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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1) (101/124)

강대국의 증명9

*

“각하께서는 그를 중용하고자 하십니까?”

“예, 그러고자 합니다. 그의 능력은 본국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로톤은 속이 쓰린 표정이었다. 라이곤 왕국의 기사단 전력이 약하기에 제드가 이번 일을 계획하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건 로톤 경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라이곤은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급격히 커지고 있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부족하고 취약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죠. 게프 발렌타인이라는 존재는 그런 부분을 수정하는 무수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적들의 사기를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겠군요.”

“예, 여러모로 본국에는 도움이 될 이벤트입니다. 뭐, 그건 그렇고 공국의 사절은 잘 대우해서 돌려보냈습니까?”

“본국의 의사는 잘 전달하였습니다.”

“잘했군요. 그래서 로톤 경이 보기에는 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 같습니까.”

“대공이 똑똑한 인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강화를 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쟁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래서 로톤 경은 어떤 결론이 나기를 바랍니까.”

“제 의견은 이전과 같습니다. 본보기는 필요합니다.”

“강대국의 증명이 말이죠.”

“그렇습니다. 세상이 알아야 합니다. 라이곤이 전과는 다른 나라가 되었음을. 이 동부 대륙의 패자가 누구인지를, 그들과 나아가 본국을 적대할 생각을 품은 적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제드가 피식 웃으며 와인 잔을 기울였다.

“저도 동감입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끄응.”

게프 발렌타인이 정신을 차린 건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낯선 천장 아래에서 눈을 뜬 그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고통.

‘엄청난 실력이었다.’

게프는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의 순간을 떠올리며 창가의 앞에 섰다. 쨍한 날씨였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보였지만, 게프의 눈에는 그런 것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검은 기사 정체가 뭐지? 그 실력, 마스터가 틀림없었다. 내가 감히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설사 마스터의 실력자라고 해도 기회를 엿본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노라고 자신했건만, 이렇게나 큰 격차가 존재했단 말인가?’

게프의 절망감은 컸다.

붉은 송곳니로서 명성을 떨쳤고, 골렘에 타게 된 이후로는 마르쿠스 길드연합의 전력 중 핵심으로 발탁되어 최고의 대우를 받아왔기에 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었다. 하지만 검은 기사의 앞에 서서 대적해보고 알았다. 자신이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말이다.

‘그는 대체 누구지? 라이곤 왕국에 그런 실력자가 있다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장 그를 만나야 했다.

제드 크레인을 말이다.

“제드 크레인. 그분을 뵙고 싶다.”

벌컥 문을 열고 나온 게프는 밖에 서 있는 기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느닷없는 발언이었지만, 검은 제복의 기사는 별로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따라오도록. 각하께 안내해드리겠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 내부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검은 제복의 젊은 기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젊은 원수를 향해 절도있는 동작으로 경례하였다.

제드는 두꺼운 서적을 내려놓고 그 경례를 받아주었다.

“게프 발렌타인이 각하를 뵙고자 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메르센 경. 나가도 좋아.”

“각하의 안전을 위해서 곁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게프 경이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 같군.”

검은 제복의 기사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하는 듯했으나, 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실례했습니다.”

메르센이 나갔고 이제 이 방엔 제드와 게프 두 사람만 서 있었다.

“아무리 제 컨디션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너무 경솔하신 게 아닙니까?”

“하하. 재미있군. 별안간 말투가 변하였군.”

“그런 약속이지 않았습니까. 나는 약속은 지킵니다. 이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말투 따위를 바꾸는 것쯤이야.”

투박했지만, 그의 각오는 명확했다.

제드는 히죽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좋아, 자리에 앉도록 하지. 깨어나자마자 나를 찾은 걸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한데.”

게프는 그 권유에 응하여 자리에 앉았다. 활짝 열린 창가의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다.

“그는 누굽니까.”

게프는 불쑥 물었고.

“자크 경이다.”

“그는 마스터입니까.”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말이야.”

게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이 질문은 어차피 이미 짐작하고 있던 걸 확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난 뭘 해야 하는 겁니까. 미리 말해두는 데 내가 할 줄 아는 건 싸움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다. 난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한 거야. 그것은 곧 힘이거든. 힘이란 싸우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싸움을 억제하는 데에도 필요한 법이지.”

“싸움을 억제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평화를 말하는 거다.”

제드의 말에 게프는 점점 더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싸움과 힘을 얘기하다가 평화를 말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향해 제드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해왔다.

“전쟁과 평화는 하나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모습을 바꾸지. 나는 그것을 뒤집을 힘을 내 손 아래에 두고 싶은 거다. 어떤 나라들이 전쟁을 원한다고 해도 그걸 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존재한다면 평화의 기조를 깨는 건 불가능하다. 즉,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가 있게 되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공국과 벌인 이 전쟁 역시 그 일환이다. 아이러니하다만,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

게프의 얼굴이 괴상하게 찌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내 이해한 듯 푸흐흐 웃었다.

제드가 말하는 평화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만 빼고 보면 모든 것이 명징해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는데, 무엇이 우습나?”

“각하께서는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쉽다?”

“다시 말해서 전쟁을 이어나가서 제국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리 말하면 훨씬 쉬운 것을, 게프가 웃는 가운데 제드는 의표라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몹시도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게프의 그 단순한 말이 정확히 본질을 꿰뚫었다.

