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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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발뭉.
현 공화정 체제의 중앙정계를 이끄는 5인의 의원 중 한 명이 바로 그였다.
혁명으로 발족하였던 공화정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 의원이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이 없었다.
“발뭉 의원은 최근 동부에서 군수산업을 가장 적극 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면 앞뒤가 맞는군. 신형을 개발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지원이 필요할 터. 거기다가 발뭉 의원은 급진적인 성격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과거 혁명정부라고 불렸던 구 공화정 체제부터 있었던 실력자인 만큼, 몹시 급진적이고 강경한 성정으로 유명합니다.”
“하이렐 회전, 대수림 분쟁을 겪으며 군사강국으로 거듭난 라이곤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신형 골렘을 준비하며 훗날을 대비하였다······. 가설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군. 그래서 그와의 접촉점은 있나?”
“예, 사전에 준비해두었습니다.”
코라스는 막힘이 없었고 제드는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관록이 붙기 시작한 코라스는 제드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처리하곤 했다.
“발뭉 의원의 사람 중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마크 로베르라는 인물입니다. 그 마크 로베르의 후계자인 스칼 로베르가 접촉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까.”
“스칼 로베르가 최근에 흠뻑 빠진 여성이 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적극 구애에 나서서 현재는 혼인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 여성이 저희 쪽 사람입니다.”
제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분히 원초적이었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으랴. 남자는 유혹에 약했다. 특히나 젊은 나이일수록 그렇다. 아름다운 여성에 빠진 남자만큼 무력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접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군.”
“스칼은 로베르 군수산업의 핵심분야까지 도맡아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국이 극동의 광산에서 라림이라는 정보원을 찾아낸 것도 그에게서 얻은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간접적으로 정보를 계속 캐내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드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리스크를 줄이고 차근차근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
그러나 그 방법은 내키지가 않았다.
‘역사의 흐름에는 시기가 있다. 그때를 놓친 자는 다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는 법이야. 발트 테바인의 그림자를 지금 붙잡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제드는 그렇게 확신했다. 발트 테바인은 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상자의 열쇠를 가진 존재였다. 동부 대륙이 아니라, 이윽고 이 세계 전체를 뒤흔들 혼란으로 이어지리라.
“오거를 잡으려면 오거의 서식지에 들어가야겠지.”
제드가 결단이 선 얼굴로 중얼거렸다.
“스칼 로베르와 혼인을 진행하지.”
“준비하겠습니다.”
“서두르면 저들이 알아챌 것이다. 자연스럽게 하되 빈틈이 있어선 안 될 거야. 그건 나보다 경이 더 잘 알겠지.”
“각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
구 라르곤 마탑.
제드의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현재 이곳은 마법부 산하의 비전 도서관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공간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상층의 공방으로서 운영됐던 다양한 공간들은 다양한 마법사들의 연구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중 제드가 찾은 곳은 6층의 가장 깊숙한 곳의 공방. 이 비전 도서관의 6층은 단 한 명의 마법사가 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드는 이 나라에 몇 안 되는 이 6층의 전 공간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장본인이었다.
쓰스스.
눈앞의 벽이 사라지면서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그 복도의 끝엔 문 하나가 존재했다.
제드가 그 문 앞에 다다르자, 문 위에 마법술식이 자동으로 연결되더니 이내 열렸다.
그 내부로 들어가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시큼한 냄새와 썩은 내가 뒤섞여 있다. 일반적인 마법사의 공방과는 조금 다른 냄새다. 이 공방의 주인은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흑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잘 살아 있는 것 같군, 빌헬름.”
한창 마법에 몰두하던 구부정한 모양새의 마법사는 우뚝 멈추더니 이내 힐긋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찾아왔군.”
“바깥 상황이 꽤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슬슬 전에 내가 부탁한 건의 성과를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지.”
“······.”
빌헬름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제드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없었다는 건 만족할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제드는 침착했다.
