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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11) (111/124)

대척3

*

우우우우.

별안간 어둠의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나무형태의 골렘. 고개를 돌린 발트의 눈매가 매섭게 번뜩였다.

“저 골렘은, 그때의 그 골렘이군. 전과 비교해서 제법 모습이 바뀌긴 한 것 같다만, 나의 드레이크의 상대는 아니다.”

하이렐 회전 이후의 시간은 제드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발트 테바인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며 새로운 힘을 갖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라고 해도 좋다.

특히 지금의 발트는 제드가 온전히 손에 넣은 아공간 마법을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얼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 그가 꺼낸 이 골렘 역시도 그때의 백기사와는 격이 다른 골렘이었다.

쿠우웅.

골렘이 내디디는 곳의 땅이 무섭게 진동하였고, 바닥이 무너졌다. 드레이크라는 이름을 붙인 골렘은 머잖아 양쪽 건틀렛에서 발톱을 쭉 뽑아내더니 단숨에 가속했다.

우우우우.

아우로렐이 울며 대응하듯 움직이며 손에 쥔 거대한 나무 창을 쭈욱 뻗어 나갔다. 길이가 훨씬 더 길었기에 유리하였지만, 드레이크는 과감하게 발톱을 교차하여 그 공격을 흘려내려고 하였다.

콰가가각.

고막을 때리는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콰아앙!

거대한 두 기의 골렘이 부딪쳤다. 그 힘 싸움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본격적인 골렘전이 개시된 순간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자크 경, 지금이다.’

제드가 자크에게 곧장 지시를 내렸다.

그 순간, 자크는 땅을 쾅 박차며 달려나갔다.

골렘전이 벌어지는 동안, 발트 테바인은 무방비해진다.

‘아우로렐과 자크를 동시에 운용하는 건 나로서도 무리한 일이다. 하지만 발트 테바인이라고 해도 자크 경을 상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이걸로 외통수다.’

자욱하게 치솟은 흙먼지는 자크에게 아무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거미줄 망처럼 펼쳐진 이 저택 내부의 단면을 통해서 제드가 포착한 혈액추적의 시야가 자크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쓰스스스.

자크의 대검에서 오러가 무섭게 뿜어져 나와 소용돌이쳤다.

수 미터의 범위를 한꺼번에 휩쓰는 파도검이었다.

세밀하게 얽힌 오러가 자욱한 흙먼지를 한꺼번에 걷어내고 발트의 몸을 덮쳐왔다.

광범위한 오러의 파도는 거대한 부채꼴로 쏟아졌으므로 피할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콰콰콰콰콰콰.

이윽고 덮쳐오는 오러의 파도.

그 앞에서 발트의 몸은 갈기갈기 분쇄되는 것처럼 보였다.

흉측하게 갈려나간 대지로 더욱 세차게 치솟는 먼지.

승부는 단 한 순간에 난 것 같았다.

‘아직이다. 놈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발트에게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마나의 감각이 뭔가가 이상했다. 마치, 쿵쾅거리는 심장의 그것처럼 마나가 맥동하고 있었다. 이건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다.

투화아악!

흙먼지가 한순간의 돌풍에 걷혔고, 그 너머에서 황금색의 궤적이 어둠을 꿰뚫고 자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아앙!

쩌저저정.

황금색의 사나운 궤적을 막아낸 자크의 대검 위로 마나의 파동이 일렁였다.

투구 속 자크의 녹색 안광이 일렁였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존재는 더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금색의 비늘로 온몸이 뒤덮인 그 존재는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눈을 하고서 작은 두 개의 뿔을 머리 위로 달고 있었다. 늪지대에 사는 리자드맨이라고 불리는 종족의 형상과도 크게 다른 존재.

“드래곤의 모습을 닮은 호문쿨루스란 말인가.”

제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

쿠우우웅.

저택 전체가 뒤흔들리는 충격.

“골렘전이라니······. 대체 저런 것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거냐. 저런 것들이 이곳까지 나타날 동안 전혀 몰랐다니.”

