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사신 데오르(2)
'좀 이상하긴 하네.'
빡치기는 했지만 저들에 대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적의를 드러낼 생각이였으면 숨어서 기습을 했지 그렇게 대놓고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명에 이르는 유저.
하지만 크론은 전혀 질 것 같지 않았다.
몸을 회복중인 쇼닉을 제외한 다른 애들은 크게 힘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팔팔한 꿈틀이 하나만 풀어놔도 저 녀석들을 쓸어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만약에 저 녀석들이 공격해오면 주저 없이 공격······."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싸울 의도를 가지고 왔다면 이루가와 교전 중일 때 뒤를 쳤을테니까요."
하긴 저 녀석이 데오르라면 자신을 암습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이루가에 대한 정보를 판매하던 것은 다름아닌 데오르였으니까.
꿍꿍이를 드러내지 않는 데오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크론은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싸울 의도로 찾아온 게 아니라면 좀 물어보자.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건데?"
"간단히 요약드리자면 크론. 당신을 영입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말같지도 않은 요청에 크론이 혀를 찼다.
"내가 미쳤냐? 네 녀석 밑으로 들어가게?"
"크흐흐, 당연히 그렇게 나오실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크론에 관련해서 데오르는 정말 미친듯이 파고들었다.
시간?
이루가가 등장하는 지점에서 기다리다보니 넘쳐흐르는게 시간이었다.
사신 데오르라는 이명을 가진 이후로 한가지에 관해서 조사하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크론에 대해서 알아갈 수록 데오르는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전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굴리는 인원수와 자본적으로는 54위를 자랑하는 대형 길드인 백호 길드를 상대로 꿀리지 않는 전투력을 자랑했으며, 북두칠성의 간부인 제로를 박살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알아본 크론의 직업이 대장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으로 보아 테이머에도 직업을 두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즉, 녀석은 대장장이와 테이머라는 요상한 조합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미리 알고있었던 미스터리 몬스터를 길들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고, 행운 또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듯 했다.
녀석이 만든 무구에는 거진 행운이 깃들거나 품는등의 접두사가 붙어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크론이 독불장군이라는 점이다.
극 초기에 해당하는 과거에 관해서는 조사할 수 없었지만 크론은 다른 유저와의 파티 사냥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길드 역시 무소속.
아무리 강력한 무구와 게임 실력을 갖추고, 미스터리 몬스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해도 게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아무래도 질문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오르가 음흉하게 히죽였다.
"저는 당신과 거래의 물꼬를 트고 싶습니다."
"거래라고?"
"그렇습니다.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더 리셋 월드에는 저 말고도 다양한 정보상이 존재합니다. 이야기꾼 레빗과 만물꾼 코알루 등. 숫자로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녀석들이 저와 함께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레빗이랑 코알루라.
확실히 리셋 매니아의 정보 카테고리에서 유독 눈에 많이 띄었던 인물들이다.
특히나 코알루는 추후에 성장을 위해서 던전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했을때 훔치기로 예정되었었던 놈이기도 했다.
미스터리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녀석이 데오르 뿐이여서 이번 타임 리프 정보 훔치기 사건으로 피해를 본 것은 아직 녀석 뿐이기는 했지만.
"알겠으니까 거래를 트고 싶으면 내용이나 말해봐."
거래라는 것은 결국 돈이 오고가는 것을 뜻한다.
자금이 생긴다는 것 만으로도 크론에게는 나쁘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그 거래의 내용이 어떠한지와, 크론에게 떨어지는 금전적인 이득이 어느정도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달라질테지만.
"만약 거래를 트게된다면 동업자로서 저는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을 박멸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리한 방향으로 당신을 위한 언론 플레이를 해드릴 수도 있고, 원한다면 추종자를 통한 원한 대상자를 암살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거래인 만큼 돈 거래는 확실히 해주셔야겠죠."
"그럼 너한테 이득이 되는 것은? 돈만 원하는게 아니잖아."
애초에 돈이 목적이었다면 레빗이나 코알루 등의 정보상 이야기를 꺼냈을 터도 없었다.
"저에게 정보를 팔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보를?"
"네. 당신의 정보력을 사고 싶습니다. 결코 섭섭치 않은 금액을 지불해드릴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는 프로랍니다. 하하."
크론이 의아한 시선으로 데오르를 바라보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정보를 긁어모아서 볼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 있을까?
애초에 정보상이라는 것 자체가 정보를 모으는 능력이 탁월하기에 해먹을 수 있는 직업이지 않겠는가.
그런 뜻을 읽은 것인지 데오르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보상이 정보를 구매하는 일은 원래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쪽 세계에서의 힘은 육체적인 능력이 아니라 이거거든요."
라면서 머리를 가르키는 데오르다.
"정보가 중요하긴하지."
"그렇죠. 당연한 말이지만 정보는 게임 속에서 한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과 미스터리 몬스터와 높은 등급을 가진 무구의 소지자가 누구인지 등. 수요는 반드시 일어나는 법입니다. 반면에 공급되는 정보는 한정적이다보니 정보상의 입장으로서 모든 것을 독점하고 싶은 법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이미 밝혀진 정보를 구매할 멍청한 유저는 없다.
