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전설의 시작(1)
"야, 더 리셋 월드에서 물건 팔거나 구매할 일 생기면 이 아이디 써라. 내가 원래 아무한테나 공유해주지 않는데 특별히 너라서 해주는 거다."
"귀찮아. 그냥 내 아이디 만드는게 편하지."
"아이디 만드는게 더 귀찮을걸? 쯧, 싫으면 말어라. 나 특급중에서도 특급인 VVIP등급이라 수수료 1%밖에 안되는데. 참고로 거래 사이트의 초기 아이디 생성시 부여받는 브론즈 등급은 수수료 15%다. 니 맘대로 하세요."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알았으면 잘해라."
문뜩 종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 제화는 피식 웃었다.
새삼 생각해보면 신기하긴 하다.
남에게 쉽게 말 못붙이는 성격탓에 제화는 친구를 사귀는데에 있어서 상당히 서투른 편이다.
뭐 아무한테나 친구하자고 들러붙었다가 퇴짜맞으면 타임 리프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말붙이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을.
그렇기에 제화에게 종수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24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 이룬게 있다면 종수를 사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고객과 판매자로서 만남을 가졌었다.
제화가 고강화 아이템을 찍어낼 때마다 녀석이 시도 때도없이 연락을 취하면서 물건을 구매하다가 만나자는 제의를 했었다.
마침 서로 가깝기도 했었고 PC방에서 만남을 가진 이후부터는 절친이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나이대도 서로 같은데다가 게임을 즐기는 스타일과 성격은······얼추 비슷하긴 할 거다.
솔직히 똑같은 성격끼리 뭉치면 오히려 친해지기 힘든 법이니까.
"대단한 놈이야. 대체 얼마를 충전해놓은거야."
로그인한 제화는 화들짝 놀랐다.
113,008,600.
자그마치 1억을 넘는 금액이다.
금수저인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진짜 게임에 대한 열정 하나 만큼은 인정해줘야한다.
하여간에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는건, 진짜 대단하다는 거겠지."
또 놀라운 것은 저 금액 전부가 종수 스스로 번 돈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종수는 금수저라고 해서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화초처럼 살아오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부모님의 힘을 자신의 힘인 양 취해가지고 휘두르는 이들을 가장 혐오하였다.
그러한 성정 탓에 종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다행히 종수는 머리가 좋은 편이였고 나름 판을 볼 줄 아는 재능도 타고났다.
초창기 금액이야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손을 벌렸지만 순식간에 돈을 불려가지고 빌렸던 돈은 이미 다 갚은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돈이 벌리고 있었다.
뭐, 주식의 특성상 간혹 적자를 보기는 한다지만 분산 투자를 한 덕분에 떡락할 일은 없다면서 농담 따먹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타고난 셀프 금수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종수였다.
"호오."
더 리셋 월드의 거래 사이트라는 이명을 가진 리셋 매니아.
유그드라실이 직접 운영한다고 알려진 이 사이트의 안전도는 90%이상 이라고 볼 수 있다.
10%의 부족함은 간혹 등장하는 사기꾼들 때문이다.
허나 워낙 시스템이 잘 짜여져 있기에 설령 사기를 치더라도 금방 들통이나서 손절하기도 전에 잡혀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리셋 매니아를 이용할 때에는 자신이 사용하는 캡슐과 연동을 시켜야한다는 조건도 붙어있기 때문이리라.
"흠. 물품 구매외에도 카테고리가 다양하네."
리셋 매니아는 중점적으로 활용되는 3개의 카테고리를 활용할 수 있는 사이트였다.
물품 구매가 첫 번째 카테고리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입찰가를 정해서 경매를 할 수도 있고 즉시 판매 및 즉시 구매의 설정 기능을 갖추었다.
그 밖에 남은 2개의 카테고리는 정보와 재능에 관련된 카테고리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던가.
게임 속에서도 정보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결코 얕볼 수 없다.
본래 혼자서는 방대한 더 리셋 월드의 세상에 숨겨진 히든 피스를 전부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화같은 부분이야 타임 리프의 특성 덕분에 제화가 우선적으로 독점 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 유일 스킬과 희귀한 칭호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돌아갔을 것이다.