마크 총수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이곳은 도심이었다. 저런 골렘들이 있을 장소는 없었다. 숨어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주변에 수상한 게 있는지 없는지는 사전에 모두 검토했기 때문이다.

즉, 왜곡장, 은폐장 따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정말로 공간의 저편에서 불쑥 나타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소문처럼 들리는 얘기는 있었다.

라이곤에서 유령처럼 별안간 나타나는 골렘이 있다고 말이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나타나는 그 존재들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위치를 아예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괴소문.

“총수 각하!”

곧 정신이 번쩍 든 마크 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곧 공화국 수비대가 도착합니다.”

“규모는 얼마나 되나.”

“당장 가용할 수 있는 골렘의 수는 슈발리에 급 다섯입니다.”

“······슈발리에 급? 이 진동으로 보건대 그걸로는 부족할 거다. 증원을 요청해. 흑사자 부대가 기동훈련장에서 프로토 타입-01로 테스트 중에 있을 거다.”

“흑사자 급은 기밀이 아닌지요.”

“지금 기밀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발뭉 의원님이 노려졌다. 그리고 본국의 대도심 한복판에서 정체불명의 골렘 두 기가 판을 치는 상황이야!”

“아, 알겠습니다!”

마크 총수가 이토록 언성을 높인 게 얼마 만일까.

뿌드득 이를 가는 그의 얼굴은 악귀의 그것과 같았다. 준비한 자리가 엉망이 되었다는 것만 해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는데, 골렘에 하늘 위로 치솟은 신호탄에 이르기까지.

“나를 이렇게까지 수치스럽게 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주마.”

콰아아앙!

다시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축이 뒤흔들렸다. 조금 전에 검은 골렘이 나무 형상을 한 골렘의 힘에 그대로 휩쓸리면서 저택 별채에 박혀버렸다.

콰르르 무너지는 건물.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나무형상의 골렘은 놀랍게도 순식간에 팔의 형상을 바꾸었다.

드드드득.

넝쿨과 나뭇가지가 뒤얽히더니 그것은 거대한 해머의 형상이 되었으니, 이내 그것을 단숨에 때려 박는다.

투콰아아앙!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땅이 진동하면서 그 파괴력이 간접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또다시 뜬소문처럼 들렸던 지난날의 일들이 마크 총수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올랐다. 그건 전부 라이곤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라이곤······. 라이곤이 관련된 일이란 말인가?”

불현듯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재앙을 초래한 것은 마크, 그 자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바로 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두두두.

저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대여섯 명의 인원이었다. 푸른색 제복차림의 그들은 말에서 내리더니 짧게 경례를 해왔다.

“총수 각하를 뵙습니다. 수비대 강습 2소대 리벨 토리에 중위입니다.”

“빨리 잘 와주었다. 그런데 왜 그대들뿐인가. 골렘은 아직 멀었나?”

“앞으로 십여 분 안팎으로 당도할 것입니다. 저희는 현장의 요인들을 보호하고 상황을 탐색하기 위한 척후조로서 이곳에 왔습니다.”

“아니,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공화국의 심장부에서 지금 정체불명의 적들이 싸움까지 벌이는 판이다. 그런데 아직 적의 규모조차도 파악할 수 없다.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골렘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마법사도 있을 테지. 찾아라. 그리고 잡아들이도록 해.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장은 곧장 대답하였다.

공화국 수비대. 그들이야말로 공화국을 지키는 신생 정예집단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강습대는 날고 긴다는 실력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한 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십 대 남짓의 소년이 그곳에 껴있던 것이다.

“잠깐만. 저 소년도 일원인가? 너무 어리지 않은가.”

“파스칼 안투르프 중사의 나이가 어린 것은 사실입니다만, 실력은 저희 중에 가장 출중합니다. 그가 앞으로 공화국 최고의 실력자가 되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뭐라고?”

그 단언에 마크 총수가 놀란 표정으로 소년을 눈에 담았다. 대지가 진동하고 이 난리 통에도 소년의 표정은 담담했다. 푸른 눈동자를 한 그 소년은 흡사 거대한 바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좋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대들의 사명을 다하도록. 믿고 있겠다.”

