 또한 AI유실의 허락이 떨어지는 선에서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