그가 하고자 이루고자 하는 질서가 결국 힘에 의한 확립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그 시작과 과정은 제국주의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제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지난 인간의 역사와 크게 다를 것도, 특별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명료하군. 참으로 명료해.”

단 한 순간에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본질의 앞에서도 제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작과 과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끝은 전혀 다른 것이 될 터였다.

*

“감히 나를 능멸해!”

오르노벨로 보냈던 사절이 전해온 이야기를 들은 대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강화의 조건이라는 게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스타리아 지방을 내놓을 수는 없다. 오멜 공국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단 말이다!”

대공은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직후 들려온 오르노벨의 검투 소식은 활활 불타오르는 대공의 전의도 다소 꺾일 수밖에 없었다.

오멜 공국 최강의 실력자라고 불리는 붉은 송곳니가 일방적으로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었다.

“크으윽! 필시 비열한 수법을 썼을 테지. 라이곤에 마스터급 기사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애써 부정하는 대공이었다. 그리고 결사반대하는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전열을 가다듬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퀘베스 길드연합의 군사력은 비교적 멀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과 합류하여 한 번의 회전을 잘만 치른다면 승산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대공의 선택은 실수였다.

이미 판세는 기울대로 기운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오르노벨에서 머물던 라이곤의 군대가 별안간 움직이더니 단숨에 스타리아 지방 최북단의 대도시 브랑크가 함락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제 라이곤의 군대는 대공의 목전까지 당도해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저, 적들의 골렘이 200기가 넘는다고······.”

“대, 대공 전하. 승산이 없습니다. 퀘베스 길드연합의 전령이 말한 바로는 그들에게 남은 전력이라곤 약 40기 남짓의 골렘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 군사력을 재집결하기도 전에 적의 군대가 먼저 들이닥칠 것입니다!”

“······.”

대공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현실이 이제 바로 코앞까지 드리웠다.

“그, 그러면 경들은 이대로 스타리아 지방을 적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전하! 시기를 놓치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결단을 내리셔야 할 시기입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측근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서야 대공도 언제까지고 전쟁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 역시 목전까지 드리운 라이곤의 군대가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새, 생각을······ 생각을 해보겠다······.”

대공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고,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대공이 머무르는 도시 체르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하이만 공이 찾아왔다고!”

끙끙 앓기만 하던 대공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달려나갔다. 하이만이 누구인가. 오멜 공국의 기둥 중 하나인 트라키아 길드연합의 마스터다. 하지만 접객실에서 만난 그의 모습에 얼어붙고 말았다.

“대공 전하.”

“하, 하이만 공. 하이만 공인가?”

“······예, 그렇습니다.”

항상 화려한 옷을 입고 멋을 부렸던 하이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그는 초췌한 기색이었다. 큰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어, 어떻게 된 것인가.”

대공이 물었고, 하이만은 그날 밤의 지옥 같았던 그 전투를 상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듣는 대공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전하, 군대를 재집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렇다네. 놈들이 스타리아 지방 전역을 원한다는 말을 해오지 않았겠나. 본국은 아직 싸울 힘이······.”

“안 됩니다! 스타리아 지방을 원한다면 내어줘야 합니다.”

“하, 하이만 공.”

“이번에 싸운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제드 크레인. 그가 수년 전, 자국의 내전을 평정할 때 엄청난 피바람을 불었던 것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저 동부의 강국이었던 토르가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

“듣기 불편하시겠지만, 부디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앞으로의 싸움에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적들 사이에 제가 봤던 그 숲의 괴물이 있다면, 골렘 300기······ 아니, 400기가 있어도 승산이 없습니다.”

하이만은 피를 토하듯 말했다.

오멜 대공이 그 직언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고민에 쐐기를 박듯이 오후쯤엔 퀘베스 길드연합에서도 서신이 당도했다. 더 싸워도 승산이 없노라고 말이다.

“사절을 보내겠다······.”

오르노벨에서 돌아온 사절의 이야기를 듣고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대공은 10년은 더 늙은 얼굴로 브랑크에 사절을 보냈다.

*

“끝났군.”

공국에서 다시 보내온 사절은 순순했다.

스타리아 지방을 요구하는 조건에 응하였다.

그러나 교섭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었다.

“각하께서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예? 새, 새로운 조건이라 함은······.”

이번 전쟁을 치르며 발생한 물자의 상당 배상금과 약 40여기의 골렘을 요구하는 조건이 추가로 붙었다.

공국의 사절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절을 향해서 제드의 대변인은 짧게 경고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만큼 새로운 조건이 붙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교섭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다는 것은 귀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

그리 말하는 데야 더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법이다.

공국의 사절은 눈을 질끔 감고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오멜 공국은 더는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바람이로군.”

제드는 높은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사흘 뒤, 오멜 공국과 라이곤 왕국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렇게 훗날 대수림 분쟁으로 기록될 이 싸움에서 라이곤 왕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입증하였다.

결과적으로 오멜 공국은 대수림을 중심으로 한 노예무역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남부 지방인 스타리아 전역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라이곤은 북부 지방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과 대수림의 완전한 지배권을 얻게 되었다.

바야흐로 라이곤이 대륙 동부의 국제질서의 중심에 서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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