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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9) (109/124)

대척1

뉴레이그에서의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마크 총수는 아론 아스타시아에게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이후로 그의 흥을 돋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크 총수의 태도는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는데, 사흘째부터는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을 방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누이인 리오나가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아잉. 몰라요.”

“하하하. 뭘 모른다는 것이냐.”

제드는 자신의 품에 안겨 몸을 쓰다듬는 여성을 받아들였고 철저히 아론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렇게 환심을 사면서도 마크 총수는 절대로 섣불리 정보를 캐내진 않았다. 사냥의 때를 노리는 영리한 사냥꾼처럼 그저 허물없이 지내며 그의 마음을 자신에게 기울어지게 할 뿐이었다.

한편, 결혼식의 준비는 하루가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규모는 웬만한 왕족의 결혼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다. 날이 다가오면서 먼 곳에서부터 축하를 위해 마차가 연일 찾아왔고, 리오나는 이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식의 날은 밝았다.

저택의 입구에서는 수십 대의 마차가 줄지어 들어왔다.

하나같이 발뭉 의원과 연관된 사람들부터 마크 총수와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각계각층에서 중요 인물만 뽑아내서 불렀음에도 이 정도였다.

물론, 개중에는 이 사교의 장이 기회의 땅임을 알아보고 우격다짐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짐작이라도 한 듯 마크 총수는 사병을 배치하여 혼란한 일이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빈틈없이 준비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느지막하게 거물이 나타났다.

바로 크리스티앙 발뭉이었다.

“의원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수 자식의 중대사야. 오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하하.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마련해두었습니다.”

발뭉 의원은 폭풍의 눈과도 같았다. 그가 나타난 순간, 저택에 모인 각 정·재계의 인물들은 그에게 빨려 들어가듯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식은 거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고,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옆에서 스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손뼉을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잖아 종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한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식장의 옆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옮겨갔다.

그 인파 속에서 제드는 있는 듯 없는 듯 상황만 살피고 있을 따름이었다.

‘크리스티앙 발뭉. 조심성이 많군.’

그를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움직이는 경호원들이 있다. 근데 그 경호원의 수준이 상당한 듯했다.

[라이곤 왕국의 근위대 이상이오. 하나하나가 로톤 경의 수준은 될 것이오.]

공간의 저편에 있는 자크의 평가가 그러했다.

‘마법사도 대동했나. 저택에 몇 가지 마법술식이 설치되었군. 마나 감지, 경보 따위의 간단한 마법인 것 같긴 하군.’

크리스티앙 발뭉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해보자면 이 정도의 호위는 사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제드가 굳이 이 적진의 한복판에 위험을 안고서 나타난 이유는 저 백발의 노인 때문이 아니었다.

“아론 공자님.”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지난 십여 일 동안 꽤 익숙해진 시녀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총수 각하께서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오. 각하께서? 안내해라. 각하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제드가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녀를 뒤따랐다.

곧 북적대는 인파를 지나고 나자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발뭉 의원과 마크 총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곁에는 한결 편한 복장을 한 스칼과 리오나도 있었다.

“아, 마침 오는군요. 아론 공자.”

“하하. 사람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오. 자,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인사를 드리도록 하시오. 이분게서 바로 크리스티앙 발뭉 의원님이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론 아스타시아라고 합니다.”

“오. 귀하가 그 인재인가. 마크 총수에게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듣던 참일세.”

“과찬이십니다. 인재라니요. 하하.”

제드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웃었다. 그의 모습에 발뭉 의원의 입가에도 미소가 드리웠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마크 총수와는 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지. 어디 이 늙은이도 그 이야기를 좀 들어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제드는 흔쾌히 대답하면서 열흘간 아주 조금씩 풀었던 정보들에 관한 이야기를 쓸데없는 소리와 함께 섞어서 하기 시작하였다. 너무 주제에서 어긋났을 때마다 마크 총수는 옆에서 대화의 흐름을 다시 잡아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나가면서도 제드는 눈앞의 의원이나 총수가 아니라, 이 연회장 내부를 샅샅이 훑어나가고 있었다. 찾는 것은 단 한 명이었다.

‘어디냐, 발트 테바인. 숨거나 모습을 바꾼다고 해도 소용없다. 이 자리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너를 감출 수는 없다.’

제드가 열흘이나 이전에 이곳에 온 것은 아론 아스타시아라는 인물에 관한 의심을 없애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법사였다. 그리고 열흘이라는 시간은 이 저택 전체에 아주 정교한 마법술식을 설치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빌헬름을 통해서 알게 된 연금술을 통한 마법은 혈액을 추적하는 게 가능하였고, 그것은 발트 테바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의 본질인 영혼의 길로 인도해줄 터였다.

꿈틀.

“갑자기 왜 그러는가, 아론 공자.”

“······아닙니다. 와인의 맛이 생각보다 아주 좋아서 놀랐습니다.”

“하하하. 애주가로군. 그 차이를 알겠나? 이건 트리프스 18년산일세. 나는 이걸 가장 좋아하지. 자네가 원한다면 한 병 따로 준비를 해두도록 하지. 이건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야.”

노 의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신형 골렘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제드는 적당히 그 대화에 어울려 주고는 이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크리스티앙 발뭉과 대화를 원하는 이는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드 역시 그에겐 용무가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조금 전에 긴 시간 찾아 헤맸던 존재가 그의 감각의 거미줄 망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찾았구나. 발트 테바인.’

