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강화의 신(1)
"지금 뭐하자는건데?"
상다리가 부러질듯 차려진 밥상과 계속 쳐다보기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오는 종수의 모습에 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 아니라면 종수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존재했다.
"다음 방송에서는 무조건 강화다! 그것도 대리 강화!"
"그럴 줄 알았다."
눈을 희번뜩이면서 입을 나불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템귀를 꿈꾸는 녀석치고는 오래 참기는 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에 종수의 아이템을 강화해주기로 약속했을 때가 처음으로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니까 어림 잡아 한 달은 흘렀다.
"그래서 강화하고 싶은 게 대체 뭔데?"
"마이 브로! 역시 말귀가 통해서 좋단 말이지."
"징그럽게 들러붙지 말고 거기서 얘기해."
"으흐흐. 자 봐라. 이것이 나의 애정 가득 담긴 여자친구 님이시다. 장만하느냐고 피 좀 봤지. 크흣!"
히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종수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5 안개의 식인꽃(유니크)]
- 사람을 잡아먹는 안개의 식인꽃의 정수를 모아서 제작한 신묘한 힘이 깃든 단도입니다. 시야를 흐리는 안개를 생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성된 안개는 사용자가 아군으로 인지한 대상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착용제한 : 레벨 39이상
* 내구도 : 110/129
* 공격력 +168
* 힘 +5
* 민첩 +45
* 체력 +10
* 마력 +15
* 식혈食血(패시브) : 생명체를 죽이거나 생명력 100을 제물로 바칠 때마다 민첩 스텟이 3증가합니다. 전투 종료후 1분뒤 해제 최대 중첩 5
* 안개의 늪(액티브) : 시전자 반경 150M에 안개의 늪 필드를 생성합니다. 적 개체로 인식된 이의 시야를 흐리며, 이동 속도를 20%저하시킵니다. 지속 시간 5분 마나 소모 200 쿨타임 20분
'호오.'
백검에게서 얻었던 신체 분쇄자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이템이다.
공격력이야 단도이다보니 더 낮은 것은 당연하다.
대신에 단도는 리치가 짧은 만큼 공격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다.
또한 안개의 늪이라는 스킬과 민첩 스텟을 극대화 시켜주는 식혈食血을 제대로 활용만 한다면 신체 분쇄지 이상의 효율을 뽑아낼 수도 있을 정도다.
"감상이 어때?"
"언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얻은거냐?"
"4일 전에. 나의 노력과 청춘을 불살라서 얻어낸 진귀한 물건이라고."
"응, 금수저."
결론은 돈지랄로 얻어낸 무기라는 소리다.
그렇지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더 리셋 월드에서 공개된 유니크 등급의 무구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고, 가지고 있으리라 예측되는 이들은 대부분이 상위 랭크에 등재된 길드 안에서도 고위급이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값비싸다.
물론 그렇다고 돈 주고 쉽게 구하기도 힘들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앞서다보니 부르는게 곧 금액이였고, 파는 유저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뭐 크론이야 직접 제작하면 되니까 상관 없다.
괜히 자신이 대장장이로 직업을 선택했겠는가.
"그래서 대리 강화로 사용하기에는 어때?"
"나쁘지는 않네."
확실히 유니크 등급의 무기를 대리 강화한다고 방송에 띄우면 상당한 인기를 몰아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여태까지 트위찍이나 옥튜브 등에서 진행되었던 더 리셋 월드의 대리 강화를 컨텐츠로 삼는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으로 추앙받는 것은 레어+등급이었다.
레어+등급과 유니크 등급은 딱 1개의 등급 차이만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니고 있는 가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이였으니까.
"그 말은 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거냐?"
"약속했던 것도 있으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해서 공짜는 아니다."
"에이, 나도 그 정도로 염치 없는 녀석은 아니라고."
종수가 헤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몇 강까지 해주면 만족하겠냐?"
"10강 정도?"
"새끼, 양심 있냐?"
무려 10강의 유니크 무기라니.
방송으로 그런게 송출된다면 장난이 아닌 여파를 가져올 것이다.
뭐, 제화가 마음만 먹으면 10분도 안걸려서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실패할 일은 없겠지만 제화는 늘 그렇듯 보험을 들이는 방식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실패하더라도 나한테 책임은 묻지 말아라. 보상이나 그런 건 전혀 없는거 알지?"
"아마추어도 아니고, 우리가 거래 한 두 번 해보냐."
하긴 여태까지 제화의 손에서 탄생한 행성파괴급 무기가 몇 개 였던가.
종수는 제화가 대리 강화를 승낙하자 난리 블루스를 추면서 캡슐에 올라탔다.
