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일성 백검(2)
100명이 넘어가는 유저들을 상대함에도 불구하고 크론과 몬스터 패밀리들은 전혀 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행운의 동전과 행운의 정령을 사용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크론은 비교적 쿨타임이 짧은 행운의 요정만을 사용하며 종횡무진 날뛰었다.
이제는 먹잇감에서 사냥꾼으로 탈바꿈한 크론은 생성된 바람을 타면서 달아나는 유저들을 처단했다.
"크아아악!"
"무슨 유저가 저렇게 강하냐고!"
"마, 말도 안되는······."
"으드득! 빠드드득!"
크론의 무력 앞에 속절없이 죽어나간 유저들은 한풀이 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애시당초에 자신들이 벌인 일이다.
굳이 봐줄 이유도 없었고, 그들을 이해해 줄 생각조차 없다.
자신을 노렸으니, 크론도 그들을 죽여서 전리품을 취해도 된다.
정당방위가 성립되었으니 카오 상태도 되지않는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무엇있으랴.
뚝배기를 부수고, 부수고, 부수고.
몇 번을 부쉈는지 세기도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줄지 않는 물량에 크론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후, 고맙게도 진짜 떼거지로 몰려왔네."
싫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돈다발을 들고오는 유저들을 처리하면서 얻는 이익적인 부분은 몬스터들의 전리품과는 다르다.
그들 하나하나가 웬만한 네임드 급 몬스터였으며, 간혹 알짜배기 아이템을 드랍하는 경우에는 보스급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소위 말하자면 개이득인 셈이다.
"이런 씨발!"
"두고보자!"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자 유저들은 전투가 아닌 도주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전부 도주해버리는 상황 속에서 그들을 크론이 놓칠리가 없었다.
몬스터 패밀리 6마리와 크론 본인이 합치면 7개의 손만 있는 셈이지만, 속도 면에서 유저에게 밀릴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하나의 격 자체가 남달랐고, 고강화 무구들의 버프까지 더해진 미스터리 몬스터들을 그 누가 막을쏘냐!
콰득! 콰드득!
파가각!
와해되어 버린 그룹을 마무리 짓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뺏어먹는 일만큼 손쉬웠다.
모든 유저들의 시체는 우리들의 샛별 청소부 꿈틀이에게 맡긴 크론은 상태를 정비했다.
난전에서 크론이 처리한 유저들의 숫자는 28명.
그 과정 속에서 크론의 생명력은 76%까지 떨어졌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최대한 회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
최강의 버프 스킬인 행운의 동전과 정령을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결코 적은 양의 피해량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친 녀석은 없지?"
"좀은, 간지러웠을 뿐이다."
"다들 약해빠졌어. 차라리 주인하고 1:1로 붙었을 때가 더 긴장감 넘쳤다고 생각될 정도다."
고강화 유니크 무구를 2개나 갖춘데다가 본래 종족이 트롤이었던 좀은 당연히 생채기도 안난 수준이었고, 하리보의 경우에는 슬라임의 특성상 물리 피해에는 대부분 면역인데다가 육체 조작을 통해서 몸을 나눌 수도 있었으니 피해가 상당량 분산되었을 것이다.
쵸우지야 토끼발의 가호와 축복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공격이 면역되었고, 쇼닉은 워낙 빨라서 제대로된 공격에 적중될 일이 없었다.
······꿈틀이야 뭐 그 크기가 상당하다보니 공격 당하는 면적도 큰 편이다.
보통의 몬스터라면 죽었어야할 데미지임에도 불구하고 크론이 제작해준 유니크 방어구인 '+11 행운을 품은 강철의 점보'와 지하의 폭식자라는 이명에 걸맞게 생물체를 포식하는 것으로 생명력을 회복하는 특징 덕분에 상당한 튼튼함을 자랑했다.
장고야 원래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으니 공격받을 일도 없었다.
"끼우우웅!"
[쵸우지가 칭찬을 요구합니다.]
