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북두칠성(4)
"쉽네."
말은 청산유수마냥 쉽다고 했지만 다른 유저들이 봤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함정의 공격력은 여타 몬스터들보다도 몇 배 더 강한 편에 속한다.
보통 젬의 동굴을 돌기위해 들어서는 탱커들도 함정에 한 번 노출되면 생명력이 뭉퉁 날아가는게 보통이기에 해제하면서 진격하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무식하게 몸으로 들이밀면서 함정을 해제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
헌데 크론은 그러한 미친 짓을 당연하다는듯이 저지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오겠네."
크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몬스터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22레벨부터 23레벨로 구성된 그렘린과 고블린은 이전에 상대했던 놀 무리에 비하면 약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크론이 홀로 던전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던전의 난이도가 약해지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크론으로서는 오히려 이러한 방향이 좋다.
몬스터들이 강하면 강할 수록 길들인 녀석들의 성장 속도 또한 빨라질 수 밖에 없다.
"평소랑 같이 싸우면 된다. 펜릴은 우룽을 지키고, 우룽은 펜릴을 도와서 견제하도록 해."
"알겠다, 주인."
"아우우우우-!"
[펜릴이 이를 드러냅니다.]
명령과 함께 우룽의 화살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키시시시시!"
화살에 꿰뚫린 그렘린이 분노를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만찬을 즐길 요량이겠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펜릴이 육탄돌격을 감행하며 그대로 그렘린들의 진형을 뭉개버렸다.
"크르르르릉!"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그렘린들의 공격을 가뿐히 받아낸 펜릴은 뿔과 어금니로 반격을 가했다.
"녀석, 제법인데?"
등장한 그렘린과 고블린의 숫자가 7마리나 됐지만 펜릴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레벨로는 밀리고 있다고 하지만 고강화 무구과 그간의 전투 경험을 통해서 펜릴의 철통방어는 여간해서는 뚫기 힘들 정도로 교정되었다.
슈슈슈슉!
동시에 펜릴을 지원하는 우룽의 화살이 미친듯이 빗발쳤다.
한 발 한 발마다의 데미지는 어그로가 튀지 않도록 조절한 덕분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맹독이 발라진 덕분에 화살에 적중당한 적들은 서서히 피부가 썩어들어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네 차례다. 약해진 녀석들부터 처리해."
"갸르으응!"
[구미호가 피냄새를 맡았습니다.]
약화된 적은 도적의 표적이나 마찬가지다.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달려나간 구미호가 독에 중독된 그렘린 하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과연 세 녀석중에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구미호답게 손톱에 꿰뚫린 그렘린들이 순식간에 회색빛깔로 물들면서 쓰러졌다.
혹시라도 위험하면 나설 생각이였던 크론은 압도적으로 승리한 세 녀석의 공헌에 놀라움을 토했다.
"제법인데?"
서로의 전투 방식에 익숙해진 녀석들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적을 휩쓸었다.
크론이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판단은 녀석들의 실력이다.
크론이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스스로 사고해서 가장 괜찮게 풀릴 것 같은 선택지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승리였다.
"이 정도면 내가 굳이 없어도 되겠는데?"
착실하게 레벨을 쌓는 모습에 크론은 전투 방식을 바꾸어도 될 것 같았다.
자신이 녀석들의 곁에 있으면 만약의 경우 위기에 쳐했을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안전하게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만큼 단점도 명확히 드러난다.
'내가 성장하기에는 너무 오래걸린다.'
테이머의 단점 중 하나는 경험치의 분배에 있다.
보통의 클래스가 몬스터의 경험치를 100%얻는다고 가정할시 테이머는 소유한 몬스터가 많으면 많을 수록 경험치를 나뉘어 먹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나중에 가서 군세급으로 물량을 갖출 때에는 사냥터를 쓸어벌일 수 있으니 좋게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녀석들의 속도에 맞추다가는 진행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이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세 녀석의 합을 보아하니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함정같은 경우는 자신이 앞을 뚫고 가면서 뚫어버리면 되고 가는 길에 몬스터가 좀 버거울 정도로 많으면 자신이 썰어버리면 된다.