실제로 제화와 전투를 했던 칠성 제로같은 경우에도 화염을 몸에 두르는 특이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확실히 정보는 쓰기 나름이니까."
사실 그렇게 보면 제화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좀을 길들인 것도 이슈가 될만했는데 미스터리의 격을 갖춘 하리보를 길들인 것은 이슈를 넘어선 하나의 전략 병기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단순하게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좀의 광란과는 달리 하리보는 좀 더 다양한 대처능력과 함께 광물의 혼이라는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보배와 같은 스킬도 보유한 녀석이였으니까.
"미스터리 등급의 몬스터를 더 길들일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에서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자신의 인생.
재밌게 살다가면 만족스러운 삶 아니겠는가.
"어디 한 번 둘러볼까."
문뜩 정보에 관련된 카테고리에 호기심이 일어난 제화는 곧장 글을 뒤적거렸다.
보통은 높은 등급의 정보같은 경우에는 아예 접근이 차단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해야겠지만 현재 제화가 로그인한 아이디. VVIP를 막아설 존재는 없었다.
'무려 1억이 있는 계정이라고!'
무적의 계정을 활용해서 정보를 살펴보는 제화는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구매하기 전에는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제목과 살짝 알려주는 내용물만 봐도 정보가 어떠한 것으로 이어질지는 정해진 수순이였다.
"미쳤다 진짜."
낮은 등급의 정보들은 간혹 관심종자들의 글도 있기도 했고, 각 마을마다 비치되어있는 광산이나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들의 정보나 보스의 공략법 또한 하나의 정보로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한 정보는 어차피 제화도 알고있었기에 넘겼고, 진짜 배기라고 할만한 정보들은 그 가격만 해도 가장 저렴한 것이 3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확실히 그럴만한 가치는 있지."
3천만원 이상의 정보들은 대체적으로 던전의 위치라던가 미스터리 등급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곳에 대한 정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딱보기에도 비싼 금액이였지만 제화는 그렇게까지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정보는 중요하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룸으로서 얻는 희귀한 칭호나 유일 스킬의 존재 의의가 중요한 것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제화는 최초로 던전을 클리어하기도 했었고, 미스터리 등급의 몬스터를 길들임으로서 희귀 칭호들과 유일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레벨만 높은 것은 어찌보면 팥 없는 붕어빵과 같은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겉인 레벨을 잘 치장하면서 속을 스킬과 칭호로 꽉꽉 채워넣는 것이 진정 잘갖춰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으리라.
"미스터리 등급의 몬스터는 탐나지만······일단은 돈부터 벌고 생각하자."
지금은 소유한 돈이 천 만원 안팎이긴 하지만 제화는 그 밖에도 적금을 들어놓은 돈만 해도 5억이 넘어간다.
더 리셋 월드를 플레이하기 전에도 제화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더 리셋 월드때와 마찬가지로 강화로 돈을 벌어들였었다.
하지만 적금을 들어놓은 통장은 입대를 하면서 부모님에게 맡긴 상태이다.
새삼스럽지만 제화는 외동 아들이 아니다.
제화에게는 김제호라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는 자신과는 다르게 제호는 지식적인 부분에서 남다른 재능을 선보였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에 성공적으로 진학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대단하기도 하지만 부러운 녀석이다.
뭐 제화도 나름 명망있는 대학교를 진학하긴 했다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워낙 기본이 좋지 못해서 성적이 개차반인 것을 말이다.
"그러고보니 언제 한 번 제호 녀석좀 봐야겠네."
제호가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탓에 전역을 한 뒤에도 만나지 못한 것이 왠지 아쉬웠던 제화다.
조금 까불거리는하지만 애초에 남동생이란 무릇 그런 법 아니겠는가.
언제 한 번 형제의 상봉을 기대하며 제화는 리셋 매니아로 관심을 두었다.
"재능 판매. 흠, 확실히 돈은 끌어모을 수 있겠네."
재능 판매 카테고리는 생활직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생활관련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재료와 골드를 지불함으로서 일종의 제작 의뢰를 맡기는 방식이였으니까.
재능 판매의 거래 방식은 판매자가 익명으로 게시하는 경우에는 재료와 선금을 편지로 받은 이후 의뢰품목을 만들어서 다시금 편지로 보내는 방식이다.
