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7) (107/124)

설계3

*

“음.”

머리가 반쯤 빠진 노인은 사색에 잠긴 눈으로 잘 정리된 서류를 훑었다.

그 서류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얽혀있는 인간관계 및 삶의 발자취가 모두 적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르타시아인가.”

“혹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아니, 없다. 말끔해. 서류상으로는 말이야.”

노인은 그렇게 대답했다.

리오나 아르타시아.

이 젊은 여성의 정보엔 어떤 이상한 점도 없었다. 아르타시아라는 가문을 한 대에 놀라운 수준까지 일궈낸 인물인 카심에게서도 달리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노련한 상인으로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거기다 리오나라는 이 여성과 로베르의 후계자인 스칼이 엮이게 된 경위도 매우 타당하여 이상한 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애초에 결혼을 여러 번 간청했던 것도 바로 그 스칼이기도 했고.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아르타시아는 최근 라이곤 내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도공학을 바탕으로 노심 마차를 운용하면서 그것을 운수산업에까지 확대해나갈 테니, 여러모로 로베르 군수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고, 이는 의원님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음.”

노인, 크리스티앙 발뭉도 그 정도 희망적인 관측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바로 상대가 라이곤 왕국의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심성만 깊어졌는가.’

“좋다. 날을 잡아보도록. 마크와 직접 만나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정리하지.”

“옛, 마크 총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곁을 지키던 측근은 깍듯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더니 물러갔다. 홀로 남은 노인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

자욱한 연기가 흩어지는 가운데, 크리스티앙 발뭉은 생각에 잠겼다.

‘그저 기우일 뿐인가?’

자꾸만 의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른다.

바야흐로 압제를 걷어내고 공화국에 자유의 날개가 되어 줄 ‘용’이 머잖아 알에서 깨어나는 이 시점에,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로베르 가문의 후계자가 적이나 다름없는 라이곤의 사람과 결혼을 한다······.

“으음, 대가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고 했던가.”

노 의원은 쓰게 웃으며 자신의 주름진 손을 눈에 담았다. 쌓여가는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두려움을 모르던 혁명가의 발을 꽉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수일이 지났다.

오늘 크리스티앙은 한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

똑똑.

시간이 됐다.

“들어오도록.”

곧 문이 삐걱 열리며 턱수염을 깔끔하게 정돈한 오십 대 중년인이 한 사람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의원님.”

“잘 지낸 모양이군, 총수. 앉지.”

중년인은 크리스티앙 발뭉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마크 로베르. 그는 최근 동부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연구에 필요한 군수품의 총책임자였다.

“꽤 살만한 모양이군. 얼굴이 좋아.”

“하하하. 그럴 리가요. 살이 더 빠졌습니다.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저도 나이가 드는 모양입니다.”

“늙은이 앞에서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맡은 바 일은 잘 돌아가는 듯하던데.”

“예, 이제 제가 맡아서 하던 일 태반은 스칼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이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상당히 똑똑한 녀석입니다. 이미 의원님께서도 잘 알다시피 말이지요.”

“자식자랑은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모르나. 나이가 들더니 사람이 아주 무뎌졌어. 칼처럼 날카롭던 사람이 말이야.”

“그렇게 됐습니다.”

마크가 헛헛 웃자, 크리스티앙은 턱을 매만졌다.

“쓸데없는 소리는 예까지만 하고, 어쨌거나 바쁜 자넬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식 때문이 아닙니까. 의원님께서 걱정이 많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걱정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 오늘 자넬 굳이 부른 것도 이 이야기를 끝맺을 생각으로 부른 것이기도 하고.”

“저는 의원님께서 반대하신다면 이 결혼을 없던 걸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의원님의 사람인 제가 할 도리입니다.”

“쯧쯧. 그만두게. 이 늙은이를 겁에 질려서 젊은이의 앞길을 막는 사람으로 만들 참인가. 나는 자네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을 뿐이야. 자네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거 아닌가. 어떤가.”

“리오나 아스타시아. 총명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사내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지요. 제 자식 녀석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부족하진 않은 상대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건 국적이겠지요.”

“음.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내치기에는 너무나 좋은 조건이로군. 안 그런가?”

“그런 셈이지요.”

“좋아, 그럼 진행해보게. 이제 자네가 바쁘겠군. 다름 아닌 나의 오른팔인 자네 가문의 후계자가 결혼식을 치르는 일이 아니던가. 일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걸세.”

“그 점에 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원님의 이름이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가장 크고 화려한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

초록이 무성한 날이었다.

“나와 결혼해주겠어, 리오나.”

스칼 로베르.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의 남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준비해온 꽃다발을 건넸다. 다소 긴장한 듯 굳은 얼굴과 상기된 얼굴이 그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성, 리오나 아스타시아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이 선 듯 그 꽃다발을 받아주었다.

“······좋아요.”

“하하! 리오나, 드디어 받아주었나! 드디어 내 마음을 받아주었군! 드디어 말이야!”

행복에 겨운 듯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스칼은 리오나를 껴안았다. 그 둘의 모습은 여느 잘 사는 가문의 자제들의 연인과 같았다.

그러나 그 만남을 뒤로하고서 돌아가는 마차에서 리오나는 조금 전까지 수줍게 미소 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작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리오나는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내가 행하는 일은 평화의 초석이 된다.’

그녀는 지난날 제드와 대면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속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스칼과 리오나.

