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8) (108/124)

설계4

*

“하하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고, 광휘를 머금은 마석들이 수없이 벽에 박혀 적절한 빛의 세기를 조절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식당이었다.

이곳은 뉴레이그의 대저택.

크리스티앙 발뭉이 공화국의 동부지역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볼 때 머무는 장소로, 평소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대관한 인물은 바로 의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마크 로베르였다.

일찍부터 마크 로베르의 후계자로 발탁된 스칼 로베르의 결혼식을 맞이하여 지금 이곳에는 아스타시아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당사자인 리오나 아스타시아가 주인공이었고, 상단의 어른인 카심을 대신하여 참석한 아론 아스타시아가 함께였다.

“리오나에게 이토록 훌륭하신 오라버니가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녀는 통 가족에 관해서는 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럴 겁니다. 리오나가 무뚝뚝한 데가 있어서 말이지요. 여성으로서 귀엽지는 않을 겁니다.”

“오라버니.”

잠자코 있던 리오나가 가볍게 눈을 흘기자, 다시 유쾌하다는 듯 웃는 스칼. 평소 리오나의 차분하고 진지하면서도 가련한 매력에 빠진 그였기에 그와는 한껏 대비되는 오라비 아론과의 대화에서는 어떤 친근감마저 느꼈다.

그리고 마크 총수는 다른 의미로 아론을 반기는 중이었다.

“이거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도 아론 공자의 식견이 여간내기가 아님을 알겠소. 여러 방면의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막힘이 전혀 없으니.”

“제가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에 관심을 컸던 터라, 리아바란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이런 말씀을 제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만, 성적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었지요.”

아론이 다소 으스대듯 말하자, 마크 총수는 전혀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더 물었다.

“허허. 그랬소?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본 것 같소.”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냥 다른 이들에 밀리지 않을 정도만 했을 뿐이죠.”

“허허. 겸손하시오. 나는 진작 공자가 아스타시아의 걸물임을 알아보았소. 그 정도로 박학다식하다면 필시 수도 귀족들과도 적잖은 친분을 맺었을 것 같소.”

“그야 물론입니다. 리아바란은 거슬러 올라가면 본디 으뜸의 귀족을 키워내는 양성기관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그곳의 일원으로서 라이곤의 미래를 일궈낼 많은 귀족들과 연을 맺었습니다. 물론, 불과 10년 안팎으로 모든 것이 바뀌긴 했습니다만······.”

신이 난 듯 떠들던 아론이 이내 못내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것을 마크 총수는 절대 놓치지 않았다. 10년 안팎으로 라이곤 왕국에 나타나 모든 것을 뒤집은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음, 라이곤 왕국의 정치는 크게 쇄신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 귀족중심에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 보고 뽑는 의회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소. 그에 관한 공자의 고견이 궁금하군.”

“글쎄요.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닙니다만, 그 능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전통과 역사라는 것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라버니께서도 곧 중요한 역할을 맡으실 겁니다. 더욱이 중앙정계의 일보다 아스타시아를 이끄실 생각을 하셔야지요.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답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스타시아는 점점 더 커지고 있고, 격변하는 세상과 맞서 싸우자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테지. 아버지께서도 그걸 내게 요구하고 계실 테고.”

여러 말로 자신의 체면을 거듭 세우는 아론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크 총수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오늘은 몹시 즐거운 날이군. 좋은 와인이 있는데 공자께서는 술은 좀 즐기는 편이오?”

“하하하. 술을 싫어하는 사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이런 좋은 날에 좋은 술이라면 기분 좋게 취할 수 있겠군요.”

“아론 공자님께서는 아주 호탕하시군요!”

마크 총수가 운을 띄우고 스칼이 부추기는 가운데, 머잖아 시녀가 와인 잔을 가져왔고 그 내용물을 채웠다. 아론은 잔 내부에서 찰랑대는 향을 음미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오오. 이렇게 좋은 향은 처음 맡아봅니다!”

“역시 아론 공자, 바로 알아보셨소. 20년산 쿠란티르이오. 열흘 뒤의 경사스러운 날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해두었으니, 마음이 내키는 대로 즐기시지요.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이제부터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밤이 깊었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이미 스칼과 리오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였다.

술이 들어가면서 아론은 눈에 띄게 편해진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반면 마크 총수는 와인을 비우는 듯하면서 적당히 옆 그릇에 쏟아내고 다시 채우며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군.’

마크 총수는 지금껏 차분히 함께 온 저 아론이라는 청년을 살폈다. 얼마간의 이야기만으로도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허영과 엘리트 의식. 지식을 뽐내기 좋아하는 부류의 귀족주의로 똘똘 뭉쳤군. 저런 부류의 인간들이 넘칠 리아바란 아카데미가 어떤 곳인지는 불 보듯 뻔하지.’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 듯, 보고서에 의하면 아스타시아 가문의 다양한 일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지만, 마크 총수는 그게 리더의 자질이 아님을 금방 알아보았다.