유독 크론에게 짙은 애정을 원하는 쵸우지가 껌딱지마냥 크론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흰색의 보들보들한 털이기는 하지만 가시 갑옷을 입은 상태라서 찔리면 꽤나 아프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론이 직접 제작하고 한 땀 한 땀 강화를 적용시킨 걸작품이였기에.
"그래, 잘했다. 잘했어."
가시를 피해서 복실복실한 쵸우지의 머리를 쓰다듬은 크론은 자신의 몬스터 패밀리들을 바라보았다.
보스급과 미스터리 급의 몬스터들이 제대로된 고강화 무구를 갖추고 뭉친다면 그야말로 사기적인 군세라 할 수 있다.
'테이머를 선택한 것이 정답이었어.'
이론적으로야 충분히 가늠은 했었지만 아무래도 이론과 실현은 한 끝 차이라고 해도 그 궤의 차이가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이번의 전투로 크론의 이론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유저들이 아무리 몰려온들, 뭉쳐있는 보스들과 미스터리 몬스터들은 어쩔 도리가 없을테니까.
굳이 2페이즈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100명의 유저들이라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오합지졸인데다가 시시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보자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 대부분이 데오르의 언플에 낚여서 욕심을 부린 결과물이였지, 실제로 제대로된 랭커였다면 자신을 노리고 올 시간에 오히려 레벨업 하는 것에 몰두했을 것이다.
"호오······."
전리품을 정산한 크론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 623,890골드 -
- +2 자빔의 검(매직+) -
- +3 징 박힌 철 장갑(레어) -
- +7 대지의 기운이 담긴 억겁의 검(레어+)
- +6 불꽃 이어링(매직+)
······.
척 보기에도 막대한 양의 골드와 끝이 보이지 않는 아이템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래서 괜히 유저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PK유저, 속칭 머더러가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이 흥미와 재미를 위해서 사냥을 할 터지만 이런 부가적인 옵션 때문에 더욱 손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일 터였다.
사망한 유저가 드랍하는 전리품의 가치와 그 차이가 몬스터와는 질 적으로나 양 적으로나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당연하다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아무리 듣보잡 유저라고 해도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캐릭터에 애정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솔직히 게임하는 유저들 치고 현질 한 번 안해본 유저 찾기 힘들 거다.
단순하게 캐릭터의 외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돈을 투자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재의 E-스포츠 시장이었으니까.
크론으로서는 이번의 역대급 전리품이 마음에 쏙 들 수 밖에 없었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전리품도 전리품이지만 경험치도 상당히 많이 주었다.
몬스터 패밀리들의 경험치도 상당량 오른 상태였고, 크론같은 경우에는 레벨도 1개 올라갔다.
유저들과의 격전 이전에 미리 클리어해두었던 6개의 던전을 통해서 42레벨에 도달했었던 크론의 레벨은 벌써 43에 이르고 있었다.
이거, 이 정도의 속도라면 레벨로 랭킹 1위를 찍는 것 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 없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카오가 되는 건 찝찝하니까."
이전에 데오르 녀석들을 죽인 결과 카오가 되었지만 6개의 던전을 돌면서 몬스터들을 사냥한 결과 겨우 카오에서 벗어난 크론인데, 또 카오가 되는 건 사절이었다.
일단 카오가 되면 기껏 올려두었던 명성이 감소하기도 하는 패널티는 기본 탑재고, 사망시 아이템의 드랍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을의 경비병들이 좋게 받아들여주지 않기에 카르마 수치를 떨구지 않는한 마을로 들어설 수도 없게 된다.
즉, 유일한 안전 지대인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게되는 카오의 결말은 대게 2부류다. 전투 지역을 전전하다가 유저에게 걸려서 죽거나, 혹은 상승된 카르마 수치를 내려서 카오 상태를 해제시키거나.
그러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크론을 공격한 경우였기에 제대로된 정당방위가 성립되었다.
당연하게도 카르마 수치는 1도 올라가지 않았고 크론의 캐릭터명은 평범한 상태 그대로였다.
