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23) (123/124)

동대륙 전쟁5

*

별안간 전장의 흐름이 변했다.

그 중심엔 라이곤 왕국의 신형 골렘의 존재가 있었다.

저 골렘이야말로 제드가 지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갈아 넣은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시대의 흐름의 저편에서 드래곤의 유산을 하나씩 열어 세상을 전쟁으로 이끌었던 발트 테바인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

비록, 그 발트 테바인은 이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마도기술은 남아있었다. 마치, 길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말이다.

그런 새로운 시대 저편의 기술력을, 제드는 알지 못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생에 쌓아온 골렘의 노하우와 이 시대의 특이점으로 발생한 탑승형 골렘이라는 베이스. 그리고 다중제어식이라는 자신의 마법적 특이성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뿐이다.

그 결과가 저것이었다.

‘다중제어탑승식 골렘.’

메탈 급.

그 골렘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탑승형 골렘에 나이트 급 골렘을 태워 이중으로 증폭하는 방식. 베이스가 되는 탑승형 골렘의 출력 자체는 개선되지 않았았다. 오멜 공국의 탑승형 골렘 설계와 비슷하단 얘기다.

차이점은 하나다. 인간이 타게끔 만들어진 탑승형 골렘을 골렘이 타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착안점이었지만, 탑승형 골렘의 내부에 노심 코어와 나이트 급 골렘의 내부에 노심 코어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순간 출력은 기존의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라인 급 골렘으로는 대처할 수 없었던 흑사자 부대의 골렘의 속도와 파워를, 메탈 급 골렘은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생각보다 동력의 소모가 큰 까닭에 200마력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예상 180마력. 하지만 200마력의 수준까지는 오차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쿠우웅.

바로 그때 또 한 기의 적 골렘이 쓰러졌다.

흑사자 부대가 당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집결을 시작하며 수비태세에 들어가는 듯했다. 퇴로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제드가 그것을 두고 볼 리가 없다.

‘오늘 이 땅에서 흑사자는 쓰러질 것이다.’

투콰앙!

분산되어 있던 흑사자 급을 노리고 달려드는 메탈 급 골렘들의 유기적인 공격에 하나씩 쓰러지는 골렘들. 이대로라면 흑사자 부대가 전멸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큭! 이놈들!”

단순히 기동성이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일사불란하였고, 골렘답지 않게 현란하고 변칙적인 검술을 펼쳐온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것인지조차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조종술이 탁월하다.

“큭. 그 정도로 흑사자가 쓰러질 것 같으냐!”

알바스가 고함을 지르며 자신에게 쇄도하는 메탈급 골렘의 대검을 방패로 밀어내고 오히려 앞으로 무섭게 달려나갔다. 균형을 무너뜨리고 벽에 밀치며 칼을 쑤셔 넣는다.

콰아아앙!

무리한 기동으로 마나가 순간적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잠깐도 쉴 틈이 없었다. 다음 적은 이미 바로 배후까지 쇄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사자 부대의 분전과는 상관없이 이미 전장의 흐름은 라이곤 왕국군에게 넘어왔다.

‘선두 전선도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 같군. 특히 루카스와 오베르의 동기화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네임드 골렘 중에서 오베르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자아가 활성화 되어 있었을 때,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루카스와 오베르. 두 존재가 동기화했다는 얘기다. 루카스가 오베르를 깨운 것이리라.

상황이 점차 유리하게 흘러갔다. 아직 승리를 단정할 수는 없었으나, 흑사자 부대가 이곳에서 무너진다면 적들은 핵심 전력 중 하나를 잃는 셈이었다. 그 피해는 이윽고 공화국의 숨통을 죌 것이다.

물론, 아직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자, 무엇을 하느냐. 너희에겐 마지막 수단이 있을 것이다.’

제드는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곤의 정보국이 포착한 공화국의 괴물 같은 신형이 나타나는 순간을 말이다. 흑사자 급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최강의 골렘. 그것을 무너뜨려야만 비로소 끝을 입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제드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

땅이 울렸다.