“들어볼까. 내가 주문했던 건의 성과를 말이야.”
제드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3년 전, 빌헬름을 대수림에서 빼 온 뒤로 제드는 그에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구해주고 지원을 약속했다. 대신 그의 마법 성과와 연구는 오롯이 이 나라에 귀속된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과제를 내주었다.
‘발트 테바인의 혈액 분석.’
지난날 하이렐 회전에서 제드는 발트 테바인과 최초로 조우했다. 그리고 그가 보내온 꼭두각시의 환영을 날려버리면서 그의 혈액 일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피는 영혼의 길이었다. 그 피를 통해 발트 테바인을 판별해볼 셈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그 피엔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고만 있던 것을 빌헬름에게 맡긴 것이다. 생물과 관련한 마법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검사 결과가 잘못된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 이런 독자적이고 기이한 피는 처음이었으니까.”
빌헬름은 지난 3년 동안 자신이 해왔던 다양한 연구와 검사를 술술 말했다. 태반은 제드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연금술 영역이었다.
“나는 무수한 종족을 이 손으로 다루었고 연구해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종족의 개체는 없다고 해도 좋아. 특히나 인간과 유사한 종에 관해서는 말이야. 하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 귀하는 이걸 인간이라고 그랬다. 이 피의 주인을 찾고 있노라고 말이야.”
“그래, 맞다. 적어도 그는 내 앞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야.”
“······유감이지만, 결과만을 두고 말하자면 이 피의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알 수 없을 거다. 내 지식으로는 말이야.”
“인간이 아니라는 얘긴가?”
“아니,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피는 인간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하지만 그 안에 극소량의 비율로 섞인 어떤 특별한 혈액이 있다. 그건 절대로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제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드래곤일 가능성이 있나?”
“드래곤······?”
“그래, 전설상의 그 드래곤을 말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얘기군. 하지만······ 그게 말이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드래곤은 아닐 거다. 마법의 정점. 인간과는 아예 생물적으로 다른 존재였던 드래곤이 인간과 유사한 혈액의 형태라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아. 만약 정말로 전설의 그 드래곤과 연결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건 합성생물인 키메라······ 아니, 호문쿨루스에 더 가까울 거야.”
“호문쿨루스.”
제드가 그 명칭을 곱씹었다. 머나먼 시절, 신의 영역에 도전하던 연금술사들이 만들고자 했던 가장 완벽한 인류.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의 존재에 한없이 가까운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안타레스의 유산을 그토록 쉽게 찾아내는 것도 말이 된다. 안타레스는 최후의 드래곤이라고 불렸다.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있노라면 그건 드래곤의 피로서 탄생한 호문쿨루스 뿐이겠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으로 평가되는 드래곤이다. 그러한 드래곤에게 있어서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으리라.
“빌헬름이여,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대가 밝혀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더라도 찾아낼 방법이다. 겉모습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그 본질을 이루는 영혼의 길인 혈액은 바꿀 수 없는 법이니까. 그걸 찾아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나는 그걸 알고 싶은 거다.”
“그거라면 만들 수 있소.”
“좋아, 아주 잘 됐군. 마법사로서 연금술사로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눈앞에 두고 차분히 연구를 해나가면 되겠지. 하지만 그러자면 그 존재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겠지. 그래야 그대의 앞에 표본을 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제드의 말에 빌헬름이 흥분한 표정을 했다.
호문쿨루스.
연금술사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인조생명체.
그 신의 영역을 앞에 두고서 이 눈앞의 추레한 연금술사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
라이곤 왕국의 정계가 여왕의 재위 이후로 완전히 뒤집히면서 그 요동치는 정·재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새롭게 두각을 드러낸 가문은 여럿이 있었다.
그중 카심 아르타시아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타고난 정치적 균형감각과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으로 요동치는 정계의 흐름 속에서 자리를 잡았고, 거기서 모든 재산을 운수산업에 투자하여 막대한 재화를 손에 넣게 됐다.
