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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10) (110/124)

대척2

“······어리석군. 이렇게 말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다니.”

발트의 황금빛 눈동자는 싸늘했다.

“그대가 이루고자 하는 평화라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것은 길고 긴 역사의 흐름에서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을 순간에 불과하다. 더욱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겠다는 것인가?”

“가치의 크고 작음? 그걸 정하는 건 항상 시대를 움직이는 자의 소관이야. 그리고 나에겐 오직 평화만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다. 네 이야기 따위는 들을 가치가 없다는 얘기지.”

“······.”

발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서서히 차가워졌다.

“말로 해서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겠지. 덧없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또한 인간의 굴레. 다소 아쉬운 일이다만, 애초에 그대에겐 선택지가 없는 일이다. 한껏 발버둥치도록. 평화를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는 몸을 돌리는 발트.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드는 그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느껴진다, 발트 테바인.’

저택 곳곳에 세밀하게 짜인 마법술식이 알려주고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의 존재가 실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하이렐 회전 때와는 다르다.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발트를 뒤따르는 제드.

넓은 복도에 발트와 제드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지금 이 순간, 이 저택의 모든 관심은 연회장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아껴라, 제드 크레인. 용기와 만용은 다른 것임을 알고 있을 텐데. 나는 그대를 아낀다고 해도, 이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으리라 여기지 마라.”

“지금은 네 목숨을 신경 써야 할 거다.”

절그럭.

복도의 저편에서 무거운 갑주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나아가던 발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불나방과 같군. 기어이 불을 향해 뛰어들고자 하다니.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그게 아니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인가.”

“굳이 말하자면 후자다.”

“오만하군.”

“네놈이 그걸 말하는가?”

제드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은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던 녹색의 안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내달렸고, 푸른빛 궤적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쩌저저적!

검은 기사의 칼에서 일렁이는 푸른빛 오러가 세찬 기운을 토하는 가운데, 발트의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쪼개졌다.

‘아티팩트?’

제드가 그것의 정체를 단숨에 꿰뚫어보았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의 수를 헤아리건대, 저 정도의 고등급 방어벽이 몇 개는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끌 생각인가. 어림없다.’

그 순간, 제드는 마법을 영창했다.

순식간에 제드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마탄이 형성되어 빛을 뿜는 가운데, 제드는 마법으로 발트를 목표로 지정하고 단숨에 모든 마탄을 쏟아냈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마탄의 세례.

콰콰콰콰쾅!

폭발이 일어났고, 마나가 무섭게 연소하며 후폭풍이 넓은 복도에 가득 휘몰아쳤다. 방벽을 뚫는 데에 어느 정도의 타격은 있었으리라.

콰앙!

또다시 마법이 깨지며 마나가 흩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연이어 아티팩트가 기능을 다 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제드가 혀를 찼다. 연이은 자크의 맹공을 받아내는 발트였다. 마스터 급에 다다른 기사의 공격을 받아낼 정도의 방어 아티팩트는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잠깐. 호위대가 움직이는가?’

제드는 미간을 모았다.

오늘 이 저택에 모인 인물들이 하나같이 거물인 만큼, 모여 있는 기사들의 수준도 높다.

저택 내부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아 수 있었기에 충격의 진원지인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다수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제드는 곧장 움직였다. 마법사인 그는 실력자들과 맞닥뜨리면 목숨이 위험했다. 최대한 현장에서 멀어져 원거리에서 상황을 제어해야만 했다.

‘자크 경, 놈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알겠소.]

자크의 대답을 들은 순간이었다.

별안간 발트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파동.

순식간 부풀어 오르는 거대한 마나의 증폭은 6써클 그 이상의 마법이 틀림없었다.

제드는 다급히 회랑의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 거대한 마나가 폭발 마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세상이 무너질 듯 땅이 진동했고 화염의 폭풍이 복도를 가득 헤집어 놓았다.

*

드드드.

샹들리에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

별안간의 굉음과 함께 연회장의 분위기는 변했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좌중은 우왕좌왕하였다.

“의원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경호원은 다급히 크리스티앙의 안전부터 챙겼다.

이 소란이 의원을 암살을 노린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력이 빼어난 경호원들은 모두 노 의원의 주변에 붙어서 그를 지키기 위해 사방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제 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마크 로베르는 평소의 그 부드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카리스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연회장 손님들의 안전이 우선이다! 네빌, 어디에 있나!”

곧 제복 군인 한 명이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옛, 총수 각하.”

“상황부터 파악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리고 군대를 불러 저택의 외곽부터 포위한다.”

“알겠습니다.”

마크 총수가 상황 지침을 내리는 가운데, 연회장의 다른 복도로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 중에는 스칼과 리오나도 있었다. 사색이 된 스칼과 달리 리오나는 그저 굳은 기색일 따름이었다.

‘각하께서 일을 벌이셨구나!’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그대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그대는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면 되는 거다.

리오나가 맡은 바 임무는 끝난 셈이다.

제드를 이곳으로 안내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일이었다.

리오나는 자신을 거두어준 정보국장 코라스로부터 한 가지 더 임무를 받았다. 때는 찾아왔고, 그것을 수행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평화의 초석이 된다.’

“리, 리오나! 리오나, 잠깐······. 어디야!”

