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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15) (115/124)

추격3

*

뉴레이그를 빠져나온 제드는 대로를 따라 움직이다가 이내 숲길이 나오기 시작한 직후에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도 블라르를 공중에 띄워 정찰을 계속 병행하고 있었으므로 불의의 습격을 당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추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숲에 다다랐을 즈음부터 아우로렐을 공간의 저편에 숨기고 숲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수가 나타났다. 이즈음, 아침이 밝아서 숲에는 안개가 자욱하였다.

습한 안개를 헤치며 제드는 구릉 아래에 있는 작은 틈새에 몸을 숨긴 채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단 마나를 채운 이후다. 싸우든 빠져나가든.’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는 가운데,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제드는 감각을 반쯤 열어두고서 마나를 끌어모았다. 이때의 기습만큼 위험한 순간은 없었으나, 이 주변에 위협은 없었다.

그러면서 제드는 지난밤 작전을 되짚어 보았다.

발트 테바인과의 접촉 과정.

그리고 놈을 제거하기까지의 순간을 말이다.

거기까지 문제는 없었다. 발트 테바인의 전투 역량까지도 충분히 계산에 두고 있던 수준이었다. 제드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였다.

‘파스칼 안투르프.’

푸른 늑대.

아직 어린 파스칼과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이야.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도 그 정도의 실력이란 말인가.’

아무리 자크가 망설였다고 해도 검을 받아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 중에도 점차 성장하는 것 같았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서히 눈을 뜬 제드.

하늘의 해는 중천을 지나서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밖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해가 완전히 저문 후에 움직이는 게 좋을 터였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제드는 자크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년은 강하던가?”

[그 나이치곤 놀라운 수준이었소. 재능도 대단했소. 대련 도중에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소.]

“실력 때문에 베지 못한 건 아닐 테고, 망설였겠지.”

제드의 말에 자크는 순순히 대답했다.

[맞소. 안투르프라는 이름 때문에 동요하였소. 죽은 이후로 이 몸을 가진 뒤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소.]

제드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혈육의 앞에서 인간의 이성은 마비된다. 그건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크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리라. 긴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둘은 피로 이어져 있는 사이였다.

‘이런 순간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일렀을 뿐······.’

[나의 망설임으로 일을 그르쳤소, 주군. 어떤 처우도 군말 없이 달게 받을 셈이오.]

“일의 무거움은 알고 있는 모양이군.”

[물론이오. 기사가 주군의 명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더욱이 적진의 한복판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오.]

“그 말대로야. 일이 조금만 더 틀어졌어도 나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 테고, 내 목숨도 위험할 수 있었을 거야.”

제드는 담담히 최악의 가능성을 열거했다.

그리고 침묵을 지켰다.

고작 이깟 일 때문에 자크 경을 내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제 망설임은 떨쳐냈나?”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소.]

“지극히 인간적인 답변이로군.”

제드는 피식 웃더니 이내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떨치기 어려운가?”

[모르겠소.]

“나에게 경은 라이곤 왕국 최강의 기사인 자크 경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경은 새로 태어났다. 비전은 시간 속에서 갈라졌으니, 이제 라이곤의 땅에 내린 씨앗은 안투르프의 검술이 아니라, 자크라는 기사가 죽음을 초월하여 깨우친 위대한 유산이다. 내 말이 틀렸나?”

제드가 담담히 꺼낸 말.

그 말이 자크에게는 커다란 울림이 되었다.

자크와의 연결을 통해 그의 격렬한 감정의 파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곧 제드의 앞에 공간이 쩍 열렸고 거구의 검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번 옳은 말씀이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제드 크레인의 기사 자크. 조금 전 나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소.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다음에 만난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베겠소.]

절그럭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다시금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를 바라보며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어서야 제드는 이동을 개시했다.

‘아우로렐의 흔적을 찾으려고 할 테니, 내가 이곳에 숨어 있다곤 전혀 생각하지 못할 터.’

