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일성 백검(5)
자신이 꿈틀이에게 갇힌 사이에 크론이 나서서 처리한 것인지 아리안느로 추정되는 시체가 뚝배기가 날아간 상태로 널부러져 있었으니까.
"쓸모없는 년."
그래도 육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라 체면상 구해줬거늘.
자신이 없다고해서 금방 죽어버리는 꼴이 심히 어리석었다.
차라리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버티기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아무래도 날 한 번 잡아서 제로 녀석과 함께 잔소리를 마빡터지게 해주기로 마음 먹고는 니겔룸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조건 버티고, 옭아매라."
니겔룸은 일종의 고기 방패다.
나무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녀석답게 기본적으로 튼튼하고 적을 속박시키는 스킬들을 가지고 있기에 최소한 2개체에서 3개체까지는 묶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버 샤프니스. 오러 소드. 요수의 발걸음."
할 수 있는 버프를 죄다 적용시킨 백검이 발을 굴렀다.
주변에서 크론의 몬스터들이 백검을 막아서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최대한의 컨트롤로 회피하고, 그 밖의 공격은 니겔룸이 받아주었다.
'살기는 글렀군.'
크론을 죽이더라도 어차피 자신은 이곳에서 죽는다.
니겔룸은 리빙 소드가 해제되는 순간 자동적으로 역소환 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힘을 방전시킨 자신은 1분도 버티기 힘들 게 될 터.
그렇지만 백검도 자존심이 있다.
적어도 자신이 지정한 대상인 크론의 목을 전리품으로 가져가야만 만족스러울 것만 같았다.
"일격에 네 놈을 죽여주지. 귀기歸期 - 살殺!"
후우우욱!
나름 회심의 일격으로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백검의 공격이다.
무기의 예리함을 극까지 끌어올려주는 오버 샤프니스와 방어를 무시하는 리빙 소드. 공격력을 증폭시켜주는 오러 소드에다가 자신의 최상의 공격 스킬인 살殺을 적용시켰으니 보통의 유저라면 일격에 즉살시킬 수도 있다.
유저의 특성상 제 아무리 뛰어난 무구를 갖춰입었더라도 대형 몬스터급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보유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
그렇지만 크론에게도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불운 주입."
슈아아아아-!
- 행운 수치 145의 스텟치 만큼 지정한 대상의 '힘'을 감소시킵니다. -
- 현재 백검의 힘 스텟은 11 입니다. -
"!!!"
힘의 하락으로 인해 공격력이 크게 감소한 공격을 받아낸 크론이 씩 웃었다.
"새끼. 괜히 1위가 아니라는 거냐. 내 패밀리들을 뚫고 나한테 도달한 것만으로도 놀랍네."
크론도 진심으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론은 이미 백검의 공격에 죽어버렸다.
녀석의 공격이 강하다고는 해도 크론은 고강화 무구를 통한 방어력을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방어력을 뚫고 들어온 공격은 크론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다.
여기서 죽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크론은 주저없이 타임 리프로 죽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렸다.
동시에 아낄 필요성이 없어진 불운 주입을 통해 백검의 '힘'스텟을 약화시킨 것이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
백검은 어이가 없었다.
몬스터들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힘 스텟을 140가량을 깎아버리는 미친 놈이 있을 줄이야.
1:1로는 거의 사기급 스킬이라고 해도 무방할 수준이 아닌가.
'제로는 봐줘야겠어.'
제로가 이상한 스킬 때문에 진거라고 박박 우겼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물론 어이없는 것은 크론 역시 마찬가지다.
고강화 무구를 둘둘말이한 덕분에 여간한 공격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크론이다.
그런데 방어를 무시한 일격에 죽어버렸으니 그 기분이 어땠을까.
힘을 크게 감소시킨 상태지만 크론은 백검과 정면으로 승부를 펼쳐 줄 생각이 없었다.
현재로서는 몬스터 패밀리들이 괴상한 나무에게 묶여있는 상태였지만 크론에게는 1:1의 또다른 최강자, 장고가 있었다.
"장고, 집어삼키기."
"건방진 미믹 따위가······."
백검이 발악했지만 숨어있던 장고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백검을 가둔 크론은 만약 현재의 전투 상황이 백검과의 1:1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타임 리프와 타임 스톱.
거기에 고강화 무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백검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괜히 랭킹 1위가 아니라는 듯이 크론을 일격에 즉살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괴물.
녀석은 진정한 규격외의 괴물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기지 못 할 상대는 아니지."
애초에 크론이 백검과 1:1의 교전을 펼쳐줄 리가 없었다.
크론이 자신의 성장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미스터리 몬스터들을 괜히 길들였겠는가.
치사하다고 말해도 좋다.
요즘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평이란 단어 따위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 말이였으니.
백검이 전투 직업류를 2개 갖췄듯이, 크론은 생활직과 테이머라는 직업으로서 백검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장고, 뱉어."
장고에게서 자유를 되찾은 백검은 전의를 끌어올렸지만 이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론의 주변으로 자리를 잡은 크론의 패밀리들을 뚫고 갈 정도의 능력치가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방어력 무시의 특성을 지닌 리빙 소드의 지속 시간은 끝난지 오래였고, 리빙 데드의 망령인 니겔룸도 그로인해서 역소환 되었다.
"인정하지."