그 울림은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깊어가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듯 빛나는 붉은 안광이 어둠을 가르며 접근해오는 게 보였다.

두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전고의 골렘.

그 골렘을 눈에 담은 순간, 제드의 눈빛이 번득였다.

“나타났군.”

굉음과 함께 나타난 드라쿤 급 골렘.

그 순간, 흑사자 급을 밀어붙이던 메탈 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숫자가 줄어들고 포위된 형국의 흑사자 부대였으므로 메탈 급이 물러난다고 해도 전선을 이루는 데엔 아무 문제가 없다.

“발트 테바인이 남긴 마지막 불씨, 보도록 할까.”

*

콰아앙!

메탈 급 골렘이 휘두른 대검을 막아내는 드라쿤 급 골렘.

불과 4기에 불과한 그 골렘들은 덤벼드는 메탈 급 골렘의 공격을 유연하게 받아넘기면서 때를 엿보았다. 그리고 공수가 전환된 것은 그 직후였다.

콰지직!

틈을 파고드는 거대한 칼이 메탈 급 골렘의 가슴을 단번에 꿰뚫었다. 그리고 날아드는 대검을 예측이라도 한 듯 방패로 흘려내고 과감하게 다리를 품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그와 함께 발생하는 회전력을 통해 검의 궤적을 어둠에 새겨넣는다.

콰콰쾅!

양단된 메탈 급 골렘의 몸뚱어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 느닷없는 상황에 양쪽 군대 지휘부의 희비가 엇갈렸다. 열세였던 전황을 뒤집을 가능성을 엿본 공화국 내부에서 환호가 튀어나온 것은 당연했다.

반면에 신형인 메탈 급 골렘이 맥없이 널브러지는 광경을 본 라이곤 왕국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음, 공화국이 정말 괴물을 만들었군······.”

로톤도 그렇게 신음을 삼키다가 힐긋 제드를 보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불리해진 상황인데도 제드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의 저 움직임, 내가 잘못 본 게 아닌 것 같은데.”

[주군이 정확히 보았소. 틀림없소. 안투르프의 파도검술이오. 내가 익힌 것과는 형태가 많이 변했지만, 조금 전의 그 변칙적이면서도 거센 흐름을 타는 듯한 검술의 형식은 파도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소.]

“파스칼 안투르프.”

제드가 나직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가 이 전장에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망설임은 없나? 경에게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좋다. 이 전장에 경이 맡아서 맡을 일은 많아.”

[맡겨주시오, 주군. 전과 같은 실수는 없소. 나는 안투르프와는 무관하오. 제드 크레인의 견줄 데 없는 최강의 칼이고, 라이곤 으뜸의 기사.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오.]

“좋다. 그렇다면 경에게 맡기겠다.”

[이번엔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 대답과 함께 제드의 뒤쪽에서 공간이 열렸다.

그곳에서 검은색의 골렘 한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탈 급 골렘.

차이가 있다면 4.5미터 남짓의 메탈 급 골렘과는 달리 자크의 골렘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전고에 외부 장갑도 더 두껍고 흑요석 처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노심의 출력에 달리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크기가 커지면 오히려 성능저하가 발생하지만, 저 골렘의 탑승······ 아니, 그 일부로서 거대한 갑주를 두른 자크의 압도적인 마나 효율이 성능저하를 넘어선 효율을 만들어낸다.

자크가 격전의 전장으로 나아갔다.

라인 급 골렘들도 한둘씩 좌우로 물러났으니, 머잖아 파스칼의 드라쿤 급과 자크의 메탈 급이 마주 서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뉴레이그의 그 검은 기사인가!”

파스칼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가 살기등등하게 빛났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별안간 느껴지는 이 위압감. 저 골렘의 내부에 있는 존재가 자신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모든 게 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의 결투가 파스칼에게 벽을 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이 전장에서 당신을 쓰러뜨리고, 파도검이 오직 안투르프의 것임을 세상에 증명하겠다!”

콰콰콰콰!

과감하게 접근하여 칼을 휘둘러오는 드라쿤 급 골렘. 그 공격에 맞서서 자크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마주 달려나갔다.