스칼을 뒤로한 채, 인파를 빠져나가서 달려나가는 리오나. 모두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때, 그녀는 오히려 계단을 올랐다. 드레스를 입고서도 그녀의 움직임은 빨랐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건을 손에 꽉 쥔 채, 그녀는 저택의 4층 발코니에 섰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는 가운데, 그녀는 손에 쥔 마석을 꽉 쥐고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각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석 위에 새겨진 마법술식이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피이이잉!

하늘 높이 치솟는 불꽃은 이내 푸른색으로 터지며 사방에 흩어졌다. 그것은 신호탄이다. 구상한 작전이 다음 단계로 이행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

그 신호탄에 반응하는 이들이 있었다. 뉴레이그의 도심에 있던 라이곤의 정보국 요원들이었다.

“서둘러 이 사실을 국장님께 전해라. 그리고 지금부터 요인께서 작전대로 빠져나가실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하라.”

“옛.”

*

고오오오.

열기가 요동쳤다.

제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의 폭발 마법을 구사할 수가 있다니.’

영창의 속도도 그렇고, 파괴력도 놀랍다.

조금 전 폭발로 회랑과 이어지는 복도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죽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제드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죽을 놈이 아니야. 놈이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제드의 눈동자에 푸른 광망이 깃들었다.

무너진 잔해의 너머에서는 발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혈액추적에 반응이 있어. 피를 흘렸나. 어디에 숨었느냐.’

저택의 영역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아직 저택을 빠져나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드가 놈을 찾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별안간 고개를 돌리는 제드.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찾았다.’

그 순간, 잔해에서 쾅 치솟는 검은 그림자.

두두두두.

자크가 반사적으로 어둠을 주파하며 달려나갔다.

‘애썼다만, 위상전이 아티팩트라고 해도 긴 거리를 도망칠 수는 없는 법. 이걸로 외통수다.’

발트가 도망칠 방법은 이제 없었다. 위상전이는 수 시간 전에 위상 좌표가 자동으로 기록되어 위급한 순간에 그곳으로 이동시키는 공간전이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강제적인 공간이동은 육체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기 마련이었다.

자크가 다시금 교전에 들어갔음을 확인한 제드도 움직였다. 이곳 폭발지점으로 다수가 모여들고 있음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포위는 곤란하지.’

지금 이 저택에는 마법사도 있다. 마법술식이 완전할 때라면 몰라도 조금 전 폭발로 불안정해진 지금은 제드가 사용하는 마나의 흐름을 들킬 위험이 있었다.

제드는 어둠 속으로 기척을 지웠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발트가 자크의 손에 죽는 순간을 두 눈으로 확인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눈을 대신해주는 것은 바로 저 하늘의 블라르의 몫이었다.

쩌저적!

휘몰아치는 오러의 폭풍 앞에서 중년 마법사의 몸은 서서히 걸레짝이 되어갔다. 깔끔했던 정장은 찢겨나갔고, 몸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인형 따위가······.”

발트는 연이어 찢겨나가는 방벽 속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희번덕거리는 황금색 눈동자엔 노여움이 들끓었다.

벌써 13개의 아티팩트 중 11개가 박살이 나버렸다. 위상전이를 사용했음에도 놀랍도록 빠르게 따라붙는 적에게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특정할 방법이 있는 게로구나. 내가 놈을 너무 얕보았어. 이렇게나 무모하게 움직일 줄이야. 인간에 관해서는 긴 시간 연구를 해왔을 텐데.’

발트는 또다시 두 장의 방벽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푸른 칼날을 지켜보면서 마나를 개방했다. 7써클의 폭발 마법으로도 잠재우지 못했던 이 인형을 상대하려면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다.

“나오너라!”

그의 말이 트리거가 되었고, 곧 그의 뒤쪽으로 거대한 공간이 쩍하고 열렸다. 그리고 곧 그 안쪽에서 불쑥 두 개의 뿔을 가진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오오오.

그것은 용의 형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까만 몸의 부위 곳곳에서 일렁이며 뿜어져 나오는 마나는 이 이 골렘의 특별한 힘을 상징하고 있었으니.

지이잉.

이윽고 황금색 안광을 내뿜은 골렘은 그 거대한 팔을 거침없이 휘둘러왔다.

꽈앙!

2.5미터의 자크가 붕 떠올랐다가 바닥을 긁으며 뒤로 거침없이 물러났다. 대검을 땅에 쾅 박으며 자세를 다 잡는 모습이다.

그러나 바로 조금 전 일격으로 저 골렘의 전투력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거나 다름없었다. 5미터가 넘는 전고에 온몸의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하고도 격렬한 마나의 흐름.

‘저건 기억의 회랑에서 봤던 그 골렘이 아니다. 공간의 저편에서 나온 것도 그렇고······. 신형 중에서도 특별히 만들어진 골렘이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렷다.’

제드는 직감했다. 저 골렘은 발트가 준비한 최강의 카드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제드 역시 최강의 카드를 꺼낼 수밖에.

“나와라. 아우로렐.”

쩌어억. 제드의 뒤편으로 공간이 열렸고, 저택에 드리운 짙은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대수림의 재앙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우웅.

우우우우.

녹색 안광을 빛내며 아우로렐이 몸을 일으켰다.

전혀 다른 형상의 골렘 두 기가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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