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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22) (122/124)

동대륙 전쟁4

*

콰콰쾅!

골렘과 골렘이 충돌했다.

라이곤 왕국의 군대 배후를 찌른 흑사자 부대의 골렘 수는 약 이십여 기. 반면에 지금 새롭게 나타난 골렘의 수는 못해도 50여기에 육박하였다.

‘보고 받은 정보와는 다르다. 뉴레이그 때의 흉수와 똑같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야.’

으드득.

알바스는 그때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오히려 부대원을 잃고 농락까지 당했었던 것을 떠올리자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알바스는 냉정을 되찾았다.

‘변한 것은 없다. 적국의 주력급 골렘 따위는 공화국의 마도기술의 정수인 흑사자 급에 비할 수 없다. 그리고 실력행사에서는 더더욱.’

콰아앙.

휘청대는 적 골렘의 방패를 밀어젖히고 그대로 칼을 쑤셔 넣는다. 탑승형 골렘이 아니라고 해도 심장부에 노심 코어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쿠웅.

곧 안광을 잃으며 기동정지하는 골렘.

“포위되지 않도록 넓게 포진해서 하나씩 처치해나간다!”

알바스가 그렇게 외치며 아군 골렘과의 거리를 조금씩 벌렸다. 기동전술과 각개 전투에 익숙한 흑사자 부대였다.

수적으로 열세인 흑사자 부대였으므로 적들이 포위하지 못하도록 산개하는 기동전략을 펼쳤고, 그것은 효과적이었다. 제드의 유령부대 역시 자연스럽게 넓게 포진하다보니 각개격파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드의 표정엔 동요가 없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어둠 속을 거침없이 오가며 아군 골렘을 쓰러뜨리는 적의 골렘에 꽂혀 있었다.

‘확실히 걸작이로군. 저 정도의 골렘은 전생에서도 보지 못했다. 움직임, 관절가동성, 출력까지. 탑승형 골렘은 약점이 많지만, 그만큼 장점도 명확하다. 거기다 실력이 빼어난 만큼 유기적인 전술협조도 가능하다.’

계속 지금과 같은 싸움이 계속된다면 유령부대 골렘만 수가 줄어들 터였다. 하지만 제드의 관망은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신형은 공화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오너라.”

그 순간, 투박한 라인 급 골렘들 사이에서 새로운 골렘들 다수가 빠르게 움직이며 튀어 나갔다.

콰아앙.

“이, 이놈은 뭐냐!”

조금 전까지 여유롭게 하나씩 쓰러뜨리던 흑사자 부대원 중 하나가 불쑥 나타나 공격을 가해오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투박한 라인 급 골렘과는 다른 형상. 날렵한 기동형 타입에 외부에 은색의 강철 장갑을 두르고 있는 그 골렘들은 다소 왜소하게 보였으나, 그 무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대검이라고?”

검과 방패라는 기본적인 균형을 버리고 일반적인 검의 두 배는 더 될 것 같은 커다란 대검. 그 대검의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 이놈······ 신형입니다!”

“적의 신형이라고?”

알바스가 놀란 표정으로 신형의 수를 헤아렸다.

당장 보이는 것은 셋. 확실히 라인 급 골렘과는 기동력이 다르다. 그들이 넓게 포진한 대형의 틈 사이로 파고드는 골렘은 벼락같이 무거운 일격을 펼치며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콰앙!

“큭! 요리조리 쥐새끼 같은 놈이!”

알바스가 몸을 크게 돌리며 방패를 휘돌렸다.

그러나 그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무위로 돌아갔다.

출력 자체를 끌어올리면서 기동력 자체가 올라간 흑사자 급은 균형이 잘 잡힌 차세대 주력급 골렘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상대하는 저 은색 장갑의 골렘은 그런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골렘전이 아니라, 칼을 맞대고 대결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야. 모루와 망치······ 아니, 이 정도면 망치가 아니라, 날카로운 창이라고 해야 더 맞겠어.’

그때였다.

콰아앙.

“모건!”

저쪽에서 싸우던 흑사자 부대의 골렘 하나가 몸이 관통되면서 널브러지는 게 알바스의 눈에 들어왔다. 고함을 지르며 주변의 적을 물리치고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은색 장갑의 골렘이 대검을 휘두르며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

‘각하께서 움직이셨다.’

