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무구 제작(4)
우울증을 앓던 자신의 그 시절은 거의 유리구슬의 상태나 마찬가지였었다.
툭 건들면 부숴질 정도로 자살을 수 십. 수 백번은 고민했었다.
그럴때마다 차준호가 나타나서 자신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면서 예리의 삶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오해팔은 그런 차준호의 오른팔 격인 경호원으로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 정도 되는 존재였으니 딸을 맡겼지 아니었으면 차준호가 직접 게임에 접속해서 예리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회장님도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아가씨같은 따님이 있었다면 진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자신이 있었는데······후, 멍청한 아들 녀석만 있어가지고."
꼴에 자신을 닮아가지고 힘을 주체못하는 아들내미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쉰 해팔은 예리가 건내준 금액 98만 골드를 보고는 흠칫했다.
"아가씨. 돌려주신 금액이 너무 큽니다. 조금만 더 가져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앞서 말했지만 저를 지켜주셔야 할 분들은 경호원분들이시잖아요. 저보다도 강해지셔야 할테니까 골드가 많이 필요하실 거에요. 아버지에게는 받았다고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만! 여기서 더 하면 화낼꺼에요?"
델리가 짐짓 위협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해팔 입장으로서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결코 헛된 일에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아가씨와 회장님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해팔 아저씨만 믿을게요."
델리는 그 말을 끝으로 해팔과 헤어졌다.
해팔을 비롯한 경호원들은 곁에 있으면 든든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듬직한게 문제다.
경호원들을 늘 끼고 다니면 자유를 추구하는 델리 입장으로서는 갑갑하기 그지 없었다.
"오호. 코찔찔이 모험가가 제법 많이 모아왔군. 내 값은 톡톡히 쳐줌세. 어디가도 나보다 많이 주는데는 없을게야."
요번 사냥을 통해서 얻은 전리품들을 처분한 델리는 700골드라는 금액을 손에 넣었다.
아직 6레벨이라는 저레벨이라지만 나름 하루종일을 투자해서 번 돈인데 고작 천 골드를 넘지 못한다.
물론 중간에 많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액수가 많은 편은 결코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체 얼마를 쓰신거야······.'
그런 골드를 무려 100만 골드나 현질한 아버지의 과감함에 델리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100만 골드라는 거금은 어떻게 써야될지 감도 안잡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선물도 있겠다 쇼핑도 해볼까?"
현실에서 쇼핑을 한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원래 사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 델리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었다.
무엇을 살까 마을을 거느리던 델리의 시선에 문뜩 망치를 두들기고 있는 유저가 눈에 띄었다.
"대장장이인건가?"
열정적으로 철을 망치로 두들기는 대장장이의 행동에 델리는 절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열정은 델리 그녀가 가장 본받고 싶은 감정이기도 했다.
늘 병원의 침상에만 누워있던 그녀는 늘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면 좋을지 갈피를 아직까지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단하다······."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뿌연 안개를 통해서 주변이 숨막힐 정도로 더웠겠지만 남자는 그저 묵묵하게 망치를 두들길 뿐이다.
투지와 열정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델리가 쳐다보는 동안 망치를 두들기던 대장장이가 시뻘겋게 타오르는 검을 물통에 담금질했다.
"엇, 다 완성했나보다."
치이이익- 거리는 엄청난 소리를 동반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무구 제작이 완성된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델리와 마찬가지로 떨어져서 대장장이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유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서로 검을 사겠다고 난리를 치는 유저들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완성된 검에 손을 대고 무언가 중얼거리던 대장장이가 유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이 검은 저의 혼을 실어 만든 무구입니다.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검은 자식과 같은 존재. 저는 이 검을 소중히 다루는 이에게 팔 생각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르신 분에게 판매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그럴듯 하게 내뱉었지만 실상 결론을 따지고 보면 비싼 돈 주는 사람에게 팔겠다는 소리다.
속이 뻔히 보이는 상술이였지만 대장장이도 장사꾼이다.
그 누가 자식같은 무구를 헐값에 넘기려고 하겠는가.
'저 정도의 열정이 담긴 검이라면······.'
델리는 그 상술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본래라면 골드에 여유가 없을 터겠지만 때마침 아버지가 대량의 골드를 선물로 준 덕분에 골드적인 부분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8천 골드 지불하겠습니다."
델리가 대뜸 끼어들면서 부르는 금액에 5천 골드를 부른 상태로 낙찰을 기다리던 유저의 안면이 흑빛이 되었다.
동시에 줄을 선 채로 대기중이던 유저들은 혀를 차면서 물러섰다.
아무리 효능이 좋은 무구라고 해도 8천 골드라는 금액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오버된 금액이였다.
동시에 델리를 보면서 수근대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델리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제 37번째 자식입니다. 부디 잘 사용해주세요!"
대장장이가 내민 검을 받아든 델리는 곧장 정보부터 확인해보았다.
[+5 행운이 깃든 쓸만한 철검(노말+)]
- 어느 운 좋은 대장장이가 만든 철검입니다.
* 착용제한 : 레벨 5이상
* 내구도 : 39/39
* 공격력 +66
* 힘 +6
* 민첩 +3
* 30%확률로 2배의 데미지
"굉장해······."
