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키리 더 맨(4)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12강에 도달하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전세계로 송출시켰으니까.
그러나 과연 그들은 알 수 있을까?
제화에게는 12강의 안개의 식인꽃을 우습게 만드는 18강의 시초의 망치와 14강의 신체 분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무시 할까?"
유니크 등급의 무기를 사진 첨부해서 보내주는 것만 봐도 키리가 요구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리 강화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단순하게 표면적인 정보만 알고있는 존재에게 도움을 줄 이유는 없다.
대리 강화를 맡기라고 코톡 아이디를 남겼지만 사실상 스폰서들의 연락과 한형식과 재벌들과의 인맥 연결이 목적이였지, 이런 개인적인 대리 강화를 의뢰 받을 목적이 아니었다.
코톡 알림음 삭제하고 무시할까 했지만 이내 제화는 생각을 달리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유니크 무기를 가져오더라도 무시했겠지만, 그 대상이 60만에 이르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스트리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트위찍에는 시청자들을 다른 방송인의 플랫폼으로 투척시키는 호스트 기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만 활용한다면 제화의 구독자 수를 빠르게 올리는 수단으로도 써먹을 수도 있게 된다.
어차피 인기가 보장되어 있는 제화였지만 그 속도를 더욱 빠르게 끌어올린다고 해서 손해볼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 크론
[답변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리 강화를 의뢰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 키리
역시나 목적은 대리 강화 의뢰였다.
[유니크 무구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내세웠던 조건에 부합되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강화는 자신 있으시지 않으십니까?] - 크론
[그렇게 말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우,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이 녀석이 제 본템이기도 해서 섣부르게 강화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 키리
"솔직담백한 녀석이군."
핑계를 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키리의 방송은 대체적으로 시건방짐이 기본으로 깔려있었기에 건방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에도 예의는 갖추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처음 만난 인물의 무구를 대뜸 강화 시켜줄 정도로 크론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였다.
"그렇지만 무조건 거절하는 것도 좋지는 않지."
상당수의 구독자를 갖추고 있는 대형 스트리머와 굳이 척을 질 필요성은 없다.
키리는 게임으로나 방송으로나 이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인 제화이긴 하지만 형식과의 인맥과 연결되려는 속셈이 있듯이, 세력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대리 강화 의뢰는 받을 수 있습니다. 강화는 어느정도까지 생각하고 있으신 거죠?] - 크론
[아아, 우선은 10강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혹시나 가능하다면 12······아니, 13강까지도 염두에 두고는 있는 상태입니다.] - 키리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실패할 경우에 발생하는 책임은 저의 탓이 아니며, 성공했던 수치에 따라 일정량의 금액은 받을 겁니다. 이 부분은 동의 하시는 거죠?] - 크론
[그 정도야 기본이죠. 저도 대리 강화로 먹고 살던 몸인 걸요. 하핫, 그럼 지금 바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 키리
승낙이 떨어지자 어지간히 흥분한 키리의 모습이 여기까지도 보일 지경이다.
그 모습에 크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이것으로 주도권은 온전히 제화에게 주어졌다.
[아뇨, 잠시만 기다리시죠.] - 크론
본디 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는 법 아니겠는가.
제화는 강화를 승낙했지, 아직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을 부른 상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대리 강화 비용으로는 8강까지는 5천 만원, 이후부터는 1억. 12강은 3억. 13강은 5억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겠습니까?] - 크론
······
상당한 거액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상 이 금액 선정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다.
실제로 12강의 유니크 무기는 맘만 먹는다면 수 억은 너끈하게 받아낼 수 있는 거물급 무기고, 13강은 현재로서는 그 값어치를 산정할 수가 없을 정도다.
다만 문제점은 이것이 도박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강화'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제화가 영상을 통해서 무조건 적인 성공의 기적을 선보였다지만 100%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물론 크론의 개념으로는 100%지만}
물론 그러한 사실까지 키리가 결코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실패하면 무기도 날리고 돈도 날릴 수 있는 이 결정.
그렇지만 뜻밖에도 답변은 1분만에 날아왔다.
[상당히 적절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쵸우지 센세도 있고.] - 키리
억 단위의 돈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키리는 결단을 내렸다.
"일단 영상을 보고 온 것은 확실하군."
여하튼 지금 중요한 것은 키리가 자신에게 적이냐, 아니냐로 귀결된다.
앞에서는 웃는 낯으로 다가와서 뒤에서는 칼을 꽂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이다.
막말로 제화가 키리의 무기를 13강까지 강화에 성공시켰는데 그 무기가 자신을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키리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제화로서는 적의 무기를 강화시켜주는 일을 하는 꼴이였으니까.
"복잡할 것 없이 돈버는 건 역시 강화하고 파는게 최고긴 한데."
제화가 순전히 돈 만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굳이 방송을 통해서 자신을 상품화 시키지도 않았다.
그저 무구 제작X에 이르는 단계의 힘을 활용해서 쓸만한 무구를 제작하고, 그것들을 전부 10강 이상 정도의 적절하게 높은 수치로 강화시킨 뒤에 팔아버리는 것만으로도 벌어들이는 돈은 천문학적일 것이였으니까.
다만 그 방법을 취하면 가장 먼저 당면할 첫 번째 문제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고강화 무구를 장비하고 있는 유저들이 떼거지로 고 레벨 몬스터들을 학살하듯이 썰어버리다 보면 제화의 무구를 구매한 유저와 구매하지 못한 유저들간의 격차는 더욱이 크게 벌어지게 될 것이다.
"절대적 강자는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애초에 제화가 100명의 유저들과 백검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미스터리 등급으로 이루어져있는 몬스터 패밀리들의 존재?
확실히 몬스터들의 도움도 얕볼 수는 없다.
