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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24) (124/124)

동대륙 전쟁6

*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둠을 찢어발기는 게걸스러운 화염이 시뻘겋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소용돌이쳤다.

골렘들이 그 불꽃 속에서 쓰러졌고 무너지고 있었다.

“거, 거인이 쓰러지고 있다.”

병사 중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고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전장의 누구도 화포가 이런 위력을 낼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 화포는 그런 병기였다.

골렘이 발전하고 그에 대항하기 위한 갖가지 수단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인 병기가 바로 화포였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골렘의 발전이 워낙 급격하게 이루어져 화포가 부각될 시간이 없었다.

그 결과, 화포가 전장에서 활약할 시기가 없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로 바로 효율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포는 무거웠기에 군대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기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화포의 탄약으로는 과거의 철구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마석이 소모되는 방식이었다.

그레지안 산맥이라는 막대한 마석 광산에서 무한정에 가까운 마석을 계속 채굴하는 라이곤 왕국과는 달리 다른 동대륙 국가들은 마석 보유량이 적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얼마 안 되는 마석은 골렘을 건조하는 데 우선으로 소모됐다. 탑승형 골렘이 제아무리 마석의 소모량이 적다고 해도 마석의 소모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화포의 역할이 한정적인 것에 반하여 골렘의 역할은 다양했고, 범용성이 넓었다. 따라서 화포가 아닌 골렘의 건조에 집중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맞물린 여러 가지 현실이 화포의 성능을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화포가 주둔지를 불태우고, 일반병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건 사실이나 핵심전력인 골렘에는 큰 피해를 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라이곤 왕국 육군에 당당히 포함된 포병전력을 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리라.

화르르륵.

화염이 전장의 한복판을 집어삼키고서 맹렬히 타오른다. 마석으로 구현된 마법의 불꽃은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넘실거렸다.

“······.”

아연실색.

폭발 이후에 이명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흑사자 부대의 알바스는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고 말을 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아주 잠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적 골렘들의 압박 속에서 아군의 구원부대와 합류하여 적들의 포위망을 부수던 중이었다. 이를 갈면서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알바스는 알았다.

그러다 별안간 굉음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이러했다.

정신을 차린 뒤에 보게 된 것은 처참한 연쇄폭발의 크레이터와 그 크레이터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 안쪽에는 골렘이 부서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 골렘들이 아군의 것이다.

“이놈드으으을!”

알바스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그의 핏발이 선 눈동자는 어둠의 저편에서 시뻘게진 포구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포병대 병력으로 향했다. 약 400미터 남짓의 거리.

드드드드.

흑사자 급 골렘이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일으켰다. 폭발에 휩쓸려 내구도가 한계치에 다다라 이미 기동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상황. 장갑은 다 파손됐고, 각 관절은 삐걱댔다. 자동수복으로는 도무지 되돌릴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알바스에게는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쿵쿵쿵.

한계까지 골렘을 기동하며 적진을 향해 달려나간다. 분노로 이성을 잃기도 했으나, 나머지 아군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저런 무시무시한 위력의 병기가 계속 존재한다면 이 싸움은 공화국이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흑사자의 이름은 끊어지게 둘 수는 없다. 그것이 알프레드 단장님의······ 아, 그때 단장님의 결단이 이런 것이었던가!’

알바스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비로소 그 순간, 알프레드의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흐흐흐. 새어나오는 헛웃음을 뒤로하고서 후두둑 떨어지는 장갑과 함께 지상을 내달리는 골렘. 적 포병대가 숨을 곳은 없다.

그러다가 알바스는 보았다. 포병대의 전열 지척에 담담한 얼굴로 서 있는 한 청년의 존재를 말이다.

그는 두려움도 없이, 차분한 태도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찰나의 순간에 알바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능이 말해주었다. 저 청년의 존재감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이다.

‘제드 크레인! 저자가 틀림없다!’

알바스의 골렘이 삐걱대며 부러진 칼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포병대와 함께 제드 크레인을 끝장낼 수 있다면, 이 작전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기에.

그러나.

콰아앙.

별안간 그가 휘두른 칼을 막아내는 커다란 방패.

알바스가 눈을 부릅떴다.

적진에 골렘이 더는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서 달려온 것인데, 대체 이 골렘은 또 어디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크윽!”

이미 한계에 다다른 골렘과 만전의 골렘.

이쯤 되면 출력의 차이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콰앙.

방패에 밀쳐져 쓰러지는 알바스의 골렘.

그것이 끝이었다.

적 골렘은 곧장 칼로 탑승부를 찔러왔기 때문이다.

푸카캉!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바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그 이유는 영영 알지 못한 채로, 알바스의 골렘은 기동을 정지하였다. 알바스의 숨도 끊긴 순간이었다.

“끝난 것 같군.”

전황을 살피던 제드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적 골렘이 바로 지척까지 덤벼왔건만, 그의 표정엔 일말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포격을 허용한 순간, 이 싸움은 끝난 것이었다.

조금 전의 포병대의 일제포격을 배후에서 그대로 다 허용하면서 흑사자 급 골렘 9기와 한 기의 드라쿤 급이 그대로 고철 덩어리가 되어 불꽃 속에 널브러졌다.

“다음 포격까지 오래 걸리겠나?”