두 사람의 만남은 막대한 파급력을 자랑하였다.

결혼이 결정 난 순간부터 두 가문은 구체적인 결혼식의 규모와 장소의 협의를 위해서 회의까지 치러야 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총수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크 로베르와 카심 아스타시아의 만남.

두 사람이 회동한 장소는 렌시아 공화국의 북부인 보웬 지방의 칼튼마우드였다. 마크 로베르가 활동하는 공화국 동부와 왕국의 남부지대는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가 있었으므로 절충하여 그 중간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 등을 정했다. 그 회의는 썩 길지 않았다.

왜냐하면, 카심 쪽에서 내건 조건이랄 게 거의 없었고, 그런 그들의 협력적 태도에 마크는 막대한 혼수품을 제공하는 쪽으로 회의는 반나절 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이 다른 국가 사이에 가교가 될 혼인식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로 말이다.

*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반가운 소식이로군. 시일도 정해졌나?”

“예, 장소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공화국의 동부 대도시인 뉴레이그에서 행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뉴레이그라······. 적진의 한복판이로군.”

“그렇습니다, 각하. 지금이라도 작전의 계획을 다소 수정하는 게 어떨는지요.”

“그 이야기는 이미 정리가 된 걸로 아는데.”

제드의 말에 코라스는 고개를 조아렸다.

“······각하께서는 라이곤의 미래이십니다. 만에 하나라도 각하께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건 라이곤의 미래와 직결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야. 발트 테바인은 만만한 적이 아니다. 리스크는 감당할 수밖에. 재고는 없다.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제드가 그렇게 말하는 데야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담은 크다. 이 일은 정보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벌이는 작전이었으므로 라이곤 내에서도 아는 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각하의 안전을 어떻게 책임진단 말인가.’

그 걱정에 코라스의 안색이 어두울 때였다.

딱.

별안간 제드가 손가락을 튕겼고.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코라스가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제드와 코라스, 두 사람밖에 없었던 이곳에 검은 기사 자크와 은색 기사단 십여 명이 좌우에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 대체 어느새······.’

“나는 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왔고, 할 수 있다. 내 능력의 한계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죄, 죄송합니다. 가, 감히 제가 각하를 의심했나이다!”

“고개를 들어라.”

“······.”

코라스가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제드의 서늘한 표정이 보였다.

“그대가 염려하는 상식적인 수준의 상황은 적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작전은 적들에게 예기치 못한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노리는 것은 단 하나.

‘발트 테바인.’

제드의 눈동자가 싯푸르게 빛났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예정된 결혼식의 날은 그로부터 약 반년이 지난 12개월의 겨울 초입의 때였다.

그즈음 남부의 바다를 낀 렌시아 공화국의 대도시 뉴레이그는 선선한 날씨였으므로 혼인을 올리기에는 그야말로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공화국에서는 12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라이곤의 최신 마도공학기술인 노심 마차의 대열이 줄지어 남부로 향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십여 대의 마차와 수레는 지치는 일도 없이 마석만으로 거침없이 남쪽의 국경에 다다랐다.

“토, 통과!”

국경을 지키던 공화국 병사들은 놀란 표정으로 길을 열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대기하던 다른 마차들도 적잖이 놀란 듯 그 광경을 넋을 놓고 지켜보기 바빴다.

말없이 움직이는 마차라니.

그런 상황들은 남부 도심지로 나아갈수록 더 그랬다.

“저게 대체 뭐야?”

“말도 없이 움직이잖아!”

“설마, 라이곤의 그 노심 마차라는 건가?”

그레지안 산맥에 매장된 막대한 마석을 채굴하고 그것을 정제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당대의 라이곤 왕국은 타국과는 그야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석을 보유하게 됐다.

그 마석을 토대로 다양한 마도공학의 산물이 이제 일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라이곤과는 달리 렌시아에서는 노심 마차라는 건 그냥 소문만 무성한 것이었다.

“저게 뭐람.”

“어떻게 말도 없이 움직이지?”

마차가 머무르는 도시마다 떠들썩한 소란이 끊이질 않았고, 도중에는 마차가 도적 떼에 습격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호위 병력 앞에서 몇 명의 목이 날아가자마자 도망가기 급급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북부 도시들을 발칵 뒤집어놓으면서 마차들은 이윽고 뉴레이그에 당도하였고, 저택에 다다라서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늘어선 병사들과 그 사이에 서 있는 마크 로베르. 총수라고 불리는 인물이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총수 각하를 뵙습니다.”

“하하. 잘 왔다, 아스타시아 영애. 스칼에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잘 왔다. 먼 길을 오는 데 고생이 많았구나. 자,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아, 리오나. 오늘 그대는 너무나도 아름답군. 아버지, 이토록 아리따운 여성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전 단언컨대 본 적이 없습니다.”

쯧쯧. 리오나의 차분하고 태도와 비교되는 스칼의 호들갑에 마크는 혀를 찰 따름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뒤따르던 마차에서 사람들은 계속 내리고 있었으니, 곧 리오나의 마차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마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제드 크레인. 고풍스러운 흰 제복에 짙은 갈색 머리칼. 오늘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뉴레이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귀하의 성함과 영애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노 집사는 정중하게 물어왔고.

“아론 아스타시아. 영애의 오라비입니다.”

제드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히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당당하게 그 이름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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