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3) (103/124)

질서2

*

제드는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몇 장의 분량으로 빽빽하게 정리된 그 서류는 코라스 렘이라고 하는 사람의 정보로 가득 차 있다.

“이력은 별 볼 일 없군.”

“예, 취급하던 정보라는 것 역시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각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 큰일을 맡아서 할 만한 인재는 아닙니다.”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제드는 턱을 괴었다.

사람의 그릇이라는 건 이력으로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이력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면 제드가 이 자리에 올라서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많은 이들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인물은 코라스 렘, 그 자뿐이다. 차분하게 관찰하는 눈썰미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결단성까지 갖췄어.”

“아직 이른 평가가 아닐는지요.”

“모르지.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신경쓰도록 해. 앞으로 이 국제질서의 흐름을 손아귀에 쥐고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해서는 눈과 귀가 중요하다. 나머지 정보 길드를 잘 통합하여 정보국 휘하에 두는 작업을 진행하도록.”

“분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임신과 출산 이후로 라니아는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국무에 큰 차질은 없었다. 의회가 온전히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인재가 모여 구성된 의회는 여왕의 지시 없이도 그레즈의 탄원과 문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나가고 있었다.

중요한 사안의 결재는 잘 정리되어 제드의 앞으로 도착하였으므로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수도에서는 이제 큰 인형극단이 운영되었다. 제드가 발탁한 인사인 라데르 아일란이 정기적으로 인형극을 열었고, 그 인형극은 하루가 다르게 유명해지고 있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스승님의 인형을 부리는 기술과 연출 능력은 아주 빼어났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구성이었다. 라데르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부족했기에 그런 부분은 전문 작가들이 나서서 그를 보좌하였다.

아일란 인형극단의 명성은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었고, 라데르는 전국 각지를 돌며 음유시인들과 함께 극단을 꾸리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세요. 필요한 경비와 지원은 왕실에서 모두 해줄 겁니다.”

제드는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단순히 스승인 라데르에게 감사한 마음 때문에 지원을 약속한 게 아니었다.

라데르가 전국 각지를 돌면서 인형극을 연다면 각지의 내부 정보를 파악하기가 쉬워질 터였다. 그렇기에 인형극단의 일부는 정보국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이즈음 제드가 새로 발탁한 인사인 코라스 렘은 정보국 수장의 자리를 맡아서 안정적인 운영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젊고 이력이 없었던 코라스는 처음에는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특유의 눈썰미와 타고난 결단력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해나갔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써서 크고 작은 길드의 정보력을 산하에 흡수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코라스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보지는 않은 것 같군, 코라스 경.”

“각하께서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더욱 성과를 내도록 할 것입니다!”

“좋아, 기대하지. 인원이 확충될수록 조직관리가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가 더욱 그대의 능력이 두드러질 거다.”

“맡겨만 주십시오!”

코라스의 눈은 뜨겁게 빛났다.

대수림 분쟁 이후,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한결 서늘해진 날씨 속에서 제드는 여전히 수도에서 머물렀다. 늘 바쁘게 매 순간을 달려왔던 제드였기에 이런 여유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나타났던 지난날과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정점에 올라서 하늘을 우러르면 그곳엔 오직 푸른 하늘만 펼쳐져 있듯, 이제 이 라이곤과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것들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평화.”

제드는 서재에 드리운 햇빛의 끝자락을 눈에 담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가 누리는 이 지루할 정도의 여유가 바로 평화의 조각일 터였다.

“나쁘지 않군.”

제드는 의자에 기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금 식은 홍차에서 은은한 향이 퍼지고 있었다.

지금껏 숨 쉴 틈도 없이 늘 달려오기만 한 삶이었다. 전생에도 그랬고, 이번 생도 마찬가지였다. 죽지 않기 위해서 싸웠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싸웠고, 평화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싸웠다.

그 결과가 비록 배신과 죽음이었지만, 제드는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잡았고, 지난 과거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이 라이곤이라는 자신이 태어난 국가를 이곳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앞에는 미래가 있었다.

물론, 아직 넘어야만 할 산은 있었다.

‘발트 테바인과 안타레스의 유산.’

제드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오멜 공국에서 유산의 근원지를 찾는 건 요원하겠어.’

꼬박 두 달의 시간을 소요한 끝에 제드는 그렇게 판단했다.

제드는 오멜 공국에 파견한 첩자들과 부르크 연방의 정보력을 토대로 오멜 공국에 별안간 퍼지게 된 탑승형 골렘의 설계도가 언제 어디서부터 퍼져 나가게 된 것인지를 추적하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설계도는 봉인된 마법서의 형태로 마탑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 마법서를 건넨 이는 특징은 모두 발트 테바인의 용모와 일치한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으므로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어떻게 더 알아볼까요.”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 부르크 연방의 정보력은 놀랍군. 큰 도움이 됐어.”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부르크 연방은 라이곤 왕국을 도울 것입니다.”

“말만으로도 든든하군.”

제드가 힐긋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모험가 무리로 보이는 행색. 물론,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그들은 부르크 연방의 정보원들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트릭스. 인사도 하지 않고 갈 참이었나?”

불쑥 제드가 꺼낸 말에 저편에 잠자코 서 있던 인물이 움찔하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다소 경색된 얼굴. 그는 예전 토르가 왕국에서 록시 일행의 일원으로서 움직였던 인물이었다.

“잘 지냈나?”

“어떻게 알아차리셨습니까.”