곧 말 위에 오르는 수비대 병사들. 단숨에 어둠을 주파하며 골렘전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크 총수는 조바심이 나는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실 따름이었다.

*

“지독한 생명력이로군.”

제드는 자크의 검술에 대항하는 발트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마스터 급의 검사였다.

그런 자크를 상대로 발트는 놀라울 정도로 분투하고 있었다. 금색 비늘을 찢어발기는 오러의 파도를 격투 도중에 마법의 방벽을 얇게 씌우는 식으로 버텼고 엄청난 회복력으로 벌어진 상처를 봉합했다.

덕분에 그 둘의 교전은 일방적이었음에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골렘전에서 먼저 승부가 날 것 같았다.

‘발트 테바인이 꺼낸 골렘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군.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골렘보다 출력이 빼어나다. 아우로렐을 상대로 이 정도로 힘 싸움을 벌일 수 있다니.’

제드는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 한계는 명확했다. 자크와 육탄전을 벌이면서 골렘의 조종까지 한다는 건 드래곤을 본뜬 호문쿨루스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쾅! 콰콰쾅!

우우우우.

승기를 잡은 뒤로 무섭게 공격을 퍼붓는 아우로렐의 공격에 외부 장갑이 거의 다 찌그러진 검은 골렘이었다. 아우로렐은 적의 코어인 노심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으니, 자크가 발트를 제압하기 전에 먼저 골렘이 침묵할 터였다.

‘여기가 끝이다. 전쟁의 불씨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잠들어라, 발트 테바인.’

곧 자크의 대검이 공간을 꿰뚫고 오러를 전면으로 크게 일으켰다. 중심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뿜어져 나오는 오러의 파도는 용인화한 발트의 전면에 펼쳐진 마법의 방벽을 순식간에 깨부쉈고, 강철과 같은 비늘을 깨부순 뒤 복부를 꿰뚫었다.

퍼어억!

“캬오오오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얼어붙었을 정도로 사나운 포효였다. 왈칵 피를 토하는 발트의 길쭉한 동공에 분노와 살기가 희번덕댔다.

“크으으으으으. 인형 따위가아아!”

넘실넘실 마나가 뿜어져 나온다. 이 정도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드드드득!

자크가 대검을 비틀며 단숨에 발트의 몸을 양단하려고 할 때였다. 별안간 배후에서 쏟아지는 섬뜩한 예기. 자크는 곧장 발트의 몸에서 칼을 뽑아서 그 얘기에 반응하였다.

쩌저정!

강맹한 오러끼리의 충돌이 매서운 돌풍이 되어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이 가운데, 만신창이가 된 발트가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쿨럭!”

발트가 왈칵 피를 게워내며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세계의 비밀을, 안타레스의 비전을 이어 세상을 밝히고 이끌 존재란 말이다!’

“크르르륵.”

발트가 고개를 돌렸다.

아우로렐의 육중한 체구 아래에 깔린 드레이크 급 골렘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카가가가각!

대검과 대검 사이에서 불똥이 튀었다.

자크의 녹색 안광이 기묘하게 일렁였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어린 소년의 오러가 아주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자크를 상대하는 소년, 파스칼 안투르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지금 그 둘이 펼치는 검술은 완벽하게 같은 것이었다. 자크 안투프르와 파스칼 안투프르. 길고 긴 시간을 초월하여 본래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남이 지금 이 순간 허용된 것이었다.

“······어떻게 파도검을.”

소년 파스칼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짓눌러오는 막대한 힘을 뿌리치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가문의 비전을 제대로 익힌 건 소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지금 이 눈앞에 있는 거구의 흑기사는 완성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선명한 파도검을 재현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은 안투르프의 사람인가? 그렇잖으면 가문의 비전을 훔친 도둑놈인가. 나는 파스칼 안투르프. 안투르프의 후계자다. 그대가 누구인지 밝혀라!”

파스칼이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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