선봉의 루카스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교전음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치솟는 흙먼지와 귀를 찢는 듯한 굉음. 교착된 전선의 선두에는 루카스와 제1 기갑중대가 있었다.

“중대원은 모두 들어라. 적이 아군의 배후를 쳤다. 강물이 범람하여 아군의 골렘은 발이 묶였다. 돌아갈 수가 없단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다. 바로 눈앞의 적을 뚫는 것이다!”

범람하면서 강 주변의 땅은 이제 푹푹 빠졌고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아군 골렘의 태반은 그야말로 발목이 묶여버린 셈이었다.

즉, 지금 상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은 선봉을 자처했던 제1 기갑중대와 다른 베테랑 기갑중대뿐이었다. 그 역할은 막중하다.

‘오베르여.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여. 지금 그대를 낳은 주인이 곤경에 빠졌다. 힘을 빌려다오. 그대와 내가 우리의 주인을 지켜야 할 때다.’

루카스는 자신과 연결된 골렘에게 진심을 담아 의사를 전하였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골렘이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특히나 오베르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런 루카스의 믿음에, 오베르는 응답했다.

별안간 불쑥 빠져나가는 마나의 양이 커졌다.

루카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이내 똑바로 섰다. 그와 연결된 오베르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목소리가 나에게 닿았다. 지금부터 나는 그대와 함께 제드 크레인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루카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오베르가 특별한 존재로서 독립적인 자아가 있으리란 건 알았지만, 이토록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전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기묘한 감각이다. 오베르와의 연결이 더욱 선명해질수록 루카스는 알 수 있었다. 오베르가 얼마나 특별한 골렘인지를 말이다. 자신은 지금까지 오베르의 진정한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오베르 기의 뒤로 따라붙어라. 대열을 뚫겠다.”

루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베르의 전투는 바뀌었다.

과거 몇 번의 전투 속에서 오베르가 각성하여 기동할 때에 루카스는 그저 자신이 마나를 제공하는 존재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처음으로 오베르와의 강렬한 일체감이 느껴졌다.

콰아앙. 드드드드!

방패를 후려치고 그대로 밀어붙이며 밀집된 적 골렘을 뒤로 넘어뜨리는 오베르.

별안간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힘으로 전진하기 시작하는 그 골렘의 모습은 움직이는 요새를 연상하게 했다.

강 너머의 숲 속.

공화국 지휘부의 공기가 무거웠다.

특히 레발트 장군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게 전황의 양상이 직전의 순간에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전황은 공화국 군대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이대로 적 배후를 교란하고 지휘부를 쳐서 머리와 심장만 쳐서 없앤다면 남은 건 소탕에 불과할 터였다.

‘그랬던 상황이 갑자기 변했다.’

“······적 골렘 수십 기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우리 정찰대가 적 매복부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장군, 앞뒤 상황이 뭔가가 이상합니다. 매복이라기엔 너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소리도 그렇고, 이동흔적은 남아야 정상인데, 저 골렘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그런 것인가를 따질 겨를이 아니다. 중요한 건 현재 상황이야. 이걸로 아군부대의 주력인 흑사자 부대가 오히려 고립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거기다 협곡 길목에서도 교착된 전선이 별안간 돌파되고 있질 않은가. 흡사 우리가 판 함정에 함정을 파고 기다린 것과 같은 양상이 아닌가.”

“······.”

모두가 아연실색하여 입을 다물었다.

당장 눈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게 전장이었다. 그런 전장의 상황을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계획한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거기다 이 전장은 공화국이 가장 치밀하게 설계한 전장이기도 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대승을 거두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장소. 그렇기에 충격은 더 크다.

“우리 군은 패배하지 않았다!”

노장의 고함에 지휘부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꺾인 공화국 군대였다.

거기다 아군의 정예 전력이 고립되었다는 건 확실했다.

“일단 전장을 수습하는 게 선결이다. 흑사자 부대를 잃는 순간, 우리의 전략 태반은 빛이 바랠 것이다. 반드시 그들을 구해야 한다. 적이 숨기고 있던 부대까지 드러난 판국인 만큼, 이 상황을 잘 수습하기만 한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레발트 장군은 그렇게 말하다가 고개를 힐긋 돌렸다.

