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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20) (120/124)

동대륙 전쟁2

정찰대 시체는 금방 진군하던 라이곤 군대에 포착됐다.

그들이 왜 이런 모양새로 죽어있는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제드만 빼고 말이다.

“문제없다. 아군의 행사다. 전군, 계속 진군한다. 적 정찰대는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잠깐 속도를 늦췄던 진군 속도는 다시 빨라졌다.

‘역시 훌륭한 솜씨로군.’

제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전 널브러진 적의 시체는 제드가 배치해둔 저격부대의 솜씨였다.

소규모 마법사들과 정찰병으로 구성된 그들은 적의 정찰대나 전령을 끊고 요인들을 암살하는 저격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것은 전생에 붉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베른 바일, 그 자신이 고안해낸 전술전략이었으나, 지금은 제드가 제안하여 확립된 전술체계였다.

‘베른 바일은 전장에서 역할 수행능력이 탁월하다. 내전의 때부터도 그랬고, 얼마 전의 뉴레이그 사태 때도 그 능력을 입증했다.’

코라스 역시 베른의 지난 이력을 확인하고 신뢰하였기에 뉴레이그의 비밀 작전에 그의 협력을 이끌어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 전쟁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부분에서 적의 발목을 붙잡으며 아군에게 도움을 줄 터였다.

‘그러기 전에 이 전쟁 자체가 쉽게 끝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야.’

오후 즈음 진군을 시작한 군대는 해가 질 무렵이 됐을 때, 언덕 언저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완만한 언덕의 고지. 정찰이 늦은 적들은 뒤늦게야 전투태세에 들어갔지만, 이 고지를 빼앗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작태를 두고.

“한심하군.”

제드는 가볍게 혀를 찰 따름이었다.

이 근방에서 교전이 벌어진다고 한다면 바로 이 고지야말로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장소였다. 골렘전이 벌어진다면 이런 완만한 언덕의 큰 이점 따위는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제드에겐 골렘 전술만 있는 게 아니다.

그그그긍.

어둠 속에서 무거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바퀴들 수십 개가 있었다. 그것은 원통형의 검은색 화포들이었다. 표면에 복잡한 마법술식이 새겨진 화포는 전보다 크기가 조금 더 커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적 주둔지와 이곳의 거리는 약 1킬로가 조금 넘는 거리.

멀지만,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전 포병대. 적을 모조리 불태워라.”

제드가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포병대 지휘관이 각 포문에 명령을 내렸다. 기관출신의 포병장교들이 말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대열을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곧 하늘 높이 뻗은 그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신호였다.

적 주둔지를 향해 포구 각도를 조정한 각 포문이 머잖아 일제히 불꽃을 내뿜었다.

콰콰콰콰콰쾅!

곧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수십 개의 불꽃이 일제히 하늘을 가로질렀다.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가는 최고급 마석탄. 그것은 이미 하나하나가 고써클의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막기가 쉽진 않을 게다.”

제드가 어둠을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내는 적 골렘들 다수를 포착하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대로 주둔지가 불바다가 되는 걸 지켜보지 않고 방패로 막아보려는 것이다.

꽝. 콰콰쾅!

골렘의 방패 위로 작열하는 순간, 맹렬한 화염을 내뿜으며 새빨간 화염이 회오리쳤다. 강철의 방패가 순식간에 우그러들었고,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골렘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투화아아악!

그리고 그 골렘들이 미처 걷어내지 못한 마석탄이 작열한 대지에는 불꽃이 솟구쳤으니, 순식간에 막사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왕좌왕하는 적들의 모습은 지난날, 라이곤 내전의 양상과 비슷하였다. 이 전란의 시대는 너무 급격하게 그 모습을 바꿔왔다. 그래서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전쟁의 시대를 주도하는 것은 골렘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치이이이익.

포구에서 마나가 연소하며 자욱한 연기가 치솟는다.

“자, 두 번째 포격까지의 유예는 그리 길지 않아. 어찌할 것이냐.”

*

작열하는 대지.

일렁이는 불꽃.

울려 퍼지는 비명.