*

이 장내 공간이 제드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높은 천장 위로 펼쳐진 샹들리에.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연주가들의 아름다운 합주. 수많은 음식의 향연. 분주히 오가며 모였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너머에 발코니에 홀로 서서히 땅으로 떨어지는 해를 지켜보는 중년인이 있었다.

한 번 보고 지나가면 기억이 남지 않을 듯한 흔한 얼굴의 인상. 홀로 와인 잔을 흔들던 그의 곁으로 한 청년이 섰다.

그는 아론 아스타시아라는 인물이다.

“연회는 즐기고 계십니까.”

“예,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치곤 썩 즐거워 보이지는 않으시는군요.”

“그렇게 보이십니까.”

“예, 몹시 따분한 듯한 기색입니다. 역시 인간들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이 아니면 즐겁지 않은 모양이군요, 발트 테바인.”

그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돌렸다. 이채가 드리운 눈동자. 곧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놀랍군. 나를 알아보았나.”

“모습을 바꾸고 숨어 있으면 찾지 못할 줄 알았나?”

“하하하. 인간처럼 외형에 얽매이는 존재들도 없지. 그런 점에서 미루어볼 때, 그대가 여간내기가 아니란 것은 확실하군, 제드 크레인.”

“그래서 나를 알아보았는데도 여기에 남아 있었나.”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내가 도망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곳은 그대에게 있어 적진이다. 반대로 나에겐 앞마당이야. 오히려 자신을 숨겨야 하는 건 그대야.”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 발트 테바인이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아. 나는 그대의 그 무모한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더욱이 그대라는 인간은 다른 존재들은 해낼 수 없는 시대의 특이점을 가져오는 존재. 나는 그대를 아끼고 있다. 정작 그대는 나를 적이라고 여기는 듯하지만 말이야.”

별안간 발트의 눈동자 색이 변했다.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눈동자. 그것은 단언컨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 시선이 제드에게 향했다.

“이런 먼 땅에서 서로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서로 누구인지 알고 있다······. 어떤 강렬한 운명을 느끼지 않는가?”

“운명이라고.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자리, 이 순간이 바로 내가 계획하고 설계한 판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 그대의 판에 내가 이끌려왔다고 해서 그것이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마저도 시대의 운명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내가 네놈을 찾고 있는 이유를 모르지 않을 텐데.”

제드의 눈동자에 드리운 단호한 살의. 그것을 보고도 발트는 여유로운 기색이다.

“후후. 나를 부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의 존재는 상호보완적이야. 적대가 아니라 공생과 공존의 가치와 미래를 논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지 않나? 이건 설득이 아니라, 합리성에 관한 이야기다.”

푸흐흐.

제드가 실소를 터뜨렸다. 수없이 이 만남의 순간을 상상해보았지만, 그 어떤 상상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재미있군. 좋다. 들어보는 것도 좋겠지. 발트 테바인, 그대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이야.”

“이제야 좀 대화가 통하는 것 같군.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운 주제이나, 축약하자면 나는 잃어버린 유산을 손에 넣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유산을 토대로 이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이다.”

“요컨대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거군.”

그러자 발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배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어리석은 존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계도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터.”

“궤변이로군. 그래서 그 올바른 방향성이라는 것에는 계속되는 이 전쟁도 포함이더냐?”

“물론이야.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피가 흩뿌려지는 전쟁 속에서 눈부신 발전은 이루어진다. 그 발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종족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 되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근런데 그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수십 년에서 백 년 이상의 발전이 한꺼번에 이루어졌어.”

제드를 바라보는 발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대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고서 불과 10년. 그 사이 마도특이점은 놀랍도록 빠르게 갱신되고 있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봉인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건 지난날엔 볼 수 없었던 현상.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

그 말에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그제야 지금까지의 일들이 한 번에 이해가 된 까닭이다.

한 걸음, 제드가 시대를 앞서 나아가면 그 앞에 성큼 나타나는 발트 테바인이었다.

‘전생과 현생의 차이는 그것이었나.’

제드가 앞선 시대의 마도공학의 기술을 사용한 순간, 최후의 드래곤 안타레스가 구상해둔 마도특이점이 갱신되었다.

그것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풀리도록 만들어진 마도공학의 기술력이었는데, 엉뚱하게 그 과정이 압축되어버린 것이다.

발트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한발 앞서서 열어서 세상에 선보였고, 제드는 그 앞선 기술에 대항하기 위해서 다음의 수단을 마련했다.

그때부터 역사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한 것이다.

“상호보완과 공생의 의미는 이제 이해할 수 있을 터. 나는 그대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그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발트가 손을 내밀었다. 제드가 자신의 손을 잡을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발트 테바인. 이건 악연이다. 그리고 너와 나의 지향점은 전혀 반대편에 있다. 네놈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은 달라.”

발트가 미간을 찌푸리는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 그리고 네놈은 그 평화에 방해되는 분란의 씨앗에 불과해. 옛날 옛적에 사라져버린 종족의 유산 따위도 마찬가지다.”

제드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빛났다.

“방해된다면 치울 뿐이다. 유산이든 네놈이든 내가 구상하는 평화 앞에서는 다 제거 대상일 뿐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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