"쩝. 내가 눈이 높은건가, 아니면 유저들의 무구의 질이 낮은거야."
유저들의 전리품들 중에는 쓸만한 것도 몇몇 눈에 띄기는 했지만 크론이 사용할만한 무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무구를 들이밀어도 강화의 마의벽이라고 칭해지는 +13강을 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론의 무구는 하나같이 그 마의벽을 뚫은 놀랍기 그지없는 강화 수치를 자랑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무구 제작X에 이르는 크론이 손 수 제작한 무구를 앞지를 만한 무구를 만들 수 있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현 실정이었다.
"하리보. 너 다먹어라."
"오오오! 넘치는 먹거리, 이곳이 진정한 슬라임 더 마운틴이라고 할 수 있겠지!"
덕분에 신난 것은 하리보다.
어차피 자금적인 문제야 드랍한 골드만 하더라도 62만 골드에 이르렀으니 굳이 무구를 판매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팔아치우는 것보다는 하리보에게 먹여서 스텟 수치의 상승 보너스를 얻는 편이 더욱 이득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 하리보의 충성도가 최대치입니다. -
- 미스터리 몬스터의 믿음을 얻으셨습니다. 명성이 500증가합니다. -
- 테이머 관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그 덕분에 98에 이르던 충성도를 자랑하던 하리보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다.
맨 처음에 고작 17밖에 되지 않았던 충성도를 생각하자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칭할 수 있으리라.
바스락-
한참 즐거워지던 기분이었는데 멀리 떨어진 수풀 틈새에서 들리는 소리에 크론의 눈가가 씰룩였다.
'흠, 거슬리네.'
수상한 낌새를 느꼈는데 굳이 넘어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유저는 돈이 된다.
그리고 자신을 노리는 유저는 사냥감이다.
간단히 정의를 내린 크론은 몬스터 패밀리를 둘러보았다.
"전부 다 장고에게로 들어가."
"지, 지금 말인가?"
"키이이이이-!"
[꿈틀이가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들어가 새꺄! 벌써 유저 70명은 먹어치운 것 같은데 아직도 배가고프냐."
이 부분에서는 조금 반성한다.
꿈틀이보다는 아무래도 돼지 새끼로 지을 걸 그랬나보다.
높은 충성도를 갖춘 몬스터들이였기에 크론의 절대적인 명령에 툴툴대면서도 장고의 몸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을 살핀 크론은 아직도 도망치지 않는 녀석들의 행태에 혀를 차면서도 그 대담함에 보답해주고 싶어졌다.
'간잽이질을 하는 유저들이란······.'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자신을 노린다고 해서 대놓고 찾아오는 유저가 전부일 리가 없다.
보통 약아빠진 생각을 하는 유저라면 앞에서 다른 녀석들이 힘을 빼놓고 있을 때 결정타를 노리는 것이 나쁘지 않은 확률을 자랑할 것이다.
그런 유저들의 존재를 눈치챈 이상 크론으로서는 순순히 돌려보낼 줄 용의가 없다.
그들도 경험치고, 전리품을 주는 사냥감인데 놓아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몰래 접근하는데는 이것만한 스킬이 없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자 장고를 길들이면서 계승하게된 유일 스킬은 '무無의 불가시화'였다.
시전시 절대적인 은신 능력을 부여하지만 단점도 존재했다.
공격 기능이 없는 장고의 특성까지 가져온 것인지 은신 상태일 때에는 공격이 일절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기 때문에 어찌보자면 은신의 상위격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공격을 취할 수 없다는 점이 심히 아쉬운 유일 스킬이다.
"!!!"
크론이 사라지자 곳곳에서 놀라움이 터져나왔다.
대기없이 캐릭터가 사라졌으니, 로그아웃이 아니다.
그렇다면?
수풀이나 나무 위에서 크론의 동태를 살피던 유저들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어디로 튀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문제라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것이지만.
"안녕. 뚝배기 한 그릇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