무기의 정보를 보면서 델리는 진심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당한 능력치를 갖춘데다가 무려 강화도 5단계나 되어있었다.
'아까 손을 가져다 대었던게 강화를 했던거구나.'
하긴 방금 제작된 검인데 바로 5강으로 제작될 리가 없었다.
제작되자마자 강화를 5개나 하는 유저라니······새삼 그 대담함도 대담함이였지만 검의 능력치는 놀라움의 향연이였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철검도 경호원들이 부득불 우겨대면서 가져다준 대장장이의 수작품 무기였지만 대장장이가 만든 철검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능력치로 보나 추가적인 특수능력으로 보나 대장장이의 무구가 월등히 앞서고 있었다.
'아버지 고마워요.'
아버지가 전해준 골드가 아니었다면 이 좋은 무기를 구매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면서 팔리는 모습을 구경만 했을 것이다.
만족스럽게 검을 쓰다듬던 델리는 다시금 작업에 착수하려는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이번 기회에 줄을 닿아두는게 좋겠지?'
척 보기에도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대장장이다.
초보 마을에서 이 정도의 물품을 제작해낼 정도면 추후에는 어떠한 무구를 제작해낼지 궁금증이 절로 일었다.
"저기요. 대장장이 아저씨."
델리의 물음에 대장장이의 몸이 멈칫했다.
동시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델리를 바라본 대장장이는 불만이 가득 담긴 말로 대꾸했다.
"저 아저씨 아닙니다. 그러는 아줌마는 무슨 일이시죠?"
"······."
순간 델리의 이마에 빠직마크가 생긴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직 22살 밖에 안된 풋풋하기 그지없는 자신보고 아줌마라니!
대한 그룹의 총수 차준호가 들었다면 당장에 하던 일을 멈추고 경을 칠 일이였다.
지금 이곳에서 델리가 손짓만 하면 해팔을 필두로한 경호원들이 당장에라도 대장장이를 덮치겠다는듯 사나운 표정으로 대장장이를 째려보았다.
델리의 표정을 보던 대장장이는 이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어찌되었든간에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델리는 가장 큰 금액으로 무구를 사준 쓸만한(?)고객이였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근데 확실히 이야기를 하도록하자면 그 쪽이 먼저 저를 아저씨라고 불렀잖습니까. 저도 아직 24살 밖에 안된 팔팔한 청년입니다. 아줌마 소리 듣기 싫어하듯이 저도 아저씨 소리 듣기 좋겠습니까? 그리고 거래를 튼 사이라고는 하지만 초면에 아저씨는 좀 아니지 않나요?"
"확실히 실례였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뭐. 저도 아줌마라고 한 번 불렀으니까 서로 비기는 셈 칩시다."
능수능란하게 말을 이어가는 대장장이의 모습에 델리는 피식 웃었다.
"저는 델리라고해요. 6레벨이라서 아직 직업은 가지지 못했어요. 혹시나 실례가 되지않는다면 친구추가를 요청하고 싶은데 가능하신가요?"
"흐음. 고객으로서요 부탁이신가요? 아니면 친구로서 맺어지고 싶어지신건가요?"
"둘 다라고 하도록 하죠."
델리의 말에 대장장이 크론은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그러다면 사양하지 않도록하죠. 저는 크론이라고 합니다. 레벨 20이고 직업은 보다시피 대장장이입니다."
크론의 설명에 델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 20레벨이시라고요? 그것도 대장장이로요?"
생산직을 얕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가장 많은 경험치를 획득하는 방법이다보니 기피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거기다가 현재 20레벨 정도면 어지간한 폐인이여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였다.
"자랑할만한 거리는 아니죠. 흠, 계속 존댓말 하는 것도 그런데 저보다 동생이신가요? 아니면 누나?"
"어떻게 보이는데요?"
"동생으로 보이는군요. 그런고로 말 놓아도 될까?"
"풉. 그렇게 해요. 저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무사히 말도 놓고 친구 등록도 끝이나자 크론은 대뜸 델리에게 물었다.
"근데 궁금해서 묻는건데 저기 옆에서 몸이 저릿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는 형님들은 혹시 네 친구들이야?"
"아, 해팔 아저씨요? 네 맞아요."
곰같이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남성들이 크론을 찍어누를 듯이 노려보았다.
크론도 나름 배짱이 있다지만 조폭 같은 저 들을 이길 생각은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참 든든해보이시네. 끄응. 표정좀 풀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 혹시 돈에 여유 있어?"
"돈이라면 넉넉한 편이에요."
"일행이면 내가 무구 하나씩 만들어줄게."
"정말이세요?"
"응. 나야 괜찮은 가격으로 많이 팔면 좋으니까. 단골 고객은 만족시키자는 모토거든. 특별히 세일······은 조금 그렇고 강화 한 번씩 더해서 6강으로 팔아줄게. 어때?"
델리는 강화를 무슨 100%로 성공시키는 것마냥 말하는 크론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5강까지 강화하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이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야 좋아요. 아, 그 전에 제가 산 이 검도 6강으로 해주시는거 맞는거죠?"
"뭐 까짓것. 그냥 해줄게. 거기 놓고 기다리고 있어."
씩 웃어보인 크론은 작업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