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강철의 대장장이 오스온(5)
전의를 상실한 적은 적수가 아닌 그저 먹이일 뿐이였다.
"새삼 느끼는구나."
희망없는 발악을 시도하는 마법사를 마무리한 크론은 자신의 전투력에 감탄했다.
지금까지의 전투중에서 그나마 흥미진진한 걸 꼽자면 젬을 상대했을때 뿐이다.
일반 몬스터들은 강화된 초보자용 검을 찌르는 족족 죽어 나갔고, 설령 크론에게 공격을 성공해도 막강한 체력 스텟 덕분에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이지 난이도를 홀로 종횡무진하다보니 자신의 전투력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잡혔다.
그런데 이렇게 4명의 유저를 단독으로 처리했다.
그냥 잡졸이라면 당연히 쉽겠지만 광산을 통제할 정도의 거대 길드다.
간부직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반 길드원들 중에서는 나름 실력있는 이들을 통제 인원으로 배치해둘 가능성이 농후했다.
"오히려 더 있었으면 재밌었을텐데. 유일 스킬도 솔직히 너무 오버 스펙이였어."
죽은 백호 길드원들이 들었다면 통탄할 일이다.
나름 만족스러웠던 크론은 백호 길드원들이 드랍한 아이템을 습득했다.
- 14,390골드 -
- 철광석(재료)112개 -
- 구리광석(재료)88개 -
- 석탄(재료)20개 -
- +5 홉 고블린 갑옷(매직) -
- +6 갈기의 눈물(매직+) -
[+5 홉 고블린 갑옷(매직)]
- 홉 고블린들의 가죽을 모아 제작한 가죽 갑옷입니다.
* 착용제한 : 레벨 18이상 민첩 20이상
* 내구도 : 42/49
* 방어력 +21
* 힘 +1
* 체력 +2
* 민첩 +4
[+6 갈기의 눈물(매직+)]
- 늑대의 혼이 담긴 어금니를 세공하여 제작한 반지입니다.
* 착용제한 : 레벨 20이상 민첩 25이상
* 내구도 : 15/25
* 방어력 +8
* 민첩 +8
* 갈기의 걸음(패시브) : 비전투 상태일시 이동속도 5%증가
드랍된 품목을 정리한 크론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쁘지 않네."
본래 카오가 되면 패널티가 상당하다.
당장에 죽음 패널티를 떠나서 아이템을 100%드랍하는 패널티가 추가되다보니 상당히 꺼림칙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퍼그가 드랍한 갈기의 눈물은 크론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물건이다.
지금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크론은 거의 늘상 비전투를 유지한다.
광맥을 캔다고해서 전투 상태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라고 할지라도 이동속도의 증진은 크론의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쯧. 4명 전부다 아이템을 드랍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대형 길드 소속이 아닌듯 강화까지 정성스레 되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전부 다 카오 상태로 만들었다면 적어도 쓸만한 아이템 2개는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크론은 앞으로 유저가 자신에게 개길때는 먼저 한 대 맞아주기로 마음 먹었다.
특정 계열의 공격만 아니라면 크론의 막강한 탱킹력을 뚫지 못할 테니까.
"음······소렌한테 귓뜸이라도 해둬야되나."
개인이 대형 길드랑 엮이게되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
게임을 플레이하는데에 있어서 언제까지고 안전 지대에만 있을 수는 없다.
사냥이나 광물을 채광하기 위해서는 전투 지역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대형 길드가 자신에게 척살령이라도 내렸다가는 여간 피곤하지 않을 터였다.
소규모 정예 길드인 베히모스의 도움이 있다면 무난하게 풀 수도 있을 터.
"나중에 생각하지 뭐. 다시 덤벼들면 나야 오히려 좋지."
귀한 아이템을 드랍해줄 강아지들이 알아서 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버릇없는 강아지는 복날에 개패듯이 두들겨패주면 된다.
일부러 카오가 되게끔 유도한 다음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면 아주 맛날 것이다.
"광부들이 없네. 죄다 도망쳤나."
백호 길드 소속 길드원들이 없자 크론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광맥을 직접 캐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유저를 사냥해서 얻는 광물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백호 길드의 메세지가 전해진 것인지 백호 길드의 통제 구역인 배럴 광산은 텅텅 비어있었다.
"여기 완전 금은보화 방이네."
넘쳐나는 광맥에 크론은 휘파람을 불며 좋아라했다.
하긴 이 정도로 다양한 광맥이 풍부했으니 대형 길드가 통제를 걸었을 것이였다.
"콧노래가 절로나는구만."
흰둥이들을 패준 덕분에 몸까지 풀린 크론은 룰루랄라하며 곡괭이질을 반복했다.
@ @ @
상당량의 광맥을 채광한 덕분에 크론의 가방은 그야말로 빵빵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쌓인 광물을 어떻게 쓸지 희희낙락하던 크론은 내심 백호 길드가 기습해오는 것을 기대했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보복은 커녕 아무런 견제도 오지않았다.
아이템이 달려들지 않으니 아쉬웠지만 광물을 잔뜩 얻었으니 이 정도면 만족했다.
"흐음······."
크론은 배럴 광산을 벗어나려던 도중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경비병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배럴 광산의 중간 지점.
