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일성 백검(4)
그를 후원해주는 대형 스폰서가 소위 말하는 '돈지랄'을 통해서 북두칠성을 만들어내고 백검에게 건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백검에게 게임은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길드가 있다는 것은 그에 소속된 이들의 무한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또한 백검은 돈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다.
"크론이라······."
게임계에서는 하나의 전설이라고도 칭해지는 백검.
여간해서는 타 유저에게 눈길도 주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트롤왕을 길들였을 때 조금이지만 호기심을 가졌었다.
백검은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부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드디어 만났군."
처음으로 크론을 정면에서 마주한 백검이 든 생각은 호승심이다.
녀석은 자신보다 약하다.
그렇지만 100명의 유저들을 상대로 무난하게 이겼다.
그것이 미스터리 몬스터들의 힘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몬스터의 힘은 곧 그것의 주인인 테이머의 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
같은 독불장군으로서, 네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
이른바 치킨 게임을 해보고 싶어졌다.
"아리안느."
"오빠······!"
자신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아리안느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늘 잔소리를 마빡터지게 하는 길마여도 길드원을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
"거치적 거리니까 꺼져있어."
"······."
기는 개뿔.
타고난 독불장군이 어디가겠는가.
사실 이래서 아리안느가 백검에게 다가가고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외형과 몸매가 무기로 통하지 않는 벽창호.
이성인 역귀의 경우에는 화는 내지만 나름 애교를 받아주는 편이기에 종종 말을 섞어준다.
반면에 백검은? 벽창호인데다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잔소리 대마왕이다.
솔직히 자신 정도면 연예인 급은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외모로는 상급에 해당된다.
외모랑 인기 스트리머라는 자리도 있는데 좀 좋게 말해주면 덧나는 건가?
불을 부풀리며 쳐다봐도 이미 백검의 관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아리안느다.
크론을 보면서 백검은 고조되어가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100명의 유저들에게 둘러쌓였다고 해서 먼저 죽지 않기를 빌면서 달려왔는데 오히려 100명의 유저들을 초전박살을 내버리다니.
역시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어디 재밌게 놀아보자고! 요수의 발걸음."
눈을 희번뜩인 백검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요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눈을 끔뻑이는 사이에 백검의 신체가 크론의 앞까지 당도했다.
"사검死劍 - 육사분해肉死分解"
웅혼한 기운을 품은 백검의 공격에 크론의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이게 무슨······!"
여간한 공격에는 움찔거리지도 않았던 크론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백검의 공격은 끊이지가 않았기에 크론은 금빛 나래를 통해 뒤로 물러섰다.
'저런 괴물같은 녀석이 있나.'
사실 크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간에 백검의 공격력과 스피드에 놀란 것은 사실이다.
일단 하나 확실한 것은 100명의 유저들보다도 1명인 백검이 더 위협적이라는 소리다.
그야말로 랭킹 1위. 규격외의 존재.
그렇지만 크론은 질 것같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백검 못지 않게 자신 역시 타임 리프라는 사기적인 초능력이 곁에 있기에 규격외를 넘어선 사기꾼이니까.
무엇보다도 크론에게는 고강화 무구를 갖춘 든든한 몬스터 패밀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론은 무구를 공급해주고 강화해주는 대장장이였으며, 동시에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테이머였다.
"플랜C다! 목표는 저 녀석!"
플랜C는 요약하자면 '일점사'다.
한 놈만 주구장창 공격해서 죽여버리는 것으로 최대한 위협이 돼는 적이 나타나면 사용하는 크론의 명령이다.
장고를 제외한 6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모습에 아리안느가 어이없다는듯 혀를 찼다.
"와, 진짜 치사하다."
어이어이, 이걸 치사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명색이 테이머의 직업적 특성인데 부정당하니 뭔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솔직한 말로 그런식으로 따지면 아리안느 역시 2마리의 소환체를 전투에 참여시켰으니 내로남불을 확실하게 실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르르르릉!"
[쇼닉이 전투의 흥분에 몸을 맡깁니다.]
"큐웃!"
[쵸우지는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백검에게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은 쇼닉이다.
정면으로 윈드 스피어를 꽂아넣는 것을 시작으로 어금니를 들이밀었고, 그 뒤를 이어서 쵸우지의 육탄 전차가 가세했다.
백검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속도와 데미지를 자랑하는 일격들이다.
속도가 상당하기에 아까 사용했던 요수의 발걸음이 없다면 피할 수 없다.
쿨타임의 제한인지 아니면 아끼기 위해서인지 백검의 선택은 반격이었다.
스걱-!
백검의 일격에 쇼닉은 가뿐하게 피했고, 쵸우지는 육탄 전차 상태로 일격을 받았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 했다.
토끼발의 축복과 가호 덕분에 대부분의 피해를 면역시키는데다가 쵸우지의 방어구는 무려 13강을 자랑하는 레어+의 상등품이였으니까.
쇼닉과 쵸우지의 뒤를 이어 좀과 하리보가 백검을 향해 거검과 젤리 탄환을 들이밀었다.
"재미있는 녀석들이군."
전투의 흥에 취한 백검의 기분이 한껏 업됬다.
그래,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싸울맛 좀 나지 않겠는가.
"오버 샤프니스. 오러 소드."
백검의 검이 번뜩이며 웅혼한 기운을 발산했다.
유일 스킬 '오버 샤프니스'와 기사를 직업으로 삼으면 얻게돼는 기본 스킬인 '오러 소드'를 동시에 적용시킨 검의 예리함은 지극히 안정돼고, 예리하다.
