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일성 백검(3)
"히이이이익!"
퍼억!
기겁을 한 유저의 머리통이 박살나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 카오 상태가 되셨습니다. 마을의 경비병들과 일시적으로 적대 상태가 됩니다. 사망시 아이템 드랍율이 높아집니다. -
- 카르마 수치가 상승합니다. -
크론의 몸에 검붉은 빛이 감돌았다.
카오를 상징하는 표식에 크론은 혀를 찼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100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도 아니고, 적은 인원을 살해하면서 오른 카르마 수치는 크론의 사냥 속도라면 오늘 안에 충분히 카오 상태를 해제할 자신이 있었다.
"그럼······."
유저를 처리한 크론은 다시금 무의 불가시화를 사용했다.
무의 불가시화의 경우에는 장고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져온다고 보면 생각하기 편했다.
상위격에 해당하는 은신 효과와 동시에 이 상태에 접어들면 이동 속도가 크게 증가하며 주변의 오감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부가적으로 따라왔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우선 가장 큰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불가시화 상태일 때에는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은신 계열의 스킬을 사용하는 데에는 단순히 지정한 대상을 탐색 및 도청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습을 통해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물론 크론에게 있어서는 큰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우월한 스텟이 뒷받침 되어주기에 크론에게 접근을 허용한 유저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도주 능력이 있다고 한들 바람 걷기가 있는 크론에게서 도주하는 것은 결단코 무리라고 보아도 된다.
"쇼닉. 도주하는 유저들을 막아. 쵸우지와 하리보가 쇼닉을 돕는다."
눈치껏 크론의 반대 쪽 방향으로 이동했던 장고가 몬스터들을 뱉어냈다.
빠르게 튀어나온 쇼닉이 종횡무진하면서 도망치는 유저들의 이동을 억제시켰고, 뒤따른 쵸우지와 하리보가 유저들의 최후를 마무리 지었다.
숨어있던 유저들의 숫자는 대략 7명으로서, 이 정도의 숫자라면 오늘 안에 사냥을 통해서 충분히 카르마 수치를 낮을 수 있을 것이었다.
"데오르의 언플이 환상적이긴 한 것 같네. 나 같으면 헛된 꿈 꿀 시간에 레벨업을 하겠다."
"으, 응! 다음부터는 레벨업을 하도록······."
"일단 죽고 생각해."
파각!
간잽이 유저의 특성답게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요량으로 크론을 꼬드겨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남녀 평등을 지향하는 크론답게 남여를 막론하고 일타 일뚝의 진리를 전파하는 중이었다.
물론 유저들 중에는 크론처럼 규격외의 유저도 존재하는 법이다.
"호오······."
자신의 뚝배기 어택을 막아내는 유저의 모습에 크론은 한 번 감탄했고, 여전히 과시하고 있는 아찔한 몸매에 두 번 감탄했다.
북두칠성의 육성 아리안느.
그렇지만 상대가 안좋았다.
이전에야 불운 주입을 사용하면서 눌렀던 북두칠성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1:1이 펼쳐지는 구도 속에서는 굳이 불운 주입을 사용할 필요성도 없었다.
"힘 좀 빼주면 안될까?"
"응 안돼."
크론의 무지막지한 힘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를 악문 모습이 심히 애처롭기까지 했다.
고운 이맛살이 찌푸려지기는 했지만 봐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안느는 자신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리안느를 쳐죽이는데에 있어서 굳이 상세 설명을 해 줄 의미가 없다고 보면된다.
자신이 불리해지는 상황 속이었다면 언제 뒤통수를 후려맞을 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후우우욱! 카앙!
크론의 무기는 시초의 망치 뿐만이 아니다.
금빛 나래 태도까지 더해지자 버티기가 불가능 하다는 판단을 내린 아리안느가 다급해졌다.
"우리 마, 말로 하자! 나 진짜 너 공격할 의도가 없었어!"
"무리. 그럼 진작에 면전으로 나와서 의중을 말했어야지."
"아후우! 그렇게 많이 몰려있는데 나가서 개 쪽 받고 물러설 수는 없잖아! 방송도 켜두지 않았고, 저장해둔 영상은 삭제할테니까 제발, 제발 좀!"
"영상은 퍼져도 상관없어. 아니, 애초에 내가 먼저 퍼트릴거라서."
데오르의 언플을 통해서 상당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크론이다.
여기에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들을 붕괴시키는 크론의 전투 장면도 곁들인다면 인기 영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크론이 관심종자인 것은 아니지만 옥튜브의 조회수로 돈도 벌고 자신의 가치도 올리고. 1석 2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곱게 죽자."
보통의 유저들이라면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백검의 길드, 북두칠성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개 길드원들을 죽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육성인 아리안느를 죽이는 것은 명백한 대적 행위일테니까.
그렇지만 이미 앞뒤 생각하는 것은 잊어먹은 크론이다.
그런것 전부 따졌으면 애초에 정보상을 죽이는 짓도 하지 않았으리라.
"진짜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래도 명색이 육성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리안느다.
날카롭게 크론을 째려본 아리안느가 칼을 회수했다.
동시에 아리안느를 내려치던 시초의 망치는 곧장 바닥을 내리쳤다.
"공간 이동인가."
보통 원거리 공격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라면 접근방지용으로 한 두 개쯤 가지고 있었기에 크론은 당황하지 않았다.
크론 역시 공간 이동계열의 스킬로 금빛 나래가 있었으니까.
다만, 아리안느가 공간 이동한 거리는 40M정도다.
금빛 나래의 한계 이동 수치가 20M이기에 공간 이동을 통한 추적으로는 크론이 한 수 접어줘야한다.