남는 몬스터들이야 오는 길에 길들인 녀석들이 처리하면 될 일이다.
"우룽 너의 주도하에 펜릴이랑 구미호를 이끌어서 가는 길에 보이는 몬스터한테 합을 맞춰서 사냥하도록. 위험하면 뒤로 물러서도록하고. 도주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게 아니야."
"알겠다. 주인."
우룽이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에 충실한 펜릴과 구미호와는 달리 우룽은 홉 고블린이다.
아인족 중에서도 교활하기로 소문난 고블린이였으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데에는 제격이였다.
"그럼 가보실까."
뒤는 우룽에게 맡긴 크론은 몸을 한 차례 정비한 후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슈슈슈슉!
사방에서 함정이 발동되면서 독화살이 쏟아져내렸지만 크론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독이 치명적이기는 했지만 웬만한 녀석들은 강화된 판금 갑옷을 뚫지 못했고, 간혹 강하게 쏘아지는 화살들은 검으로 쳐내거나 행운 보정을 통해서 피해를 경감시켰다.
덥썩-!
간혹 다리를 묶는 올가미 덫이 발동되서 짜증을 유발시켰지만 크론의 힘 앞에 허무하게 박살났다.
"크아아아!"
수 십개에 이르른 함정을 뚫고 간 이후에는 몬스터들의 출현이다.
10마리가 넘는 적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살벌하기 그지없었지만 크론의 검격 몇 번에 회색빛깔의 회무침이 되었다.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몬스터를 전부 죽일 뻔 했다.
크론은 등장한 몬스터들중 반 절 이하가 남도록 처리를 한뒤 앞으로 달려나갔다.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크론을 뒤따라오는 우룽 애들의 피와 살이 되어주는 경험치가 되어줄 것이였다.
"크워?"
졸지에 죽을뻔했다가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의아함을 품었지만 곧이어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 스킬 숙련도가 충족되어 스킬 '길들이기I'이 '길들이기II'로 승격되었습니다. -
- 스킬 숙련도가 충족되어 스킬 '명령I'이 '명령II'로 승격되었습니다. -
- 구미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펜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론이 앞으로 진격하는 동안 남겨둔 몬스터들을 문제없이 처리한 것인지 쉴새없이 알림음과 함께 경험치가 들어왔다.
덕분에 길들이기와 명령의 랭크가 상승했고, 구미호와 펜릴의 레벨이 올랐다.
우룽의 경우에는 가장 레벨이 높았던 영향인지 레벨업을 했다는 알림음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크론은 이마에 차오른 땀을 흘겼다.
"지난 번에는 반나절은 걸렸던 것 같은데. 최초의 던전이 아니라서 많이 약화된건가?"
함정도 무시하고 몬스터도 거의 썰어버리듯 한 덕분인 것인지 크론은 보스방의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아마 다른 유저가 보았다면 치를 떨만한 일이다.
젬의 동굴은 평균 27레벨 이상을 기준으로하는 것이 보통이다.
본래대로면 23레벨 정도로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하다지만 아무래도 함정의 해제 때문에 시간이 걸리다보니 기본적으로 3시간은 잡는 것이 정설이였다.
고강화 무구를 착용하고 높은 체력과 행운 스텟을 활용한 크론의 막무가내 함정 돌파로 이룩한 돌파 시간인 것이다.
"녀석들도 무난하게 오는 것 같고. 나도 처리하고 있어야겠다."
크론은 꾸준히 들어오는 경험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아직은 자신보다 약한 탓에 고생을 더 해야겠지만 나중에 가게되면 지금의 고생이 보답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참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본래 크론은 젬을 죽여서 클리어할 생각이였다.
젬 정도면 나름 던전의 보스답게 경험치도 만족스럽게 주고 보상 또한 약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길들이기의 제한이 3마리인 탓에 놓아주기를 시도하지 않으면 젬에 대한 길들이기의 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나 사냥을 지속하는 동안 길들이기가 II로 승격한 결과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의 제한이 풀려서 5마리까지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젬은 네임드급 보다도 강력하고 성공확률이 현저하게 낮은 보스급 몬스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