요약하자면 크론이 퍼그를 비롯한 백호 길드원들을 썰어버린 그 장소에서는 족히 30명은 될 법한 인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한마리 안보내겠다는 의지가 보였기에 크론은 허탈웃음을 내뱉었다.
하나같이 흰둥이 마크를 자랑스레 달고있는 모습.
누가봐도 백호 길드원 소속이리라.
"이야. 흰둥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네. 몇대 쥐어터졌더니 아주 그냥 발발거렸나봐?"
크론의 비아냥거림에 몇몇 백호 길드원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툭 건들면 육두문자를 살벌하게 내뱉을 것 같은 모습에 크론도 뒤이어 터질 전투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번에는 좀 힘들겠네.'
아이템이 덤벼들어주는 것은 크론으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30명이면 크론으로서도 답이 없다.
능력치와 고강화 무기로 개인의 우월함을 가져왔지만 숫자에는 장사없는 법이다.
대형 길드면 적어도 100명은 될 법한데 30명만 왔다.
물론 사냥을 해서 오지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거진 길드의 알짜배기들만 데려왔을 터였다.
그렇다면 크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크론의 레벨을 뛰어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크론도 레벨링은 빠른 편이였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무구 제작에만 열중하다보니 사냥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했다.
'진짜 더럽게 많네.'
막말로 저 많은 인원들이 원거리 견제로 크론을 요격하면 크론으로서도 답이 없다.
아까는 어그로를 1명만 끌어서 무난하게 썰었지만 지금은 어그로꾼만 척보기에도 8명은 넘어보인다.
어딜보나 승산은 백호 길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
하지만 크론은 좌절하지 않았다.
죽을지언정 곱게 죽어주지는 않는다.
적어도 수 명은 함께 길동무로 데려가줄 용의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을 잡으려면 적어도 저 정도는 와야 매너아니겠는가?
"덤벼 흰둥이 새끼들아."
제대로 싸울 요량으로 초보자용 검을 굳세게 움켜쥔 크론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서려고 할 때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길마를 뜻하는 날개가 달린 흰둥이 마크.
백호 길드의 길마가 소리치고는 옆의 길드원에게 자신이 무기를 건냈다.
동시에 양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섰다.
항복을 지칭하는 행동에 크론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뭐 저런 새끼가 다있지? 라는 표정이다.
"저희는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아······너희는 싸울 생각이 없으면 막 수 십명씩 떼거지로 몰려와서 압박넣나봐? 이야.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린다."
그야말로 말같지도 않은 소리.
지나가던 강아지가 박장대소 할 일이다.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이라고 봐서요. 항복의 표시가 싫다면 비즈니스 관계가 되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희 백호 길드의 산하로 들어오시죠. 간부직과 함께 충분한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비즈니스? 나 너희 길드원 먼지나도록 두들겨팼었는데?"
"저희 백호 길드는 강함을 추구합니다. 그런 일은 속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그래? 저기 저 녀석 얼굴 상태가 심히 안좋아 보이는데? 영 꺼림칙하다는 표정이 아주 그냥 더 패버리고 싶게 만드네."
"······."
한순간에 꿀먹은 벙어리가된 녀석의 모습에 크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안한데. 나 길드에 소속될 생각은 진짜 조금도 없어."
소렌이 운영하는 소규모 정예 길드 베히모스의 영입도 거절한 크론이다.
그러할진데 구역을 통제하는 짓거리를 하는 대형 길드가 크론의 눈에 찰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길드에 소속된다는게 좋은 부분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허나 권리를 챙기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의무를 짊어져야한다.
크론은 맛있는 것을 나눠먹는 위인이아니다.
단물 다 씹은 껌을 짐짓 궁상 떨면서 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그만 씨부리고 싸우러 왔으면 덤벼 새꺄. 곱게는 안뒤져줄거니까."
"······곤란하군요."
호걸낭인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명색이 길마인 자신이 저자세로 나서줬는데도 거절하다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호걸낭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대형 길드.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만큼 길드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주시한다.
길드원들에게 신뢰를 잃은 길마는 더 이상 길드를 유지할 그릇이 못된다.
'아쉽군.'
호걸낭인은 진심으로 아쉬웠다.
퍼그를 비롯한 4명의 길드원은 백호 길드에서도 나름 상위권에 해당하는 유저들이다.
장비도 좋고 레벨링도 꾸준히하는 하드 유저.
그런 유저를 4명이나 홀로 상대해서 승리하는 일은 호걸낭인으로서도 힘든 일이다.
물론 불가능 하지는 않다.
호걸낭인 본인은 전 프로게이머 출신이기도 했고 게임센스와 테크닉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노련한 장사수완도 있기에 착용하고 있는 장비도 더 리셋 월드의 전체 유저를 통틀어도 상위권에 충분히 들만한 물건들이다.
그런데 과연 호걸낭인은 알까?
크론은 20강의 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자신이 착용한 레어+를 넘어선 유니크급 무구를 제작한 '대장장이'라는 사실을.
"죽여."
호걸낭인은 명령했다.
이 이상 길마로서의 위신을 잃으면 곤란하다.
유저 한 명한테 쩔쩔매는 병신으로 인식되는 순간 자신은 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