아공간 마법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뉴레이그의 싸움의 양상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발트 테바인은 어째서 아공간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놈의 행동방침이 마도특이점을 연쇄적으로 일으켜 유산의 봉인을 푸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아공간 마법은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게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그럴 수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깨우친 아공간 마법이 불안정하거나 그게 아니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거다.’

제드조차도 아공간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존재하는 마법술식을 그대로 대입하여 사용하는 것뿐.

‘그 말인즉 아공간 마법기술은 공화국에 없다. 그렇게 판단하는 게 현재로서는 맞을 터.’

그 뒤로 곧장 숲을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이동하는 제드였다. 도시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검문이 매우 강화되어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베른 쪽은 뉴레이그에서 잘 빠져나갔을지 모르겠군. 내쪽으로 시선이 쏠렸을 테니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곧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조금 전 블라르의 시야에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장면이 포착된 까닭이었다.

‘추격이 붙었나?’

다시 제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블라르를 지나온 길로 돌려보내서 탐색하였다.

그리고 곧 발견했다.

여섯 명으로 한 조를 이루는 일단의 무리가 제드가 지나온 길목을 따라서 추적해오고 있음을 말이다.

‘내 흔적을 따라오고 있다. 추적에 능해. 제법이군. 갑자기 사라져버린 골렘의 흔적 때문에 당황했을 텐데, 내쪽으로 사람을 돌릴 여유가 있다니 말이야. 숲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사라진 아우로렐의 흔적을 쫓다가 내 흔적을 뒤쫓게 됐다는 얘긴가······.’

제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칫 일이 골치아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자칫 이 숲의 북쪽에도 적들이 포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블라르.’

푸드득.

블라르가 다시금 하늘 위로 날아올라서 북쪽의 너머로 빠르게 활공하였다. 그리고 제드의 예상대로 그대로 들어맞았다.

숲이 끝나는 북쪽에는 검은 제복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뉴레이그의 수비대와는 다른 부대였다. 그 복장이 꽤 낯이 익었다.

‘설마 검은 척탄병인가. 복장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근의 땅이 헤집어진 걸로 봐서는 골렘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정예 소수부대란 얘기다.’

제드는 일단 자리에서 멈추었다. 적들이 저 앞에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아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뚫어야 한다면 앞이 아니라, 뒤.’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숲의 어둠 속에서 제드의 푸른 눈동자가 서슬 시퍼렇게 빛나는 가운데, 그의 뒤로 어둠이 쩌저적 열렸다.

*

길잡이를 따라 흔적을 쫓는 이들은 바로 뉴레이그에서 출발했던 흑사자 척탄병들이었다.

과거, 기사단으로 불렸던 그들은 흑사자라고 불렸던 알프레드의 작전 실패 이후로 구 왕국의 낡은 편제를 완전히 탈피하고 재편되었으니, 그것이 척탄병 부대였다.

정예 중 정예인 그들은 공화국 수비대보다 더 윗줄에 있는 독립된 특무부대의 성격이 강했고, 그 부대장인 알바스는 그런 그들의 대장으로서 당대의 흑사자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흑사자의 아래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강해진 검은 척탄병 부대의 역량은 과거의 기사단 시절과 비견할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 길잡이를 따라 빠르게 추적을 이어나가는 그들 탐색조 다섯 명의 실력도 여간 대단한 게 아니었다.

“몸을 숨기는 게 능한 녀석입니다. 아주 기민하게 흔적을 어지럽게 지우면서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골렘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몰라도 이놈이 뉴레이그 사태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는 건 틀림없어.”

탐색조의 조장인 마윈 중위는 그렇게 말하며, 속도를 높였다. 이제 거리는 불과 한두 시간의 차이. 쫓는 대상이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을 생각해볼 때, 이런 속도로 따라붙는다면 금방 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순히 잡히지 않을 거다.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어떤 수작을 부릴지도 알 수 없다. 단숨에 제압한다. 필요하다면 팔이든 다리든 뭐든 베어도 좋아. 뉴레이그 사태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옛.”