"얌마. 밥은 먹고가야할 거 아니냐."
"너 다 먹어! 지금 곧바로 우편 붙여둘테니까 강화 시키고 보내줘! 나도 방송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하······."
제화는 상에 가득 차려진 치킨과 족발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무슨 돼지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시켜버리면 어떻하냐고.
"일단 먹고 생각하자."
그래도 막상 차려놓은 음식인데 먹기에 앞서서 걱정부터 해서 무엇하겠는가.
먹고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넣기로 결정한 제화는 오랜만에 과식을 즐겼다.
최근 더 리셋 월드에 집중하다보니 불규칙적인 식사를 즐겼으니까 가끔은 배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도 필요했다.
"종수 녀석이 성장하는 것도 길게보면 나한테도 좋은 결과니까."
확실히 최근 들어서 레벨업도 꾸준히 한 상태였고 아이템의 강화도 틈틈히 해준 덕분에 제화도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유저가 연합해서 쳐들어온다고 한들 이겨낼 자신이 있었고, 현재 자신이 있는 사냥터는 여간한 유저는 접근조차 힘든 곳이다.
무기의 내구도가 상하면 수리를 하면 되었고 음식이야 장고 덕분에 여간해서는 신선도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하루 정도의 타임 리프를 전부 쏟아부을 필요도 없다.
그저 일부분만 종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대리 강화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종수 녀석은 돈 거래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기도 했고, 자신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아군이 될 가능성이 높은 종수의 무기를 강화시켜줌으로서 녀석의 입지를 넓힌다면 언젠가는 제화도 베히모스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게 된다.
대리 강화를 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화는 종수에게 빚 하나를 짊어지게 하는 셈이였으니까.
"어후. 배터지겠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제화는 대충 뒷정리를 하고는 캡슐에 올라탔다.
다시금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가기 위해서.
@ @ @
대리 강화.
많은 스트리머들이 행하고 있는 이 컨텐츠는 상당한 인기를 가져다주는 보장된 컨텐츠중 하나다.
솔직히 강화라는 컨텐츠 자체는 다른 방송 플랫폼과 비교하면 별 것 없기는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강화'라고 외치는 것으로 끝나는 컨텐츠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로 인한 결말이야말로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종류였다.
흥과 망.
두 갈래로 극명하게 나뉘어지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사실상 터지는걸 보러오는 거지만."
그 말대로 대리 강화 컨텐츠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강화를 실패하는 장면을 눈에 담기위해서 오는 부류가 많다.
남이 잘되는 꼴을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 반면, 남이 망하는 꼴을 좋아하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강화가 실패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편안하고 올곧은(?) 마음을 얻게 만드는 법이다.
요컨데, 순수한 정신수양을 하러오는 것이 대리 강화 시청자들의 주 목적이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크론의 역사에 있어서 강화가 실패하는 전례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특히나 더 리셋 월드에서 크론은 대리 강화를 컨텐츠로 삼는 다른 스트리머들처럼 대장장이를 직업으로 삼고있는 게스트나 NPC가 필요하지 않다.
자기 자신이 대장장이였으면서 XII에 이르는 단계를 자랑하는 강화 스킬이 있었으니까.
더불어서 행운의 보정까지 겸해서 받는데다가 다른 이들은 있는 것조차 모르는 초능력 타임 리프를 활용한다면 기적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다.
"완벽한 어그로성 조미료도 생겼으니까."
크론은 우편함에서 수령한 안개의 식인꽃을 보았다.
사실 강화 컨텐츠는 굳이 종수가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할 생각이었다.
크론에게는 14강의 신체 분쇄자와 함께 18강의 시초의 망치가 있었으니 이것들을 보여주면서 강화를 시도한다면 제법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적에게로의 위협?
그딴 거는 이미 마음 속에서 배제한지 오래다.
이런걸 꽁꽁 숨겨가면서 방송을 할 거였으면 애초에 스트리머를 시작할 생각도 없었다.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구독자와 팔로우의 숫자는 실질적인 힘이다.
영상의 힘이 있지만 아직은 구독자가 1만 명에 불과한 크론이다.
최대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방향으로 컨텐츠를 짜는 것이 첫 번째 난제다.
그러나 아무래도 초반부터 이런 무지막지한 것을 꺼내보여줄 필요성은 없었다.
자고로 초장부터 강한 것으로 길을 들여놨다가는 여간한 강화 물품을 가져와도 성에 안차게 될 수도 있었다.
"조사도 충분히 했고 이제 남은 것은 내 재량 뿐이지."
크론은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을 통해서 어느정도 조사를 한 상태다.
