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4) (104/124)

질서3

*

새로운 골렘의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것이 앞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발트 테바인, 네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냐?’

밤이 깊은 시각, 제드는 어둠에 잠긴 서재의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발트 테바인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수수께끼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존재라는 것은 짐작하였지만, 그가 어떻게 안타레스의 유산을 확보하고, 또 그것을 왜 세상에 공표하는 것인지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네놈의 목적인가?”

발트 테바인은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선 적이 없었다. 항상 배후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서 활약해왔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전생의 토르가 제국의 마도공학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하였고, 그것은 제국이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는 전쟁이었고, 제국주의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발트 테바인이라는 개인의 이득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명예조차도 말이다.’

제드는 반복적으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번 생애에 드러난 발트 테바인의 발자취를 가늠해보았다.

라이곤에서 제드가 골렘이라는 시대를 앞선 전쟁병기를 앞세워 내전을 종식하자마자 토르가에서도 골렘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멜 공국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토르가가 무너진 이후, 전생의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골렘의 존재가 나타났다. 탑승형 골렘. 이 역시 안타레스의 유산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다. 오멜 공국이 라이곤 왕국에 무릎을 꿇은 직후에는 바로 렌시아 공화국에서 또다시 신형의 골렘이 나타났다.

‘이건 단순한 우연 따위가 아니다.’

제드가 한 발 나아가면 발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말이다. 그의 역할은 꼭 전쟁인도자 같았다.

“전쟁의 이면, 그 너머에서 뭘 노리는 것이냐.”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발트 테바인이 예고한 전쟁의 불씨가 지금 당장 제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레지앙.

라이곤 마도공학의 심장부.

제드는 여느 때처럼 비밀스럽게 도시에 들어왔다.

‘이곳은 올 때마다 바뀌는군. 이젠 예전의 그 작은 마을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도시는 확장을 거듭하였다. 초기의 도시계획방침에 따라서 산맥이 아니라, 산 아래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고작 수백 명 남짓의 인구는 이제 수만 명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마도공학의 아티팩트가 거리에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고, 입신양명을 꿈꾸는 마법사들이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푸르륵.

제드는 기관의 입구에 섰다.

기관의 마법사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잠깐이었다. 제드는 곧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내부로 들어갔다. 그의 목적지는 생산공장이었다.

*

제드는 레지앙에 당도한 뒤로 곧장 골렘의 연구에 매진했다. 방향성은 이미 잡혀 있었기에 막힘은 없었다.

아우로렐과 같은 골렘을 또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혹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 정도의 골렘을 제어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아우로렐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셈이다. 위험을 그 이상 늘릴 필요는 없겠지. 더욱이 이 나라에는 나 이상으로 정령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아우로렐은 골렘이라는 마도공학의 산물과 자연력의 근간인 정령이 한데 이루어져 태어난 존재였다.

제드는 그 재앙적인 힘을 두 눈으로 목도했기에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따라서 제드는 또 하나의 나이트골렘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하는 게 아니라, 주력 골렘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방안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렌시아 공화국에서 보았던 그 골렘의 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 설계도 전체를 본 건 아니지만, 단순하게 계산해도 추정 300마력 이상······.’

전생의 제드였더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수준이다.

그 정도의 골렘이 주력기로서 활약하는 시대가 된다면 전쟁의 양산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라이곤 왕국의 주력기인 스톤 골렘급의 출력이 고작 120마력 전후라는 걸 생각해보자면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되는 셈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마석의 숫자로 메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골렘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자멸할 뿐이야.’

그래서 제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탑승형 골렘에 나이트급 골렘이 오르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제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오멜 공국과의 분쟁에서 탑승형 골렘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골렘을 본 순간부터였다. 탑승자의 역량에 따라 같은 출력의 골렘임에도 너무나도 큰 격차를 보이던 전투 방식. 오르노벨 기습전에서 붉은 송곳니가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자크의 영향을 받은 은색 기사단이 고출력의 탑승형 골렘에 오를 수만 있게 된다면······ 렌시아에서 발견한 설계도의 골렘에도 절대 밀리지 않는 병기가 탄생할 것이다.’

제드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평화라는 시대에의 열망.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안 그 순간부터 제드의 안에서 더욱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

실패.

또 실패.

골렘의 연구는 실패를 거듭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제드는 계속 실패하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자그마치 38기의 골렘이 산산조각이 나서 무너져내리는 사태를 맞이하였다. 이렇다 할 성과도 크게 없는 듯하였지만, 제드는 묵묵히 골렘의 연구를 이어나갔다.

한편, 대수림 분쟁 이후로 국제질서는 하루가 다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라이곤이 힘을 증명하면서 토르가나 오멜이나 함부로 군사력을 키우거나 하지 않았고, 남쪽의 랜시아 공화국에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골렘의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공화국의 동태를 계속 살피도록.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나 특이사항을 포착하면 즉시 나에게 전해야 한다, 코라스 경.”

“옛, 그리하겠습니다. 각하.”

정보국장인 코라스는 고개를 조아렸다.