타 유저와 대면하는 것도 아니였기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팔지 않아도 되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몇몇 유저들은 생활직을 의도치않게 깔보거나 고깝게 보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그도 그럴게 생활직의 전투력은 전사등의 전투직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괜히 얼굴 팔렸다가는 아이템 제작을 빌미로 협박을 당할 수도 있었고 전투 지역으로 나가자마자 PK를 당하거나 억지로 소속으로 끌여들이려는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
너무 설레발 치는 것 아니냐고?
사람의 악의를 너무 얕보지 않는 것이 좋다.
당장에 아는 사촌이 땅을 산다고 해도 배가 아픈 것이 사람의 심리다.
하물며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 자신보다 돈을 왕창 벌어들이고, 생활적인 재능이 탁월하다면 자신의 소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을 것이다.
그게 안되면 죽여서 가진 것을 탈탈 털어버린다거나.
막말로 괜히 PK유저가 있겠는가?
그들의 존재는 게임 시장이 열리고 지금에 이르렀음에도 지금까지 유지되는 하나의 컨텐츠가 되었다.
"얼굴 팔리지만 않는다면 나쁘지는 않는데."
재능 판매는 사실 생활직에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본래대로라면 생활 관련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은 상당히 극악이다.
제화야 유니크 아이템을 2개나 찍어내고 오스온의 퀘스트를 통해서 전체적인 스킬 숙련도 상승의 혜택을 받아서 겨우 도달한 것이였으니까.
그리고 실제 겪은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
스킬의 숙련도를 빠르게 올리는 방법은 단순하게 같은 것을 반복 작업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업적을 이룰만한 것을 만드는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문제는 그렇게 되려면 값진 재료가 필수적이다.
뭐, 실제로 반복 작업에도 상당량의 재료가 필요하다보니 이러나 저러나 생활직은 늘 재료의 부족으로 인해 고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재능 판매는 그것에 대한 걱정을 일부 덜 수 있는데다가 돈까지 두둑히 챙길 수 있으니 일석 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개나소나 재능 판매로 대박을 터트리는 건 아니다.
나름 실력이 입증된 생활직만이 재능 판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생활계의 세상은 완전한 실력주의 였으니까.
"퍼거론이라. 나름 당당하네."
재능 판매에 등록된 대장장이들의 무구 제작 등급중 가장 높은 것이 VI이다.
나름 유명한 데저트 길드의 대장장이였기 때문인지 자신의 캐릭명도 밝힌 대장장이 퍼거론은 상당한 금액을 받으면서 재능을 판매하고 있었다.
꽤나 큰 길드의 대장장이로 활동한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생활직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재료의 부재를 길드원들을 통해서 충족이 가능했으며, 그로 인해 빠른 속도로 스킬의 숙련도를 올릴 수가 있게된다.
길드의 비호를 받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제화는 크게 부럽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고작 VI냐? 역시 사람은 스스로 개척해나가야돼."
현재 제화의 캐릭터 크론의 무구 제작의 등급은 VIII이다.
길드의 지원을 받음에도 저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무구를 제작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긴, 길드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들의 간섭도 꽤나 심했을 것이다.
소속 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 역시 의무로서 베풀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아직 일러.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할까."
잠시 고민하던 제화는 글을 올리는 것을 취소했다.
어차피 돈이야 금방 벌리는 데다가 스킬의 숙련도는 자신이 직접 채광한 광물들과 하리보의 몸에서 정제된 것을 사용하면 금방 올릴 수가 있다.
게다가 자신은 제작만 하면서 살아갈 생각은 없다.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 사냥도 나갈 것인데 굳이 돈에 환장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괜히 얼굴이 팔릴만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익명으로 게재한다지만 유저들의 관심이 쏠린다면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코넨을 가장한 탐정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어디보자, 얼마가 적당하려나."
초보자용 검의 판매 등록에 앞서서 제화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강화의 최고점이라고 할 수 있는 20강화.
그 가치만으로도 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물론 그 강화가 적용된 것이 초보자용 검이라는 부분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착용 제한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메리트가 될 수도 있다.
처음 시작하는 유저에게 이 무기만큼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녀석은 없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적당히 시작가 설정해 두면 알아서 팔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