자신에게 타임 리프라는 초능력과 순식간에 구독자 수를 늘려낼 수 있는 상황이 놓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스트리머의 세계에서 크론은 아직은 초짜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큰 문제는 없다.
크론이 시도하려는 대리 강화를 컨텐츠로 활용하는 스트리머들은 많이 존재한 상태다.
앞서 말했듯이 크론은 그들의 영상을 보면서 대리 강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스트리머들을 관찰했다.
'일단은 컨셉이 중요하다.'
각각의 스트리머들은 강화라는 공통된 분모를 지닌 컨텐츠 속에서도 각자의 독특한 방식을 구사했다.
강화를 하기전에 요상한 브금을 튼다거나, 염불을 외우는 괴상 망측한 녀석도 있었다.
심지어는 메이드 코스프레를 입은 상태로 하면 강화의 성공률이 올라간다는 미신을 믿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코스프레를 밀고 나가는 스트리머가 남자라는 점이지만······.
또한 신기하게도 그런 괴상망측한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하긴 그저 '강화'만 외쳐대는 유저들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뭐라도 하는 것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좋을테니까.
내심 이해가 됬기에 크론도 어떠한 컨셉을 잡을지 고민했다.
최대한 남들과의 차별을 두는 방향이 좋다.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컨셉질.
넌지시 던져진 질문 속에서 크론은 손쉽게 정답을 찾아냈다.
행운을 상징하는 토끼발과 몬스터 패밀리.
이 두개가 엮인 결과, 하나의 정답으로 이어졌다.
토끼발의 화신이라는 이명을 지닌 미스터리 몬스터, 쵸우지가 바로 최고의 정답인 것이다.
(유니크 무기 - +5 안개의 식인꽃 대리 강화 시작합니다. - 쵸우지 센세, 이번 강화는 성공입니까?)
이것이 크론이 내세우는 전략이다.
그 이름하야 마스코트 컨셉이라고 명명 할 수 있으리라.
"시작해볼까."
방송이 시작되자 시청자들이 빠르게 유입되었다.
구독자 1만, 팔로우 3천.
그렇게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크론이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놀라운 속도로 쭉쭉 치고 올라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재벌59세 : 음? 너 대리강화도 했음?
"예. 지금부터 할 생각입니다. 원하신다면 나중에 맡겨주셔도 됩니다. 재벌59세님 꺼는 특별하게 대리 강화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시청자들은 몰라도 재벌59세는 크론에게 처음으로 후원금을 쏴준 데다가 현재까지 가장 많은 후원금을 지원해준 첫 열혈 회원이다.
본디 크론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되도록 잘해주는 편이다.
물론 자금적인 부분으로.
크론은 본격적으로 자금 떙기기를 위해서 대리 강화를 시작하게 된다면 아마 소렌의 아이템 이후에는 총 후원 금액이 높은 사람 순으로 대리 강화를 해 줄 생각도 있었다.
지극히 정상적인 돈미새가 되어줄 자신이 있으니까.
너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좆까라 그래라, 자본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헬조선에서는 돈이 최고다 이 말이야.
공평이고 자시고간에 따질 생각이라면 그 전에 자신에게 공물을 바쳐야할 것 아닌가.
후원을 많이 해주는 열혈 회원들에게 강화로 보상을 해준다면 추가적으로 들어올 후원 금액도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적인 강화의 성공.
이것 하나만으로도 재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조건은 갖췄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재벌59세 : 하는거 봐서 생각해볼게.
"일단은 한 번 보시죠."
크론은 씩 웃어보였다.
이번의 대리 강화 방송을 계속해서 시청하다본다면 갑과 을의 입장은 역전될 것이다.
자신에게 강화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쪽은 시청자.
그 중에서도 재벌들이나 수위를 다투는 랭커들이 크론의 목표다.
자존심 높은 녀석들에게 빛을 지게 만든다면 언젠가는 써먹을 거리가 된다.
'어디······.'
어느정도 시청자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크론도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다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목대로 대리 강화를 할 겁니다."
츠츠무띵 : 근데 진짜 유니크 등급이에요?
레알모드리드 : 바보냐. 어그로 끌려고 과장되게 제목 띄운 거겠지. 끽해봤자 레어 등급일듯.
네다씹이요 : 솔직히 까고 말해서 어떤 멍청이가 유니크 등급을 대리를 맡기냐.
턱구라 : ㄴㄴ 크론이잖아. 어그로 아니고 진짜 일 수도 있음.
시청자들끼리 치고박으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크론은 생각 이상으로 핫한 분위기가 만족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이루어진 수 많은 대리 강화 중에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은 처음이였으니 그 기대감이 어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