몬스터들이 없었더라면 제화도 100명의 유저들을 상대로 했을 때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고 설사 이기더라도 꽤나 많은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제화와 몬스터들의 괴랄한 강함은 고강화 무구를 통해서 얻어진 공격력과 방어력이 공헌이 지대했다.
실제로 제화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거나 동레벨 대의 유저들에게 둘러 쌓여서 집단 린치를 당해도 모기가 문 듯 간지러웠을 뿐이다.
왜?
16강부터 19강까지 강화시킨 판금 계열의 방어구를 덕지덕지 두르고 있는 체력 올인의 유저였으니까.
보통 체력에 모든 스텟을 올인했다면 공격력이 부족하기 마련이지만 제화는 부족한 공격력을 당시 시절 17강의 시초의 망치로 충당시켰으며, 오히려 100명에 이르는 유저들을 장난감 마냥 가지고 놀기까지 했다.
그러한데 돈을 벌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고강화 무구들을 리셋 매니아 등에 올려서 팔아버린다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봐도 뻔하다.
자신을 노릴 수도 있는 강력한 무구를 팔아버리는 꼴이 되어버릴테니까.
안개의 식인꽃을 강화해준 종수나 강화와 대리 제작을 약속한 형식같은 경우에는 결단코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기에 베풀어 준 것이다.
뭐, 당연하게도 공짜는 아니다.
제화가 아무리 게임에서 날아다니는 유저라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성인일 뿐이다.
혹시라도 현실에서 자신에게 간섭하려는 못배운 것들이 있을 수도 있기에 미리 형식을 통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과 연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향이였다.
사회는 인맥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였으니까.
물론 자신의 고강화 무구를 완전히 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돈벌이가 되는 만큼 제화는 자신의 성장 속도에 맞춰서 피해가 미약한 아이템들은 차차 팔아나갈 생각이다.
20강의 초보자용 검을 팔았던 것도 그 이유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114의 공격력은 초보 시절의 제화에게는 넘사벽급의 공격력이었지만 지금의 제화에게는 그저 간지러운 공격일 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키리 녀석과의 사상이 어느정도 나하고는 맞아 떨어지는 것 같군."
60만이 넘는 구독자를 지니고 있는 대형 스트리머 키리 더 맨의 사상.
(강화 실패는 진리이자 균형이다, 물론 나만 빼고.)
이 얼마나 심플한 균형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답변을 기다리는 키리를 향해 제화는 씩 웃었다.
[빠른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혹시 제가 원할 때에 호스트 기능으로 저한테 시청자좀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강화 비용으로 천 만원 할인 해드리겠습니다.] - 크론
[엇,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은 일이죠.] - 키리
그러했기에 제화는 결단을 내렸다.
[제가 가능한 시간 대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크론
하늘 아래 강화의 신을 내세우는 스트리머는 자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60만 구독자를 지닌 키리만큼 먹으직스러운 먹잇감이 어디있겠는가.
안그래도 방송을 통해서 강화를 실패하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은 있었다.
계속 성공만 하다보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정말 좋은 먹잇감이야."
유니크 무기를 실패하는 영상 또한 상당한 지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쵸우지 센세의 절대적인 믿음이 조금은 떨어지겠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만능주의를 배척하고, 물질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으니까.
유니크 무기가 펑- 하고 터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제화의 인기는 한껏 솟아 오를 것이다.
인간미 가득한 모습으로 통쾌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제화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호스트도 받고 돈도 버는데다가 인기도 끌어모을 수 있다.
이거야 말로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꼴 아닌가.
그리고 유니크 무기의 소지자는 최대한 적은 편이 좋다.
그래야 자신이 제작한 무구들이 비싼 값을 자랑할테고, 모든 유저들 간의 균형이 맞춰지는 방향이니까.
"물론 나만 빼고."
본디 균형의 수호자는 강해야 하는 법 아닌가?
@ @ @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도현이라고 합니다."
"김제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악수를 나누면서 도현은 대뜸 펜과 종이부터 내밀었다.
"뭐죠?"
"실례가 안된다면 사인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개인적으로 팬이여서 그렇습니다."
"아······물론이죠."
다른 이에게 사인을 해주는 것은 처음이였기에 나름 색다른 감정이 솟아났다.
하긴 요즘같은 시대에서 인기있는 1인 미디어는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끌어모으기도 했으니까.
"히야,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사인은 처음이라 조금 기분이 요상하긴 하군요."
"헉? 설마 그러면 지금 제가 처음으로 사인을 받은 인물인 겁니까?"
감격에 찬 표정으로 이도현이 쳐다봤지만 제화의 입장으로서는 징그러운 남정네가 볼을 발그레 붉히고 있는 꼴이였기에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우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자신을 좋게 봐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이도현의 드림 컴퓨터 말고도 다른 스폰서들과도 계약을 체결하려면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다행히 제화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도현도 사적인 감정은 배제했다.
"실례했습니다. 사실 제화님의 영상 두 개 다 감명깊게 보았거든요. 사실 저도 더 리셋 월드 유저라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신가요? 나중에 원하시는 무기 있으시면 말하시죠. 특별히 스폰서이시니까 제가 멋들어진 놈으로 직접 제작해드리죠."
"하핫. 말 만이라도 감사드립니다. 우선 저희가 짜온 계약서입니다. 한 번 꼼꼼히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부 보신 뒤 수정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얘기를 통해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도현이 내민 2부의 계약서.
각각 7장씩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A4용지가 묶여 있었는데 계약에 관련된 내용이 세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나쁘지는 않네.'
계약서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제화가 보기에도 나름 신경을 쓴 티가 확 보일 정도로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꺼림칙하게 느껴질 법한 독소 조항이 없다는 점과 계약 기간이 1년으로 짧은 편에 속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