백검이 입가를 이죽이며 웃었다.
이번의 전투는 자신이 졌다.
치사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 1위를 탈환하고 싶어하는 다량의 유저들의 견제, 자기보다 몇 배나 많은 몬스터 및 유저 등.
백검의 전투는 늘 불리하게 펼쳐지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으니까.
"내가 다음에 널 이길 때까지, 네가 랭킹 1위다."
"어이, 지금도 가뜩이나 언플 때문에 노려지는 상황인데 무서운 소리하지 마쇼."
"걱정마라. 방송은 처음부터 플레이되지 않았고, 네가 1위라는 것은 나만이 알고 있을테니까."
자신을 이긴 것만으로도, 백검은 크론이 마음에 들었다.
약육강식.
강자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은 강자의 마음이다.
"죽여라. 다만, 곱게 죽어 줄 생각은 없다."
"그런 자세 아주 좋아."
구질구질하게 살려달라거나 도망치려는 속셈을 가지는 등의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1:1의 일기토를 펼쳐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조져. 그리고 마지막 일격은 내가 한다."
몬스터 패밀리에게 둘러쌓여서 난타질을 당한 백검이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빠졌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는 백검을 향해서 크론은 양 손으로 움켜쥔 시초의 망치에 온 힘을 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명색이 랭킹 1위의 뚝배기인데 맛깔나게 먹어줘야 할 것 아니겠는가.
마음같아서는 포식 스킬로 녀석의 칭호를 먹어치우고 싶었지만, 소켓이 꽉 차 있는 상태여서 불가능했다.
랭킹 1위가 자신에게 찾아올 줄 예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다음에 또 보지. 재밌었다."
"그래."
씩 웃으며 휘둘러진 망치가 시원스럽게 백검의 뚝배기를 날려주었다.
동시에 사망처리된 백검의 드랍품을 살펴보던 크론의 입가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개인 유저 랭킹 1위의 아이템.
여간한 몬스터들의 드랍 아이템과는 비교도 안될 값진 아이템이라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타임 리프.'
@ @ @
접속기기인 캡슐에서 몸을 일으킨 백수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지만 실로 오래간만에 죽음을 겪어서 의도치 않게 1시간의 자유 시간이 생겨버렸다.
어떤 아이템이 드랍되었을 지 새삼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팝콘을 먹으면서 얼음 동동 음료를 마시고 있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론······."
대장장이이자 테이머, 크론.
자신의 길드원인 제로를 이겼다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트롤왕을 길들였을때 처음으로 호기심이 생겼었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생겼을뿐, 그 관심을 풀기위해서 시간을 들이지는 않았다.
시간은 곧 돈이다.
백수호의 게임 캐릭터, 백검에게 있어서 시간은 허투루 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가 압도적인 레벨 차이로 랭킹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기본 토대는 엄연히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앞서 있었던 덕분이었으니까.
물론 시간만 투자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그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했다.
우선 백검은 파티 플레이를 극히 싫어하며, 또한 혐오했다.
"거치적 거린다."
파티 플레이를 한다면 확실히 남들보다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겠지만 백검의 입장으로서는 그저 덜떨어진 모지리들을 끼고 사냥하는 셈이었기에 오히려 방해였다.
손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행동은 철저히 배제하던 백검은 착실하게 레벨을 올려서 랭킹 1위를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한 백검은 굳이 자신의 비법을 숨기지 않고 여지없이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숨기지 않는 이유?
이유랄 것도 없다.
따라할 테면 따라해보라는 것이 백검의 방식이다.
아무리 날고 기면서 돈다발을 퍼붓는 유저라 할 지라도 네임드는 기본 간식이요, 보스급 몬스터와 미스터리 몬스터를 상대로 홀로 공략하는 백검의 전투를 그 누가 따라할 수 있겠는가.
장비가 올 20강이거나 장비의 등급을 유니크로 치장하고 있는 꿈같은 이야기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면 백검외에 이것을 실현시킬만한 인물은 없다고봐도 무방하리라.
압도적인 전투.
그것이 백검의 방송 컨텐츠 그 자체였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줌으로서 백검의 방송은 시청자들이 늘 꽉꽉 들어차있었다.
그의 놀라운 게임센스와 독단력. 그리고 시크한 매력을 감상하기 위해서.
늘 앞만 보고 달려가던 백검은 늘 고대하고 기다렸었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유저.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자신과 붙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을 갖춘 유저와 한 판 치열하게 붙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잠시 불이 지펴졌다가 꺼졌던 호기심의 불이 다시금 켜지는 일이 발생했다.
"신기한 일이군."
사신 데오르.
정보계에서도 유명한 업주인 녀석은 백검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검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 스킬중 오버 샤프니스와 요수의 발걸음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데오르에게 구매한 정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던전 정보를 구매함으로서 각종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데오르의 정보 덕이 컸었다.
정보계에서는 철두철미한 데오르가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혀 관계없을 법한 크론을 적대했다.
이루벤에서 펼쳐지는 언론 플레이에 데오르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정보의 끈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일이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어째서 데오르와 크론의 관계가 악화되었느냐는 점이다.
본래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들어가는 문제에 관해서는 백검은 나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래도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무시하고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을 더욱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대상이 크론이라는 부분 때문에 백검은 개시된 데오르의 언플 정보를 파고들어가기로 했다.
내용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