콰아앙.

불똥이 튀었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진동이 무섭게 울려 퍼졌다.

체구가 거의 비슷한 양쪽 골렘.

하나는 먼 옛날 사라진 옛 종족인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하나는 다시금 시대의 주역이 되어가는 풀 플레이트 아머의 기사의 형상을 하고 있다.

대검과 방패. 칼과 칼.

불똥이 터지고, 대지가 쩍쩍 쪼개지며 꺼졌다.

단순한 출력으로만 따지면 드라쿤 급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음은 명확하다. 애초에 골렘의 설계단계부터 기술력의 차이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실력면에서는 자크가 앞섰기에 그 싸움은 접전 상태를 이어나갔고, 크고 작은 타격이 양측 골렘의 몸에 한둘씩 새겨지고 있었다.

분명히 골렘과 골렘의 접전이었는데, 그 싸움은 칼을 들고 맞붙은 기사들의 결투를 연상시켰다.

‘저 골렘, 발트 테바인의 골렘을 보수한 것이로군.’

파스칼의 드라쿤 급 골렘에 파손이 생기면서 페인트가 많이 벗겨져 있었다. 그 내부에 엿보이는 황금색은 그 골렘의 페인트가 덧칠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발트 테바인, 망령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났는가.”

제드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울려주마.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혹을 떨쳐낸 라이곤 최강의 기사는 저 동부왕국의 뇌전의 기사를 제외하면 당해낼 자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지금의 파스칼에게 그는 벅찬 상대였다. 마스터가 모두 같은 실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크으윽!”

쿵!

너덜너덜해진 방패를 내던지며 물러난 파스칼.

역시 검과 방패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 파스칼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진 대검이 보였다. 그가 쓰러뜨린 메탈 급 골렘의 병장기. 그걸 쥐고 있던 검을 버리고 육중한 대검을 손에 쥔 파스칼은 자세를 다잡았다.

“후······. 이걸로 상황은 같다.”

파스칼이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마나를 개방하고 땅을 박찼다. 대검과 대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고, 충격파가 번갯불처럼 터진다.

자크와 파스칼의 접전이 그렇게 치열하게 치러지는 중에 싸움의 양상은 이제 난전으로 치달았다.

나머지 드라쿤 급 3기는 뿔뿔이 나뉜 흑사자 부대와 합류하여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라인 급 골렘 수십 기, 은색 기사단의 메탈 급 골렘과 치열한 접전을 이어나갔다.

백중세였지만, 전황이 라이곤 왕국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은 명확했다. 적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 묶여있었고, 그마저도 우세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우로렐까지 추가로 불러낸다면 상황을 정리하는 건 손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이후 전투에 애로사항이 생기겠지.’

이미 제드는 필요 이상의 많은 골렘을 제어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메탈 급에 탄 자크는 홀로 수십 기의 골렘이 소모할 정도의 마나를 단독으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출력을 증폭시킨 것은 좋았지만, 마나의 소모속도도 더 빨라진 것이 메탈 급 골렘의 치명적인 단점인 셈이었다.

그렇기에 이 전투는 길게 끌어서 제드에게 좋을 게 없었고, 그리할 생각도 없었다.

“각하, 전 포문의 포구를 모두 돌렸습니다.”

포병대장이 보고해왔다.

시야가 협착되어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무용지물이었던 화포가 어느새 고개를 정반대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포구가 향하는 방향. 북쪽 강 유역으로 이어지는 길목.

그곳에는 적 골렘이 밀집해있었다.

흑사자 부대의 흑사자 급 골렘과 구원으로 온 드라쿤 급 골렘이 말이다.

제드는 일부러 그들이 이 시야각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적들을 한 곳에 집결하도록 놔두었다.

판은 이제 모두 갖춰졌다.

그리고 공화국 군대에 있어서 이것은 외통수다.

“포격 개시.”

제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포병대장은 신호를 내렸다. 곧 수십 개의 포구에서 불꽃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숲의 협곡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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