바야흐로 라이곤 남부지대의 운수산업은 카심 아르타시아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카심은 대단한 호색가로 많은 자식이 있었는데, 부인을 여럿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는 곳마다 따로 정부를 두었기에 자식의 수를 전부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자식 중에는 많은 수가 장성하여 그의 일을 돕고 있었는데,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실적을 자랑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그 인물은 리오나 아르타시아였다.
그녀는 바로 최근 렌시아 공화국의 동부 군수산업을 책임지는 로베르 가문의 스칼과 깊은 관계에 있었고, 그 관계를 토대로 막대한 이익을 가문에 안겨다 주었다. 그리하여 카심이 리오나를 몹시도 총애하였다.
······라는 것이 대외적인 상황이었다.
“공화국의 정보부처가 네 뒤를 조사한다고 해도 딱히 수상쩍은 게 발견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네 지난날의 흔적들은 모두 지워졌으니까. 네 역할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 손아귀에 스칼 로베르를 손에 두는 것. 결혼식도 이를 위한 일환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정보국장 코라스의 앞에 서 있는 여성은 결연하게 대답했다. 딱히 꾸미지 않아도 화려한 인상에 몹시도 매혹적인 미모의 여성.
그녀는 진흙 속에서 핀 꽃이었다. 코라스는 아주 우연히 웃음을 팔던 뒷거리에서 그녀의 역량과 능력을 꿰뚫어보았고 그녀를 데려다 키웠다. 그녀는 이번 작전에서 핵심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에는 각하께서도 함께하신다.”
“가, 각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란 리오나였다.
설마, 그녀가 그런 영광을 얻게 될 줄이야.
바로 그때였다.
별안간 문이 열렸고 한 사람이 방에 들어왔다.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사내였다. 수수한 외관. 하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와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그 눈빛은 일개 범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가, 각하를 뵙습니다!”
리오나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일어나도록.”
“가, 감사합니다!”
리오나가 정보원 교육을 받은 이후로 이렇게나 흐트러진 적이 있을까. 그녀는 긴장하며 겨우 일어났다.
“코라스 경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다. 그대가 정보원으로서 많은 일을 해냈다지.”
“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증명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 그대는 미래로 나아가는 이 라이곤의 표본과도 같다.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다. 당당해져도 좋다. 그대의 과거는 그대를 규정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그대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것이다.”
리오나는 몸을 떨었다. 벅찬 감동이 깊숙한 곳부터 북받쳤다.
“반드시······ 국가와 각하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좋은 대답이다, 리오나여. 나는 이번 작전의 결행에 그대의 오라비 역을 맡을 것이다. 아론 아르타시아. 그게 나의 이름이다.”
“······네,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그래, 바로 그거다, 아리따운 누이.”
제드는 부드럽게 웃으며 리오나의 뺨을 쓸었다.
“자, 그럼 설계된 작전을 구체적으로 들어볼까.”
“옛, 이번 작전의 구체적인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코라스가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그리고 작전의 전개과정을 들으면서 리오나의 얼굴이 굳었다. 이 작전은 그녀가 생각한 그런 종류의 작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 각하······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 작전대로라면 라이곤과 렌시아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확률이 아주 높겠지. 하지만 그것은 전쟁의 불씨가 이윽고 불꽃이 되어 모든 것을 다 태우기 전에 짓밟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평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평화의 초석······.”
“그래,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의 앞에 있는 것이다.”
리오나는 전율하여 그 말을 곱씹었다. 제드의 말들이 그녀의 마음속의 의문과 두려움을 모두 씻어내고 있었다.
제드는 뒷짐을 지고 일어났다.
스스로 말해놓고도 어처구니없을 만큼 우스운 말이다.
평화의 초석. 그걸 위한 전쟁이라니.
‘제국주의의 그럴듯한 사탕발림에 불과할 따름이다.’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선동의 기술.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제드가 목적하는 바는 명확하고, 시대는 척척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 제드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화는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