“그렇지 않습니다. 금방 포격할 수 있습니다.”

“좋다, 오래 끌지 마라. 그게 우리가 이 전장에서 적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다.”

제드는 균형이 무너진 전장의 흐름을 눈에 담았다.

이제 승리의 때는 가까웠다.

*

콰아앙.

육중한 두 기의 골렘이 충돌.

파스칼의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하다. 이 정도의 차이가 있었던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보니, 자크와의 격차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는 그 격차조차도 명확히 알지 못했던 파스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물러날 수는 없다. 지금 내 부족한 부분은 골렘의 성능으로 보완한다. 어떻게든 놈을 쓰러뜨려야만 이 싸움에서 본국은 이길 수 있다.’

각오를 다지던 파스칼. 하지만 그런 생각도 머잖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무시무시한 포격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 굉음이 잦아들 즈음엔 아군 골렘이 불꽃에 삼켜진 뒤였다.

“이럴 수가.”

파스칼이 신음했다.

후위를 지키던 아군 골렘들 태반이 쓰러졌다. 그리고 적 골렘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파상공세를 펼치며 아군의 숨통을 서서히 죄어오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고립됐고, 포위된 상황이었다.

전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승리에 대한 믿음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그 작은 균열의 틈을, 자크는 놓치지 않았다.

꽈아앙!

“큭!”

세차게 날아드는 대검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파스칼. 그런 파스칼의 무너진 자세로 연이은 공세가 따라붙는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격 속에서 파스칼은 그저 막기만 급급하였다.

‘검기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정신을 다른 곳에 팔다니!’

그것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실수였다.

고립된 상황의 조바심, 자신의 실수에 대한 자책이 한데 맞물려 젊은 늑대는 상황을 뒤집어놓기 위한 비책의 때를 노렸다.

기회는 단 한 번.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할 수밖에. 적 마스터만 쓰러진다면 돌파구는 열릴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자크의 노도와 같은 공세 속에서 파스칼은 숨을 죽이고 사냥의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때는 찾아왔다.

‘지금이다!’

자크의 검격. 그 연격의 흐름이 끝나는 순간에 맞춰서 마지막 일격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콰드드드드!

탑승부 측면의 장갑이 갈려나가면서 파스칼이 피를 왈칵 토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선명하게 빛났다. 목숨을 걸고서 최소한으로 충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반격이었다.

고오오오오.

방출된 마나가 노심 코어를 통해 빨려 들어갔고, 이내 무섭게 증폭하였다. 엄청난 기세로 소모되는 마나에 파스칼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골렘의 거대한 대검에 푸르스름한 불꽃이 일렁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파스칼은 지금 골렘의 병기에 오러를 씌운 것이었다.

“타하앗!”

파스칼이 기합을 내뱉으며 칼에 맴도는 오러를 펼쳤다.

파도검이라고 불리는 오러의 올가미. 그 앞에서는 도망갈 곳은 없다. 준비할 새도 없었기에 자크는 그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똑똑히 봐라! 이것이 바로 안투르프의 파도검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은 기사의 형상을 한 골렘이 도리어 오러의 파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것은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쭉 뻗은 강철의 대검이 촘촘하게 이루어진 오러의 파도에 다다랐을 때, 이변은 일어났다.

촤아아악.

파스칼이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해일처럼 무섭게 솟구쳤던 그의 파도검이 중심부에서부터 허망하게 찢겨나간 것이다.

그리고 대응할 새도 없이.

콰드드드득!

“크아아악!”

파스칼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

관통된 칼은 골렘의 몸통 하복부를 완전히 꿰뚫었다.

쿠웅.

이내 무릎을 꿇는 드라쿤 급.

파스칼은 거친 자크의 대검에 몸을 반쯤 기댄 채로 눈을 부릅떴다.

“커헉!”

왈칵 입가로 흘러내리는 선혈. 핏발 선 푸른 눈동자가 여전히 집념에 물든 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군, 안투르프의 후계자여. 높기만 한 파도에 모든 것이 휩쓸리는 것은 아니다. 파도에 견디는 것이 있고, 그것을 베는 존재도 있다.]

파도를 벤다고.

파스칼은 그 말을 곱씹었다.

파도를 일으키고, 파도를 베어 넘기는 자가 상대였노라면, 안투르프의 파도검이 이곳에서 무너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리라.

[좋은 대결이었다, 젊은 안투르프여. 단언컨대 파도검이 끊어지는 일은 없다. 안투르프의 검술은 시대를 뛰어넘어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나의 마지막 사명이다.]

당신도 안투르프인가?

파스칼은 많은 게 궁금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간은 끝났다. 시대의 격랑을 넘어서 공화국에 희망이 되었던 푸른 눈동자의 사내는 이곳에서 스러졌다.

‘끝인가.’

그 광경을 지켜본 제드의 눈동자에도 무수한 감정이 일순 스쳐 갔다. 숙적의 죽음을 두 번이나 보게 될 줄이야.

그러나 그러한 감상은 찰나였다.

한 시대가 끝나면 다음 시대가 온다.

진동하는 대지. 울려 퍼지는 굉음.

거인이 스러지는 자리에 사람의 피가 흐르고, 한 시대의 끝이 비로소 목전에 드리웠다.

새벽의 끝자락.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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