가혹한 전장의 광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이 상황을 처음 목도한 공화국의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적이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사실에 긴장하기는 했지만, 설마 하늘 위에서 불꽃이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일찍이 마법사가 많았던 시기, 그 능력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출중했던 시대에는 마법사 한 명이 전장을 지배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전장에 내려앉은 불꽃은 그 시기에 강력한 마법사를 상대했던 당시 병사들의 절망감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휘부 역시 혼비백산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파괴력이란 말인가······? 화포라는 것이 이렇게나 강력한 병기라니. 적들은 대체 얼마나 되는 화포를 가지고 있다는 거냐!”

화포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위력이나 여파는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혼란한 상황 속에서 지휘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대로 나서서 맞서 싸울 것인지를 말이다.

공화국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는 레발트 장군은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전군, 뒤로 물러난다. 불리한 상황에서의 교전은 삼간다. 우리는 철저히 작전대로 움직인다. 적이 걸어오는 싸움에 휘말리지 마라!”

그 결단이 적기에 이루어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공화국 군대는 언덕 위에서 두 번째 포격이 개시된 시점에 이미 사거리 밖으로 빠져나갔다.

미처 현장을 이탈하지 못한 병사들의 대열을 골렘들이 막아서면서 피해가 크게 누적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이 포격전으로 공화국 군대가 입은 인명 피해는 적지 않았으나, 골렘은 단 한 기도 파괴되지 않았다.

물론, 이 교전 결과를 두고 라이곤 육군의 사기는 크게 진작됐다. 작은 승리라고 해도 초전에 기세를 잡은 것이다.

더욱이 포병대의 자긍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번 전투에서 그들의 능력이 여실히 드러난 까닭이다. 만약 적이 접근해왔더라면 코앞에서 포격하여 골렘까지 무너뜨릴 자신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러나 제드는 이 작은 승리에 기뻐하는 기색도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런 작은 전투가 전체적인 전황을 크게 이바지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곧장 물러났다······. 끌어들이는 것인가. 그게 아니면 단순히 불리한 교전을 피하는 것인가.’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이다.

“각하, 적이 흐트러져있는 지금이 추격의 적기가 아닐지요. 지금 배후를 잡을 수 있다면 전황 전체를 단번에 결정짓는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서 기갑 전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보병여단의 지휘관들이 입을 모아 추격을 제언했다. 하지만 로톤과 기갑중대의 중대장들은 그들과는 의견이 달랐다.

“각하, 적의 핵심 전력인 골렘은 건재하고 숫자 역시 조금 전 교전에서 약 30기에서 40기 정도의 숫자만 파악한 게 전부입니다. 반면 이 구릉지 너머부터는 강가와 울창한 산세에 들어서게 되는 만큼, 섣불리 추격했다가 오히려 유인책에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정반대의 주장이었으나 그 어느 쪽도 틀린 제언은 아니었다. 매 순간이 전혀 다른 상황인 전장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의 수를 읽는 것만큼이나 지휘관의 직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제드의 직감은 경고하고 있었다. 이 너머에 적의 매복이 있음을 말이다.

그러나 적이 가장 자신이 있는 전장에서 적을 깨부수게 된다면 그때 이 전장의 판도는 갈릴 것이다.

제드의 시선이 작열하는 불꽃의 너머로 향했다.

구릉의 저편, 그리 깊지 않은 강의 너머로 적들의 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이 보였다.

‘확인해볼까.’

새까만 하늘 위로 푸른 새가 거침없이 날았다.

제드가 공중정찰을 시도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쐐액!

어둠 속을 꿰뚫은 매서운 화살 하나가 단숨에 블라르의 몸통을 꿰뚫었다.

“······!”

제드는 눈을 번쩍 뜨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동기화가 강제로 깨지면서 반동이 미쳤기 때문이다.

“각하, 왜 그러시는지요.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아니, 괜찮아.”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통증을 견뎠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면 조금 전의 반동으로 피를 왈칵 토하며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블라르와의 익숙한 연결 감각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적 중에 제법 날이 서 있는 놈이 있구나. 공중 정찰을 끊다니. 이전 콜렉 남작령 때 교전을 벌였던 그 흑사자 부대 출신인가?’