“내가 꽤 눈썰미가 좋은 편이라.”

제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태도를 보면서 트릭스라고 불린 사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록산느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카일이 그 제드 크레인이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사람 같으십니다.”

“지금의 이 모습이 원래 나야. 앉지. 오랜만인데, 간단한 이야기 정도는 할 시간이 나는 것 같으니까.”

제드가 자리를 권하자, 트릭스는 조금 전까지 정보를 제공하던 사내 대신에 그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그레즈 북부의 작은 주점이었다.

트릭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이 젊은 청년이 그 무시무시한 업적을 이루어낸 제드 크레인이라는 것이 좀처럼 믿기 어려운 까닭이다.

다만.

‘뭐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전과는 다르다는 건 알겠군. 전에는 무겁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어쩐지 긴장이 된다. 기분 탓인가.’

“연방의 여왕 폐하께서는 잘 지내시나?”

“······바쁘게 지내십니다.”

“일찍이 쓰러져버린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닐 테지. 더욱이 그 성격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손에 넣은 독립은 어떤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억압하던 무리가 사라져서 좋긴 합니다만, 제가 똑똑한 사람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는 무엇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을 돌아보고 다니는 중인가?”

“그런 셈입니다. 가만히 한 곳에 앉아 있는 것도 성향에 안 맞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쁘지 않군.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지. 그래서 오늘도 그대가 직접 이 자리에 찾아왔나?”

“······.”

트릭스는 잠깐 머뭇댔다.

“할 말이 있으면 하는 게 좋아. 내 시간의 가치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싸거든.”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각하께서 찾고 계시던 그 탑승형 골렘 설계도를 본 연방국에서도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꽤 갑작스러운 발언이군. 그건 록산느 여왕의 생각인가?”

“아닙니다. 이건 제 독단입니다.”

“재미있군. 이미 골렘의 설계도는 내가 연방에 넘긴 것 같은데. 탑승형 골렘까지 정식적으로 생산하고 싶다는 건가?”

“······연방이 힘을 키우는 것은 각하께도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트릭스의 말에 제드는 계속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시간이 지나면 토르가 왕국이나 오멜 공국은 다시 힘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든 기회를 엿보며 라이곤 왕국을 노리겠지요. 하지만 본 연방은 라이곤과 함께할 운명입니다. 영원한 우방이란 얘깁니다.”

“영원한 우방이라.”

제드가 피식 웃었다.

낭만적인 표현이군. 국제질서에 영원한 아군과 영원한 적군이 어디 있을까. 그처럼 허무맹랑한 말은 또 없으리라.

그러나 제드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듣지 않았다.

힘으로 억눌러놓은 토르가와 오멜은 언제든 힘을 기르면 라이곤의 패권에 도전해올 것이다. 그 사이에서 부르크 연방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었다.

‘탑승형 골렘의 설계도는 이미 공개된 거나 다름없다. 그걸 알아내고자 한다면 알아내는 건 시간의 문제. 부르크 연방도 탑승형 골렘의 설계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손에 넣게 되겠지······.’

그러자면 기실 막을 것도 없는 일이다.

라이곤 왕국의 입장에선 부르크 연방이 지금보다 강해져서 나쁠 건 전혀 없는 일이었다.

“좋다. 영원한 우방을 얻을 기회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그럼 물어보도록 할까. 탑승형 골렘의 설계도는 손에 넣었나?”

“90% 정도는 분석이 끝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본국에서 분석을 끝낸 설계도를 넘겨주지. 그걸 토대로 생산설비를 갖춰보도록. 더 할 말은 있나?”

“어, 없습니다.”

트릭스는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잘 풀리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록산느 여왕에겐 인사 전해주게. 영원한 우방으로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이야.”

“예, 옛! 폐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채로 돌아온 제드는 넓은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집무실을 목전에 두었을 때,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인물을 발견하였다.

“오래 기다렸나?”

“그렇지 않습니다.”

“들어가지.”

제드는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권했고,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인물은 자리에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았다.

곧 시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준비하였고 제드는 그 향을 음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일찍 찾아온 것 같은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금 더 일찍 각하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한은 없다고 했을 텐데. 벌써 찾았나?”

“렌시아 공화국의 가이우스 마탑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걸 끝으로 행방은 끊어졌습니다.”

제드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발트 테바인이 숨어버린 이상, 놈을 찾아내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님은 이미 짐작하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바꾸면 그만이었고, 외모적인 특징은 바꾸기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도 보이는 법이었다.

“그게 전부인가?”

“죄송합니다. 발트 테바인에 관해서는 아직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각하를 찾아뵌 것은 그보다는 관련 정보를 취합하던 중에 그냥 넘기기 어려운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게 되어서입니다.”

그러면서 코라스는 조용히 양피지 서류를 제드의 앞에 올려놓았다. 제드는 말없이 그 서신의 내용을 훑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바로 설계도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건 골렘의 설계도다. 그것도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난 것과는 또 다른 신형 골렘의 설계도.’

그런데 문제는 그 설계도가 고작 일부임에도 심상치가 않았다는 점이었다.

‘술식의 체계, 정밀도, 완성도까지······ 이건 당대의 마도공학의 수준으로는 분석조차도 불가능한 초고도의 기술력이다.’

이미 지금까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골렘조차도 그랬다. 근데 지금 이건 그보다도 한 발 더 앞에 있는 것이었다.

만약 이게 완성된다고 하면 겨우 안정되기 시작한 이 국제질서는 다시금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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