“드라쿤 급 골렘을 동원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힘을 아껴두고 숨길 때가 아니다. 여기서 큰 패배는 곧 이 전쟁의 패배로 이어진다.”

드라쿤 급 골렘.

레발트 장군의 말에 지휘관들 태반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드라쿤 급이라니.

당연한 일이다. 드라쿤 급의 개발은 기밀 중의 기밀이었고, 크리스티앙 발뭉은 최고위 장군이나 최측근에게만 그 사실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주전파인 크리스티앙 발뭉 의원의 군벌은 머잖아 일어날 전쟁의 때를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흑사자 급 역시 당대에선 견줄 데가 없는 골렘이었으나, 그들은 차세대 이상의 정예급 골렘을 실전 배치할 정도로 준비를 끝낸 것이다.

“드라쿤 급이라면 적의 전선을 뚫을 수 있겠나?”

“드라쿤 급의 성능은 가공할 정도이니 이 전장의 흐름, 반드시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호언장담만큼이나 뛰어나야 할 걸세. 우리의 흑사자와 함께 적에게 사냥당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레발트 장군의 서슬 시퍼런 말에 마법사 출신의 장교는 고개를 조아렸다.

쿠구구궁.

머잖아 숲 안쪽에서 은폐장을 걷어내고 검은색 페인트를 투박하게 칠한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찍이 라이곤 왕국의 정보망에 포착되어 기억의 회랑에 저장되었던 그 골렘의 형상이었다.

무광의 검은색 페인트에 머리 위로 두 개의 뿔을 달고 있는 거대한 골렘. 체구도 거대하지만, 그 전고도 5미터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마침내 기동하기 시작한 순간, 무수한 고목이 얇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지며 널브러졌다.

“저것이 드라쿤 급 골렘······.”

“허. 저렇게 큰 골렘은 처음 보는군. 흑사자 급보다도 덩치가 더 크다니 말이야.”

지켜보던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감탄사를 터뜨릴 때였다.

“이대로 우회 기동하겠습니다.”

드라쿤 급 골렘의 안쪽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좁은 숲의 길목은 이미 적과 아군의 골렘들로 꽉 차 있었다. 기다릴 바에 우회기동이 낫다. 범람한 강물을 넘어서라도.

“흑사자 부대와 합류하면 즉시 전장을 이탈하겠습니다.”

“좋다, 허가하겠다.”

장군의 허락에 곧 대지를 뒤흔들며 거침없이 우회기동을 시작하는 드라쿤 골렘부대. 그 기동속도는 주력급인 슈발리에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고, 흑사자 급과 비교해도 탁월한 속도였다.

쿠구구구구궁.

한껏 피어오른 먼지가 서서히 가실 즈음 부관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장군, 저 드라쿤 골렘에 타고 있는 건 누구인지요.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척탄병은 모두 흑사자 부대에 있지 않습니까.”

“저 골렘엔 젊은 늑대가 타고 있다. 앞으로 공화국 최강의 검사가 될 인재가 말이야.”

“젊은 늑대라면, 푸른 눈의 파스칼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 군인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알고 있나? 그가 벌써 유명해진 모양이군.”

“동부의 일선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겁니다. 젊은 나이에 척탄병이 되었고, 뉴레이그 사태 때는 죽음을 겪고 살아남아서 실력이 크게 진일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수비대를 통틀어 최고의 실력이라고 말입니다.”

노장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처음 마주했을 때의 순간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푸른 색의 외눈. 그 눈동자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그 불꽃 같은 전의가 말이다.

“그는 얼마 전에 마스터의 벽을 넘은 것 같더군. 이 전장에서 우리가 패배하지 않는다면 저 젊은 군인은 우리 공화국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성장해줄 걸세.”

담담히 말하는 레발트 장군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이들은 하나같이 충격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스터라니.

그것은 검을 손에 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지만, 아무나 다다르지 못하는 절대적인 경지였다.

정말로 파스칼이 마스터라고 한다면 장군의 말은 현실이 되리라. 그가 공화국을 지키고 승리로 인도하는 수호신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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