이제 제드는 저편의 상황을 확인할 수단이 없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결단이 섰다.

“적을 추격한다. 단, 추격은 기갑부대로 한정하겠다. 길목이 좁기에 강을 넘을 때, 보병이 함께 군집해 움직인다면 기동에 방해될 것이다.”

쓰스스.

추격을 결정한 순간부터 라이곤의 기갑전력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은폐장을 완전히 벗고 그 모습을 드러낸 골렘들은 어깨의 견갑에 소속 부대를 뜻하는 숫자 이외에는 특별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검은 페인트의 바위형 골렘들은 칼과 방패라는 보편적인 무장만 갖추었을 따름이다.

쿠웅. 쿵.

백여 기가 넘는 골렘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일대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했다. 거세게 진동하는 굉음 속에서 적 골렘들의 기동음도 포착할 수 없는 상황.

“제1 기갑중대 강을 넘겠습니다.”

베테랑 중 베테랑인 제1 기갑중대의 루카스가 보고를 마치기가 무섭게 종대로 강을 넘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 제2 기갑중대, 제3 기갑중대가 차례로 강을 넘었다.

강을 넘은 골렘들은 주변으로 넓게 포진하며 수비태세를 취하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고 기민했다.

“골렘을 넓게 포진시킨다. 시야가 협착되어 있고, 기동범위가 좁다. 적이 공격해온다면 취약한 상황에서 적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제1 기갑중대의 루카스가 어둠 속에서 주변 지리를 살피곤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만약 이런 곳에서 싸운다면 단체 기동전술에 익숙한 본국의 골렘들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하나하나 개체의 출력이 높은 적 골렘들에겐 최적의 상황······. 각하께서는 적에게 유리한 상황 속에서의 교전을 택하셨다.’

제드 크레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루카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으므로 거의 신봉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제드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난날 제드가 말보다 행동으로서 증명해왔던 것들을 떠올리며 이 전장에서 발생할 무수한 가능성을 가늠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알겠구나. 각하께서는 적이 노리는 것을 역으로 부수고자 하신다. 이곳은 적이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전장이다.’

그 생각에 다다랐을 때, 루카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제드는 부하들을 사지로 밀어 넣고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지휘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신을 가장 위험한 사지에 던져 상황 전체를 뒤집는다.

그렇다면 이 불리한 전황에서도 그의 행동원리는 전과 똑같을 터였다.

“제1 기갑중대, 골렘의 전열을 갖춘다. 그리고 위치를 잡아라. 우리는 선봉을 맡아 적들을 격파한다. 그 어떤 부대에도 공을 빼앗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반드시 적 대열을 돌파하고 이 전장에 제1 기갑중대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그 무렵, 제드는 후위에서 군대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로써 전위와 후위가 완전히 나뉘었다. 포병대는 강 너머에 포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싸움이 일어난다면 지원 포격은 어렵다. 강너머의 지대가 더 높아서 포격 각도가 협착됐다. 거기다 병사들은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 손과 발이 묶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군.’

“각하, 지금 기습을 맞이한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적들은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로톤이 무거운 목소리로 제언해왔다.

그 말은 정확하다.

그러나 제드는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굳이 적의 전장으로 들어가시려고 하시는지요.”

“적이 확신하는 전장. 그곳에서 무너진 군대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적들은 정면에서의 회전을 꺼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곳으로 들어가야겠지요.”

로톤은 제드의 전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적의 규모도 전략도 알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떤 확신을 하고 적의 전장에서 싸울 수가 있단 말인가.

제드의 방식은 늘 상식을 깨부수는 데가 있었다.

아마도 이번 전투 역시 그러한 것이리라.

바로 그때였다.

“적들도 확신을 한 모양이군요. 우리 군대가 완전히 함정에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말입니다.”

푸드드득.

새까만 하늘 위로 수십 마리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숲의 협곡이 진동한다. 그것은 전장을 알리는 북소리와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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