이 정도라면 제까짓게 보스급 몬스터건 미스터리 몬스터건 간에 가죽 도려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백검은 이러한 패턴으로 미스터리 몬스터와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조그마한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
그래도 나름 유일 스킬 버프도 활용한 일격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자신을 향해 어쩌라는듯 눈을 부라리는 시독 트롤 좀의 작태였다.
분명히 데미지는 제대로 들어갔다.
15강에 이르른 유니크 방어구인 초 강철 갑옷의 방어력은 놀랍도록 커다란 그 부피만큼이나 상상을 뛰어넘는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백검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낸 것이다.
생명력이 적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높은 생명력 탓에 줄어든 티도 안났다.
"흐음······."
백검이 침음을 흘렸다.
공격이 안통하는 무식한 탱커형 몬스터.
보통 게임 속에서 가장 무서운 적으로 분류되는 것은 압도적인 딜링을 갖춘 녀석들보다도 뒤지지도 않으면서 공격력도 만만찮은 녀석들이다.
이건 뭐 무시하자니 내가 죽을 것 같고, 무시를 하지 않자니 원하는 대상을 칠 수가 없다.
제 아무리 게임 센스가 탁월하고 랭킹 1위의 유저라고는 하지만 저런 류의 상대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물론 공략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구가 제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지만 공격을 지속하다보면 무구의 내구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구도를 빠르게 깎아서 장비를 착용못시키는 상태로 만들기만 한다면 승리는 백검에게로 떨어진다.
허나 그 방법은 현 상태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좀만 상대하는 상황이라면 귀를 후비면서 할 수 있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좀 말고도 거물급 미스터리 몬스터들이 백검을 향해 강렬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상태였다.
"좀은, 네 녀석 쓰러트린다!"
"생명력의 수준이 돼지급이라 이건가."
혀를 찬 백검이 검을 휘둘렀다.
공격이 안통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좀에 이어서 하리보가 달려들었다.
숫자적 우위와 장비적 우위를 토대로 크론의 몬스터 패밀리가 압도적으로 백검을 밀어붙였다.
"역시 장고표 차가운 팝콘이 최고야."
"큐르르르-"
[장고가 흡족해합니다.]
합법적인 다구리를 지켜보면서 크론은 '꿀잼각'을 외치며 팝콘을 입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저런 개같은······."
완벽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에 백검이 분노했다.
랭킹 1위를 헛으로 단 게 아니라는듯 속도를 폭발시키려고 했지만 기가막힌 타이밍에 땅으로 올라온 꿈틀이의 기습 공격에 백검의 육체가 집어삼켜졌다.
카그그그극!
"거슬린다."
입 안 전체가 날카로운 이빨들로 구성된 꿈틀이에게 먹힌 것은 백검으로서도 치명적인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생명력을 보면서 백검은 우선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리빙 소드."
끼아아아아-!
악령의 기운이 검으로 스며들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백검은 쯧하고 혀를 찼다.
리빙 소드는 웬만하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기에 아껴두었던 것인데 이런 곳에서 쓰게되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유일 스킬인 오버 샤프니스와 달리 리빙 소드는 그 사용에 있어서 제약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우선 쿨타임도 6시간이나 되는 주제에 지속 시간은 고작 3분이다.
게다가 사용시 악령이 깃든다는 설정 탓인지 검의 내구도도 상당히 상해서 이를 수리하려면 꽤나 골치가 아팠다.
허나 그러한 패널티가 적용되는 대신에 얻어지는 효과도 상당하다.
우선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효과중에는 정신 형태로 공격력을 치환 시켜주기에 '방어력 무시'를 통한 공격이 가능해졌고, 무엇보다도 리빙 소드에 마무리 일격을 당한 존재의 혼을 토대로한 리빙 소드의 망령, 리빙 데드로 변환시켜서 일시적으로 소환을 가능케 해준다.
물론 소환은 리빙 소드가 지속 중일 때에만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강력한 존재를 망령으로서 다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이다.
아직은 리빙 소드의 단계가 II이기에 한 마리의 리빙 데드만 소환이 가능한데다가 지속 시간도 3분 밖에 안되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는 데에는 조금의 도움이 될 것이다.
"건방진 새끼."
처음에는 몬스터들부터 정리하고 크론을 죽일 생각이었지만 생각외로 너무나도 강력한 몬스터들로 인해서 백검은 방향을 바꾸었다.
자신이 타격을 입더라도 몬스터들의 벽을 뚫고나가 크론을 죽일 생각으로.
"리빙 데드의 망령 - 삼록수의 껍질 니겔룸."
얼마전에 죽였던 미스터리 몬스터 니겔룸이 좀비의 형태로 등장했다.
살아생 전의 힘을 전부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방어적인 특성이 상당한 니겔룸 특유의 껍질을 활성화한다면 몬스터들의 일격을 어느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너만 다구리 깔 수 있는게 아니라고."
어차피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
그렇다면 우선은 자신에게서 호기심과 분노를 일으킨 크론만큼은 죽이고 죽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은 지렁이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건방진 지렁아, 속살 부터 썩어문드러져 죽기 싫다면 뱉는 것이 좋을 거다. 사검死劍 - 육사분해肉死分解"
리빙 소드가 적용된 백검의 검과 니겔룸의 칼처럼 벼려진 이파리가 꿈틀이의 안 쪽 살을 쉴새없이 베었다.
"끼, 끼에에에엑!"
버텨보려고 상당히 애썼지만 리빙 소드의 추가 효과인 역병으로 인해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 꿈틀이가 결국에는 백검을 게워냈다.
꿈틀이에게서 벗어난 백검은 우선 크론의 위치부터 파악했다.
이제는 얼음까지 동동 띄운 음료를 홀짝이는 모습에 백검의 열이 뻗쳤다.
그 밖에 변화된 상황은 아무래도 아리안느의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