‘가문의 후계자가 될 인재는 아니야. 오히려 자질 면에서 보자면 리오나, 그 아이가 훨씬 더 출중해.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 반감을 사기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맡긴 일을 그르칠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오히려 잘난 척하는 아론보다도 리오나의 태도가 더 눈에 띄는 자리였다. 그녀는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였고, 아론이 때때로 선을 넘는 발언을 할 때에도 침착하였으며 한 번씩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하였다.

‘순종적이면서도 현명하다. 좋은 아내가 되겠어. 스칼 녀석이 여자를 볼 줄은 아는군.’

스칼이 어렸을 때부터 유흥과 여성과 어울려 노는 일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던 마크였다. 다양한 여성의 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그 배우자가 될 상대인 리오나와 함께 찾아온 이 아론이라는 애송이는 마크 총수가 가장 다루기 쉽게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공자, 아까 귀족 중에는 높은 자리에 오른 이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겠소?”

“못할 것도 없지요. 보자······ 그러고 보니, 마법사가 되겠다던 녀석이 있었습니다. 뷔르만 마르크라는 친구인데, 가문은 전통적인 라이곤의 토호 귀족가문입니다. 근데 가세가 기울어서 꽤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출세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곤 했었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불과 몇 년 전에 원수 각하의 직속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 기관에 들어가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 그 레지앙의 국가 마법사 기관에 관한 이야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소. 들은 바로는 라이곤 육군의 중추기관이라고 하던 것 같던데.”

“하하. 맞습니다. 역시 총수 각하십니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이름만 날릴 수 있다면 출세 코스라고 할 수 있지요. 능력만 증명한다면 말입니다. 근데 그 뷔르만과 얼마 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필시 라이곤의 미래를 논하는 중요한 자리였을 터,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겠소.”

“그렇지요. 어렸을 때처럼 술에 진탕 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글쎄 벌써 차세대형 골렘의 개발이 레지앙에서······.”

아론이 술술 떠들다가 별안간 술이 확 깬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실실 웃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깜짝 놀란 얼굴.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한 듯한 얼굴이다.

“공자, 왜 그러시오? 말을 하다가 말고.”

“아, 아니······ 술에 취한 모양입니다. 제가 그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말입니다. 크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어지럽군요.”

“음, 알겠소. 참으로 재미있는 대화였소. 아직 시간은 많으니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오.”

살짝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는 아론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크 총수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턱을 매만지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라간.”

“예, 각하.”

“최근 수년 동안, 라이곤 왕국의 레지앙 국가 마법사 기관에 관한 정보를 모두 살펴보도록 해라. 뭔가 특이점은 없는지 말이야.”

“특이점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차세대형 골렘에 관한 정보다. 만약 그와 관련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제드 크레인의 행보를 최대한 추적해서 레지앙에서 발견이 되었는지를 파악하도록 해. 그리고 그 마법부에 관한 것까지도 아무리 사소한 것도 놓쳐선 안 된다.”

“옛, 알겠습니다.”

마크 총수가 와인 잔을 들었다. 살짝 남아 있는 붉은 와인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는 중얼거렸다.

“후후. 생각보다 대어가 굴러 들어왔는지도 모르겠군. 차세대형 골렘이라. 라이곤에서도 이미 개발에 들어갔었단 말인가.”

*

“후우우. 괜찮아. 나는 괜찮대도!”

아론이 비틀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이미 새벽이 깊은 시각이었다.

제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귀족을 돌보는 건 한두 번이 아닌 시종과 시녀였지만, 이토록 인사불성이 되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경우는 또 드물었다.

“고, 공자······ 조금만 얌전히······.”

“그러니까 날 놓으래도! 괜찮다는데, 어찌 말귀를 이렇게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냐······. 똑바로 걷고 있는데, 자꾸 나를 붙잡고 흔드는 게 너희의 역할인가!”

“······.”

기어이 으름장까지 놓는 모습에 아주 질려버린 그들이다. 겨우 귀빈실의 침대까지 옮기고 방을 나서는 셋의 얼굴은 피로가 가득했다. 숙소로 돌아가면 오늘은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떠들썩했던 복도는 이제 조용한 침묵에 잠겨있었다. 귀빈실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던 아론 공자의 나지막한 중얼거림도 머잖아 조용해졌다. 잠든 것처럼 말이다.

드르렁. 푸우우.

코골이는 얼마간 이어졌다.

그러다 얼마 뒤에는 조용해졌고, 천천히 눈을 뜨는 아론.

조금 전까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던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아론 아스타시아.

실제하는 그 존재의 모습을 자기방식으로 완벽하게 연기한 제드 크레인은 오늘 만남의 순간부터 조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마크 로베르의 표정에 드리웠던 변화를 헤아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 없이 완벽하게 절제하였던 마크 총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을 얻은 그는 더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열흘이라.”

제드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오늘 제드가 꺼낸 라이곤의 신형 골렘에 관한 정보는 그 누구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였다.

마크는 물론이었고, 그 뒤에 있을 크리스티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숨어서 모든 것을 관망하고 있을 발트 테바인조차도 말이다.

제드는 이곳을 개미지옥으로 만들고 가만히 기다릴 것이다. 원하는 사냥감이 제발로 들어올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곧 연회의 시간이다.”

제드가 나직이 속삭였다.

새벽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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