리셋 이루벤과 같은 공식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던져진 팁이 너덜너덜해진 레드 오션이라는 것은 지나가던 초보자도 알 법한 일이다.
정보상에게는 늘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법이고, 그것을 독점하게 된다면 정보상의 힘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힘을 잃게된 정보상들이 선택할 길은 크게 두 가지 밖에 남지 못한다.
하나는 가장 기본적인 선택방법으로서 새롭게 오픈할 게임을 공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보를 독점한 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보상이 추종자로서 들어가는 부분은 의외로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였으니까.
그렇기에 크론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야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다지만 데오르는 세력을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플레이가 가능한 유저가 세력까지 커진다면 무슨 짓을 벌일 지 모른다.
마녀 사냥이 안좋은 취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었다.
"하나만 묻자. 내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지?"
"큭, 크크큭!"
뜻 밖의 질문이었던 것인지 데오르가 킥킥거리더니 크론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거래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네, 맞아요, 맞아. 정보상의 입장으로서 거래를 강요하면 양아치겠죠."
그와 함께 데오르의 분위기가 격변했다.
데오르의 이명'사신'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게임을 상당량 말아먹게해서 붙었다고도 하지만 동시에 데오르는 기가막힐 언론 플레이로 수많은 유저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전력이 있었다.
"다만, 모든 정보상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 줄 생각입니다. '공개적인 사이트'를 훔쳐보는 아무개씨가 존재한다. 랄까? 정보계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이름과 이명의 힘을 무시할 수 있는 녀석은 없을 겁니다. 이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 녀석 알고있다.
크론이 리셋 매니아를 통해서 정보 카테고리에 있는 정보를 남모르게 훔쳐낼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그 방법까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테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한 이상 크론으로서도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단지 데오르만 없어진다면 모르겠지만 녀석이 정보를 퍼트린 순간 깨알같은 정보들은 공식적인 사이트에서 씨가 마를 것이다.
정보상들의 입장에서야 쉽게 팔 수 없다는 점은 불편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정보를 뺏겨서 휴지 조각이 될 빠에는 나은 방법일 터였다.
"물론 이 정도로 정보의 급류는 막기 힘들겠죠. 정보를 팔지 안 팔지를 정하는 것까지는 제가 관여할 수 없는 바니까요. 그렇지만 적어도 알짜배기 정보들은 없어질 겁니다. 크크큭······."
데오르가 순간 광기에 휩싸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밖에도 크론 당신에 관한 정보도 사방으로 퍼트려드리겠습니다. 미스터리 몬스터 5마리와 보스급 몬스터 1마리를 길들인 테이머인 동시에 대장장이라고 말이죠, 하하. 이거 질투심 많은 유저들이 물어뜯기 참 좋은 대상이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후우, 이거 참 간만에 언론 플레이 좀 할 맛 나겠는데요?"
"죽고 싶다면 무슨 말을 못할까."
"죽이고 싶으시다면 죽이시죠. 제 목숨값은 상당히 비싸다는 점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뜩이나 아무개씨 덕분에 본 손해가 막대해서 말이죠. 그것을 자금적으로는 매꾸지 못하겠지만 정신적인 위안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매꿀 자신이 있답니다."
크론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시초의 망치를 움켜쥐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데오르를 죽이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다.
녀석은 정보상이다.
캐릭터의 성장력은 자신보다 한참 밑일 터.
다만, 녀석을 쉽게 죽일 수는 없다.
이곳 가상현실의 세상 속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검과 같은 흉기겠지만 현실에서는 다름아닌 펜이 진정한 흉기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질투심을 자극하고, 악의를 조미료 삼아서 언론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정보상과 적대하는 것은 미래로 따져보았을 때에는 결코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특히나 데오르와 같이 능력있는 정보상은 까다롭다.
벌써부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개체수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시초의 망치의 정확한 옵션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른다.
녀석이 제대로 마음 먹고 크론의 특징이나 약점 등을 파악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정보상들이 무서운 것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니라 언론 플레이를 통한 유저 죽이기.
일명 마녀 사냥을 능력이 되는데까지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거 참 맞는 소리같다."
차라리 협박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도 있었다.
크론도 사람인지라 데오르의 정보적 가치 1억이 넘는 금액을 호로록 해먹은 전적이 있다보니 최대한의 선의는 베풀 마음은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고 제대로 된 장소에서 말을 맞출 때에나 통용될 일이다.
지금의 데오르가 저지른 행동은 엄연히 협박이다.
크론이 보자기도 아니고 도발을 당했는데 웃으면서 넘어가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데오르의 언플에 낚인 수 십의 유저들이 달려든다고 치자.
과연 크론은 무서워서 도망칠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스스로가 카오가 되면서 자신에게 아가리를 벌린 유저들은 자신에게 이빨이 모조리 뽑힐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자금줄이 되어줄 아이템과 골드. 그 밖에도 유저를 죽이면 경험치도 얻는다.
의외로 몬스터보다도 큼지막한 양의 경험치를.
물론 크론도 한계는 있다.
유저들이 제대로 미쳐가지고 수 천이 넘게 달려든다면 어쩔 도리가 없을 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간단하다.
까짓거 한 번 죽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