'불운 주입을 사용해야되나.'
불운 주입으로 아리안느의 민첩을 낮춘다면 잡는 것 쯤은 일도 아니다.
허나 불운 주입의 쿨타임은 긴 편에 속했으니 지금은 아껴두는 것이 좋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
조금 수고를 들이더라도 쇼닉의 헤이스트가 적용된 상태에서 유일 스킬인 바람 걷기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냥 곱게 죽도록 하지. 안그러면 꿈틀이 입 속으로 친히 넣어줄까?"
"······진짜 꼭 싸워야만 하겠어? 내 말을 조금도 들어줄 생각이 없는거야? 응?"
"안돼. 그냥 죽어."
나름 애교 섞인 말투였지만 크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거 진짜 앞 뒤 꽉막힌 벽창호같은 새끼! 그래, 해보자 이거야! 소환, 월랑月狼 일랑日狼."
아우우우우-!
아리안느가 지정한 위치에 두 마리의 쌍둥이 늑대가 소환되었다.
나름 위협적인 모습을 자랑했지만 크론이 소유한 푸른 늑대, 쇼닉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녀석들이다.
"물어! 아주 그냥 찢어발겨버려!"
컹컹!
근접전은 소환물에게 맡기고, 원거리 견제를 통한 전투 방식이라.
확실히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지금까지 사용될 만큼 상당히 효율적인 방법이다.
게임 스트리머로 활동하면서 벌어들인 금액을 투자했다면 월랑月狼과 일랑日狼이라 불린 늑대들의 강함은 일개 유저들을 간단히 찢어발겼을 것이다.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쇼닉. 참교육 좀 해줘라."
"크르르르릉!"
바람을 걷는 자라는 이명답게 득달같이 달려든 쇼닉이 월랑月狼과 일랑日狼을 가지고 놀았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윈드 커터, 윈드 스피어를 통한 원거리 공격을 퍼부어대는 통에 폼나게 등장한 월랑月狼과 일랑日狼은 터무니없게 역소환되었다.
"이런 개새끼가!"
빠른 속도로 자신의 뒤를 쫒아오는 쇼닉의 모습에 혀를 찬 아리안느가 다시금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단순한 몬스터라면 처리하고 가겠지만 쇼닉은 미스터리 몬스터로서 생명력도 그리 낮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쇼닉을 처리하려면 아리안느로서는 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겠지만 아리안느의 공간 이동쯤은 충분히 예상한 크론이다.
"금빛 나래."
금빛 나래로 20M를 건너뛰고, 남은 거리는 바람 걷기를 통해서 추적한다.
아리안느의 뒤를 잡은 크론은 주저없이 망치를 휘둘렀다.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한 아리안느의 뚝배기 역시 한 방이다.
제 아무리 길드의 간부라고 해도 일타 일뚝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
그렇지만 그 순간 크론은 인기척을 느꼈다.
바람 걷기를 사용하는 자신과 맞먹는 속도로 달려드는 존재.
상당한 기세에 크론은 아리안느를 잡는 것보다 달려드는 존재를 향해 공격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100명의 유저들을 상대로 했을 때보다 크론은 더욱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쳐내졌기 때문이다.
자랑이기는 하지만 현재 크론의 공격력은 공성병기나 마찬가지다.
17강의 시초의 망치는 20강의 초보자용 검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력을 지닌 무기였다.
게임 속에서 수치란 절대적이다.
그러한 크론의 일격을 방어하려면 압도적으로 힘의 스텟이 높거나 타고난 게임 센스를 지닌 상대가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상대하는 유저를 본 크론은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듯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유저.
"네가 크론이냐?"
더 리셋 월드를 플레이 하는 유저라면 이 녀석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인기 스트리머이자 더 리셋 월드에서 독보적으로 앞서나간 개인 랭킹 1위를 섭권하고 있는 유저였으니까.
"일단 한 판 붙어보자."
일성 백검.
녀석이 크론을 맞이해주었다.
@ @ @
북두칠성의 길드 마스터이기도 한 그의 존재는 더 리셋 월드가 나오기 이전의 PC게임에서부터 유명세를 타고났다.
기가 찰 정도로 노련한 게임 실력과 판단, 군더더기 없는 행동을 토대로 백검은 30명이 도전해도 사냥하기 힘든 보스를 단신으로 쓰러트린 경험도 있었다.
혼자인 영향으로 플레이 시간이 다소 길어지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클리어했느냐, 안했느냐인 법이니까.
그리고 애초에 그 누가 30명이 레이드하는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상대하는 짓을 쉽게 시도하겠는가.
여하튼 백검은 타 스트리머들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했다.
보통 어그로를 끌면서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스트리머들과는 다르게 백검은 오로지 실력이었다.
순수한 무력과 타고난 게임 센스.
평범한 유저들은 감히 떠올릴 수 있어도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사냥 방식을 고수하며 늘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를 단독으로 사냥했다.
네임드와 보스급은 기본이였으며, 미스터리 몬스터들도 혼자서 사냥하기 일상이었을 정도다.
그리고 그러한 입지는 가상현실게임 더 리셋 월드에 와서 더욱 넓어졌다.
단순한 마우스와 키보드를 통한 활동이 아닌, VR시스템을 접목시킨 가상현실 속에서 백검은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게다가 백검은 혼자 전투에 임하지만 그 뒤에는 그를 후원해주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본래 그는 다른 이들을 챙기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독불장군중 하나였다.
사실 지금도 독불장군이기는 했다.
길드를 만들었고, 길드 마스터라는 자리에 있지만 사실 북두칠성은 백검의 주도하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