속도를 높이는 한편, 기척은 줄인다. 탐색조는 그런 은밀기동이 가능했다. 상대가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최대한 안전한 거리까지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어야 불필요한 피해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의 그런 의도와는 무관하게도 그들의 위치는 이미 제드에게 다 발각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진행경로도 이미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 그 말은 오히려 제드 쪽에서 매복을 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헉!”

앞서 나아가던 마윈 중위가 순간적으로 어둠 속에서 느껴진 예기에 신음을 삼킨 순간, 눈앞으로 싯푸른 오러를 머금은 검격이 파고들었다.

“매복이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넓게 산개하여 움직이던 탐색조는 즉시 반응했다. 하지만 역으로 매복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들은 적들의 규모를 전혀 알지 못했다.

절그럭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이내 은색 갑주를 걸친 적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마윈이 욕설을 내뱉었다. 매복하고 있던 적의 수가 열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금 전 매복 기습으로 한 명의 목이 부지불식간에 베인 까닭에 이제 남은 건 넷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매복이라니. 추격을 읽혔구나.”

뿌득 이를 갈며 마윈 중위는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은색 기사단 열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의 대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핏물이 튀었고 그들의 목숨이 습한 풀숲에 스러져갔다.

그렇게 교전이 끝난 장소에 머잖아 한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제드였다.

[주군, 그들의 검술이 낯이 익소. 아주 예전에 상대했던 그 기사와 같은 검술이오.]

“그래, 자크 경. 나도 이제 그들의 정체를 확신했다. 검은 척탄병이었어. 흑사자가 역사의 전면에서 그렇게 일찍 퇴장했는데도 아주 날카롭군.”

흑사자 알프레드. 아주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떠올린 제드는 그의 최후를 떠올렸다. 부하는 살려 보냈고 그 자신은 죽을 때까지 싸웠다. 그는 존경할만한 군인이었고, 당시의 제드에게는 제법 위험한 적수였다.

“꽤 쓸만한 후임자가 흑사자가 된 모양이군. 어찌 되었든 쓸데없이 더 얽혀서 좋을 게 없겠지. 제법 잘 따라왔다만 여기까지다.”

*

“뭔가가 잘못됐다.”

새벽이 다 갈 때까지도 탐색조로부터 어떤 연락도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탐색이 아무리 길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알바스는 간담이 서늘한 느낌을 받고 즉시 숲으로 직접 들어갔다. 은폐장으로 모습을 감춘 골렘 역시 함께였다.

쿵. 쿠웅.

골렘이 우거진 숲을 헤집으며 길을 열었고, 이내 그들은 교전이 일어난 장소를 발견하였다. 그곳엔 탐색조 인원들이 모두 있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란 말이냐.”

알바스가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곤 즉시 흔적을 추격할 것을 전했다. 매복작전을 벌였을 정도면 적들은 애초에 이곳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수가 많은 만큼 추적은 더 편해진다.

하지만 그 흔적 덕분에 그들은 이내 난관에 빠지게 되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십여 명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나도 겹치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 흔적들조차도 어느 순간 갑자기 다 사라져버립니다. 이래서는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

알바스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흔적이 사라지다니······.

‘쫓고 있던 그 골렘과 같은 상황이야.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대체 뭐냐. 적은 유령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알바스는 십여 년 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은색 갑주의 존재들을 떠올렸다. 그 투구 속엔 눈동자가 없었다. 녹색 안광이 일렁였고, 갑주 내부는 비어 있었다.

“제기랄!”

알바스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즈음, 제드는 북쪽 대로를 따라 짐 마차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입고 있는 옷조차 바뀐 모습. 오는 길에 한 상인과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이제 추적은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었다. 아공간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 공중정찰이라는 정보적 우위에 있는 제드를 포위하여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덜컹대는 짐 마차 위에서 제드는 등을 붙이고 난리가 난 세상과는 사뭇 동떨어진 평화로운 하늘을 눈에 담았다.

라이곤 왕국까지는 아직 긴 여정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위험한 순간은 모두 넘겼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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