제드가 코라스를 국장에 임명하고 그 인재들을 직접 뽑으면서 라이곤의 정보국은 사실상 제드의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제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우러렀다. 그가 구상했던 국제질서 아래 세상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제드의 눈빛은 칼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지금의 이 고요함은 폭풍전야의 그것이나 다름없었다.

제드가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발트 테바인 역시도 자신의 계산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으리라.

‘무엇을 기다리느냐, 발트 테바인. 나는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갔으니.

통합력 1648년.

여름의 계절이 왔다.

*

3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그동안 국제질서는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제드는 폭풍전야의 고요를 예상했으나, 대륙의 동부에서 전란의 그림자는 지워져 있었다.

상업은 번영했고, 골렘이라는 마도공학의 산물은 이제 전쟁이 아니라, 노동력을 대체하였다.

출력이 떨어지는 노동형 골렘을 운용하는 마법사가 늘어났고,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심의 풍경도 서서히 바뀌어 갔다. 건물은 점점 더 높아졌고 다양한 양식이 유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마도공학의 중심에는 바로 라이곤의 수도인 그레즈와 레지앙이 있었다.

레지앙이 모든 마법사들에게 열린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면 그레즈는 마법공학 도시의 표본과도 같았다. 다채롭고 잘 다듬어진 마도공학의 산물이 이곳저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물건은 말이 필요없는 노심 마차였다. 주기적으로 마석을 넣기만 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노심 마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음에도 인기가 아주 많았다.

그 외에도 노심을 이용하여 일정한 길 위를 반복적으로 오간다는 개념의 운송차량 개념을 발표되는 등의 창의적인 이야기가 오가면서 그레즈는 나날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그레즈의 중심에 있는 왕실에도 변화의 바람은 거침없이 불어왔으니, 바로 왕자 카로스의 성장이었다.

라이곤의 제1 왕자인 카로스는 스스로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왕실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휴. 왕자니이임!”

시녀들이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카로스를 찾아다녔다.

4살배기의 카로스는 벌써 어찌나 활달하고 장난기가 많았는지, 왕실의 시녀들은 하루도 한숨을 쉬지 않을 날이 없었다.

“대체 어딜 가셨담······. 리리, 너는 그쪽을 찾아보렴.”

“네! 알겠어요.”

시녀들이 흩어진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풀 사이에서 작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기묘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 수풀 사이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는 갈색에 가까운 금발에 짙은 푸른색 눈동자가 엿보였다.

“쉬이잇. 웅. 조용해야 대.”

어눌하게 중얼거리는 카로스는 누가 들을까 속삭이듯 말했다. 왕자를 보살피는 시녀들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말이 트인 이후로 왕자는 이렇게 곧잘 혼자 말했다. 꼭 대화하듯이 말이다.

“응. 저기로 가?”

히히. 고개를 끄덕인 카로스는 소리를 죽이고 회랑을 따라 달려갔다. 이 성은 어린아이에겐 너무 컸지만, 카로스가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곧 카로스는 넓은 복도의 틈 뒤에 숨더니 자그마한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숨소리조차 숨기려고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복도 저편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카로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마침내 인기척이 바로 앞까지 왔을 때, 카로스는 불쑥 뛰어들었다.

“왁!”

하지만 발걸음의 주인이 카로스를 보고 놀라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이미 카로스가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날 가장 먼저 반겼구나, 카로스.”

“네, 제가 찾았어요!”

카로스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손을 뻗자, 아버지라고 불린 사내가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갈색 머리칼을 말끔하게 뒤로 쓸어넘기고 입가에 수염을 살짝 기른 그 인물은 바로 크레인 대공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바로 제드였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덧 이제 이십 대 후반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는 이제 앳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날카롭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날카로운 얼굴조차도 이 어린 왕자의 앞에서는 부드러운 얼굴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잘했다. 오늘은 어떻게 알고 여기에서 기다렸지?”

“칭구가 알려줬어요!”

“아직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더냐?”

“응! 이써요. 얘는 쿠르. 쟤는 아르에요.”

카로스는 신이 난 얼굴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드는 그 카로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왕실에서는 그 말을 어린아이의 상상 정도로 여기는 듯했지만, 제드는 그게 단순한 상상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카로스가 가리키는 곳에서 아주 익숙한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인가. 인간이 정령과 이 정도의 교감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역시 요정족의 축복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군.’

대수림의 지배권을 확실히 한 이후로 제드는 요정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에 대수림의 인도자로부터 초대를 받아 대수림에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요정족의 축복을 받았던 제드였다.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겠지?”

“응! 안해써요.”

“좋아, 착하다.”

제드는 카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령과의 교감능력이 빼어난 것은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아니, 훗날의 일을 생각하자면 오히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라. 다음의 시대에 이르러, 그의 아들은 제드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아직 먼 이후의 이야기였다.

“자, 폐하를 뵈러 가자꾸나.”

“쪼끔 있다가 가면 안대요? 쿠르랑 아르랑 알려줄 거 있는데······.”

“하하하. 알겠다, 카로스. 그럼 조금만 있다가 갈 테니 어디 들어보자꾸나.”

제드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카로스가 신이 난 듯 방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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